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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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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과정을 마친 허니는 앞으로 여유롭게 여행을 할 시간이 부족함을 알기에 취업 전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어. 유년 시절 아버지가 해외 발령 받아 몇 년 살아본 경험이 있기에 마냥 낯설지만은 않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유년 시절의 기억을 회람할 겸 그곳으로 가게 된 거지.


허니의 기억 속에 그곳은, 낯선 이방인에게 상당히 배타적이면서 종교적인 색채로 아버지를 대동해야 그나마 안전하게 쇼핑을 할 수 있었는데 막상 그곳에 정착 후 이웃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는 고국보다 더한 정과 따스함을 발휘해 준 양면성이 있는 곳이었거든. 나이를 먹은 지금도 여전히 그 국민성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대부분 사람들은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여전히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들이 유효하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이미 가본 적이 있었던 곳도 차례로 방문할 거 같다.


한편 벤은 영화 촬영 후 휴식 차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온 건데 룩소르에서 허니와 처음 만났으면 좋겠다. 유명한 열기구 타러 벌룬 투어 신청했는데 이미 허니는 어릴 때 탄 경험을 떠올려 중국 관광객이 몰려 있는 곳을 피하려고 일부러 벤이 있는 쪽으로 서 있었으면.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벤의 외양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배우인지도 모르고 있다 투어 담당자가 아시안들은 따로 분류하는 듯한 움직임을 기민하게 파악하곤 바로 앞에 있는 서 있는 벤 등 두드려서 부탁을 청해 볼 거 같다.


" 저기요, 혹시 일행 있으세요? " 혼자 여행 온 벤은 당연히 솔로로 신청했고, 낯선 여자가 대뜸 일행 있느냐는 말에 벤은 어쩌다 한 번씩 받는 호감의 스몰 토크인가 싶어 싱긋 웃으며 어깨 으쓱하겠지. 


" 초면에 정말 죄송한데 제가 그쪽 일행이라고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 중국어를 못해 알아 들을 수가 없거든요. " 


얘기를 들어보니 보통 벌룬 투어를 하면 여러 인종이 섞이길 마련인데 아시안은 중국인이 대부분이라 아시안 / 비아시안으로 그룹을 나눠 아시안 그룹에 탑승하면 중국어 통역이 제공되고, 나머지는 영어로 통역이 제공 된다는 거였지. 만일 허니가 그쪽이랑 일행인 걸 밝히지 않으면 허니는 꼼짝없이 그저 아시안인 이유만으로 중국인들과 벌룬 투어를 해야 할 것이므로 영어 통역을 들을 수가 없단 거. 


벤이 고갤 내밀어 보니까 허니 말대로 업체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그룹을 나누고 있는 거야. 여자가 하는 얘길 들어보니 사전 조사를 제법 한 것 같은데 멀리로 와 놓고 그저 피부색 하나 때문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여행이 흘러가는 게 이 사람도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럴까 싶고, 돈 드는 일도 아닌데 타인에게 좋은 일 해주는 게 뭐 어렵나 싶어 알겠다고 여행 메이트라고 도와주겠다 수락해줄 거 같다. " 이쪽으로 가세요~ " 역시나 투어 운영자가 허니의 외양만 보고 중국인들이 탑승할 벌룬쪽으로 가라고 지시하는데 벤이 허니 소맷단 잡아 당기면서 내 일행이라고 싱긋 웃으니 유난히 1세계 백인남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한 그쪽 정서상 허니도 벤과 같은 벌룬에 타도록 허락할 거 같다.


열기구 올라서 광활한 자연의 장엄함에 연신 경탄하는 벤과는 다르게 허니는 취업 전 낯선 곳에서 나를 던져준 채로 잠시나마 해방되고 싶었는데 단지 겉모습이 다르단 이유만으로 제 의견은 말살된 채 여행이 좌지우지 될 뿐더러 영향력 있는 1세계의 백인 남성에게 도움을 빌어야 한다는 상황이 고마우면서도 씁쓸하고 약간 비참할 거 같다. 곧이어 나일강이 보이고 그 모습에 열기구 탄 사람들이 일제히 찬탄을 하는데 허니도 나일강 바라보면서 무사히 취업 잘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다가 문득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게 해 달라고 빌었던 어릴 때의 부모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눈물 살짝 나왔으면. 그리고 그 모습 벤이 나일강 사진 찍다가 보게 될 거 같다.


