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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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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머ㅇㅁㅈㅇ ㄴㅈㅈㅇ


 

" 의뢰하신 검사결과입니다. " : https://hygall.com/468007816
 " 영웅이 돌아왔군!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 : https://hygall.com/468119154









허니는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벙커에서 나오자마자 닥터에게로 직배송되었고, 온갖 검사를 거친 뒤 받은 진단이 저랬다.

- 그렇게 오래 걸려요?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묻는 허니 비를 보고 닥터가 입꼬리만 올려서 허허 웃었다.

- 너, 밥은 먹을 수 있냐? 유동식 먹지? 식도 위장 좆창났고, 먹는것보다 수액으로 보충하는 게 더 많은데 대장 파업 들어갔을 거고, 생리는 당연히 끊겼고, 간 수치는 내 주식보다 더 판타스틱해. 이라크에서 용케 비장은 잘 간수해왔던데 걔까지 아작나면 그때는 진짜 스틱스 강 건널 수 있겠지?

닥터의 팩트폭력에 허니는 본전도 못 찾고 입을 다물었다. 약기운이라도 좀 빼라고 치료실로 간호사가 허니를 데려갔고 진료실에는 심각하게 허니의 검진결과를 들여다보는 네이트와 닥터만 남았다.

- 결국 저 앨 데려왔구먼.

허니 비 벙커에서 빼내오기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본 닥터는 네이트에게 약간 질린 상태였다. 저 새끼는 가이드로 태어난게 천만다행이야. 지 매칭센티넬이 센터 안에 숨어 있다고 사람을 내놓을 때까지 센터를 두들겨패는 가이드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 픽 부인께는 감사하다고 전해주게.

- 별말씀을요. 저희도 앞으로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내부고발을 거하게 한 닥터가 센터에 여전히 자리보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픽 가문의 비호 덕이다. 
네이트의 입장에서도 허니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닥터가 센터에서 한 자리 붙들고 있는 편이 좋았다. 

- 궁금한 게 있는데.

- 말씀하십시오.

- 쟤 수술 시킬 거요?

서류에서 눈을 뗀 네이트가 닥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 저는 수술을 약속한 적은 없습니다. 고려해 보겠다고 했었죠. 하지만 옵션은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 의외로군. 평생 옆에 끼고 살 줄 알았더니.

- 사실 그게 제 목표긴 합니다. 

네이트가 허니의 건강차트를 탁 덮었다.

- 억제제에도 죽지 않았던 형질이 수술로 말끔하게 제거될 거라고 보십니까?

닥터가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허니 비의 건강문제도 문제지만,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억제제 내성이 너무 강했다.

- 억제제와 수술은 기본적으로 원리는 같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센티넬 중에 허니보다 더 강한 억제제 내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 어째 나보다 더 확신이 있어 보이는군.

- 매칭이니까요.

형질에 관해서는 매칭이 의사보다 더 잘 알아챌 때가 많다. 그래서 의사들은 형질인 건강진단 때 웬만하면 매칭을 동반하도록 한다.

- 그래도 만약은 있는 거니까, 가능성은 열어두려고 합니다. 형질에 집착하다 사람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잖습니까.

- 그러다 자네한테 다른 매칭이 생기면 어쩌려고?

- 제 센티넬이 저에게 맞춰서 파장까지 바꿨는데, 그걸 넘을 수 있는 매칭이 어디 있습니까?

이론적으로는 네이트의 말이 맞았다. 허니 비와 네이트 픽의 매칭률이 기록적인 수치를 찍어버리면서 설령 네이트는 이후 자연발생한 매칭 센티넬을 만나더라도 허니만큼의 매칭률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터였다. 그러면 그 매칭은 준매칭일 뿐 절대 매칭까지는 못 간다.

- 쟤는 자기가 매칭이라고 못 받아들이는 것 같던데.

- 예. 그게 제일 문제긴 합니다. 

- 나한테 제일 문제는 쟤 위장상태요. 섭식이 되어야 뭘 약을 써 보든 치료를 하든 하지. 군대에서 쌓은 체력 아니었으면 진즉 뒤졌어.

