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ㅇ



1. 풋사랑











"아버지! 저 왔어요."



폴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왔어.

웬일인지 레토가 먼저 집이 아닌 밖에서 만나 밥을 먹고 들어가자 제안했고 그렇게 해서 오랜만에 아들을 맞이한 레토도 반가움에 환하게 웃었어. 학기 내내 거의 매일같이 통화나 문자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지만 레토는 폴의 근황을 궁금해하며 배고프진 않은지 오는 길에 불편한 건 없었는지 묻고 또 물었어.

폴은 오랜만에 아버지와 데이트한다는 기대감에 전날 밤부터 설레었는데 막상 만나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생긴 쇼핑몰은 볼거리와 먹을거리로 가득했고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잠시 쇼핑을 했는데 원체 쇼핑을 좋아하는 폴에 반해 레토는 그런 것에 통 관심이 없었기에 지루할 법도 한데 폴이 이리저리 대주고 입어보라고 보채는 손길에 저항 없이 받아줬어.

폴은 즐거웠어. 특히 평소 레토가 즐겨 입는 단정한 스타일이 아닌 폴의 취향에나 맞는 자켓이나 점퍼 운동화 캡모자 같은 것을 입혀도 제 아들이 고른 거라고 하면 마음에 든다는 레토의 미소도 좋았고 막상 입으면 뭐든 잘 어울리는 탓에 골라주는 맛도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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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이 레토를 데리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에 가자 더욱 즐거워졌어. 레토에게 대체로 익숙한 레스토랑형식 주문이 아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커스텀 주문 형식의 음식점이었는데 무엇을 고르고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모르는 레토에게 점원이 주문을 보채자 레토는 당황했어. 그럼 폴이 아버지의 어깨를 감싸고 맛 조절이라던가 맵기라던가 옵션추가 사이드메뉴 선택 같은 걸 재빨리 대신 주문해 줬겠지.

그렇게 주문해서 나온 요리는 레토에겐 하나의 모험담이 됐어. 어떤 면에선 평소 다니던 레스토랑보다도 좋기까지 했는데 사실 원체 잘 먹는 편인 레토는 뭘 먹든 좋았고 당혹스러웠던 상황에 나서서 먼저 리드한 폴에게 왠지 모를 대견함마저 느꼈겠지. 이제는 늙어 뭐든지 뒤처지는 아버지를 위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나서주는 착한 아들이 고마웠어. 다른 집 아이들은 저 나이쯤 되면 부모님을 귀찮아한다던데 폴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버지를 좋아했어.



"잘 먹어야 건강하지."



대체로 식사시간 내내 먹는 건 레토뿐이어서 입이 짧은 폴을 꾸짖었지만 막상 감자튀김을 집어 내밀면 폴이 잘 받아먹었고 그렇다고 레토가 필요 이상으로 먹기를 강요하진 않았기에 폴은 맛있게 먹어치우는 아버지를 관찰하며 만족해했어. 그러다 레토의 음료가 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컵을 내려놓기 무섭게 집어 들어 곧바로 음료를 채워왔어. 레토는 싹싹하고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는 폴이 고맙고 대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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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폴은 레토와 돌아다니며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는데 그건 레토와 다니면서 의식적으로 느끼게 된 시선들이었어. 이제까지 아버지가 근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 용모에 대해 다른 사람의 태도를 주의 깊게 살펴본 적 없었어. 그런데 막상 아버지와 다녀보니 여자들의 눈길이 그들을 따라다니고 점원에게 레토가 예의껏 미소를 띨 때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폴은 빤히 바라보았어.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매력을 느끼고 두 사람에게 눈짓하는 것을 의식하고나자 폴은 스스로 아버지와 걷는 그 시간이 뿌듯해졌어.


우린 정말 멋진 한 쌍이야.


폴은 레토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마음이 흡족해졌어. 서로 닮은 면과 닮지 않은 모습을 공유한 부자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렇기 때문에 처음 폴이 레토에게 미라를 소개받았을 때 그는 아무런 대비나 경고 없이 한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몸을 굳힌 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려 애써야 했어. 두 사람이 카페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미라가 레토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들었어.



"폴, 사실 너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자리를 마련했어."



