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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00:52


날조주의







날씨가 좋은 어느 날이었다.

기상 시간이 정해진 군인의 일상은 휴일에도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 그는 여즉 어슴푸레한 하늘을 눈에 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충동적으로 창문을 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세상이 점점 밝아짐에 따라 한산했던 거리도 점차 생기를 찾아갔다. 남자는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채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고는 이내 부엌으로 향했다. 곧 진한 커피 내음이 온 집안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폭발음이 고요하던 하와이의 아침을 뒤흔들었다. 손아귀에서 미끄러진 머그잔이 카펫 위를 뒹굴었다. 잔은 깨지지 않았지만 반도 채 마시지 못한 커피는 카펫을 흠뻑 적셨다. 그러나 그는 머그잔을 주워들 새도 없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날은 지옥과도 같았다.

톰 허드너는 그렇게 회상했다.


*


그날 이후, 허드너에게는 종종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쩌면 일종의 트라우마 증상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 습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여유도, 필요도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항공모함에서 내린 허드너는 곧바로 기지를 떠나 사택으로 향하는 대신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숨이 덜컥 막혀오는 것만 같아서, 그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조금 전에는 없었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민간인 셋. 군인 하나. 계급장을 달고 있는 이는 허드너에게는 까마득히 높은 인물이었다. 그러니 아마 민간인도 그에 준하는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은, 애써서 추측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허드너는 눈을 깜빡이며 그들을 바라보다가 곧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오판이었다. 허드너는 커다란 카메라를 짊어진 남자가 다른 한 남자를 졸졸 따라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할리우드에서 온 영화 감독이래."


그의 시선을 용케도 읽어낸 레이가 말했다.


"영화 감독?"

"그래. 꽤 유명하다는데?"

"......."


허드너는 다시 입을 다물고 민간인 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기지 내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동료를 잃었으며, 그들은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폭격음과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이명처럼 맴돌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불에 타서 가라앉는 전함들이 잔상처럼 남았다. 아직도 그랬다.

그에게 이곳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허드너는 어느새 언덕 위로 올라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다를 바라보는 남자를 지켜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


"왜 그렇게 봐요?"


훔쳐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도 아니라서, 허드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고."

"......."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일주일 전에도 봤을 테고. 근데 내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라 기억력은 꽤 좋거든."

"......."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는 허드너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인다.


"대답하기 싫으면 말아요."


대신 잠깐 여기 서 볼래요?

그 말에 허드너는 홀린 듯이 몇 걸음을 걸어 그가 안내하는 곳에 섰다. 그러자 조심스러운 그의 손길이 허드너의 어깨를 감쌌다. 담배 냄새가 짙었다. 향수 냄새도 함께.


"여기. 여기를 통해서 보는 거예요."


낮은 목소리가 이제는 귓가 바로 옆에서 스친다. 어쩌면 숨결이 닿을 지도 모를 거리였다. 어깨를 감싼 손은 떠날 줄을 모르는 것만 같다.


"어때요?"


허드너가 몸을 뒤로 물리자, 그도 그제야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괜찮네요."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당신의 눈에는 저 풍경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지옥같던 그날이 보이니까.


"여기서 영화를 찍을 생각이에요."

"...멋진 계획이네요."


사실은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 따져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이곳이, 당신에게는 그저 영화 촬영장에 불과한 것인지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조차의 에너지도 쏟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허드너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서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밤이 찾아온다는 의미였다. 곧 어둠이 내려앉을 것이고, 적막이 흐를 것이다.


"당신은, 어쩔 생각이에요?"

"뭘 말이죠?"

"오늘의 계획 말이에요. 저녁은 먹었나요?"


남자가 익숙한 손길로 카메라를 정리하며 묻는다.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나도 그런데."


그래서?

빈정거림이 가득 담긴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삼켜내고는 친절을 꺼낸다.


"덕사이드가 괜찮아요. 테이블 수는 적지만 음식 맛은 보장해요."

"그래요?"

"가장 큰 장점은, 혼자 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이라는 점에 있죠."


분주히 움직이던 남자의 손길이 멈칫한다. 이내 그는 카메라에서 시선을 거두고 허드너를 바라본다.


"저녁 맛있게 먹어요. 먼저 가볼게요."


미련 없이 돌아서는 허드너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남자는 곧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허드너의 손목을 붙잡는 데에 성공한다.


"알버트 루디에요."

"......네?"

"내 이름 말이에요."

"...그래요, 루디씨."


그러나 남자, 그러니까 루디는 여전히 허드너의 손목을 놓을 생각을 않는다. 허드너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챈다.


"톰 허드너에요."


원하는 것을 쟁취한 루디는 미련 없이 허드너의 손목을 놓고는 말한다.


"잘가요, 톰."













루스터행맨 루행 루디허드너
 

2024.05.03 01:00
ㅇㅇ
모바일
루디씨 은근슬쩍 능글맞으면서도 적극적이야ㅋㅋㅋㅋㅋ허드너씨는 악몽같은 기억때문에 조금 더 예민하고 까칠하게 구는 느낌인데 루디씨는 그걸 모르니까 여유롭게 꼬시려 드는 것 같아서 좋다...
[Code: ccc2]
2024.05.03 01:25
ㅇㅇ
모바일
하 시발 허드너씨 마음 닫은 거 졸라 마음아픈데.... 루디씨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문 존나 뿌시고 직진하는 거 존나좋다...
[Code: 2530]
2024.05.03 09:18
ㅇㅇ
모바일
허드너 예의차리고 있는데 거절하는거 너무차가워ㅠㅠㅠ
[Code: 9571]
2024.05.03 10:13
ㅇㅇ
모바일
센세가 압해를!!! 루디씨 뭔가 쿨해 ㅋㅋㅋㅋ 서서히 서로에게 감기는 것까지 어나더로 보여주세요ㅜㅜ
[Code: 4707]
2024.05.04 18:40
ㅇㅇ
모바일
이거 대작의 시작이 분명한 거 같은데!!!! 센세 어나더!!
[Code: cdf9]
2024.05.06 13:40
ㅇㅇ
모바일
ㅁㅊ;;;나 왜 이 금무순을 못봤지??????? 센세 분위기 무슨일입니까.. 루디씨랑 허드너씨 첫만남이랑 첫인상은 서로 다른거같네.. ㅎㅏ개좋아 이제 센세는 내 애착센세예요..
[Code: 0c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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