안 그래도 집에 실어가야 할 유동식 박스를 바라보면서 네이트가 심란한 한숨을 내쉬었다.

허니의 몸 상태는 이라크에서 1차적으로 박살났고, 센터의 삽질로 차근차근 더 좀먹어갔으며, 벙커에서 내일이 없는 투약을 거친 끝에 닥터가 보자마자 기함하는 꼴의 산송장이 되어 있었다.
차라리 산소호흡기 달고 있었을 때가 더 건강했다는 거다. 

- 가이드씨의 협조는 걱정이 안 되는데 쟤가 뻗대는 게 걱정이요. 알아서 잘 하겠지만서도, 최대한 어르고 달래서 붙어있도록 해봐요.

- 유념하겠습니다.

저 새끼한테 내 손으로 부스터를 달아준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왠지 뒷통수가 찜찜해지는 닥터였다.




*



- 니 가이드를 수액 팩이다 생각해. 붙어다니게 놔둬. 안 그러면 그냥 응급병동 직행이다.

닥터가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배웅하는 자리까지 나와서 허니를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 불편하다고 내외하지 말고! 손만 잡지 말고! 잠도 같이 자고! 그냥 애도 만들으컼.

-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재빠르게 닥터의 목젖을 쳐버린 허니가 고개를 푹 숙여버린 탓에 옆에서 먼산만 바라보던 네이트의 광대가 솟아올랐다는 건 닥터만 보았다. 수술이고 나발이고 진짜 애를 먼저 받을 수도 있겠는데.





*




네이트의 집으로 가는 내내 허니는 조수석에 합체될 기세로 몸을 파묻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직도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형질제거수술이라는 말에 이성이 마비되었던 것 같다. 회복기간이 그렇게 오래 걸릴 거라는 걸 미처 몰랐다.내가 맞게 선택한건지. 그냥 너무 힘들어서 누가 핑계만 던져주길 기다린 건 아닌지 자괴감이 몰려왔다.
풀리지 않는 고민을 끌어안고 끙끙거리던 허니의 손을 네이트가 슥 잡았다. 

뒤집어쓴 후드가 진동을 일으키면서도 꿋꿋이 바닥만 쳐다보았다.
가이딩이 전해지자 흉부의 통증이 좀 잦아들었다. 잡힌 손이 불편해  빼고 싶었지만 닥터가 주의한 것도 있고,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익숙해져야 한다.

손만 익숙해져야 하는게 아니다. 이보다 더한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정말 닥터 말대로 엘티와 자야 할 수도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게 현실로 닥쳐 올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엘티는 날 살리기 위해서 이 모든 걸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그는 어디까지 각오했을까? 
나를 원하기는 할까?

쉴새없이 밀려드는 가이딩에 온몸이 노곤해졌다.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은데.




*





옆에서 잠든 허니의 고개가 꺾이는 걸 본 네이트가 조심스럽게 각도를 고쳐주었다. 
허니는 아직 저를 극도로 어려워한다. 본딩하기 전만 해도 이렇게 딱딱한 관계는 아니었었다. 거니만큼 허물없이 가깝지는 않았지만 등을 맡길 만한 신뢰가 있었고, 허니도 애매한 직위에 그나마 마음붙일 사람이 네이트뿐이라 그를 곧잘 따랐다.

본딩이 그들의 관계를 전부 뒤바꾸었다. 

본딩 이후 허니 비는 완전히 고립되었으며, 그와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네이트는 네이트대로 허니 비를 향한 배신감에 관계회복을 꾀할 생각이 없었고, 허니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기반으로 네이트를 대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모질게 굴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허니가 그를 향한 경계를 내비칠 적마다 입이 썼다. 손 하나 잡는 것도 저렇게 경기를 일으키고 있는데 둘은 당장 오늘 밤부터 한 침대를 써야 한다. 갈 길이 멀었다.