미라는 사업차 이 지역에 들렸다가 우연히 레토와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이 사귀게 된 지는 이제 2주 정도 되었다는 것을 얘기를 했어. 그러면서 미라는 폴의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고 꼭 만나보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해달라 자신이 졸랐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이미 미라와 마주한 순간부터 폴의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그런 이야기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어. 폴의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는데 바로 레토가 할 말이 있다고 따로 불러낸 이유가 고작 이것 때문이었다는 사실이었어.

남들이 보기에 폴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하고 지루해 보였지만 폴은 피가 싸늘하게 식고 입술 끝이 빳빳해진 채 멍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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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같이"



미라는 폴이 사준 캡모자를 레토의 머리에서 벗기곤 그의 머리를 정돈해 줬어.

그런 미라의 손길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레토를 폴은 빤히 바라보다가 가끔 두 사람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네. 네. 하고 대답했어. 그러고는 곧 사실 친구들이랑 근처에서 약속이 있다고 하고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와 버리겠지.









그렇게 혼자 몰에서 나온 폴은 곧장 집으로 갔어. 방으로 들어온 그는 몸을 굳힌 채 갑자기 심한 외로움을 느꼈어.

폴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제가 고른 예쁜 옷을 입히면서 레토가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이제 와 아버지가 더 이상 폴의 것이 아니게 됐어. 아니 오히려 레토가 폴의 소유였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이미 폴이 태어나기 전부터 제시카의 것이었고 폴이 미처 그 틈을 포착하지 못한 사이에 곧바로 미라의 소유로 양도됐어.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미라는 언제 어디서나 레토를 차지할 권리를 갖게 된 셈이 됐어.


바로 오늘처럼


폴은 제가 사준 모자를 레토의 머리에서 벗겨내던 미라의 손길을 떠올리자 가슴이 시려왔어.

이제까지 폴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단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런 감정을 억누르려 부단이 애를 써야만 했어. 그것은 정말로 외로운 감정이었고, 아버지의 환심을 사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고 가능했고 항상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리고 귀여움만 독차지하던 폴에게 벌어진 일이었어.


그날부터 폴이 방학을 지내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미라가 폴과 레토의 집에 드나들었어. 폴이 보기에 미라는 항상 레토 곁에 붙어 다니며 그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걸 확인하려는 듯 자꾸 레토의 뺨과 턱을 쓰다듬곤 했는데 소유욕을 나타내는 그녀의 만족스런 몸짓을 보고 있자니 폴의 마음속에서 미라에 대한 질투와 증오심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어. 하지만 폴은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그런 내색을 삼갔지.

하지만 그러다 우연히 거실에서 미라가 레토의 머리를 잡고 입 맞추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날엔 폴이 그대로 인상을 구기고 올라가 방문을 쾅 닫아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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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레토는 아직 어머니를 못 잊었을 폴에게 죄책감을 느꼈지만 미라가 폴은 이제 성인이고 시간을 주자는 말로 레토를 안심시켰겠지. 레토에게 미라는 현명하고 자상한 미의 여신이었어. 그녀가 곁에 있다면 폴에게도 자신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미라의 위로에 고개를 주억였어.

반면 방으로 들어온 폴은 무기력한 분노에 사로잡혀 발에 채이는 잡동사니를 걷어차고 온갖 상스럽고 험한 욕설을 간간이 내뱉으며 이내 평정심을 되찾으려 침대에 누웠다가 결국 베개를 두들겨 패면서 현실을 부정했어.


그래. 아버지는 속고 계신 거야. 항상 그런 여자들에게 휘둘리시지 그런 것을 알아보기엔 너무 순진하신 분이시니까.


아버지는 자신의 시선이 미치는 곳이라면 누구든 상냥하게 대하고 자비롭게 굴었어. 그러니 아버지가 미라를 만나는 건 순전히 동정심이나 속임수 때문일 거라 폴은 결론지었어.

평소 폴은 침착하고 머리를 차갑게 만들기 쉬웠지만 이상하리만치 레토와 관련되면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 모습과 마주하곤 했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때였어. 바보 같은 어리광과 시기, 짜증, 될 대로 돼라식의 치기 어린 분노. 그런 어린애 같은 감정을 잠재우려 부단이 노력했지만 어느새 침착함은 생각으로 생각은 상상으로 상상은 뜨거운 열병 같은 것으로 번졌어. 그래서 그 열병은 밤이면 밤마다 어두컴컴한 복도 끝쪽에 있는 그 닫힌 레토의 방문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을 상상하며 몇 시간씩 허비하곤 했는데 그렇게 하루하루 열병이 더욱 심해지고 뜨거워졌다는 것 외에 폴에겐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었어.











