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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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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오스틴은 손님을 보내고 가게를 정리한 후에 손을 씻다가 생각함.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미래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지. 그리고 돌이켜 보면 그 시작점에는 항상 같은 얼굴이 있음.

8년 전 프롬이 허무하게 끝났던 그 날 이후로 오스틴은 매일같이 칼럼의 트레일러에 찾아가봤음. 하지만 트럭은 항상 비어있었음. 몇 시간씩 그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본 적도 많았지만 칼럼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음. 그런 짓을 한달이나 했지. 물론 그 의미없는 기다림도 오스틴은 더 오래 할 수도 있었음 칼럼을 만날 수만 있었다면. 하지만 어느날 감쪽같이 사라진 트레일러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음. 정말 끝난거구나 싶어서 그날은 돌아가는 길에 내내 울었던 게 기억이 나. 칼럼의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가 되어서 트레일러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메시지를 전송하지도 못한 건 그보다 더 이전이었지만 막상 오스틴이 이별을 자각한건 그날이었음.

대학을 예정되어 있던 대로 진학한 오스틴은 뉴욕으로 독립함과 동시에 이사를 함. 완전히 혼자가 되어서 시작한 대학생활은 정말 무미건조했어.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기숙사에 돌아오면 잠을 자는 그런 단조로운 생활의 반복이었음. 룸메이트는 정반대로 활발한 타입이라서 오스틴에게 자주 파티든 어디든 같이 가자는 얘길 했는데 그마저도 오스틴이 항상 거절하니 더 묻지 않게 되었음. 오스틴에게 그런 건 더이상 관심이 가지 않는 유희였지. 이미 지겹도록 겪어봤고, 또 이젠 그런 데에 가봤자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에만 바빠질텐데 그건 오스틴에게 그 자체로 상처를 헤집는 괴로운 일임.

대학에 다니고 2년 째에 오스틴의 진로를 크게 바꾼 일이 있었음. 그건 오스틴이 새로운 연애라는 것을 해보려고 시도했던 경험에서 비롯됨. 칼럼을 잊을 순 없었지 그건 아마 평생 지속될 거니까. 하지만 오스틴에게도 과거를 버리고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음. 바꿔 말하면 이제 칼럼을 만날 순 없을 것이고 만나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거란 사실을 오스틴은 그제서야 받아들이게 된 거임. 그때까지만 해도 오스틴은 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면 트레일러 파크에 항상 가보곤 했으니까. 고향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자꾸만 익숙한 뒷모습을 찾으려고 하다가 또 실망해서 뉴욕으로 돌아오곤 했으니까. 그때에는 칼럼이 완전히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졌다는걸 오스틴도 깨닫고 있었음. 2학년의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직은 공기가 시린 뉴욕에 돌아온 오스틴은 정말 많이 울고나서야 그걸 받아들였고 새 학기가 시작할 때에는 새 인연을 만남. 아주 기이하게도 같은 수업에서 앞뒤 자리로 앉아서 알게된 베타였는데 사실 그 베타가 칼럼이랑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었지만 오스틴은 단지 그 첫만남 때문에 칼럼을 떠올리면서 용기를 내서 그 베타에게 다가갔음. 그 연애가 잘 풀렸다면 오스틴도 많은 게 변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진 않았지. 오히려 그건 정말 짧고 실패한 연애에 가까웠음. 오스틴 본인이 칼럼을 단지 베타라는 이유로 사랑한 게 아니듯이 그 베타 역시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칼럼과 같을 수 없었고 또 사랑할 수 없었음. 아이러니하게도 오스틴은 칼럼을 잊기 위해 시작한 연애 때문에 다시 칼럼에 대한 기억에 얽매이게 되었고 새 연애는 얼마 가지 못하고 끝이 났음. 그 시점에 오스틴을 감싼 건 깊은 무력감과 그리움뿐이었지.