열기구 투어가 끝나자 사고 없이 무사히 안착한 것에 안도하면서 다들 상기된 얼굴로 내리는데 허니도 약간 착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낯선 이의 도움으로 이번엔 수월한 여행을 했으므로 벤한테 감사의 인사 전하며 혹 여행 다니면서 도움을 받을 때를 대비해 몇 개 챙겨온 네잎 클로버 키링 선물로 줄 거 같다. " 약소하지만 앞으로 하시는 일, 잘 되길 바랄게요. 정말 고마워요. "


벤은 손뜨개한 것으로 보이는 자그만 키링 받으면서 딱히 거절하지 않고 러블리. 이러면서 고맙게 받고 헤어질 거 같다. 그리고 나서 이틀 지나 둘이 다시 피라미드에서 또 만나게 되겠지. 워낙 관광 코스가 뻔하기도 하지만 벤은 이쪽 여행이 처음이라 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놓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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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은 피라미드까지 바로 가는 오토바이를 타고도 채 입구에 도착하기 전 이제 여기서 내려 낙타나 마차 타고 가야 한다고 훼방 놓으며 비싼 비용을 부르는 호객꾼들한테 꽤 시달릴 거 같다. 한편 허니는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제일 빠르고 간편하게 갈 수 있는 게 오토바이란 걸 알기에 역시 오토바이를 이용해 가는데 관광지 스팟마다 미친 호객 행위를 잘 알고 있어 신호 대기 중, 역시나 호객꾼들에게 둘러싸인 한 외국인 보면서 저거 당하면 안 되는데.. 생각하고 있다가 사실 이곳 사람들도 마음을 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데 저런 사람들 때문에 여행이 불쾌하게 추억되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동시에 이방인으로서 철저히 배척되고 이용까지 당한 기억이 강렬한 항원이 돼 건너 편 오토바이 탄 외국인에게 No, No, Go straight ! 외치면서 호객꾼에겐 고개 저으며 슈크란 (고마워요) 얄라 얄라 (그만 가요) 이렇게 계속 말하면서 벤 도와줄 거 같다.


허니 손짓에 호객 행위인 거 알아챈 벤이 오토바이 기사에게 가자고 바로 손짓하는데 어랏? 자세히 보니 우리 구면이네요? 벤이 유 벌룬 투어?! 하며 반가워하니까 허니도 이틀 사이 덥수룩해진 수염이나 모래 바람에 살짝 버석버석해서 날리는 머리칼의 주인공이 뒤늦게 벤이었음을 알고 반 박자 늦게 놀랄 거 같다. 둘은 일단 입구에서 보자고 오토바이 이끄는 기사님 등 두드리면서 입구 쪽으로 손가락 가리키겠지.


내리자마자 또 만났네요, 하며 벤이 반가움에 비쥬 신청하면 허니도 얼떨결에 약간 들뜬 기분으로 비쥬 맞춰줄 거 같다. 전 벤이에요. 전 허니 비예요. 처음으로 통성명하고 기이한 인연에 신기해하는데 해후의 기쁨도 잠시, 미친 호객꾼들이 또다시 들러 붙어서 낙타 타고 투어해야 한다, 안 그럼 걸어 다니기 힘들다 하면서 훼방 놓아라. 그러면 허니가 아랍어를 써가며 괜찮다고 우린 천천히 걸어가면서 투어할거다 하면서 다 쫓아내겠지. 사실 여자 혼자 다니면 더욱 집요하고 길 못 가게 훼방을 놓아 살짝 무섭기도 한데 벤이 있어서 거절해도 욕하거나 집요하게 쫓아와 위협을 가하지 않아 심적으로 든든할 거 같다. 반면 벤은 호객을 향한 여자의 능숙한 대처와 아랍어 실력에 감탄할 듯.