결국 폴은 그런 식으로 방학을 전부 허비하면서 보냈어. 그런 폴을 위해 대학교로 돌아가기 전 집에서 파티가 열렸는데 폴은 제 송별파티임에도 불과하고 손님이 있는 곳을 피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머물며 이웃들과 웃고 떠드는 레토의 얼굴을 실컷 쳐다봤어.

송별파티는 이웃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초대된 자리였고 오래 알고 지내온 이룰란 또한 자릴 함께했는데 폴은 이룰란과 그늘에 가려진 구석에 앉아 쉬며 이런저런 잡담을 떠들었어. 대부분 동부생활에 대한 이룰란의 질문공세였는데 대략 동부 여자들은 어떻냐거나 여자친구는 만들었냐는 둥 하는 질문이었지. 그럼 폴은 대충 판에 박힌 대답을 해줬어.



"그럼 나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
"이봐요 말괄량이 아가씨. 또 누구한테 짖궃은 장난을 치려고?"



이룰란은 자신의 고백을 사소한 장난쯤으로 받아치는 폴에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어.



"하도 짝사랑 앓는 풋내기 같은 몰골이길래 내가 구제해줄까 했지."



그 순간 폴은 레토를 쳐다봤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레토와 딱 눈이 마주쳤는데 레토가 햇살처럼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자 폴은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달라져 이제껏 이룰란이 한 번도 본적 없는 상냥한 눈빛과 온화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어. 그 갑작스러운 변화와 다정한 얼굴에 이룰란은 놀라 얼어붙었어.



"너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천하의 폴 아트레이데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대체 어떤 여자애길래. 호기심이 일어 묻자 이룰란에게로 눈을 돌린 폴이 다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음료를 홀짝이며 심드렁하게 굴었어.



"그래 보여?"
"누군데?"
"그건 비밀이야."
"고백도 안 했어?"



고백? 문득 폴의 두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았어.


왜 난 이제껏 그 생각을 못 했지? 내가 이토록 아버지를 사랑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절대 이대로 두고만 보시지 않을 거야.


폴은 욕심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제껏 갖고 싶은 건 뭐든지 가졌고 폴이 원하는 걸 얻어내지 못한 경험이 없었어. 레토 또한 폴을 키우면서 폴이 상처받을 만한 일을 해본 적 없었으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폴에게 가르쳐본 적 없었어.

그래서 폴은 자신의 상심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해왔는지 알린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언제나 어렵지 않게 원하는 것을 얻어버릇하고 상대방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아버릇해본 아이가 할만한 결론이었어.

폴은 자리에 일어나 이룰란을 지나쳐 접시를 치우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는 레토의 뒤를 따라들어갔어. 만일 레토가 폴의 고백을 거부했을 때의 일은 폴의 염두에 없었어 폴에겐 자신이 레토를 사랑한다는 진실만 알리면 그만이었어.









"왜 그러니 폴."



폴이 부엌으로 조르르 쫓아오더니 멀뚱히 서서 레토를 바라보고 있자 레토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익살스럽게 물어 폴은 갑자기 긴장돼 굳기 시작했어. 이런 상황에 내놓을만한 근사한 대사들과 행동들이 머릿속에 스쳤지만 막상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이룰란 말대로 풋내기 같은 모습이었지. 그래서 그저 레토의 얼굴을 빤히 쳐다만 봤고 그러자 레토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바뀌었어.



"무슨 문제라도 있니?"



폴이 그늘진 곳에 앉아 쉬고 있던 것이 떠올라 손으로 폴의 이마를 짚어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열을 재는데 오히려 따끈따끈한 건 레토의 손이어서 폴이 그 손에 제 시원한 얼굴을 문댔어. 그러면서 손에 붙였던 이마를 뺨으로 이내 입술로 붙였는데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폴은 기숙사 생활하는 동안 내내 레토와의 이런 접촉을 그리워했고 바로 오늘과 같은 일이, 자신이 고백한 뒤 아버지를 얻게 될 지금 이 순간을 벌서 오래전부터 바랬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잠시나마 머뭇거렸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졌어. 폴은 레토의 손에 자신의 얼굴을 대범하게 문대며 말했어.