오스틴이 그나마 그늘에서 벗어난 건 허무하게 끝난 연애 후에 시작한 취미생활 덕분임. 캠퍼스에서 도예 동아리 포스터를 보고 충동적으로 가입했던 게 의외로 오스틴에게 위안을 안겨줬지. 혼자서 조용히 물레를 돌리면서 흙을 만지고 있으면 그나마 다른 생각을 안할 수 있었거든. 적성에도 잘 맞았고 소질도 있었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치유를 받았음. 오스틴은 그 다음 해에 돌연 자퇴하고 아트 칼리지에 새로 들어감. 사실 대학 공부를 마치면 다시 돌아가서 부모님의 회사를 물려받는게 오스틴의 정해진 진로였거든. 물론 엄걱하게 정해져있는 미래라기보다는 부모님이 최대한 오스틴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주느라 설정해놨던 장래였기에 부모님은 오스틴이 자퇴를 하고 도예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냥 받아들여줬음.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급격히 우울해지고 변해버린것 같은 아들을 알아서 그저 네가 즐거워질 수 있는걸 하라고 허락을 해준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오스틴은 지루한 마케팅 공부에서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흙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아트 칼리지를 졸업한 후에는 작게 공방 겸 가게를 차렸음. 부모님이 서포트해준 덕분에 뉴욕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었지. 거긴 사람이 정말 많고 다들 바빠서 칼럼을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꿈 같은 걸 마음 편히 간직할만한 곳이 아니었다는 점이 오히려 오스틴은 좋았음.








동화 속의 삶처럼 한가롭게 도기나 빚으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스틴은 본인의 예상보다는 이르게 바빠졌음. 최근 들어서는 특히 더 그랬어. 유명인 손님들이 많아졌거든. 아마 아버지의 인맥으로 인테리어 잡지에 오스틴의 공방과 시그니처 디자인 몇 개가 소개된 탓일거임. 부모님의 또다른 서포트였지만 오스틴은 그게 고마우면서도 조금 원망스러웠음. 혼자서도 잘 살아갈만큼 일이 바빠졌다는건 좋지만 예상치못한 인연들이 생기는 게 문제였음. 최근 오스틴의 작품을 사가는 가장 큰손인 단골이 된 사람은 방송인이었음. 그 방송인-Z을 쓰는 잭-은 몇 개의 경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셀럽인데 그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오스틴의 가게를 자신이 요즘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느니 하면서 소개까지 해주는 바람에 계속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지. 솔직히 잭의 그 요란한 화법이나 패션, 생활방식 등을 보면 오스틴의 성격상 친분을 유지하는게 조금 부담스러운 타입의 사람이지만 분명 커리어에 가장 크게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은 맞아서 끊어낼 수가 없는 거야. 대학을 바꿔가면서까지 이 일을 시작한건 그릇이나 화병 같은걸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을때만은 혼자여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던 건데 요즘에는 점점 그런 식으로만 일을 할 수는 없다는걸 깨닫고 있는 오스틴이었지.

그러니까 결국 그렇게 수년동안 기피하던 이런 자리도 일 때문에 오는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스틴은 손에 들린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음. 잭은 참 셀럽다운 생일파티를 열었음. 맨하탄 근교에 있는 넓은 집이 사람으로 가득할만큼 화려한 파티였지. 오스틴은 이미 한달쯤 전부터 잭에게 '자기도 내 생일에 와줄거지?' 하는 연락을 계속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었음. '자기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 이틀 전에는 그렇게까지 얘기해놓고 잭은 지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축하를 받으며 춤을 추고 있었고 오스틴은 술과 음식이 잘 차려진 테이블 근처의 벽에 붙어서 월플라워를 자청하면서 서있었음.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귀청이 떨어질것처럼 음악을 크게 듣는 것도 오랜만이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설프게 아는척을 하면서 말을 거는 걸 웃으면서 쳐내는 것도 오랜만이었음.

