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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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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오는 글임

휴머니즘이 있는데 페미니즘이 왜 필요하냐 <- ㅁㄱ 인터뷰 왜곡한 일 떠오름








일상생활에서 성별이 화제가 되면 남성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매 맞는 남편도 있다", "여학생(여직원) 휴게실은 있는데, 남학생(남직원) 휴게실은 없다", 조선 시대에 비하면 여성의 지위가 나아졌다", “평등을 원하면 여자도 군대 가고 숙직해라", "돈은 내가 내고 포인트는 그녀가 쌓는다(데이트 비용)”, "여자들은 불만만 많고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차별은 일부 여성들이 겪는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며, 한국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일 뿐 아니라 점차 여성 상위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음양의 이치처럼 원래 대칭적이며 성역할 내용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분업이다. 이런 조화와 균형을 깨뜨리고 분란을 일으키며,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 혹은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그렇게 많이 만들어졌는데, 성차별? 이제는 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만일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페널티'로 제재하면 되지 '성차별 주장'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성별 이데올로기는 남녀 모두 깊이 내면화되어 있어서 여성주의자조차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들은 객관적 통계를 동원하거나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지지만, 사회적 제도로서 성별 체제는 설득이 아니라 투쟁, 협상(negotiation), 경합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다.


그녀/그의 피부색이나 태어난 계급의 조건에 맞는 직업, 감정 표현, 옷차림, 섹슈얼리티, 가사 노동 등 일생 전반에 걸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즉 “계급 역할(당신은 가난하므로 공부하면 안 된다),”이나 "인종 역할(당신은 흑인이므로 실업자가 자연스럽다)” 같은 표현은 없다. 반면, 성 역할 (gender role, “여자는 애를 낳아야지")이란 단어의 존재는 성차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상의 정치인지, 젠더가 얼마나 인식하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인지, 얼마나 탈정치화 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략)


사람들은 '여성의 해' 제정과 같은 일이 여성에 대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여성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없다."는 식이다. 성의 구별이 '사회적 억압 제도'가 아니라 단지 '대칭 집단'이라는 사고방식은, 최근 몇 년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기승을 부린 극심한 미소지니(misogyny, 여성에 대한 혐오) 현상과 이에 대항한 여성들의 대응을 '남혐'으로 명명함으로써 절정을 맞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서 한국 사회가 여성 집단에게 가장 많이 '취조'한 내용은 "여성주의는 일베와 다를 바 없다.", "여혐이나 남혐이나 같은 이혐이다.", "여성의 저항에는 동의하지만, 일베와 같은 방식에는 반대한다."였다.


위와 같은 인식의 전제는 남성과 여성을 성별이 다를 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범한 개인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이다. 성별 관계는 계급, 인종 문제처럼 정치적인 것이다. 지배 대 피지배, 중심 대 주변, 강자 대 사회적 약자, 주체 대 타자의 관계다. 그러나 대개 젠더 관계는 '남녀상열지사, '음양의 조화' 처럼 상/하/좌/우가 균형 잡힌 대칭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일부(?) 진보 진영은 "여성주의는 사회 운동이 아니라 (남성을 혐오하므로) 혐오 시대의 공범자"라고 비난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주의에 대한 일상적인 통념인 "휴머니즘이 있는데, 페미니즘이 왜 필요 하냐?”, "(남성들의 주장은 보편적이지만) 여성주의는 보편적이지 않다"는 무지와 다시 만난다.



(중략)



통념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의 통념을 재고해야 할까. 예를 들어, 여성의 출산은 자연의 질서일까, 사회적 선택일까. 여성주의는 출산이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며, 성별 분업의 하나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당대 한국 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이 상황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 계획의 슬로건 아래 국가가 여성의 낙태를 주도하고 인구 조절에 앞장서 왔다. 또 한편 우리 사회는 여아 낙태로 악명이 높다. 이러한 현상들은 출산이 인간의 선택이며 사회 정책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현재의 저출산 현상은 여성들의 자기 계발, 사회 진출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여성의 고등 교육화에 따른 여성 자신의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여성들은 저출산을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은 다시 남성 중심의 인구학(“부국강병의 전제는 인구가 많아야 한다")이라는 또 다른 정치와 충돌하고 있다. 이처럼 출산이야말로 대표적인 정치적 의제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연의 개념 자체, 어디까지가 자연의 영역인가라는 질문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자연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Cogito ergo sum)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기 때문에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몸은 생각할 수 없다.
2024.04.21 23: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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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좋은 책이네
[Code: ce3e]
2024.04.22 07: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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묺 ㄷㄱ
[Code: 99b3]
2024.04.23 03: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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묺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ㄷㄱ
[Code: b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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