*



네이트와 허니의 걱정은 당장은 쓸모없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잠든 허니를 내려놓고 짐을 풀고 해가 져서 밤이 될 때까지 허니는 깨어나지 못했고, 식겁한 네이트가 전화로 닥터를 들들 볶자 닥터는 하품을 쩍쩍 하며 수액이나 달아주고 가이딩이나 하라고 일축했다. 그간 마음고생 몸고생 한 애가 가이딩에 취해서 좀 잘 수도 있지 손목에 채워놓은 밴드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야밤에 전화해서 사람 놀래키냐는 짜증은 덤이었다.

닥터에게 전화로 욕을 먹고 혼이 쏙 빠진 네이트가 수액을 찾아 방으로 돌아왔다.
주사에 익숙하지 않은 네이트도 쉽게 바늘을 찔러넣을 수 있을 만큼 허니의 손에는 바늘자국이 선명했다. 
한참 동안 어둑한 눈으로 허니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네이트는 방사가이딩을 중단하고 침대에 파고들어 허니를 끌어안았다.

두사람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파란만장한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 날도, 거진 일주일이 넘도록 허니는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제 네이트는 시간 맞춰 수액을 가는데는 이골이 났고, 모든 생활을 침실로 가져와서 하기 시작했다.

허니는 처음에는 잠에서 깨어 네이트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을 하고 침대에서 떨어질 기세로 굴러갔다. 하지만 그것도 일주일이 지나니 좀 덜 굴러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네이트보다 먼저 눈을 뜬 아침, 허니는 이제 익숙하게 보이는 가슴팍에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 네이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네이트가 잠든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네이트도 피곤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갑자기 생긴 동거인은 그가 케어해야 할 중환자였고, 그도 아직 초짜 가이드인데 24시간 방사가이딩과 접촉가이딩을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으니 왜 안 피곤하겠나.

자기 전에 커텐을 치는 걸 잊었는지 네이트의 얼굴로 햇살이 쏟아졌다.
햇살을 받은 그의 속눈썹이 반짝거렸다. 허니는 그 속눈썹이 팔랑거리며 감춰둔 녹안을 드러내는 것을 숨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 굿모닝.

네이트가 눈앞의 허니를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 허니의 팔을 네이트가 턱 잡았다.

- 오늘은 안 굴러가네.

웃음기가 섞인 네이트의 말에 허니가 입을 앙다물었다.

- 놔 주세요.

- 조금만 더 있어. 


네이트가 푸스스 웃더니 허니의 팔을 잡은 그대로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허니는 잡힌 팔을 빼지도 못하고 다시 잠든 네이트의 옆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침대에 내내 앉아있었다.



*




네이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허니는 침대 헤드에 기댄 채로 잠들어있었다. 제 손에 팔을 내준 채로 불편하게 옹송그리고 자고 있는 허니를 보며 네이트가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 편하게 눕지...

허니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뉘였다. 아까 깨었을때 유동식이라도 먹였어야 하는데. 잠깐 눈만 감고 있으려던 게 다시 잠들 줄은 몰랐다. 

그래도 허니가 깨어있는 시간이 좀 늘어난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였다. 확실히 핏기 하나 없던 얼굴에 조금 온기가 돌았다. 
이제 밥만 좀 잘 먹게 되어도 좋으련만.

지난 일주일 간 네이트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을 보살피는 기분이었다. 그 공주님이 좀 많이 허약하고 그를 어려워한다는것만 뻬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이트는 잠든 허니를 한참 조심스럽게 쓸어보다 전화가 울리는 소리에 방을 나섰다.


네이트가 방을 나간 사이에 허니가 설핏 깼다. 앉아서 잠들었던 것 같은데 누워있는 걸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네이트가 눕혀준 게 분명했다. 방에 아무도 없자 이불을 걷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잠든 동안에도 가이딩이 계속되었는지 요 근래 들어 몸이 제일 가벼웠다. 이렇게만 나아가면 금방 수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네이트와의 생활은 깜짝깜짝 놀라는 일의 연속이었다. 잘해주려고 애쓰는게 허니 눈에도 보이지만 허니는 차라리 네이트가 자신을 가구나 무생물 취급했으면 했다. 잠들어 있던 시간동안 네이트의 케어가 느껴지는 흔적들이 발견될 때마다 자꾸 심장이 내려앉았다.