그리고 이런 환경은 오스틴을 8년 전으로 자꾸만 끌어당겨. 원치 않는 파티에 이끌려가던 기억들이 토해내는건 결국 그 마지막 파티에서 자신이 성대하게 상처를 준 얼굴뿐이라서 오스틴은 파티가 흥겨울수록 더 조용해졌지. 이런 장소에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있어야 하는 건 자신뿐일거라고 생각하면서 오스틴은 절반 이상 남은 잔을 내려놓기 위해서 테이블로 다가갔음. 안쪽을 보니 잭은 여전히 바빠서 이 정도면 자신이 슬쩍 빠져나가도 굳이 찾지는 않을것 같아. 내일이면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언제 자기를 두고 멋대로 집에 갔느냐며 또 호들갑을 조금 떨 테지만 그런 잭에게는 대충 누군가를 따라나갔다고 둘러대면 되겠지 싶었음. 잭이 오스틴에게 호의로 보이는 여러 관심이나 도움 중에는 '어떻게 자기 같은 오메가가 싱글일 수가 있어? 내 주변에 너무너무 괜찮은 알파들이 많은데 다리 한번 놔줘?' 하는 식의 관심도 있어서 오스틴은 그것도 조금 피곤하거든. 제가 망한 첫사랑이 있는데 걔가 베타였어서 알파들 만나는 건 아직도 무섭네요, 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없잖아.

오스틴이 몰래 나가려던 그 때, 그런 늦은 시간에야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도 있는 듯했음. 오스틴이 길을 찾는 동안 주변에서 지금 온 건 누구 아니냐고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렸거든. 다만 노래소리 때문에 누가 왔다는 건지 듣지는 못했고 오스틴은 인파 속에서 출입문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지. 분명 여기에서 들어온 것 같은데... 하면서 현관인줄 알았지만 뒷마당으로 향하는 문을 다시 닫고 반대쪽으로 걸어가던 오스틴은 그래서 다시 돌아온 테이블 주변에서 사람들이 어떤 키 큰 남자의 주변에 뭉치듯이 모여있는 걸 발견했음. 유명한 사람이기라도 한 건가 하다가 그런데 여긴 나 빼고는 다 유명한 사람들뿐인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했지. 그 중심에 있는 남자가 뒷모습이 어딘가 익숙한 인영이라는걸 미처 인식하지 못한 이유는 약한 술기운 탓도 있었지만 그 남자가 누가봐도 알파라는 느낌이 들어서였음. 베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아마 오스틴이 가장 먼저 멈칫하고 얼굴을 보려고 노력했을텐데. 이런 정신없는 곳에서도 시끄러운 소음과 온갖 향수나 페로몬과 담배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위압감 같은 게 없었다면 분명 한눈에 알았을텐데.

오스틴은 술잔을 들고 뒤를 돈 남자하고 눈이 마주쳤음. 그 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었지. 자신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누군지 알아차리자 굳어지는 표정. 그 후에 자조적인 웃음이 한번 터져나오고 다시 한번도 보지 못한 차가운 얼굴로 변할 때까지 오스틴에게 칼럼의 얼굴을 마주한 그 시간은 영원히 멈춰있는것 같았음. 이름을 부른다거나 아니면 뻔뻔하게 아는 척을 한다든지 하는 그런 행동을 오스틴이 생각할 틈도 갖지 못한 사이에 칼럼은 옆에 서있던 모델로 보이는 오메가에게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울여 얘기를 듣고 웃으면서 바로 자리를 떴음. 오스틴은 인파 사이로 섞여들어가는 칼럼의 뒷모습만 멍하니 보았지.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시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지. 미처 따라가서 붙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대신 오스틴은 옆에 서있던 사람을 붙잡고 다급히 물어봐.

"지금 저 사람, 누군지 알아요?"

사실 오스틴도 다 알지만 그렇게 물어본 건 이 모든 게 꿈이거나 자신이 술기운에 본 환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임. 꿈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겠어. 트레일러 파크에서 낮이고 밤이고 몇 시간씩 기다리던 그때를 비웃는 것처럼, 이런 장소에 이렇게 허무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토록 차가운 재회라면... 차라리 꿈이었으면 해.

"칼럼 터너 몰라요? 요새 인기 많잖아요."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듣기좋게 오스틴의 기대를 배반했음.







칼럼 터너. 남성 알파 배우. 뉴욕에서 거주중.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으나 대학교를 다니던 중 H스튜디오의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23살에 데뷔. 1년 전부터 주연작을 맡기 시작하면서 배우로서 주가를 울리는 중.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독특한 성장 배경 때문에 더 주목을 받고 있음. 뉴욕 지하철에서 폭행당하는 베타 노숙자를 도와주는 영상이 바이럴을 타면서 개인사가 밝혀졌는데, 바로 잠복형질이라는 희귀한 증상으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베타로 살았다는 것. 덕분에 베타로 사는 삶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은 베타 차별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꾸준히 해오고 있음. 주연 시리즈를 홍보하러 나온 데이쇼에서 밝힌 형질 발현에 관한 일화가 로맨틱하다고 화제가 됨. 이후 다음 해 같은 쇼에 다시 출연해 해당 일화가 자신에게는 좋은 기억이 아니었음을 정정해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일으킴.

