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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00:43

알렉산더라는 22살 청년은 음주운전차량에 치여 혼수상태로 몇 주를 보냄 그리고 건강했던 시절, 엄마에게 말했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살아야 한다면 지옥이나 다름없고, 자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그리고 알렉산더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식물인간임이 확실시된 후부터 어머니인 N 부인은 고민하기 시작함 원문 그대로 발췌한 건 아니고 중간중간 생략함

 

 

어머니와 가족들의 마음속에 이제는 치료를 중단하고 알렉산더를 죽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의사들과 상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의사들과 어머니 사이에는 이상하게 서로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의사들은 점점 그녀를 피했고, 상담을 자꾸 뒤로 미루기만 했다. 알렉산더의 어머니는 아들을 돌보던 간호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의사들이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의사들이 알렉산더를 놓아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렉산더를 위해서 무엇이든 다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삶에서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상태로 목숨만 연장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의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알렉산더는 나와 아버지, 친구에게 여러 번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고요."

 

"N 부인이 진작부터 그런 말씀을 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드님에게는 어쩌면 1퍼센트의 기회가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의사로서 그런 가능성을 빼앗고 싶지는 않습니다."

담당 의사들은 치료 중단 가능성을 아예 무시했다. (.....) N 부인은 인공적인 영양 공급은 아들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들은 "N 부인, 정말로 아들을 굶어 죽게 하고 싶으세요?" 라고 되물었다. N 부인은 그런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반박할 논거도 힘도 없었다. 그녀는 체념했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아들의 의사에는 결코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 N 부인은 아들이 건강했던 시절 밝힌대로 본인 의사에 따라 죽게 해주고 싶지만, 병원에 요양원에 여기저기 옮기는 동안 의사들은 아무도 N 부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음

 

 

N 부인은 아들을 집으로 데려가 집에서 눈을 감게 하고 싶었다. 그 방법이 무엇이고 시기가 언제든 아들이 죽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요양원에서 알렉산더에게 다시 감염 치료를 시작하려 들자 N 부인은 아들을 어느 병원으로 옮겼다.

그녀는 그 병원에서 다시 용기를 냈다. 아들을 퇴원시키기 직전에 과장 의사를 만나 모든 가능성이 소진되었고 자신은 한계에 이르렀으니 제발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심장과 전문의이자 중환자 전문의인 의사는 알렉산더의 운명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고, 아들을 이제 그만 놓아주고 싶어 하는 N 부인의 바람을 이해하고 인정해준 첫 의사였다. 

 

(......)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문제에서 망설이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 역할은 부차적으로 받아들였고, 무엇보다 아들의 뜻을 실행하는 것을 의무로 삼았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그녀는 "저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이 제 소유는 아닙니다" 라고 말했고, 그 말에 나는 깊이 감동했다. 나는 N 부인의 편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아내와 자식들, 손자들의 헌신적인 간병을 받았던 식물상태의 환자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들이 환자들을 바라보던 시선은 N 부인이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전혀 달랐다. 가령 의사의 아내였던 T 부인은 6년 전 소생술을 받은 뒤 식물상태에 빠진 남편을 돌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 사람이 내 삶에 의미를 주었어요. 나에겐 그가 필요해요." 

또 산악 사고를 당한 뒤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한 딸을 둔 K씨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고 직후 중환자실에 있었을 때라면 딸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제 딸도 그것을 원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3년 반 동안 딸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는데, 이제 와서 딸을 떠나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될 테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식물상태의 환자가 폐렴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항생제와 산소를 공급받는다면 누가 치료를 받는 걸까? 환자일까? 아니면 간호하는 가족일까? 

발터 R, 그는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7년 동안 식물상태로 누워있었던 서른여섯 살의 환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24시간 근무하는 간병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집에서 아들을 돌보았는데, 간병인들의 말에 따르면 거의 '공격적인 헌신' 속에서 아들을 보살폈다. 간병인들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아버지가 볼 때 흡족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간병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들을 면도시킨 뒤에 수염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거나 이마 위에 놓인 땀수건이 충분히 차지 않으면 요양 보험사에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했어요. 우리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발터 R은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PEG 튜브로 영양을 공급받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토와, 위의 내용물이 폐로 들어가는 사태가 거듭 일어났고, 그로 인해 양쪽 폐에서 심각한 염증이 생겼다. 그의 아버지는 밤낮으로 아들의 병상을 지켰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든 조치를 철저히 통제했고 지치지 않고 환 자의 모든 기록에 대한 검열을 요구했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한 모든 의학적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에 반해 아들의 비극적인 생존 조건과 기계에 의한 인공호흡 가능성, 소생술 등에 대한 대화는 한 번도 나누려 들지 않았다. 