씻고 나왔는데도 웬일로 네이트가 침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허니는 용기를 내어 문을 빼꼼 열었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 통화중인 네이트를 발견했다. 

 그의 식사를 방해하기 싫어 얼른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네이트의 통화내용이 허니의 발목을 잡았다.

- 아뇨. 스티브. 감사하지만 당분간은 아무데도 못 나가요.

정중하지만 살짝 짜증이 섞인 어조에 허니의 가슴이 철렁했다.
후다닥 방으로 돌아와 문을 조심히 닫았다. 방안을 둘러보자 곳곳에 침실과는 이질적인 물건들이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잠에서 깰 때마다 공책, 펜, 노트북, 충전기 등등 잡다한 물건들이 방안에 야금야금 증식하는 걸 허니도 알았다. 네이트의 생활 반경이 저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이래서 오고 싶지 않았던 건데.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을 꾹꾹 누르는데 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와 화들짝 놀랐다.

- 허니. 아직 안 졸리면 밥 먹고 자.

문 밖에서 네이트가 부르는 소리에 잠시 갈등했다. 그와 마주앉아 유동식을 먹는 것도 껄끄럽지만 제 식사를 침실에서 먹는 건 집주인에게 더 못할 짓 같았다. - 이미 네이트가 몇 번 유동식을 침대에서 먹인 건 깔끔하게 기억 속에서 지웠다 -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나갔다. 

식탁에 식사를 차리던 네이트가 허니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워 고개를 푹 숙이고 식탁에 앉아 제 몫의 포장지를 뜯자 네이트가 전용 컵과 빨대를 가져다주었다.

두사람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식사였다.

식사는 조용했다. 허니는 최대한 눈을 내리깔고 먹는데만 집중했고 네이트는 허니를 살펴보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네이트의 시선이 느껴져 허니는 최대한 빨리 먹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먹는 속도를 체크하던 네이트에게 걸려 제지당했다.

- 잠깐만 쉬었다가 마저 먹자.

허니의 유동식이 줄어드는 걸 유심히 지켜보다가 속도가 너무 빨라 걱정이 든 네이트가 팔을 뻗어 컵을 살짝 잡아 내렸다. 갑자기 먹던 것을 빼앗겨 빨대를 문 채로 눈이 동그래진 얼굴에 웃음이 나왔다.

- 너무 빨리 먹으면 토해. 천천히 먹어. 

이놈의 위장은 신생아 수준으로 퇴화한 모양이다. 아니, 신생아보다 못한가? 컵을 내려놓고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허니를 바라보던 네이트가 일어나서 뭔가를 들고 돌아와 건네주었다.

작은 병에 담긴 사과퓨레였다.
이건 진짜 어린아이들이 먹는 간식이었지만 성인들도 디저트로 가끔 찾는 물건이었다. 특히 위암환자들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환자식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네이트는 이미 유기농 환자식을 파는 사이트에서 구매후기가 조금만 좋다 싶으면 일단 다 사놓고 쟁였다. 돌려 먹이다 보면 살이 붙겠지라는 마음이었다. 

스푼으로 조금씩 떠 먹어야 해서 유동식보다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일부러 스푼도 최대한 작은 걸로 쥐어준 네이트는 조용히 전투적으로 사과 퓨레를 떠먹는 허니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허니가 사과 퓨레를 다 먹고 나서 다시 컵을 집어들려는데 네이트가 컵을 들고 전자레인지에 넣어버렸다. 좀 식었으니 데워야 한다는 이유였다. 
얼른 식사를 해치우고 도망가려는 허니의 태도를 모를 네이트가 아니었다. 점점 좌불안석이 되어가는 허니를 바라보면서 네이트가 소리없이 웃었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텐데. 저렇게 안절부절해서 어쩌나.

