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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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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너만 모른다고."

"야, 네가 나 좋아하는 걸 내가 왜 몰라, 나도 너 좋아해."

"..."

"친구끼리 서로 안 좋아하면 그게 친구냐?"

"... ..."




화가 나 보였다. 근래 얘가 화난 표정을 짓는 걸 자주 보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대답도 없이 매섭게 보고만 있길래 야, 하고 어깨를 툭 쳤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버렸다. 뭐야, 또 왜 저래?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닌지라 난 앉은 자세로 바꾸지도 않고 누운 자세에서 고개만 빼꼼 들었다. 난 걔의 뒤통수에 대고 몇 번 더 걔를 불러 세웠다. 



"야!"

"..."

"새끼야, 진짜 가?"

"..."



곧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난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아래층까지 내려갈 줄은 몰랐다. 보통 걘 화가 날 때면 화장실에서 혼자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내게로 돌아오곤 했다. 쾅,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힘을 세게 줘 닫았는지 아래층에서 울린 소리가 복도를 타고 내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미친놈. 이젠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뭔데, 뭐 때문에 또 화가 난 건데. 친구끼리 좋다는 게 죄야? 지는 좋아한다고 말해놓고 나는 하면 안 된다, 이거야? 난 창가로 향했다. 드르륵, 창문을 열고 고개를 쭉 빼 내밀었다. 이제 막 제 집으로 들어가려는 애가 보였다. 옆집이 하도 가깝게 붙어있어서 걔가 현관문을 열려는 것까지도 전부 다 보였다. 



"야 이 미친 새끼야!!"

"..."



아, 끝까지 이렇게 나오시겠다? 대답은 못 들었지만 그래도 집 안에 들어가려는 건 막은 것 같았다. 문 손잡이를 잡고 있긴 했지만 손잡이를 돌리던 움직임은 멈춘 게 보였다. 걘 앞만 보고 몸이 굳은 것처럼 굴었다. 



"누가 문을 그따위로 닫아?"

"..."



입을 꾹 다물고 못 들은 척하는 게 속을 긁었다. 괜히 짜증이 나서 똑같이 속을 긁어주고 싶었다. 언제서부턴가 피지컬로는 얘를 이길 수가 없어서 입으로만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귀 먹었어? 벙어리야? 정신 나간 새-"

"나도 이름 불러주면 안 돼?"



다시 한번 새끼, 하고 면박을 주려는데 그제야 고개를 들어서 한다는 말이 이름을 불러달란 얘기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이였다. 그때야 당연히 티미, 티미- 하고 잘만 불러줬지만 지금은 그게 좀 어색했다. 좀... 오글거린달까. 간지럽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아무튼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이제는 야, 너, 얘, 쟤, 걔, 그리고 새끼를 이름처럼 돌려 부르던 참이었다. 내 기분이 들떴을 때만 가끔 티미, 티모시, 하고 불러주었다. 그게 서운했던 걸까? 이름 좀 안 불러줬다고?

걔는 문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나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시선이 따가웠다. 나도 모르게 창문을 소리 나게 닫고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을 기대고 미끄러지듯 내려와 주저앉았다. 귓가가 뜨끈한 게 느껴져서 나는 끙, 소리를 내며 무릎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쨍쨍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둘러 핸드폰 속 시간을 확인했을 땐 최소 3교시가 끝났을 시간이었다.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잠시 멍하게 있다가 어기적어기적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어차피 늦은 거 서둘러도 별 차이 없을 거란 생각에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 일찍 준비를 끝내고 날 깨우러 와주던 애였다. 그렇기에 부모님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평소처럼 출근을 하셨을 테고. 이렇게 말도 없이 혼자 가버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쁜 놈. 속 좁은 놈. 학교에 늦어서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냥 배신감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을 뿐이다. 문자 메시지 마저 보내지 않았는지 텅 비어있는 알림 창이 괜히 야속했다. 

느긋하게 걸어서 도착한 학교에는 날 보고 왜 이렇게 늦었냐며 등짝을 치는 그런 흔한 친구들조차 없었다. 당연했다. 내게 친구는 걔가 유일했다.

4교시도 곧 끝날 시간이라 나는 그냥 카페테리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난 일회용 스티로폼 그릇에 샐러드만 조금 담았다. 평소 앉는 자리인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걔를 기다렸다. 조금 짜증을 부렸다가 옆구리를 콕콕 찔러줘야지. 포크를 들고 샐러드를 좀 깨작거렸다.

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는데, 걔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눈이 마주쳤으니 아는 척을 해줄만 한데도 슬쩍 눈을 피하는 게 아니꼬왔다. 평소라면 먼저 인사를 하다 못해 내가 받아줄 때까지 낯부끄럽게 굴 녀석이었다. 뒤늦게 걔 주변의 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들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 머리를 쳤다. 나는 친구를 못 사귀는 거고, 쟤는 안 사귀는 거라는 게. 걔는 내쪽을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 애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확실히 학교 괴짜인 나보단 멋부리는 애들 무리가 쟤랑 더 어울렸다. 속이 뜨겁게 열이 났다. 결국 나는 점심시간 내내 혼자 앉아 있어야 했다. 