"문제라면 있죠. 제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거요."



놀랄 거라는 폴의 예상과 달리 레토는 미소를 지으며 폴의 뺨을 쓰다듬어 줬어. 그러자 두려움과 걱정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행복과 자부심이 마음속에서 솟구쳤어.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그건 당연한 일이지 않던가.


레토는 다정하게 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어.



"나도 널 사랑한단다 폴."



그 순간 미소를 지으려던 폴의 입가가 그대로 굳어 숨이 멎은 듯 강렬한 침묵이 흘렀어. 뭔가 잘못되었고 폴이 원한 대답은 이런 게 아니었어. 좀 더 은밀하고 어딘가 야릇한.. 뭔가 애틋한 그런 대답을 기다렸고 레토의 손길은 그저 어린아이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듯한 몸짓에 불과했어. 그러자 폴은 제 머리를 쓰담는 레토의 손목을 낚아채 붙잡았어.



"아버지도 제 마음을 알고 계셨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도 절 사랑하시고요."



폴의 강렬한 분노와 애절함이 담긴 어투에 레토도 그제야 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어. 그런 폴의 모습을 처음 봤기에 더 했겠지. 레토는 잠시 놀란듯 싶더니 폴의 얼굴에서 어떤 장난이나 속임수 같은 게 있는 건 아닌가 유심히 살폈고 곧 장난기라곤 전혀 없는 폴의 표정에 조용히 숨을 삼켰어.

잠깐 동안 두 사람 사이에 고요한 침묵이 흘렀고 폴은 레토가 잠시 숨조차 쉬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어. 그리고 점차 레토의 표정이 알쏭달쏭 해지더니 그의 눈빛이 걱정스러움과 믿기 어렵다는 의심이 어렸어.

이건 폴이 계획했던 바가 아니었어. 저런 의아함이 담겨있는 표정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라니.



"폴.. 넌 아직 어리고 때때로 네 스스로 무얼 원하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어. 내 생각에 넌 무언가 헷갈린 거 같아."
"전 제가 뭘 원하는지 알아요. 전 아버지를 원하고 있어요."
"나도 널 필요로 한단다.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그 사랑은 진짜 사랑과는 달라."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 가족으로서 말이야. 내 생각엔 넌 이룰란을 좋아하고 있어. 둘이 제법 잘 어울리지.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리니까 엉뚱한 데로 생각이 뻗친 거야."



그러면서 또다시 격려하듯 부드럽게 폴의 등을 두드려줬어. 좋은 의도에서 그랬겠지만 이런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태도는 폴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어. 폴은 분하고 화가 나서 숨이 턱 막혀 말도 안 나왔어.


아버지는 날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날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상대하려 들지 않는 거고.


반면 레토는 말문이 막힌 폴을 보며 그가 알아듣고 있다고 생각했어.



"아까 이룰란이랑 얘기하는 걸 봤어. 네 표정이 설레 보이더구나. 난 분명 둘이 잘 돼가는 거라고 생각했어. 혹시 거절당한 거라면 다시 한번 잘 얘기해 봐서.."
"그만하세요! 제가 원하는 건 그런 시시한 어린애들이 아니에요. 여자친구를 만든다거나 연애놀이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요. 제가 원하는 건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몸이고 아버지의 몸을 열고 아버지의 안에 들어가고,"
"그만."



그 순간 레토의 얼굴에서 드러난 표정은 오래전 아버지가 아끼는 말이 꼬꾸라져 그대로 척추가 부러졌을 때를 떠올리게 했어. 일어나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말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더니 레토가 폴에게 잠시 물을 떠다 줄 수 있느냐며 내보냈고 폴이 마구간에서 한참 멀어진 다음 마구간에서 총성이 울리는 걸 들었어. 폴은 그제야 아버지가 말의 머리에 총구를 당겼다는 걸 알았어.

왜 지금 그때의 상황이 생각난 걸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아버지가 나에게 그럴리 없지 않는가.



"폴. 난 미라와 결혼할 거야."



하지만 또다시 예상은 빗나갔고 레토는 폴에게 방아쇠를 당긴 거나 다름없었어. 이제 혼돈에 빠져버린 폴은 뒤로 주춤 한걸음 물러서서 완전히 흥분한 채 횡설수설 댔어.