허니의 식사는 속도까지 체크해서 챙겨 먹였으면서 본인 밥은 거의 쓸어넣다시피 한 네이트가 뒷정리를 하려고 일어서자 허니도 벌떡 일어났다.

-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다 먹은 식기들을 꼭 붙들고 비장하게 말하는 게 웃겼지만 네이트는 허니 손을 빌릴 생각이 없었다.

- 음. 그럼 저기 두번째 서랍에 은박포장지에 싸여있는것 좀 갖다줄래?

뭐 필요한 게 있나 보다 하고 허니가 서랍을 뒤지는 동안 네이트는 어느때보다 빠르게 그릇들을 몽땅 식기세척기에 넣고 기계를 닫아버렸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사태파악이 된 허니가 뒤돌아보면서 둘이 눈이 마주쳤다. 

- 제가 한다고 했는데...

어쩔 줄 몰라하는 허니에게 네이트가 서랍에서 은박포장지에 감싸인 판 초콜릿을 꺼내 뜯었다. 

- 목표물을 빨리 찾았어야지. 

다크 초콜릿 한 조각을 아주 작게 뜯어 허니의 입안에 넣어준 네이트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 다음에는 좀 더 재빠르게 움직여 봐.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만 끄덕끄덕하는 허니를 바라보며 결국 네이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



수면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허니의 곤혹스러움도 같이 늘었다. 네이트는 그간 허니를 애착인형처럼 안고 생활했었다. 잠들어 있을때야 몰랐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깨어 있는데도 이불째로 얼러 안고 노트북을 켜는 데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 엘티...!! 

처음 달랑 들려서 안겨졌을 때 허니가 놀라 바르작대자 네이트도 잠깐 멈칫했다.

- 가이딩해야 되잖아.

허니의 입을 막는 마법의 주문. 가이딩이라는 말을 듣고 바동거림이 잦아들자 네이트가 이불뭉치를 익숙하게 고쳐 안았다.

- 심심하면 뭐 읽을 거라도 갖다줄까?

이 상태에서 글자가 눈에 들어올 것 같지가 않다. 이미 혼이 반쯤 빠진 허니는 그냥 잠을 청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책이라도 볼걸. 허니는 제 결정을 십분만에 후회했다.
이때까지 그렇게 잘 쏟아지던 잠이 정작 필요할 때는 안 온다. 
네이트의 품 안에서 정신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그의 옷자락에 얼굴이 스치는 것도 불편하고 제 숨소리가 그에게 들릴까봐 신경쓰였다. 최대한 네이트의 가슴팍에서 떨어져보려고 반쯤 허공에 떠 있는 자세로 이동하다보니 뒷목과 어깨가 뻣뻣해졌다.

- 허니. 자꾸 그렇게 움직이면 화면이 잘 안 보여.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이불 뭉치가 움찔했다. 사실 화면은 허니가 일어서지 않는 이상 전혀 가릴 위치가 아니었지만 상체만 공중부양을 시도하는 걸 네이트에게 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 심심해?
- 아닙니다.

불편해서 그러는거지. 답을 알지만 늘 그렇듯이 무시해야 했다. 

- 잠 안 오면 영화나 볼까?

네이트가 강의를 끄려고 하자 허니가 화들짝 놀라 손을 덥석 붙잡았다.

 - 강의 듣고 계셨잖습니까. 마저 보셔야죠.

- 나중에 들어도 돼.

허니의 저 표정은 뭔가 매우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허니는 네이트가 자기  때문에 뭔가를 바꾸는 상황 자체를 못 견뎌했다. 그가 그걸 아무리 하찮게 취급하고 있어도 일단 본인 때문에 할 수 있는 걸 던져버린다는 걸 괴로워했다.

- 저도 강의 듣겠습니다.
.
- 영화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 이해 못 하면 엘티께 여쭤볼 겁니다.

어떻게든 그가 듣던 강의를 수강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가상했다.

- 그래. 그럼 강의도 듣고 영화도 보자.