오스틴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칼럼의 이야기는 그런 거였지. 거기에는 온통 오스틴이 모르는 얘기뿐이었음. 알파 형질이 발현하고 대학을 다녔고 연예인이 되었고... 모든 것이 오스틴이 알던 칼럼하고는 달랐고 혼란스러웠음. 영화니 드라마니 그런 것들에 오스틴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음. 칼럼과 헤어진 후부터는 모든 미디어의 이야기들은 가짜처럼 느껴졌거든. 어디에서도 베타와 사랑하고 헤어진 오메가의 이야기같은건 볼 수 없었고 아무런 위안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물론 칼럼하고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해도 괴로워서 찾아보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칼럼은 어느새 오스틴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거야. 오스틴은 이 지점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음. 칼럼이 좌절하지 않고 번듯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자신이 없어도 되는 세상에 있다는 것을 슬퍼해야 하는 건지. 오스틴은 파티에서 스쳐지나간 찰나의 표정을 계속 머릿속에서 떠올렸음. 눈빛이 정말 차가웠으니까 슬퍼하는 게 맞는 걸까. 이미 칼럼에게 자신은 제 인생을 할퀴고 지나간 존재라는 걸 확인받은 셈이니.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오스틴 역시 칼럼처럼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음. 어쩔 수 없었어 여전히 칼럼이 그리웠고 궁금했으니까. 오스틴은 함께하지 못한 칼럼의 시간들을 웹에 남겨진 영상이나 글 따위로 알아가야 했음. 그마저도 칼럼이 데뷔를 하고난 이후의 시간만 알 수 있는 거였지만 오스틴은 그 몇 년의 시간만이라도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했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유명인이 되어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그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팬처럼, 인터뷰를 찾아보거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칼럼이 얼마나 훌륭한 알파인지에 대해서 끝없이 얘기함. 촬영현장의 스태프들에게 친절하고 식당에서 만난 팬의 테이블을 대신 계산해주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인을 도와주는 그런 일화들이 계속 공유되었지. '세상 모든 알파들이 칼럼처럼 젠틀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들은 그런 댓글을 달면서 그를 칭찬함. 알파라서 그런 성격일 수 있는게 아니고 천성부터 다정한 사람이란 걸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았지만, 이제 와서는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그러던 중 칼럼의 영상 중에서 가장 뷰수가 높은 인터뷰 영상을 봤을 때 오스틴은 심장이 거세게 뛰었음.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그런 건 아니었지. "지난번 저희 쇼에 나왔을 때 당신의 첫사랑에 대한 얘기를 했잖아요. 기억나죠?" 칼럼은 토크쇼 진행자의 그런 질문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임. 현장에 있는 관객들이 환호하자 이내 손을 들고 흔들어 저으면서 청중을 진정시키는 칼럼에게 진행자가 말을 이어. "그 첫사랑 얘기한 클립의 조회수를 본 적이 있어요?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요. 그러니까 오늘은 개봉작이니 뭐니 다 제쳐두고 그 얘기나 더 해봐요. 그 로맨틱한 스토리를 자세히 알고 싶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거든요." 관객들이 다시 박수를 치자 칼럼은 앉아있는 소파의 팔걸이에 올려두었던 손을 옮겨 관자놀이를 괴더니 어쩔 수 없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 그러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대도록 자세를 바꾸면서 입을 열었음.