" 여기 살아요? "
" 어릴 때요. 지금은 여행 왔어요. "


자길 두 번이나 봤는데도 딱히 어디에서 봤다 아는 체 하지 않아서 벤은 자기가 배우인 거 모르는구나 약간은 안도감을, 약간은 아쉬움을 느낄 거 같다. 이상하지. 여행까지 와서 팬을 만나고 싶진 않은데 한편 자길 도와주는 이 사람이 참 고맙고도 기이한 인연이 신기해서 조금은 자기에게 호감 내지는 친근함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거여라. 


허니가 여기 다 보려면 생각보다 꽤 걸려서 물이나 음료가 필요하다고, 혹시 챙겨왔냐고 물으니 안 그래도 벤이 이틀 전에 과일 주스를 사먹었는데 깨끗하지 않은 물을 썼는지 배 앓이를 한 터라 그 이후 함부로 음료나 주스를 못 사먹고 호텔에 있는 물만 가지고 나왔다 하는 거야. 허니가 저쪽으로 가면 시원한 콜라 판다고 물만 마셔서 갈증이 많이 나셨을 거 같은데 콜라 마시지 않을래요? 해라. 그럼 벤은 안 그래도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허니의 그 말이 오늘 들은 말 중에서 제일 반가운 단어일 거 같다. 콜라 살 때도 먼저 콜라 사려는 의사를 보이니까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부르는데 허니가 유창하게 아랍어 하면서 흥정하니 현지인인 줄 알고 상인이 싼 값에 콜라 팔겠지. 


뜨거운 곳에서 파는 것을 감안해 수북한 얼음 사이사이에 있던 콜라를 따서 넘기는데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탄산이 한 방울 방울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묵은 갈증이 차츰 해갈되면서 더위에 지친 컨디션이 단숨에 살 거 같다는 기분으로 돌려놓을 거 같다. 반쯤 비운 후 벤이 허니한테 건네니까 허니도 수줍게 웃으면서 입가 살짝 떼고 남은 거 깨끗하게 비울 거 같다. 둘이 하아- 하면서 기분 좋은 개운함 드러내면서 웃으면 이번엔 벤이 먼저 저쪽 가보자고 할 거 같다. 


그 사이 사이에도 계속 호객꾼이 끊임 없이 붙는데 허니가 생글거리며 슈크란 슈크란 계속 고맙다며 기분 좋게 거절하고, 낙타 앞에서 사진 찍겠냐는 행위에도 저거 찍고 나면 돈을 요구하는 거라며 벤에게 이곳의 관광객 등치기에 조금도 긴장을 풀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겠지. 여기뿐만 아니라 알제리, 모로코 다 마찬가지라고 특별히 거한 적선을 할 의향이 없다면 먼저 말을 걸거나 과한 친절을 삼가하라고 알려줄 거야.


드디어 피라미드 앞에 도착한 벤은 막대한 위용에 한 번 놀라고, 어떻게 이걸 그 오래 전에 만들었을까 신비함에 또 놀라는데 허니는 계단을 찬찬히 오르다가 문득 벤 운동화 밑창이 조금 벌어져 덜렁거리는 거 발견하게 될 거 같다. 가지고 온 슈즈가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저 상태론 여행이 불편할 텐데.. 그런 생각이 허니 머리 속을 감치고 돌 거 같다. 두 시간 넘게 둘러볼 만큼 보고 비로소 그곳을 나오면 벤은 허니 덕분에 더 수월한 여행을 한 게 고마워서 혹시 남은 일정이 어떻게 되냐 묻고, 허니는 인연도 인연이지만 몹시 근사한 남자가 땀에 절어 아까보다 더 흐트러지고 오염된 식수 때문에 배 앓이 했다는 거, 그리고 신발 상태마저 온전하지 않은 게 남은 여행이 어떨지 뻔히 그려지니까 왠지 챙겨주고 싶은 모성본능이 훨씬 더 앞서 혹시 이곳 마켓 둘러볼 생각 없느냐고 묻는 거지. 


