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키샘 샘이 버키랑 함께 했던 기억 잃는 게 보고 싶다 1
버키샘 샘이 버키랑 함께 했던 기억 잃는 게 보고 싶다 2
버키샘 샘이 버키랑 함께 했던 기억 잃는 게 보고 싶다 3
버키샘 샘이 버키랑 함께 했던 기억 잃는 게 보고 싶다 4
“거울을 보니 늙기는 했더라고요.”
맞은 편에 앉아 알루미늄 포일 속 햄버거를 한참 바라보던 샘이 먼저 입을 연다.
“그랬겠네.”
“당신도 이랬습니까?”
“그건 아냐. 나는… 냉동되었다가 풀려나는 거였으니까 나이를 먹는다는 거 자체를 느낄 새가 없었어.”
“아.”
그건 생각하지 못했네요. 샘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버거를 입에 문다. 기분을 끌어올려야 하는 날이거나 아니면 유난히 허기진 날에 그가 항상 찾던 마이클의 특제 버거였다. 기분에 따라서 할라피뇨를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치즈를 추가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할라피뇨를 빼고 시켰다. 솔직히 그에게 의향을 물어보면 될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버키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뭐가요?”
“음식이 입에 맞나 싶어서.”
“아, 맛있어요. 조금 놀랄 정도로.”
“다행이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친근한 목소리에 샘이 두 번 빠르게, 그리고 한 번 느리게 눈을 깜작인다.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데도 제 목소리에서 따뜻함이랄지, 아니면 애정이라든지 뭐든 읽어낸 모양새다. 그는 궁금하게 생기거나 물어볼 것이 떠오르면 항상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했다. 버키는 그런 샘을 슬쩍 보고는 시선을 물리고 햄버거를 입에 물었다. 과카몰리와 살사가 가득한 햄버거가 입에 들어온다. 샘이 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기를 기다린다.
“당신이 활동했던 영상을 봤어요.”
그는 궁금했던 질문은 삼키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버키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복귀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응?”
고개를 올리자 제가 사랑하고 익숙했던, 올곧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입에 있던 햄버거를 삼켰는지 그의 입술은 부드럽게 닫혀 있을 뿐이다. 버키는 제 앞에서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장난스러운 애정 표현을 속삭였던 입술을 떠올렸다. 이거나 저거나 꽤 익숙한 모양새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아니, 너무 당연하게도 마음 한켠이 아리다.
“지금 나 상담해주는 거야?”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의 본심을 찌르자 샘이 여유롭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아무래도 직업병인가 봐요.”
“이런 건 또 오랜만이네.”
“뭐, 당신에게서 뭐를 캐내려고 하는 건 아니고… 토레스 대위가 당신이 활동했던 영상을 따로 정리해서 보내준 탓이에요.”
버키는 저에게 거짓말을 하던 토레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게 무얼 숨기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제가 없는 동안 분명히 샘에게 어떤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걔가 뭘 보낼지 미리 검사해볼 걸 그랬네. 어떤 걸 봤는데?”
“흐린 CCTV 몇 점이랑 정부 자료에서부터 플래그 스매셔까지요. 꽤나 멋지게 활동하던데요?”
“……그랬을 리가 없는데.”
그와 굴렀던 풀밭이 뜬금없이 떠오른다. 제 뒤통수를 감싸던 뜨끈한 손과 정신없이 구르면서도 제 가슴 끈을 놓지 않았던 고집이나 아니면 멋있다고 할 수 없는 여러 고생이나. 이상하게 싱숭생숭해지는 기분에 버키는 괜히 햄버거를 베어 물면서 샘에게 고개를 까닥인다. 어서 먹으라는 제 의도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샘은 저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여전히 저를 경계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그건 아닌 듯싶어 서둘러 입에 있는 음식을 삼켰다.
“아까 무얼 물어봤더라?”
“복귀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냐고요.”
“왜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음, 글쎄요…. 내가 당신이라면 쉬고 싶었을 거 같아서요. 평화롭게.”
“정말로? 너라면 안 그럴 거 같은데.”
저를 쳐다보고 있던 샘이 눈을 깜작인다. 나는 여전히 그의 질문을 기다린다.
“저를 잘 아나 보네요.”
“…….”
