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맨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가 루스터를 찾아온 이유는 어떤 말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러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맨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루스터와 관련된 일이면 모든 것이 모호하게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짙은 감정이 이성의 경계를 지우고 쌓아온 질서를 어지럽혔다. 그는 대개 루스터로 인해 벌어지는 그러한 현상이 좋았으나, 때때로는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찰지도 모르겠다는 감상을 늘여놓기도 했다.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조금은 벅찬 순간.


"...미안."


루스터는 행맨이 말하는 미안함의 범위를 가늠해 보았다. 말도 없이 전역해버린 게 미안하다는 것인지, 몇 개월만에 얼굴을 비추는 주제에 홀몸이 아니라는 게 미안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을 포함한 과거의 도피 자체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루스터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행맨에게 되묻고 싶지도 않았다. 루스터는 '뭐가 미안한데?' 같은 구차하고 뻔한 질문은 행맨을 괴롭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행맨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너 아니야."


완전하지 못한 문장 속에서도 루스터는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이제 너밖에 없어."
"......."
"네가 해주면 안 돼?"


행맨이 물었다. 여전히 완전하지 못한 문장들이었다. 비어 있는 공간에 아이 아빠라는 말을 넣으면 딱 들어맞을 것만 같았다. 아이 아빠는 네가 아냐. 하지만 이제 아이의 아빠가 되어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 네가 아이의 아빠가 되어주면 안 될까? 그 말을, 루스터는 전부 다 알아들었다. 그래서, 괴로웠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리를 떠나버리고만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죽은 눈을 하고 나타난 행맨을 외면할 수만 있다면, 루스터는 몇백번도 넘게 더 그랬을 테다. 하지만 루스터는 행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행맨을 내칠 수도 없었고, 그가 하는 말을 못알아들은 체 할 수도 없었다.


"행맨."
"응."
"...일단 들어가자."


따라서 루스터는 행맨을 제 집안으로 들이기로 했다. 버지니아의 겨울은 차디차서 차마 행맨을 내칠 수 없었던 것 뿐이라고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변명을 중얼거리며.



*



행맨에게 거실의 소파를 내어준 루스터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으레 그렇듯, 루스터는 행맨을 위한 데운 우유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루스터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다말고는 멈춰섰다. 행맨에게는 유당불내증이 있었다.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임신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루스터는 한 손에 우유를 들고 망설였다. 행맨이 우유를 먹어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행맨에게 유당불내증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도, 또 그 사실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도.

루스터는 잠깐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우유를 다시 냉장고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런 다음 물을 끓였다. 기포가 보글보글 끓는 것을 바라보며 루스터는 언젠가를 떠올렸다. 언젠가, 제 속을 저렇게 들끓게 만들었던, 그 언젠가의 행맨을.


루스터가 건네는 찻잔은 따뜻했다. 사실, 따뜻하다는 말보다는 뜨겁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계속 찻잔을 붙잡고 있다가는 손이 델 것만 같아서 행맨은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바닥은 화끈거렸다. 루스터가 건네는 것은 항상 그랬다. 가까이 품으면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뜨거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왜 하필 나야?"


침묵을 깨트린 것은 루스터였다. 행맨은 고개를 돌려 루스터를 바라보았다. 원망 혹은 기대. 어쩌면 둘 다.

뜨거운 찻잔 때문에 화끈거렸던 손바닥이 다시 차가워졌다. 행맨은 주먹을 말아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다시 찻잔으로 손을 가져갔다. 동그란 찻잔을 감싸쥔 손바닥으로 열기가 전해졌다. 뜨거웠다. 루스터가 건네는 것은 항상 그랬다. 가까이 품으면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뜨거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멀리하게 되면 결국 그 온기가 그리워져 다시 손을 뻗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는 날 사랑하잖아."


루스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실망 혹은 기대. 어쩌면 둘 다.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아도."