벤은 능숙한 언어와 이곳의 문화와 정보를 웬만큼 꿰고 있는 허니를 따라가면 왠지 괜찮은 로컬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선뜻 동의하게 되는데 정작 허니가 데려간 곳은 약국, 그 다음은 신발을 고칠 수 있는 수선점이면 좋겠다. " 여행에서 몸이 편하지 않으면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로컬이 아니면 찾을 수 없도록 골목 골목을 누비고 들어가야 발견할 수 있는 수선점에 도착 후 신발을 맡기라는 허니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신발 밑창이 떨어지는 참이어서 영 불안했는데 허니의 예리한 관찰력과 챙김에 벤은 꽤 큰 감동을 받을 거 같다. 신발 수선되는 사이 허니가 이 근처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자 수선점에서 제공하는 슬리퍼 신은 벤이 자연스레 허니 따라갈 거 같다. 배 앓이 했단 거를 감안해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수프 추천해서 먹는데 벤이 여태껏 먹은 어떤 음식보다 맛있어서 (사실은 많이 지친 것도 있는데) 다 비울 듯.


저녁 먹고 나오면 새 신발 못지 않게 감쪽같이 수선된 신발 때문에 또 한 번 감탄하는 벤이겠다. " 이 정도면 여행 일정이 얼마가 되든 문제 없을 거예요. " 허니는 빠르게 수선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벤에게 그랬던 것처럼 네잎 클로버 키링을 감사의 의미로 돈과 함께 지불하는데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낯선 이방인이 너무나 싹싹하고 또한 아랍어를 능통하게 하면서 당신 실력 정말 최고라고 추켜세우니까 괜찮다고, 돈 안 받겠다고 그냥 가져가라는 거지. 허니는 그럴 수 없다고, 이미 이분의 나머지 여행까지 완벽하게 완성시켜준 대가를 받으시라며 계속 돈 받으라고 하지만 할아버지가 끝내 그냥 가져가라고 해서 허니는 한 번 신의와 마음을 주면 온 마음을 다 꺼내주는 이곳의 정을 또 한 번 느끼고, 벤 또한 이곳은 먹고 살기 힘들어 살벌한 이해타산만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단정지을 뻔 했는데 허니 덕분에 처음으로 끈끈하고 진한 인간애를 경험하겠지. 


어슴푸레 해가 이울어가고 드디어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이르자 허니는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고, 약 잘 챙겨 드시라고 혹시라도 배가 다 낫지 않아 불편하다면 여기 제가 묵는 호텔이니 전화하시면 제가 병원으로 안내해드리겠다고 하니까 벤은 이 은혜를 다 갚지도 못하고 이렇게 보내는 건 신사의 나라에서 온 예의가 아니라고 괜찮으면 술 한 잔 하는 거 부담스러우냐고 물어볼 거 같다. 허니는 저는 괜찮지만 지금 배탈 나시지 않았느냐고 벤에게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거 같다고 하니 벤이 살짝 머쓱해져라. 


" 언제 여기 떠나요? "
" 모레 아침, 체크아웃이에요. "
" 그 다음은? "
" 모로코로 가요. "
" 전 알제리로 계획되어 있지만 허니를 꼭 만나고 싶네요. "
" ... "
" 연락처를 묻는 건 실례일까요? "


벤이 먼저 자기 휴대폰 내밀면서 번호 찍어줄 수 있냐고 묻는데 그 순간, 허니는 벤 왼쪽 손가락에 반지 보곤 이 남자 유부남이었어? 싶어 심장이 꽉 조여오는 기분이겠다. 사실 벤이 영화 촬영 후 빼놓지 않은 소품이었는데 그걸 착용한 채 여행을 와 버렸고, 아무리 호텔이라도 이곳은 도난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고 해서 (반납해야 하는 물건이니) 그냥 착용한 채 여행을 했을 뿐인데 허니가 단단히 오해했으면 좋겠다.