"첫사랑이었던 남자애 때문에 발현을 한 거였다고, 제가 그때 그렇게 말했던가요?"
"'그 애는 오메가였고 저는 베타였지만 제가 감히 그 애를 좋아했거든요.' 이런 얘기도 했잖아요."
"네, 그랬죠. 뭐, 저도 방송 이후로 그 이야기를 다들 좋아해주신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로맨틱한 얘기는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나쁜 애들 잔뜩 나오는 하이틴 드라마 같은 거였죠."
"장르가 조금 달라지는군요."
"조금, 많이 달라지죠.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저는 그 애를 정말 좋아했고 또 그 애도 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데이트도 자주 했거든요. 물론 걔나 저의 집에서만 했지만요. 만나는 것도 주변에는 비밀로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로맨스 같은걸요."
"잠깐 더 들어보셔야 돼요. 이제 반전이 시작되거든요. 그래서, 음... 그렇게 몇 달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애는 자기의 알파 친구들이랑 약속한 무슨 장난 같은 게 있었는지... 아무튼 걔가 원해서 저랑 사귄 건 아니었던 거죠."
"저런."
"그리고 저는 그걸 프롬 파티에서 알게 되었거든요. 제가 등장하니까 갑자기 그 애의 친구들이, 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저한테, '짜잔, 지금까지 가짜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서―"
"무슨 <캐리>의 한 장면 같네요."
"아주 비슷해요. 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네요. 제가 그 직후에 발현하긴 했으니까요."
"저도 10대 시절을 지나왔지만 가끔 신기한게 그 나이대 아이들 말이에요, 어떻게 그런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게 말이죠. 저도 그때 생각했죠. '아 형질 가진 애들은 원래 이런 건가' 하고요. 저는 그때 베타였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게 정말 많았어서... 뭐, 조금 가슴 아픈 얘기죠. 트라우마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일을 잊어버리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다시 꺼내놓으니 갑자기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어쨌든 제 말은... 더 들어보니까 전혀 로맨틱하지 않죠?"

어딘가 씁쓸하게 웃는 칼럼이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를 마치자 관객들은 위로조로 박수를 보내고 칼럼은 손짓으로 화답함. 태도나 몸짓, 제스처 같은 것은 이미 여유로운 알파로서는 흠잡을 데 없도록 변한 칼럼이지만 그 스쳐지나가는 표정에서 오스틴은 과거를 겹쳐봤음. 8년 전보다 몸집이 커지고 어른스러운 얼굴이 되었지만 여전히 제가 사랑했던 모습이 작은 조각으로는 남아있는 것 같았음.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겠어요. 참 나쁜 사람이었네요 그 첫사랑이라는 오메가 말이에요."
"......어쨌든 이제는 걔에 대해서 아무 생각하지 않은 것도 정말 오래됐고... 별 감정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도 아마 지금 당신이 이렇게 성공한 걸 보면 그 친구는 땅을 치고 후회하겠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요."
"사실 그런 생각도 했었죠. 제가 발현을 하고난 후로는 가끔씩... '지금 나를 좀 보고 후회해봐' 이런 생각이요. 그런데 제 나름대로 깨달은 게 있어요. 결국 그런 생각이 드는 것조차 미련 같은 게 남아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더라고요. 걔가 저를 기억해주길 바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그냥... 걔가 저를 아예 기억도 하지 못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됐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 저도 똑같이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남기지 않고 다 잊어버리는 게 현명한 거죠."

진행자가 칼럼에게 위로와 농담을 건넨 후 인터뷰는 칼럼이 겪은 잠복형질이라는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넘어감. 칼럼이 어린 시절 형질 오판정을 받은 이유나 잠복형질자의 발생확률 같은 걸 설명하면서 베타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동안 오스틴은 댓글창을 봤음.