"미라? 그 통제광 여잘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제가 아니라 그 여자일 수 있죠??"
"넌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 네 나이 땐 모든 게 어리둥절하고 헷갈리는 법이야. 분명 훗날 오늘 왜 이런 얘길 했었나 하고 그냥 웃고 말게 될 거야."
"당신은, 당신은 언제나 잘못된 선택만 하지, 미라 그 여자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갖고 놀고 있는 거라고,"
"폴."
"당신이, 당신이, 그쯤은 눈치챌 줄 알았어. 그 여자가 여왕 행세를 하고 아버지를 장난감 갖듯이 다루고-"
"폴 그만."
"당신은 처음부터 그랬어. 어머니 같은 괴물을 알아보지 못했고,"
"어머니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폴이 제시카를 비난하자 레토의 눈빛이 달라져 조금 전까지 달래듯 다정하던 어투가 엄격하게 변했는데 되려 폴은 그 변화에 조금 안심했어.



"왜 안되죠?? 제가 원하면 아버지를 사랑한다 고백할 수도 있고 어머니를 혐오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이 평생 못 잊는 제시카 그 창녀 같은 여자는"


쫙!!


폴의 고개가 돌아간 채 휘청였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늘해져 그와 동시에 레토 스스로 제가 아들의 뺨을 때린 것에 놀라 주춤거렸는데 그의 얼굴이 분노와 후회가 뒤얽힌 복잡한 표정으로 얼룩졌어.

미친 듯이 질주하던 말은 우뚝 멈춰 섰고 조금 전까지 보였던 들뜬 감정이나 열망, 격정은 완전히 희미해졌어. 폴은 미동도 없이 고개가 돌아간 채 그대로 서있었고 레토는 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거의 숨도 쉬지 않으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기다렸어.



"...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되실 거세요."



폴의 얼굴이 머리카락에 가려져 표정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 일인지 그의 눈빛에 고요한 광채가 담겨있었어. 그 순간 레토는 직감적으로 무언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것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어.



"폴!"



하지만 레토가 미처 붙잡을 겨를도 없이 폴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파티 또한 막을 내렸어.

레토는 실망감을 안은 채 손님들을 배웅하고 뒷정리했어. 폴이 행선지를 밝히지 않은 채 나갔기 때문에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리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문만 바라봤어.

어색한 분위기에 미라가 레토에게 폴이 어딜 갔는지 혹시 무슨 일 있었냐고 묻지만 차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없었던 레토는 폴이 친구들과 나간 것 같다고 대충 얼버무렸어. 수시로 전화도 걸어봤지만 전화기는 꺼진 채 소식이 없었어. 내일은 폴이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날이었기에 레토는 방학 마지막 날을 이런 식으로 마무리한 채 아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어.


괜찮겠지.. 폴은 괜찮을 거야...


어쩐지 자꾸 불안한 기분이 들었어. 폴이 떠나기 직전 마지막에 느꼈던 그 고요한 광채가 레토의 마음을 어지럽혔어. 결국 초조한 기분으로 늦은 밤까지 잠 못 들고 폴을 기다리고 있자 집안으로 전화가 울려 레토가 다급히 받아 "폴?"하고 물었어. 하지만 전화를 한 이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어.



"그게 무슨 말이죠?"



처음에 레토는 상대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어. 그래서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말씀해달라 되물었고 곧이어 충격에 얼굴이 창백해졌어.



"폴이 어떻게 됐다고요..?"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레토의 목소리가 떨렸어. 되묻는 질문에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폴이 차사고가 났고 생명이 위독해 병원에 있다는 내용을 되풀이했어.











듄굗 폴레토 레토텀 티모시오작 현대au
2024.05.04 00: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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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제목에 붙은 1이 너무 감동적이야
[Code: d75b]
2024.05.04 04: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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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씨 ㅈㄴ재밌다 숨쉬는것고 잊고봄
[Code: b08a]
2024.05.04 13: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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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존나재밋어 센세 센세는 천재여 미쳣어 이 대작에 1이 붙어잇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며 으아미친 ㅠㅠㅠㅠㅠㅠ
[Code: 18bb]
2024.05.04 22: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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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잡의 시작에서 센세와 함께.....
[Code: 1401]
2024.05.05 00: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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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폴의 아버지에 대한 광기어린 사랑과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는 레토 너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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