허니는 순간 이 남자 꾼인가 싶어 더는 자기 개인정보 흘리는 건 위험한 일인 거 같아 그냥 운명에 맡겨보는 건 어떨까요? 하면서 넘기려고 하지만 벤은 허니랑 좀 더 데이트 겸 여행을 같이 하고 싶은데 허니가 거절해서 실기하고 츄우기 늘어졌으면.


"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이 두려운 거 알아요. ... 음, 실은 나 배우인데요, 인터넷에 벤 반스라고 쳐보시면 내가 나올 거예요. "
" ... "
" 정말이에요. "


뭔가 범상치 않은 외모이긴 했는데 배우라니. 허니는 약간 얼얼한 얼굴로 있다가 곧 벤이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손가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 음, 가정이 있으신 거 같은데 더는 안 될 거 같아요 " 웃으며 거절해라. 그러면 벤은 생각지도 않았던, 반지의 존재를 뒤늦게 인지하곤 " 오우, 오해예요 !" 하면서 " 실은 영화에서 내가 유부남 역할을 했는데 영화 촬영 종료 후 반지를 반납하는 걸 잊고 여행길에 오른 거죠. " 설명하지만 허니에게 납득하긴 여전히 불충분한 이유겠지. 여기서 더 얘길 더해봤자 허니의 의심이 짙어가는 건 물론 오히려 추근대는 걸로 보일 수 있어 하는 수 없이 벤은 자기 연락처만 남기고 그렇게 헤어지는데 질긴 인연은 둘을 그렇게 버려두지 않고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날 재회하게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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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가 말했던, 마켓에서 사지 않을 거면서 궁금해 먼저 물으면 집요하게 따라 붙으니 조심해라, 반드시 값을 깎을 수 있으니 처음 제시하는 가격에 물건을 사지 말아라, 그저 보고 만지고 기웃거리고 풍경을 담겠다는 것 만으로도 돈을 내라고 호객 행위를 당할 수 있으니 크게 관심 없거나 상관 없는 거면 대충 흘끔 보고 말아라 등등의 수칙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호객 행위를 펼치는 모로코 여행 동안 큰 도움이 됐을 거고, 나흘 동안 허니가 사준 약 먹고 완쾌된 벤은 여행 내내 허니를 떠올 릴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둘은 한 블럭을 사이에 두고 투숙했음 좋겠다.


벤은 포르투칼로 넘어가고 허니는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예정된 마지막 밤, 친구와 가족들에게 줄 선물 사가지고 돌아오는 허니를 허니가 묵는 호텔 근처에서 커피 마시던 벤이 우연히 목도했으면. 벤은 서버에게 서둘러 팁 안겨주고 허니! 부르는데 짐이 많아 정신 없던 허니가 처음엔 못 듣고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부르자 뒤돌아 보는 거지. 건너편에서 손 흔드는 남자는 결코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외모였고 그는 분명 벤이었어.


허니는 설마 또 만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건너편에서 저를 부르는 남자의 모습에 시간과 공간에서 분리돼 두 사람만 이곳에 갇힌 느낌을 받겠지. 저렇게 수려한 용모의 사람이 저와 계속 연이 닿는 것도, 저 사람이 자기에게 (분명) 호감으로 보이는 감정을 표시하고 있고, 그것을 머리로 거절하려고 해도 자석처럼 자꾸 닿는 상황이 너무 기이하고 흔하지 않아서 그냥 이 상황이 그저 꿈속처럼 느껴질 듯. 그 사이 벤이 저쪽에서 건너오는데 허니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겠지. 