절반이 넘게 남은 샐러드는 끝내 다 먹지 못하고 버렸다.

학교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 나는 사물함에서 가방을 싸며 걔를 기다렸다. 5분, 10분이 지나가는데도 걔는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걔의 사물함 앞으로 자리를 옮겨봐도 걔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신발 속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알림창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걔와의 메시지 창을 열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너 어디야]
[먼저 갔어?]


이미 학교에는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렸다. 혹시 모르잖아, 갑자기 선생님이 급한 일이라며 붙들고 있을지 누가 알아. 나는 기어코 30분을 넘게 더 기다리다가 학교를 나왔다. 가만히 한 자리에 서있기만 했더니 다리가 아팠다. 학교 밖에서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걔한테서 답장이 왔다. 걔 아니면 내게 문자를 할 사람도 없으니 무조건 걔가 맞았다. 난 걷기를 멈추고 문자를 먼저 확인했다.


[미안, 잊었어]


뭘 잊었다는 걸까? 먼저 간다고 귀띔해주는 거? 아니면 그냥 나를 잊은 걸까? 속이 상했다. 매번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구는 애였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나는 어제의 일을 속으로 몇 번이고 곱씹었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속상한 미음을 내리누르며 핸드폰 타자를 꾹꾹 눌렀다.


[집이야?]

[아니, 밖에]


이번엔 전송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답장이 왔다. 내가 답장으로 온 그 네 글자를 다 읽기도 전에 얘는 문자를 한 번 더 보내왔다.


[허니 넌 집이지?]


내가 집이냐고? 난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학교가 코앞이었다.


[이제 갈 거야]


전화가 걸려왔다. 얘가 하루 종일 날 피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바로 받지는 않고 벨소리가 몇 번 더 울리도록 두었다. 복수라고 칭하기도 뭐한, 그런 나약한 복수였다.



"어디야?"



바로 어디냐고 묻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오늘 종일 보인 모습과는 상반되게 목소리가 퍽 다정했다. 어디냐고 묻는 것 뿐인데 이렇게 다정하게 물을 건 없지 않나? 욱하는 성질 때문에 괜히 얘한테 화를 낼까 봐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오늘 본 얘의 모습이 나와 너무 멀게 느껴져서, 자그마한 실수에 갑자기 또, 더 멀리 멀어질까 봐 겁이 났다. 대답이 없으니 재촉할 법도 한데 얘는 기다려줬다.



"학교 앞인데..."

"..."

"..."



이번엔 얘가 또 말이 없다. 낯설었다. 내가 또 말실수했나 싶어서 입술을 짓이겼다. 그것도 잠시였고 나는 얘가 전화를 끊어버릴까 봐 두려워 아무 말이나 붙여보려 했다.



"너-"

"나 기다린 거야?"



얘가 묻는 말에 나는 가만히 바닥을 내려보았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꾸짖음을 듣는 것만 같았다. 오늘따라 얘가 너무 낯설어서 기분이 내려앉았다. 이번에도 대답이 늦어지자 얘는 또 기다려줬다.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난 침묵을 유지했다. 저 짜증나는 바보를 왜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지 나도 내가 한심할 지경이었다.



"미안해."



사과를 한 건 얘였다. 세상 모든 잘못이 내 탓인 것처럼 느끼게 해놓고 항상 사과를 하는 건 얘다.



"..."

"미안해."



답이 없자 얘는 사과를 한 번 더 반복했다.



"나쁜 새끼."

"허니-"



미안함이 묻어나는 다정한 목소리에 속이 뒤틀려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또 욱해서 감정적으로 애처럼 굴었다. 난 왜 이렇지?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팔로 머리를 가렸다. 걔는 이런 날 매번 받아주며 어땠을까. 진짜 싫었겠지? 이번 통화를 마지막으로 나랑 말 한 번 안 섞을지도 몰라. 한적한 거리에서 쪼그리고 두 손 가득 머리칼을 쥐었다. 성난 속을 달래며 눈을 꾹 감았다. 눈가에 열이 오르는 걸 보니 곧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았다. 좆같은 사춘기 호르몬. 사춘기를 탓하며 숨을 고르니 좀 기분이 나아졌다.



"허니,"



얘가 날 부르기 전까진 그랬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난 목소리가 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리 가."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상관 없었다.



"내가 미안해."

"..."

"허니."

"또 나 때문이야?"

"... 어?"

"또 나 때문이냐고."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얘가 당황했다는 게 목소리를 통해서 훤히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때문이냐고. 널 또 화나게 한 게 나냐고 묻잖아."

"... 아니야."

"내 잘못이지?"