허니의 눈에 느낌표가 떠오르는 걸 보며 강의를 틀었다. 둘 중 하나만 하라는 법 있나. 둘 다 하면 되는 거지.

강의가 재개되자 허니는 필사적으로 교수의 말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정작 수강생은 교수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관심도 없는데 청강생이 더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모르면 질문하겠다더니. 강의가 끝날 때까지 허니는 입 한번 열지 않았다. 

- 저 교수님 말 어렵게 하지?

- ...제가 아는 게 없어서 이해를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원래 말 빙빙 꼬아서 하시는 분이야.

- 그래도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신기한 것도 많았고요.

- 그럼 앞으로 강의 계속 같이 들을래?

반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의외로 허니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 제가 같이 들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 그럼. 

네이트가 신나서 허니를 번쩍 안아들고 서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책상에 허니를 앉혀놓고 책을 몇 권 뽑아냈다.

- 이거 읽고 수업 들으면 좀 이해가 더 잘 될 거야. 심심할때 읽어봐.

- 고맙습니다.

이불 속에서 손만 빼꼼 나와서 책을 받아갔다.

- 나 때문에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혹시 싶어 한마디를 덧붙이자 이불에서 얼굴이 쏙 나왔다.

- 억지로 하는 거면 엘티가 제일 먼저 알아채실 것 같습니다만...

- 그건 맞네. 또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어?

-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허니는 처음 들어와본 서재가 신기한 것 같았다. 책을 좋아했던가?

아예 다시 안아들고 서재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몇몇 카테고리에서 허니가 눈을 빛내는 것을 잘 기억해두었다.
보고싶은 책이 있냐고 묻자 제목이 유명한 고전 몇 권을 가리켰다.
책들을 품에 안고 배시시 웃는게 보기 좋아서 뭘 좋아하는지 자꾸 묻게 되었다.

-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뭘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허니는 네이트가 자신의 지적 수준을 알면 뭐라고 할지 좀 부끄러웠다. 대학도 못 나온 고졸 여자애가 뭘 알겠나. 그의 서재는 어려운 책들이 가득해 보여서 기가 죽었다. 그녀가 공부한 건 오로지 형질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늘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열망하던 것들은 생존에 밀려 자리를 잃었다. 
그래서 허니는 군 입대를 후회한 적이 없었다. 센터보다 군대에서 배운 게 더 많았다. 

- 이거, 루디가 읽어보라고 했었거든요.

루디한테 들은 제목이 아니었으면 책도 못 골라낼 뻔 했다. 그러고보니 브라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루디의 이름을 들은 네이트의 얼굴도 회상에 잠겼다. 청문회 후 전역계를 제출한 그는 이제 민간인이었고, 자신의 소대원들은 전부 이라크로 돌아갔을 것이다. 새 소대장과 잘 지내야 할 텐데.

- 엘티는 이라크 소식 들은 것 없으십니까?

네이트에게야 마이맨들이 아픈손가락들이었지만 허니가 마지막에 얼마나 호되게 따돌림 당했는지를 기억하는 입장에서는 꺼내기 껄끄러운 주제였다. 그런데도 먼저 저렇게 묻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 소대원들이 밉지는 않아?

- 제가 왜요?

되묻는 얼굴에 한점의 원망도 없어서 네이트가 되려 부끄러워졌다.

- 나랑 본딩하고나서... 안 좋은 소리 많이 들었다고...

네이트가 답지않게 말을 흐렸다.

- 그건 누가 봐도 제 잘못이었잖습니까. 제가 원망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 그게 왜 네 잘못이야. 너는 잘못한 것 없었어.

- 그건 정말 결과론적인 말씀입니다. 

오히려 네이트가 애가 끓고 허니가 더 단호했다.

-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 모르십니까 엘티? 잘 풀려서 좋게 끝난 거지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헛발질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겁니다. 그건 제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한 것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었고요.

네이트는 저기 자신에게 저렇게 가차없이 냉정한 허니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상했다.
단단한 눈으로 그 모든 일의 시작이 제 잘못이라고 말하는 여자는 네이트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눈부셨다.