" 와, 보통 인연이 아니네요? " 호텔 인터넷으로 대충 체크해 보니까 이 남자가 진짜 배우긴 했어. Married 에도, 파트너도 따로 기록이 없어 정말 영화 소품이었나 싶기도 했지만 워낙 저 세계가 지리멸렬하다 보니 그저 레코드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경계심은 살짝 갖고 있는 허니겠다. 또 저렇게 생긴 남자가, 객관적으로 여행지에서 약간의 도움으로 호의적인 감정을 가졌다고 한들 그 끝은 너무나 뻔하잖아. 그래서 여행을 할 때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가지는 동질감과 연대감으로 즐겁고 유쾌한 관계에서 벗어나, 이젠 거듭된 인연의 신비함을 짐짓 따라 가고픈 호기심과 여행 말미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픈 생각으로 약간의 경계심은 여전히 유지한채 가볍게 술 한 잔 하는 것으로만 데이트 허락할 거 같다. 


"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알아요? 여행 내내 생각했는데.. "
" 오 마이 갓! "
" 왜요? "
" 그런 말 하면 내일 떠나는 게 어려워진다고요. 유혹하지 마세요, 프린스! "
" ... "
" 캐스피언 왕자님~ "
" 오! 봤군요. "
" 물론. 저는 겁쟁이라 의심이 많거든요. "
" 하하하핫 "


길다란 바 체어에 앉아 빙글빙글 몸을 돌리며 약간 장난스레 대답하는 허니인데 벤은 허니가 반지 오해를 거둔 것도, 자기 유혹하지 말라고 하는 말도, 오해를 풀고 한결 편안한 상태로 자기 옆에 있는 상황이 그저 다 좋아 호방하게 웃을 거 같다. 원래 자기 사적인 영역 오픈 잘 안 하는 벤이지만 허니와 마지막 밤이기도 하고, 또 의도치 않게 허니에게 오해를 선물하여 약간의 겁을 준 것도 사실이라 미안한 마음에 자기 사적 TMI 좀 더 풀어주는데 실은 노래 하는 거 좋아해서 아이돌로 데뷔할 뻔 했다가 배우로 선회했다는 것, 런던에 거주하고 남동생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는 것 등 내밀한 얘길 더 털어놓겠지. 허니도 자기 석사 마쳤고 곧 취업하는데 이제 이런 시간이 얼마 주어질 거 같지 않아 여행을 왔다가 당신을 만나게 됐다 밝히는데 허니가 그말을 마치고 나니 이제 두 사람이 작정하고 약속해 만나지 않는 한, 사는 내내 보기가 만무해질 거란 사실이 일 순간 너무나 또렷하고 명료해져서 두 사람 모두 정적이겠다.


" 즐거운 여행 메이트 되어주셔서 고마웠어요, 슈크 - ㄹ "


그런데 말을 채 맺기도 전에 허니 입술 위로 진저에일 향이 포개졌으면 좋겠다. 허니는 분명 가벼운 칵테일로 주문했는데 갑자기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남자의 입술이 미치도록 뜨거워서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겠지. 머리로 더는 안 된다고 비상등이 울리는데 이상하게 몸이 포박된 것 마냥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라.


... 그 어지럽고도 영원히 묶어 두고픈 마지막 날은 길고도 짧아 결국 둘은 헤어지는데 원래 만남이 예정된 관계일수록 더 더욱 감정이 짙게 배여서 벤은 이후 여행을 할 때마다 허니를 한 번씩 떠올리게 될 거고, 허니도 무료한 일상을 살면서 문득 여행에서 만난 벤이 한 번씩 튀어 오르긴 하겠지만 어차피 그런 용모를 지닌 남자에게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이벤트는 자기 아니라도 충분히 넘칠 거라는 생각에 금방 생각에서 벗어나오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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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허니는 박사 과정 취득 후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벤도 더 많은 작품을 하게 되면서 거주지를 런던에서 LA로 옮기게 되는데 벤이 첫 앨범을 발매하고 드디어 공연을 하는 곳이 허니가 일하는 근처였으면. 허니는 속세에 묻혀 완연히 잊고 지내다가 한번씩 벤 영화가 개봉할 때 시간이 되면 다운타운에 가서 보는 것 정도로 과거의 추억을 잘 보관하고 있는 정도였건만 갑자기 앨범을 내고 또 공연을 한다는 포스터를 목도하곤 가 볼까? 기억할까? 잠시 갈등할 거 같다.