"아니야."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 널 화나게 만든 건 내가 맞잖아. 네가 잘못을 했을리는 없잖아. 넌 늘 완벽하니까. 내가 뭐든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항상 죄를 지은 건 내가 아니었을까?



"너 때문 아니야.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눈앞에 얘의 신발이 보인다. 얘의 바지가 바닥에 쓸리는 것도 보인다. 얘는 무릎을 바닥에 꿇고 내 턱을 부드럽게 잡아 올렸다. 내 눈앞의 다정한 눈을 보고서 난 잘만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려버렸다.



"근데, 흐윽, 왜..., 흡, 왜 그런 건데..,"

"미안해. 나한테 화가 난 걸 너한테 화풀이했어."

".., 끕. 나쁜 새끼...,"

"응, 내가 나빴어. 내가 나쁜 새끼야."



문자도 안 하고오- 아는 척도 안 하고오- 나 친구 너 밖에 없는 거 알면서어- 흡, 끕, 흐윽, 흑. 얘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덕분에 난 얘의 어깨를 눈물 콧물로 적실 수 있었다.



"미안해. 허니, 진짜 미안해."



얘는 집에 돌아가는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아, 적당히 좀 해. 이렇게 미안하다고 빌 거면 왜 맨날 미안할 짓을 해?"



잠깐 울었다고 잠겨버린 목소리로 걔를 타박했다. 걔는 내 가방까지 뺏어 들고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어디까지 따라와, 화장실 갈 거야!"

"앞에서 기다릴게. 응?"

"... 방에서 기다려..."

"응, 알았어. 방에서 기다릴게."



그렇게 걔를 내 방으로 보낸 뒤, 나는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짜증나. 나중에 얘가 나한테 똑같은 짓 또 하기 전에 먼저 절교 선언으로 선수를 칠까? 난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너 좋아한다고 막 티를 냈는데도 몰라주니까 속상해서 그랬어."



할 말이 있다고 날 침대에 앉혀놓고 한참 뜸을 들이다가 하는 말이었다.



"등신."

"... 진짜 미안해. 내가 나빴어."

"그거 눈치 좀 못 챘다고 좋아하는 애한테 그러는 애가 어딨어?"

"내가 등신이라서 그랬어."



난 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 무릎에 올려진 손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중에 제대로 고백해."



얜 눈에 띄게 밝아져선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받아줄 거야?"

"생각해 보고."



그것마저 좋다고 웃는 게 너무 단순해서 나도 조금 웃어버렸다.



"허니, 나 고백 받아주면 매번 이름 불러줘야 해?"

"... 생각해 보고."



아니면 자기-도 좋아. 달링 같은 것도. 신나서 덧붙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매우 큰 일이 났음을 느끼고 말았다.



얘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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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너붕붕
2024.04.17 22: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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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존나 문학... 감정선 개도랏...
[Code: bb42]
2024.04.17 22: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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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귀엽다 둘다....
[Code: 28f0]
2024.04.17 23: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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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팔..너무 귀여워..
[Code: aec1]
2024.04.17 23: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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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센세 납감해..
[Code: 6865]
2024.04.17 23: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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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랑 허니 진짜 너무 귀엽다....ㅜㅠㅜㅠ청춘 그차체
[Code: 7cbc]
2024.04.18 00: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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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읽을래ㅜㅜ
[Code: 7c5e]
2024.04.18 00: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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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영사해ㅠㅠㅠㅠㅠㅠㅠ
[Code: a037]
2024.04.18 00: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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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귀여워..
[Code: 2401]
2024.04.18 00: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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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저미소 지으면서 읽었네.. 내센세 천재만재ㅠㅠ
[Code: 69e9]
2024.04.18 02: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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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연둣빛이 돌고 산들바람이 느껴진다;; 이 공감각 뭐야 필력뭐냐고 청춘을 그린 서양단편문학같아요
화낼까봐 속으로 숫자세고 대답하는 장면 진짜ㅠㅠㅠ 캐릭터 구상이 너무 섬세해요 선생님ㅠㅠ 그래서 허니가 생각해보고 받아주는지 마는지 알려줘요 어나더 10482721편 줘
[Code: 703d]
2024.04.18 05: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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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존나달달함
[Code: e98d]
2024.04.18 08:20
ㅇㅇ
모바일
하 ㄱㅇㅇ
[Code: 6cf7]
2024.04.18 18: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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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이게 여름이구나
[Code: 7e2c]
2024.04.20 02: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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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여름을 데려오셨다
[Code: 9d4a]
2024.04.24 15: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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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혼자 밥먹을때 나까지 서운했는데.. 티모시 미쳤나... 유죄.... 유죄.... ༼;´༎ຶ ۝༎ຶ`༽༼;´༎ຶ ۝༎ຶ`༽༼;´༎ຶ ۝༎ຶ`༽
[Code: d4a6]
2024.04.30 18:26
ㅇㅇ
몽글몽글하다
[Code: 95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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