“내 기억으로는 당신은 나를 전혀 모르고, 나 혼자 당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좀 어색하네요. 잠시 쉬자는 듯이 샘은 이전까지 손에 들고만 있었던 ─겨우 한 입 베어 문─ 마이클의 특제 버거를 입에 넣는다. 우물거리는 입 모양새가 익숙하다.
“아무래도 우리가 결혼했으니까.”
“음.”
“…….”
“그것도 좀 어색하네요.”
입에 있던 버거를 삼킨 샘은 벌어진 앞니를 내보이며, 고개를 가로로 흔들면서 웃어 보인다.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다.
-
애인이 된 이후로 샘은 제 앞에서 속내를 더욱 숨기지 못했다. 버키는 아무렇지 않게 웃던 샘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쓰는 면도크림을 훔쳐 썼거나, 맛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던 걸 까먹고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사 왔을 때나, 아니면 저 모르게 차출된 작전에서 어깨 한쪽을 잃어버릴 뻔했던 순간을 토레스의 ─아직도 막지 못한─ 가벼운 입을 통해서 들켰던 순간이나 그는 항상 제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숨기질 못했다. 왜 제 앞에서 그렇게나 어설프게 변했나 싶었는데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는 도무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남자라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유치하게 사랑을 하나 싶었다가 문득 괜히 간지러워져, 제 앞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변명하던 남자를 품 안에 가득 안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너 진짜 사랑해.
저만 가질 수 있었던, 그리고 저에게만 보여주었던 그의 부드럽고 연약하고 취약하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불안감이 저를 덮친다.
-
차갑기 그지없는 바닥을 맨발로 걷는다. 굳게 닫힌 문을 밀고 문고리 잠금쇠를 돌리자 아주 작은 소리로 얇은 판자가 밀린다. 샘은 숨을 멈춘다. 이불 밖으로 나올 때부터 아껴두었던 숨이지만 긴장한 탓에 너무 얕게 들이마셨다. 아무래도 계산을 잘못한 게 분명했다. 그래도 1분은 견딜 수 있겠지. 물밑보다는 뭣해도 지상에서 숨을 참는 게 더 쉬웠다. 샘은 익숙하게 호흡 운동을 멈추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문을 연다.
방음이라고는 될 리가 없는 얇디얇은 판자를 밀자 거실 바닥이 눈에 보인다. 미끈한 바닥에서 떨어지는 발소리가 귀를 울린다. 젠장, 양말을 신고 잘 걸. 지난 임무가 너무 피로한 탓이다. 이방인을 의심하는 눈초리와 스티브를 알아본 사람들의 반감을 애써 모르는 척 넘기는 하루는 정말로 피곤한 날이었다. 샘은 더는 발소리를 죽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는 몸과 숨을 멈춘 채 고개를 빼어든다. 달빛마저도 가려주지 못하는 커튼 때문인지 눈에 보기에도 굵고 무거운 사내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곡선과 폭력적일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몸선을 따라서 밝게 빛나는 달빛에 숨을 참던 샘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동상처럼 보이던 사내가 뒤를 돌아본다. 빛이 없는 한밤중에도 그의 푸른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시발”
샘은 헛웃음을 터트린다. 웃겨서가 아니다. 불과 2초 전에 제가 내질렀던 비명을 알아차려서이다. 식은땀에 축축해진 침대 시트와 얼얼한 성대에 순간 아찔해진다. 이건, 거실 소파에서 잠들었을 사내에게 들렸을 게 분명했다.
샘은 푹신한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 애인들과의 몇 번의 기념일 때문에 예약했던 호텔의 침구처럼 무거운 이불을 벗어나자 서늘한 밤공기가 저를 반긴다. 어느새 차가운 두 발을 바닥에 대자마자 똑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금방 나가요.”
- 샘?
이번에는 발소리를 숨길 필요가 없다. 샘은 캄캄한 풍경에 옆에 있을 탁자를 더듬었다. 꿈 속에서의 발소리보다 전등을 찾는 제 어설픈 손동작과 결국에는 덜컹거리고 흔들리는 전등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울린다. 샘은 제 비명이 이 소리보다는 작았기를, 정말로 헛된 소원을 빌었다.
“미안해요.”
- 악몽 때문이야?
‘악몽 때문인가요?’
갑자기 시야가 검어진다. 제 손아귀에 쥐어진 감각이, 휘청거린다. 샘은 자신이 마지막에 쥐었던 단단한 것에서부터 미끄러진다. 젠장, 손가락을 스치는 미끈한 감촉에 참고 있는 숨이 터져 나온다.