너는 어떻게 이렇게도 강인하고 경이롭도록 올곧은가.

- 결국 네가 나를, 우리를 다 살렸잖아.

목이 메었다.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고 있던 이에게 우리는 무슨 짓을 했던가.
짐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욕하고 돌을 던져댔다. 네이트는 그걸 방관한 방조자였다.

- 네가 그 날 그랬었지.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못 했다고. 우리도 그랬어.

허니의 손을 잡아올린 네이트가 손바닥에, 손 마디마디에 경건하게 입맞추었다.

- 이젠 다들 알아. 누가 우리를 살렸는지.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소대를 대표해서 전해야 했다. 그의 앞에 앉은 브라보 부대의 니케에게. 우리 모두의 승리의 여신에게.

- 너는 틀린 적 없었어. 잘못한 적도 없어. 

눈물이 고인 눈으로 네이트가 허니에게 미소지었다.

- 네가 옳았어. 나이키.



승리의 여신이 마침내 받아 마땅했을 명예를 되찾았다.








젠킬너붕붕 네잇너붕붕 중위님너붕붕
 
2022.05.16 00:46
ㅇㅇ
모바일
개좋다ㅠㅠㅠ
[Code: 4be1]
2022.05.16 02:02
ㅇㅇ
모바일
둘이 제발 행복해줘 ㅠㅠㅠㅠ 그리고 내센세는 거 행복하자 ㅠㅠㅠㅠ
[Code: ae7f]
2022.05.16 02:02
ㅇㅇ
모바일
더* ㅠㅠㅠㅠㅠㅠㅠ 너무 감동받아서 오타도 나네 ㅠㅠㅠ
[Code: ae7f]
2022.05.16 05:55
ㅇㅇ
모바일
흑흑
[Code: 3e4a]
2022.05.19 00:56
ㅇㅇ
모바일
달달하고 둘이(?) 행복해서 좋아 센세 뭐 허니도 곧 행복해지겠지ㅠㅠㅠ
[Code: 6101]
2022.05.19 08:53
ㅇㅇ
모바일
나이키...ㅜㅜ
센세...
[Code: 067c]
2022.05.19 23:02
ㅇㅇ
모바일
또 보러 왔어 센세 사랑해
[Code: 022a]
2022.05.20 22:50
ㅇㅇ
너무좋다ㅠㅠㅠ
[Code: c446]
2022.05.23 13:57
ㅇㅇ
모바일
센세 도라와ㅜㅜㅜㅜㅜㅜㅜ
[Code: 140c]
2022.05.23 22:15
ㅇㅇ
모바일
센세 너무 보고싶어 ㅜㅜㅜㅜ
[Code: 652c]
2022.05.24 23:59
ㅇㅇ
모바일
너무 재밌어 ㅜㅠ
[Code: 300b]
2022.05.25 20:00
ㅇㅇ
모바일
센세 돌아와 내가 잘 할께
[Code: 02e7]
2022.05.27 14: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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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눈물나ㅠㅠㅠㅠㅠㅠ 나 분명히 허니한테 초콜렛 찾게 두고 휘리릭 식세기 돌려버린 중위님 스윗함때문에 혀가 아리고 광대가 내려오질 않아서 이거 읽고 치과가야겠다 생각하고있었거든? 근데 지금은 눈물이 안 멈춰서 치과가 아니라 이비인후과에 가게생겼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허니라 자신의 일을 치하받으려고 그런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브라보 모두 허니에게 고맙다고 얘기해주고싶었을텐데 중위님이 이렇게 전해주네ㅠㅠㅠㅠㅠㅠㅠㅜㅜㅠㅠㅠ 하 ㅅㅂ너무재밌다진짜...
[Code: 6651]
2022.05.27 14: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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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님이 그저 책임감만으로 자길 돌보는거 아니란걸 건강 되찾은 허니가 제발 꼭 알게되면좋겠는데 센세 나 사과퓨레랑 초콜렛 먹으면서 기다릴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
[Code: 6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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