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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창설 기념 만찬은 언제나 장엄했지만, 올해는 특히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샹들리에에서 흘러내리는 금빛 조명 아래, 회장에 가득찬 해군 제복과 검은 턱시도, 화려한 드레스가 반짝였다. 회장 안은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낮은 웃음소리가 뒤섞였지만, 연회장의 한쪽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원인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태평양함대사령관 톰 “아이스맨” 카잔스키 제독, 그리고 그의 배우자 피트 “매버릭” 미첼 대령.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이스맨은 완벽하게 다려진 드레스 블루의 가슴팍에 수많은 훈장들을 가지런히 달고 태연하게 장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매버릭도 그에 못지 않은 훈장을 잔뜩 단 드레스 화이트를 차려입고 잔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전 사소한 말싸움으로 시작된 냉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매버릭은 행사 내내 아이스를 피했다. 아이스 옆에 설 기회가 생기면 곧장 몸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와인을 따른다, 다른 장성과 이야기를 나눈다, 화장실에 다녀온다… 핑계는 다양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 아이스를 피하려는 것. 그러면서도 매버릭은 도무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이스가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모습, 샴페인잔을 드는 손끝, 심지어 누군가의 농담에 고개를 살짝 젖히는 순간까지… 매버릭의 눈길은 자꾸만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눈이 마주칠 것 같으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곤 했다.


아이스맨이라고 달랐을까. 회장에 가득찬 외부 인사들은 하나같이 태평양함대사령관과 한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고, 노련하게 그 사람들을 상대하면서도 아이스맨의 시선은 틈만 나면 매버릭에게 향했다. 잔을 몇 번 비웠는지, 얼굴은 굳어 있지 않은지, 자리를 자주 옮기는 건 아닌지, 누군가 매버릭을 향해 다가가진 않는지. 수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아이스맨의 의식 절반은 여전히 매버릭을 좇았다.
 

결국, 연회장에 모인 모든 사람이 두 사람의 상태를 눈치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스맨과 매버릭만이 서로를 훔쳐보며 모르는 척에 몰두해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중령은 속으로 기도했다. 대령님, 제발 사령관님이랑 화해 좀 해주세요. 저희 다 질식할 거 같아요.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대통령이 입장했다. 연회장은 일제히 기립했다.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몇몇 주요인사들과 악수를 나눈 뒤, 대통령은 아이스맨을 향해 다가왔다.
 

"카잔스키 사령관, 오랜만이군."

대통령은 내민 손을 마주한 아이스맨이 공손히 악수를 나누자, 대통령은 손을 놓지 않고 미묘하게 몸을 기울였다. 마치 국가 기밀이라도 나누려는 것처럼 대통령이 사령관에게 귓속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주변 장성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괜히 다른 소리를 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이스맨도 순간 긴장하며 대통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 
 

"아직도 화해 안 했나?"
 

아이스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대통령은 웃음을 머금은 채, 낮은 목소리로 계속 속삭였다.
 

"해군 최고의 부부가 냉전 중이라는 얘기가 백악관까지 들어오던데, 사령관."
 

아이스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사방에 깔려있다는 걸 알면서도 미처 그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설마하니 공적인 것도 아니고, 사적인 부부싸움까지 백악관의 눈이 닿을 줄이야. 아무리 이 대통령이 매버릭에게 호의적이고, 지난 번 미션 이후 더더욱 매버릭을 주시하고 있다고 해도 설마하니 이런 일까지 보고를 받고 있을 줄이야. 대통령 앞만 아니었어도 어떤 자식이 얘기를 흘렸냐며 당장 나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아이스맨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소한 일로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각하."
 

대통령은 태연히 옆을 지나던 직원의 트레이에서 샴페인잔 하나를 집어들어 아이스에게 건네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전장에선 미국의 사령관이 물러서면 안 되지. 물론 그렇고 말고. 세계 최강의 태평양함대를 이끄는 사령관이 물러서는 모습은, 최소한 내 임기 중에는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네. 당연히 그래야지." 

대통령은 잠시 말을 끊고, 매버릭 쪽을 괜히 쳐다보며 씩 웃었다. 

"하지만 부부싸움에서는… 작전상 후퇴를 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태평양함대사령관으로서 아이스맨은 평소 대통령 앞에서도 절대 주눅들지 않았다. 해군에서 가장 큰 지휘권을 가지고, 20만명이 넘는 휘하의 부하들을 지휘해 대통령의 뜻대로 광대한 바다 위를 지키는 남자는 그 누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톰 카잔스키가, 딱 한 명. 평생을 함께 해 온 배우자 앞에서만은 이렇게 흔들렸다. 하루하루 그 미모를 더 해 가는 눈부신 상대 앞에서는 아직도 풋내기 청년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그대로 들켰다는 생각에 지금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자신은 사령관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목적을 달성하고, 최고의 수를 써서 승리를 얻어내는.

대통령이 건넨 잔을 한 번에 비워내고, 흥미진진한 눈으로 장난기가 잔뜩 깃든 얼굴을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살짝 목례한 아이스맨이 잔을 내려놓고, 회장 벽에 기대어 있는 매버릭을 향해 눈을 돌렸다.  멀리서 그를 훔쳐보던 매버릭은 순간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귀끝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스는 속으로만 짧게 웃었다. 피트, 내가 패배하는 건, 단 한 명. 네 앞에서만이다.
 

얼굴에는 아무 변화도 드러내지 않았다. 늘 그렇듯 절제된 표정, 군인다운 발걸음으로 망설임없이 매버릭을 향하고, 회장 안의 사람들이 바다를 가르듯이 물러서 아이스맨을 위해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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