“자기야, 새뮤얼.”
“……버키”
“어, 어 왜?.”
“저 좀, 소파에….”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는데 사내가 제 몸을 일으킨다. 팔꿈치를 잡아채는 손길이 지나치게 억세다. 샘, 일단 침대에 앉─. 아뇨, 소파, 소파에 좀…, 저를 부축하는 사내의 주춤거림이 느껴진다. 소파에 좀, 데려다주세요. 샘은 저도 모를 고집을 부렸다. 꿈에서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무거울 정도로 가라앉은 침실의 공기를 버틸 수 없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샘은 버키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다른 손으로는 벽과 문을 훑었다. 이상한 곳으로 향했는지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제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끄는 손길에 미안하지만, 소름이 끼쳤다.
“괜찮아?”
여전히 시력이 돌아오지 않는다. 샘은 괜찮느냐는 버키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다.
“눈이 안 보여요.”
“……뭐?”
“잠을 잘못 잤나?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냥 던져본 농담에 죽을 듯한 침묵이 이어진다. 적절하지는 않았구나. 샘은 문득, 상대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농담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깨닫는다. 고집을 부려서 앉은 소파의 미끈한 가죽이 이상하게 식은 땀에 젖었던 이불보다 더 차갑다. 뭐가 이상하지? 무엇이 이상한지는 모르지만 뭔가 마음에 걸린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 동안 여전히 제 옆의 사내는 대답이 없다. 괜한 농담이 맞았다. 그렇지만 그와의 침묵이 이상하지는 않아서 샘은 슬쩍 상념으로 주의를 돌린다. 악몽을 꾸었던 침실보다 더 무거워지고 침울해진 공기는 눈이 안 보인다는 변명으로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이 정도면 이유가 있을 터였다. 분명히, 트리거가 되는 일이. 샘은 자신이 직전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 아니 무엇을 꿈꾸고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꿈이 문제였나? 샘은 직전까지 꾼 내용이 자신이 겪은 일이었는지 아니면 머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고민해본다. 기억이었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 아닌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어떻게 굴러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을 되새길 수 있으니.
“하하, 그쪽 앞에서 할 생각은 도무지 아닌데.”
“뭐라고?”
아. 속으로 중얼거릴 말이었는데.
“샘, 너 지금 무슨, 아니 괜찮은 건 맞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젠장, 다른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샘은 제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지만 볼에서부터 목까지 열이 바짝 오른다.
“우리, 우리가 이런 적이 있나요?”
다시 죽을 듯한 침묵이 이어진다. 말을 돌리려는 속내를 알아차려서일까? 아니면 그에게는 오래되었을 예전의 기억을 더듬느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침묵일까. 샘은 문득 ‘죽을 듯한 침묵’이라는 표현이 온전히 자신의 해석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거?”
그의 목소리는 쓸데없이 부드럽다. 저녁을 먹었던 식탁에서도 그는 지나치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실수인지 아니면 미끼를 던지는 건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신이… 날 깨우러 왔다든가. 아니면 그, 제가 비명을 질렀다든가 하는 거요.”
“아무래도 그런 일은 흔하지 않았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내가 당신 옆에서, 아니면 한지붕 아래에서 잠이 쉽게 들었을 리가 없으니까. 샘은 다른 가능성을 살핀다.
“네가 날 깨운 적은 많아.”
“네?”
“내가 악몽을 꾸면, 항상 네가 있었거든.”
“……우리가 결혼한 이후에요?”
“물론 그때도 그랬지만.”
이상하게 심장이 쿵쾅거린다. 샘은 보이지 않는 눈을 깜작였다, 아니 눈이 깜작여진다. 귓가에서 혈액이 도는 소리가, 쌕쌕거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옛날부터 악몽을 꾸었냐고 묻는 건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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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두통에 차가운 바닥에 구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비명도 나오지 않는 고통이었다.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는 고통이라는 단어가, 두개골을 쪼갤 듯이 뒤흔든다. 긴장으로 수축된 뒷목이 저리다. 발끝이 곱아들 정도로 날카로운 두통과 제 이름을 부르고 안타까운 손길로 비틀리는 몸을 잡아 고정시키는 손길에 샘은 문득 깨닫는다.
분명하다. 그와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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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 실패...
버키샘 세즈맥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