'칼럼 터너랑 같은 학교 나왔음. 여기에서 말하는 그 오메가랑 알파들이 누군지 대충 기억은 나는데 딱 전형적인 불리들이었던걸로 기억함. 다들 학교에선 유명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한명도 모르겠네. 프롬 얘기는 나도 처음 알았음 왜냐하면 나도 베타여서 난 프롬 자체를 못 갔음ㅋ'
'아무리 베타라고 해도 사귀는척 하다가 저렇게 망신주는거는 좀 심하다. 저런 애들은 사회에 나가도 비슷한짓 하고있을듯.'
'보통 저런 애들이 나중에 변한 모습보면 먼저 연락하고 아는척하는게 국룰임ㅋㅋㅋㅋ 베타였다가 알파된 정도 아니어도 그냥 살빼고 잘생겨지기만해도 동창회에서 엄청 친한척함ㅋㅋㅋㅋㅋ'
'내생각엔 그때 칼럼 터너 갖고논 애들도 분명 이 영상 다 보고있을거임'
'완전 동의함. 이 얘기 너무 유명해져서 자기들도 다알걸'
'곧 동창회에서 친한척할 시간이겠군'
'내가 칼럼 터너면 동창회같은데도 굳이 안나갈듯 그래야 더 한방 먹이는거'
'어차피 지금 시점에서 제일 승리자는 칼럼임 알파에다가 유명해졌고 커리어 좋고 애인은 존나 예쁜 오메가 모델임 10대때 찌질하게 굴었던 애들따위 생각도 안나지'
'보나마나 그 첫사랑이라는 오메가 지금 보면 칼럼도 내가 이런애를 왜좋아했지? 싶을거임'
'아마 성격만큼 생긴것도 별로일듯 그런애들이 꼭 저런짓함'
'그런 오메가한테 칼럼 터너가 너무 아까움 ㄹㅇ 그말대로 아예 기억조차 안하는게 최고의 복수일거고 아마 칼럼은 그렇게 할거야 칼럼 응원함'

그런 말들이 꼭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세차게 뛰는 오스틴이었겠지. 사람들이 얼굴 모르는 자신에 대해서 험담하는 게 속상했다기보다는 그냥 스스로가 부끄러워져서, 그래서 더더욱 칼럼의 앞에 다시 나타나선 안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였음. 그날 잭의 파티에서 만난 걸 오스틴은 내심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칼럼에겐 아니었을 것 같아서, 그 순간 칼럼이 지었던 표정이 생각나면서 실감이 들었겠지. 코웃음치듯 짧게 웃고는 다시 굳어지던 얼굴. '걔가 저를 아예 기억도 하지 못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칼럼이 인터뷰에서 한 얘기를 떠올림. 파티에서 칼럼을 봤을때 자신은 아마 숨기지도 못하고 그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야. 그걸 봤으니 칼럼 입장에서는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겠지. 칼럼이 말 한마디 없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던 걸 생각하면 오스틴은 죄책감에 괴로워짐.

사실 오스틴은 칼럼의 모든 걸 기억함. 웃어주던 얼굴부터 칼럼이 속삭이던 말 하나하나 전부 다. 사라진 트레일러가 있던 곳에 매번 돌아갈 때마다 걸어보던 연결 안 되는 전화번호까지도 잊어본 적이 없이 8년을 지냄. 그러면서도 오스틴은, 널 잊지 못하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그 말을 전할 일조차 생기지 않을것 같은 현실에 슬퍼하는 자신을 징그럽다고 생각하게 됨. 사람들 말이 다 맞아. 자기 같은 사람과 다시 재회하기에 칼럼은 이젠 너무 과분한 존재가 되었다는 거. 다시 지긋지긋한 과거와 엮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 오스틴도 이제 알게 되었거든. 오스틴은 칼럼의 인터뷰 영상을 끄고 멍하니 침대에 누웠지만 그날은 거의 한숨도 잠들지 못함.