발터 R을 간호하거나 치료했던 모든 사람은 사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안위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평화가 더 절박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아들의 희생을 대가로 얻는 평화 말이다.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 헤로인 중독자 페터 T도 생각난다. 그는 가족이 없었고, 마약 때문에 발생한 농양과 혈전증, 심장내막염 등으로 벌써 수없이 입원한 전력이 있었다.

페터 T'는 엄청나게 피를 흘리면서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고, 바지는 무릎에 걸쳐져 있었다. 핏덩어리로 뒤덮인 오른쪽 허벅지에는 굵은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틀림없이 헤로인을 주사하려다 정맥 대신에 동맥을 찌른 것이다. 우리는 즉시 소생을 위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 결국 그의 경동맥에서 맥을 잡을 수 있었다. 우선은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동공은 경직돼 있었고, 이는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의 자가 호흡이 돌아왔다. 그러나 의식과 지각, 소통 능력은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여러 번에 걸친 철저한 신경학적 검사 결과는 언제나 동일했다. '저산소성 뇌손상에 의한 식물상태'였다.

몇 년 뒤 나는 페터 T를 다시 만났다. 식물상태였던 그는 5년 전부터 한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야간 당직 간호사가 숨이 가빠 그르렁거리는 그를 보고 응급차를 부른 것이다. 나는 일요일 새벽 4시, 페터 T가 다른 두 명의 식물 환자와 함께 사용하는 병실의 흐릿한 조명 아래서 그의 침대 옆에 섰다. 진단은 침분비 기능 장애였다. 의식이 없는 환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호흡 합병증으로, 기침을 해서 분비물을 내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관을 삽입해서 분비물을 뽑아내야 했고, 간호사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나는 그의 폐에서 0.5리터가량의 끈적거리는 분비물을 뽑아내면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사람이 죽어도 될 만큼 아플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 사람은 아직 살아 있어요. 물론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듣거나 느끼지 못하지만요. 하지만 이 사람이 없으면 저는 일자리를 잃게 되겠죠."

식물상태에 빠진 환자들 간병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조치였을까?
 

 

 

- 암튼 책의 저자(의사)는 알렉산더가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해주도록 N 부인을 도우려고 함 그래서 식물상태가 확실한지 재차 확인하고, 사고를 당하기 전 했던 말들을 공증받고 등등 철저하게 준비함

 



다시 한 번 간곡히 설명하자면 나는 여기서 한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안락사를 거론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식물인간 환자들에게 실행되는 온갖 조치들과 간병이 그들의 뜻에 부합하는지, 그들에게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 삶에 대한 참여라는 의미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논의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자의 분명한 뜻에 걸맞은 환자의 행복만이 의사의 치료와 개입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참석자들 중 몇 명은 알렉산더의 의사를 거스르면서까지 그의 죽음을 막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비자연적인 일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심한 손상을 입어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되는 생명은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 본인이 그러기를 원한 경우에 이에 반하는 모든 행위는 월권이라고 했다.

 

 

- 알렉산더를 치료했던 의사나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전원 찬성했지만, 그중 누군가 내심 이건 아니라고 느꼈는지 익명의 고발장을 적어 지방법원 판사에게 보냄 그래서 N 부인은 아들을 살해할 작정이라는 비난을 받고, 보호자 권리를 박탈당하고, 알렉산더는 집이 아닌 요양원으로 옮겨짐 사실상 납치지 뭐 그래서 알렉산더의 변호사는 판사의 결정에 이의신청을 제기하지만 9개월 동안 기다려야했음 고통스러운 시간 끝에 N 부인은 아들에 대한 권리를 되찾고, 의사와 함께 죽음을 준비함

