오작너붕붕으로.. 잘생기고 친절하고 매너있고 사람 좋아보이던 옆집 사는 남자가 계단쪽에서 사람 목 물어뜯고 있는걸 봐버린 허니랑
예의바르고 선 안 넘고 귀여워서 저런 사람 정도면 부탁만 하면 뱀파이어로 만들어줄텐데, 하고 눈독 들이던 허니한테 가장 안 보여주고 싶던 모습을 들켜버린 오작이.. 이런 상황 보고싶음


오작이는 당황했지만 안 그런 척 "오, 허니.. 오늘 일찍 들어왔네요?" 하고 인사할테고, 허니는 얼굴에 피 범벅이면서도 평소와 똑같은 톤으로 말하는 오작이 때문에 현실감이 없어서 그냥 "네.. 저 남자친구한테 차였거든요.." 하고 대답할 듯.

"차였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난번에 봤던 그 사람? 허니를 찼다고요."

"바람도 걔가 피고 차는 것도 걔가 찼어요. 이상한 놈이었던 거죠 뭐.."

'이상한'을 발음하면서 계단에 쳐박혀있는 사람한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겠지. 오작이는 그 시선을 보고 자기도 계단을 돌아봤어. 둘 다 잠시 그 엉망진창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마침내 오작이가 말을 꺼냄.

"술이라도 한 잔 할래요? 혹시 위로가 필요하면."

"...좋아요."

"우리집으로 와요.... 삼십분 후에 괜찮아요?"

"네.. 좋아요."

허니가 허니의 집으로 들어가고나서야 오작이는 한숨을 내쉬겠지. 그리고 자신의 충동적인 저녁식사거리를 집으로 끌고 들어가겠지.

삼십분 후에 옆집 벨을 누른 허니는 여전히 이상한 꿈을 꾸는 것 같았음. 헤어질 구실이 없어서 만나던 남친이 헤어지자 한 건 오히려 나쁘지 않았는데, 자신을 만나는 내내 다른 사람이 있었단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 그렇게 헤어지고 터덜터덜 집에 오니 옆집 남자는 사람을 물어뜯다가 자기한테 인사를 하고, 그런데 이상하게 자기는 거기다 대고 남자친구 얘기를 하고.. 서로 인사하고 스몰톡은 하는 사이여도 집에 가본 일은 없는데 이토록 자연스럽게 집으로 초대까지. 소리지르며 도망쳐도 모자랄 상황에 자기는 초대에 응했고... 나 여기 들어가면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지만 이미 벨소리는 울렸고, 놀랍도록 평소와 같이 말끔해진 옆집 남자가 문을 열었지.



"다행히 와인이 집에 있네요. 들어와요."


오작이도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고 허니도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는 기묘한 상태에서 둘이 함께 와인을 마시게 됨. 허니는 오작이가 두 개의 와인병에서 각각 한 잔씩 따라내는 걸 봤고, 치즈 크래커에는 손도 안 대는 것도 봤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데 허니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와인이나 마실 것 같다. 내 잔에 든 거 와인이 맞나,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무거운 포도향에 그런 생각은 달아났음.



별로 할 생각도 없던 전남친 욕을 하면서 크래커와 와인을 먹고 마시다보니 취기가 오르고, 이 상황을 이상하다 느끼기엔 앞에 앉은 남자는 모든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어. 물론 남자가 잔을 들어 안에 든 걸 마실 때마다 저건 뭘까 하는 생각이 잠깐씩 들긴 했지만.


아 길어진다 그래서 여튼 둘이 믿음을 쌓거나 호감을 표현하기도 전에 이미 망했는데 어째 이상한 각도로 잘 굴러가서 사귀게 되는거 보고싶다.. 둘 다 약간 우울하고 외로운 상태에서 만나서 뱀파이어가 어쩌구 하는 건 한 마디도 없이 고굽척하고 사귀면서 쌍방으로 해감하는 그런거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