결국 공연을 예매하고 퇴근 후 공연장을 찾아가는데 풋내기 학생에서 서른 중반이 된 자기 만큼이나 완연히 성숙해져서 달라진 벤의 모습을 보던 허니는 정녕 내가 만났던 사람이 맞았던가 생경하기도, 기이하기도, 그리고 이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벤 노래에 오롯이 집중 못할 듯. 팬들은 이미 노래를 다 외웠는지 다 따라 부르는데 저 혼자만 벤을 물끄러미 멀리서 바라보는 게 좀 머쓱한 기분도 들고, 약간 그 속에서 분리된 기분도 들겠지.


여행에서 제가 본 벤은 매우 깍듯하면서도 밝고 화사한 느낌이었는데 너무 단편적인 면만 본 건지 아니면 세월이 만든 힘인지 팬들의 짓궂은 농담에도 능란하고 능글맞게 대처하는 벤이 허니는 무척 낯설어서 내가 떨렸고 멀미 났던 사람이 저 사람이 맞을까 살짝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곧 시간이 그만큼 흘렀음을 깨달으면서 벤은 날 기억할까? 기억한다면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날 몰라보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더 많이 지배할 거 같다.


공연 끝나고 팬들이 일제히 백 스테이지 도어로 향하는 거 보고 허니도 조심스레 그곳으로 가겠다. 근데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데다 팬들 있는 앞에서 혹시나 폐가 될까 봐 펜스 거의 끝 쪽에서 조용히 지켜볼 듯. 이윽고 벤이 나오고 팬들이 사인과 사진 요청을 하는데 허니는 아까까지만 해도 비교적 괜찮았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대겠지. 그동안 내내 보고 싶었던 것도, 그리웠던 것도 아니건만 이 떨림과 긴장은 무어란 말인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벤이 변한 만큼 혹 자기 기억 못하면 그건 그거대로 민망하고 창피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살짝 고민도 되고, 어떻게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한데 능숙한 팬서비스에 완전해진 벤은 그 많은 인파를 다 소화하고 허니가 서 있는 근처로 금세 당도했으면 좋겠다. 허니는 어느덧 바짝 자기 앞에 서 있는 벤의 실체를 인지하곤 입술을 연신 축이며 떨리는 다리를 펜스에 기대 애써 진정 시키는데 드디어 벤이 한 걸음을 더 떼고 얼굴을 돌리니까 두 사람 다 십여 년 만에 다시금 시간과 공간이 잠시 분리되는 기분에 휩싸이는 거지.


" 공연 잘 봤어요. "
" ... "
" 사인, 부탁 드려도 될까요? "


자기 보자마자 이마에 주름이 가는 벤 때문에 허니는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어도 팬들 있는 데서 쉽사리 아는 척 할 수가 없어 서둘러 공연 티켓 뒷면을 내미는데 잠시 멍했던 벤 얼굴이 이내 아연한 얼굴로 바뀌더니 허니가 내민 티켓 무시한 채 바로 허니 꼭 안아서 비쥬로 인사해 오는 거야.


" 슈크란, 슈크란 "


허니는 제 양팔을 붙잡고 분명히 말하는 그 입을 보며 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과 생각 이상으로 더 반겨주는 벤의 태도에 놀라 손으로 입을 막고, 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님의 방문과 다신 만날 거라 생각 못한 오랜만의 해후에 그저 반갑고 좋아서 다시 한 번 허니 꽉 안으면서 양쪽으로 몸 둥기둥기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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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벤 인터뷰 보니 자기 영화 촬영 후 소품이었던 반지 그대로 끼고 바에 갔다가 결혼한 남자인 줄 알고 데이트 거절 당했다는 ㅋㅋㅋㅋ 에피소드를 참고해서 넣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