행맨은 다시 찻잔을 내려놓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도 사랑해 줄 거잖아."
"......빌어먹을. 행맨, 넌-,"
"아빠가 되어줄 거지?"


루스터는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맨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루스터의 대답은, 행맨이 그를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었다.

마침내 루스터가 입을 열었다.


"이기적인 새끼."
"응."
"재수없는 새끼."
"알아."
"너 같은 새끼를 사랑하게 된 건 아마 내 인생 최악의 실수일 거야."
"...그건 좀 마음 아픈데."
"젠장. 그래도 난 널 사랑해."
"알아.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지."


루스터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눈이 내리기 시작한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행맨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의 성은?"
"브래드쇼로 하자."
"세러신은?"
"이제 그런 건 필요없어."
"...너한테도?"
"응. 나한테도."
"세상에. 제이크 브래드쇼라니."
"넌 항상 그걸 원해왔잖아."
"...실은 브래들리 세러신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어."


그러자 행맨이 웃음을 터트렸다. 루스터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행맨이 웃고 있었다. 아주 예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제 앞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행맨."
"응."
"제이크."
"그래."
"제이크 브래드쇼."
"...왜 자꾸 불러."
"사랑해."


루스터는 정말이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루스터행맨 루행

 
2024.03.29 20:33
ㅇㅇ
상황은 비극인데 두 사람 대화 왜 이렇게 찡하지ㅠㅠㅠㅠㅠ행맨은 루스터가 자기를 사랑하니까 무엇이든 받아줄 것을 알고 있고, 루스터 역시 그런 행맨을 내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고...행맨이 브래드쇼가 되겠다고 했을 때 루스터 진짜 아찔했겠다ㅠㅠㅠㅠ이기적이고 재수없다고 면전에서 내뱉어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네ㅠㅠㅠㅠㅠ
[Code: 17bf]
2024.03.29 20:37
ㅇㅇ
와 제목에 1이 붙어있다!!!! 행맨이 제이크 브래드쇼가 된건 좋은데 과정이...ㅠㅠㅠ 진짜 루스터 아이 아닌걸까? 센세 제목에 1이 붙어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Code: d909]
2024.03.29 20:45
ㅇㅇ
모바일
행맨 너무 뻔뻔하잖아 근데 루스터는 행맨이 웃는 걸로 충분하다는게 정말 사랑하나봄ㅠㅠㅠㅠ
[Code: 313d]
2024.03.29 21: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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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맨 그 몇개월동안 무슨일이 있던거야ㅜㅠㅠㅠ
[Code: 7714]
2024.03.29 21: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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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다 행맨ㅠㅠㅠㅠㅠ 하지만 저렇게라도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겠지.. 센세가 제목에 1붙여주셨으니까 억나더로 이 둘의 사연과 행복해질 미래를 볼 수 있겠지 붕키 너무 기대돼 센세ㅠㅠㅠㅠㅠ
[Code: 72a4]
2024.03.29 22: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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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나 지금 너무 군침돌아..💦💦💦💦💦💦💦💦💦💦
[Code: e003]
2024.03.29 22:36
ㅇㅇ
모바일
개재밌다
[Code: 3447]
2024.03.29 23:14
ㅇㅇ
모바일
주말을 앞 둔 밤이 설레는 이유가 센세의 금무순 때문이었음을ㅜㅠㅠㅠ게다가 뒤에 1이 붙어서 너무 행복해ㅜㅠ
[Code: fe10]
2024.03.29 23: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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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가슴 뜨끈해진다..... 행맨이 웃는 거 하나만으로도 괜찮아지는 루스터라니.....
[Code: 5759]
2024.03.31 03: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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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상황은 모르지만 이것만 보면 행맨 개뻔뻔한데 루스터가 제이크 브래드쇼라고 부르고 좋아하는걸 보니....이래도 될것같다..싶기도 하고.......어휴....
[Code: 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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