 


알렉산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의학이 식물상태에 대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고통을 느낄 수가 없다. 배고픔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배고픔도 통증과 마찬가지로 대뇌 중추신경들이 온전해야 느낄 수 있다. 몰라볼 정도로 몸이 마르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알렉산더는 다시 예전 모습과 비슷해질 것이다. 어깨와 복부, 엉덩이의 피하지방이 빠지고, 고칼로리의 유동식과 너무 많은 수분 공급으로 부었던 몸이 조금은 탄력을 되찾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몇 주정도 걸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폐렴이나 요도염에 걸릴 것이고, 조용히 평화롭게 죽을 것이다.

사흘 후 나는 음식물과 수분의 양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안정되고 긴장이 풀린 수면 상태에 놓였다. 좁은 의미에서 알렉산더의 죽음은 이제 시작되었다. 때로 알렉산더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공부했고, 이제 죽음을 맞을 방에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나는 의사 윤리와 우리 법질서에 의해 정해진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확신을 굳히기 위해 몇 번이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알렉산더는 젊고 아직 삶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였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매우 단호하게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지속적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타인에 의존해 연명해야 하고, 세상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된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이것이 알렉산더의 뜻이었고 그 진정성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뜻은 정당할 뿐 아니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내가 알렉산더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나는 몇 번이고 식물상태가 의미하는 바를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완전한 의식불명 상태로 지각과 소통 능력도 없이 계속 살고 싶지는 않다. (...) 내 입장에서는 식물상태의 인간에게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의식의 조각이 아직 남아 있느냐 아니냐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완전히 단절되었고 마치 사회에서 추방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신경학에서는 식물상태에서 고통을 느낄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극도로 비인간적인 상태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의사와 판사, 가족들이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알렉산더의 죽음이 온전히 그의 일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지휘하는 사람은 알렉산더 자신이어야지 우리여서는 안 된다. 그의 죽음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몹시 힘들게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일 그의 체온을 쟀다. 39.2도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벌써 며칠 전부터 예상해온 감염이 나타난 것이다. 이 감염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N 부인과 그녀의 친구, 알렉산더의 여동생, 간호하는 이들, 그리고 나 자신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나는 알렉산더가 고통을 받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인공영양을 중단한 지 4주 5일이 지난 어느 일요일 오후, 알렉산더의 호흡이 점차 잦아들었다. 
알렉산더는 어머니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게 중간중간 생략해서 그렇지 실제론 거의 30페이지에 가까운 긴 내용임 환자가 건강하던 시절 본인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어머니도 아들의 의사를 받아들여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은데 정작 타인인 의사들은 1퍼센트의 가능성이란 말로 회피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더라 가능성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일이 커질까봐,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 이쪽에 더 가까워보였음 저자는 이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적인 입장임(본인도 의사임)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언론이 정말 희박한 사례에 불과한, 식물인간의 회복 케이스에만 조명을 비추는 것도 안 좋게 봄 본문엔 거의 빼버렸는데 갑자기 판사새끼 튀어나와서 권리 빼앗아가는 것도 핵고구마 ㅅㅂ 고발장 보낸 새끼는 또 누구고 ㅅㅂ 9개월을 인내한 끝에 되찾아와서 다행이지 하여간.. 챕터마다 생각할 거리가 엄청나게 많아지는 책이라 요즘 읽을 거 없는 붕붕이들한테 ㅊㅊ함 책제목대로 난 어떻게 죽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됨 처음에 읽을 땐 뭐여 그래서 DNR 의사를 평소에 밝히고 다니란 건가?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건가? 하고 좀 삐딱했는데 읽다보면 이런 감상이 엄청 일차원적이란 걸 알게 될 거임 ㅋㅋㅋ 암튼 엄청 인상적인 에피라 같이 보고 싶어서 적었음 

미하엘 데 리더 -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2024.05.03 00: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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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다.... 저게 맞다...
[Code: cb72]
2024.05.03 04:52
ㅇㅇ
모바일
ㅈㄴ좋다 금처 도서관이 있나 빌려봐야겠음... 덕분에 좋은 책 알게되사 고마워~~
[Code: aa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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