칼틴버
2024.05.16 15: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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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칼럼마음 어떤지 너무 궁금해서도라방스됨 하아 방송에 나와서 저 이야길 오픈햇다는건 ㅠㅠㅠ오스틴이 알파된 자기 알아주길바랏다는거 아님??????칼럼은 혹시나 하고 오스틴 연락 기다린거 아닐까ㅠㅠㅠㅠ 근데 연락이 없어서 다시 체념하고 상처받은거 아니냐고 ㅠㅠㅠ그러니까 다시 나와서 정정한다고 그랫다에 나의 커스터드푸딩을 걸겟어ㅠㅠㅠㅠㅠ흑흑 너무 가슴 애려서 뭐가 안넘어간다 오스틴 아직까지 칼럼 너무 사랑하고있네 그조차도 오스틴답고 ㅠㅠㅠㅠㅠㅠㅠ자낮한거 안쓰러운데 꼴려미안해ㅠㅠㅠㅠㅠㅠ아쉬펄 어쩌지 난벌써 상알파 칼럼이 8년 독수공방한 오메가 오스틴 어케 굴려먹을까.... 기대가되.
[Code: c6e8]
2024.05.16 15: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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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합니다 당신의 은혜 잊지않겟습니다....
[Code: c6e8]
2024.05.16 23: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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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씨 미친 이거다ㅠㅠㅠㅠㅠㅠ
[Code: 81e3]
2024.05.16 22: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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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장미칼 수인…. 나 또 어케 기다려…
[Code: 4679]
2024.05.16 22: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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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내 장미칼 움쪽
[Code: 4679]
2024.05.17 02: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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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존나 재밌어 센세 올때까지 이 무순에 영원히 갇혀살게되,
[Code: 657f]
2024.05.17 18: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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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칼럼아 생각해봐 둘이 다 보는 앞에서 키스 한 후에 식당에서 밥 먹을때 오틴버가 주눅들었던게 그게 괜히 그랬겠냐고 너랑 관계가 진심이었으니까 그런거지 장난이었으면 남들이 수군거리는거 아무렇지도 않았을거 아냐ㅜㅜ 누가 장난으로 첫관계를 주는데... 누가 장난으로 매일같이 붙어먹고 매일같이 전화해ㅜㅜ 조금만 살펴보면 오틴버가 진심이었다는거 눈치챘을텐데 상처가 너무 깊어서 생각할 겨를이 없나봐ㅜㅜㅜ 오틴버가 그럴 사람 아니라는거 너도 알잖아ㅜ 나중에 얼마나 닦개가 되려고 이래.........
[Code: d040]
2024.05.18 04: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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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에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
[Code: 2f41]
2024.05.18 04: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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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맛 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최고야,,,,,
[Code: 4e61]
2024.05.18 10: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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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칼럼ㅠㅠㅠㅠㅠㅠ칼럼아 진심아니지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라고해액 ㅠㅠㅠㅠ 오스틴 칼럼 둘다 자낮한거 맴찢인데 둘이 곧 만날것같아서 흥분돼 아 너무 재밌어 센세 나 센세 작품 때문에 살아가..
[Code: 8e09]
2024.05.18 12: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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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으로 얘기한 것도 그 내용도 왜케 아직 기다리고 미련남아있는것처럼 느껴질까ㅠㅠㅠ 칼럼 머리는 계속 오스틴을 놓아야돼 또 상처받고싶지않아하면서도 못놓고있었던거 아니냐고ㅠㅜㅜㅜ 오스틴과의 나눴던 애정들과 오스틴의 행동 성격을 보면 절대 연극일수가 없는데 칼럼이 살아온 날들과 그동안받았던 멸시와 무시 그리고 프롬당일에 터져버린 여러악재들이 칼럼이 그 진실을 알아챌 여유조차 빼앗아버린것 같아서 오해를 받아들이고 포기한게 이해되고 존나 찌통임ㅠㅠㅠㅠ
[Code: 6250]
2024.05.18 12: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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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재회가 너무 차갑고 아푸자나요ㅠㅠㅠㅠㅠ 왜 이별보다 더 아프냐고ㅠㅠㅠㅜㅜ 오스틴이 칼럼과의 진짜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는 그 과정도 존나 슬픔ㅜㅜㅠㅠㅠ 재회가 오히려 상처가되다니ㅠㅜㅠㅠ 어긋난 것도 서로 마주해야 다시 맞출수있으니 이 재회가 지금은 아파도 점점 나아질거라 믿는다ㅜㅠㅠ그래야만해ㅠㅠㅠㅠ 하 센세 최고다진짜 사랑해 움쪽
[Code: 6250]
2024.05.25 03: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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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도망갔어?? 사랑해..
[Code: 1770]
2024.05.25 14: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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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칼럼이 오틴버 굴릴 거 너무 기대됨 제발요 아 너무 맛있음.... 센세 나 아직 기다려
[Code: 9949]
2024.05.28 00: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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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프롬 땐 칼럼 상황이랑 멘탈이랑 몸 상태 때문에 채드 말 믿은 거 이해 됐는데 8년 지나고도 계속 걔 말만 믿고 있는 거 좀 그렇다ㅠ 오해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
[Code: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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