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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03:04

전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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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 태양보다는 달이 어울리는 애였다.

그 애는, 뻗어야 할 태양보다는 내가 달에 닿을 수 있도록 굳건히 서있는 사다리에 더 가까웠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목마다 깜박이던 가로등에 걸려 있던 너의 마음이 생각난다.
어둠을 핑계로 꾹꾹 삼키던 너의 짝사랑이 생각난다.
나를 내려다볼 때면 숨겨지지 않던 너의...

*

대학교 졸업 이후 그 애를 다시 만난 건 장례식에서였다.

칼럼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애의 엄마도, 수백 번도 더 바뀌었던 전 애인도, 친구도, 누구도.

그저 나만.

너는 나였구나. 너의 인생은 그저 나로만 가득 차 있어서, 떠날 때도 나만 남긴 채 홀연히 갔구나.

밤이 어울리는 칼럼의 장례식은 태양이 쨍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약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내던지고 나는 그냥 무너져내렸다. 
아, 끊임 없는 후회와 후회와 후회와 후회와 후회와 후회와 후회와 후회가.......................

세상에.

*

"서울대를 학종으로 할지, 학추로 할지 이제 진짜 정해야 돼."

"둘이 뭐가 다른데?"

헐.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니 칼럼이 으쓱, 볼을 긁는다. 

"대학도 안 가는데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학추는 교장이 추천해주는거."
"그럼 그게 더 좋은 거 아냐?"
"둘이 뽑는 인원이 달라서 뭐가 더 유리한 지 잘 모르겠어. 최저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근데 솔직히 너는 연고대도 안정이라며."

"그거야 모르는거지. 수시가 다 그런걸. 그리고 서울대가 공립이니까 돈도 훨씬 덜 들고..."

"그걸 너가 왜 걱정해?"

그네줄을 확, 당기며 칼럼이 눈을 부라린다. 얘는 또 이래. 무슨 지가 내 아빠도 아니면서...

"넌 그런 거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잘 해. 내가 알아서 하니까."
"야, 우리 엄마도 일하거든?"
"알아. 이모도 있고, 나도 있는데 너가 학비같은 걸 왜 걱정하냐고."
"여기에 너가 왜 나와? 칼럼, 너 나랑 동갑이야. 지금까지 새빠지게 알바 왜 했는데? 너 모은 돈 그거, 너한테 써야지 왜 나한테 쓰냐고."


또. 제일 중요한 말에는 시선을 피하고 흙이나 판다.

1학년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에 칼럼은 학교에서 자퇴했다. 출석하는 날이 훨씬 적기도 했고, 돈이나 빨리 더 벌고 싶다는 이유였다. 시험은 끝나도 생기부 정정은 해야 해서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지는 못했지만, 학원에서 돌아오는 밤마다 성도 내고, 설득도 하고, 애걸복걸도 해봤지만 칼럼은 결국 때려치웠다. 검정고시 친다더니,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평일이며 주말이며 이 세상 알바를 모두 섭렵할 것처럼 바쁘게 돌아다니더니, 만날 때마다 쥐어주는 건 셀린느, 까르띠에, 프라다여서 기겁에 기겁을 하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사실 아무리 그렇게 사다 바쳐도 전부 쓰는 건 아니었다. 워낙 눈치가 빨라서 아예 안 쓰는 건 아니고, 개중 사준 지 오래됐거나 학교 다닐 때는 별로 안 쓰게 되는 품목이면 포장재까지 원상태 그대로 모셔뒀다. 나중에라도 당근마켓에 팔아서 돌려줘야지, 하고.

물건은 팔아서 돌려준다 해도, 너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데. 그런데 그 때의 나는, 임대아파트에 살던 나는, 젊음을 갈아 칼럼이 사다 바친 명품이 너무 값비싸보였고, 그래서 그 애의 시간도 그만큼 가치있는 줄 알았다.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를 위해 버려지는 것과 다름없었는데.

그 애가 내게 쏟는 애정과 노력과 시간이, 나를 빨간 까르띠에 상자 속 주얼리처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잔뜩 기고만장해진 상태였다.

"나 서울대 1차 붙었어!"

"알아."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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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번호 메모장에 적어놨는데."
"어이없어..."


너는 무슨 나중에 내 보험도 대신 들겠다. 면접 준비 시간은 휘몰아치듯 지나갔다. 스카이 붙은 졸업생 선배들은 매일같이 학교에 와서 도와줬고, 전교 1등 덕을 톡톡히 보고 3년 동안 무료로 다닌 학원에서는 2차 준비도 공짜로 연계해줬다. 닥치는대로 했던 수많은 활동들 사이 세심하게 고른 수상 실적과 세특 내용을 달달 외우며 나는 죽을 듯한 긴장감과 미묘한 흥분에 밤에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내심,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 정도면 정말 합격하겠다는.

악몽은 면접일 아침에 찾아왔다. 엄마는 아빠한테 머리를 잘못 맞은 이후로 종종 뇌전증 발작이 오곤 했는데, 하필 그날 아침에...

하필이라니. 나는 이따위로밖에 말을 할 줄 몰라.

"칼럼, 나 지금 병원 못 가! 제발 우리 집 좀 와 줘. 엄마가..."

"진정하고 119 부르고 택시부터 잡아. 이모 병원은 내가 같이 갈 테니까, 너는 택시 오면 바로..."


구급차는 도착했는데, 칼럼이 안 왔다.

그토록 희망하던 1순위 대학에 떨어지고 나는 파란색이 어울리는 학교에 입학했다.


알바하던 곳에서 급하게 오던 칼럼이 오토바이 사고로 오른손 약지손가락을 잃은 게 그 날이었다.


칼럼은 죽을 때까지 그 날을 지독히 후회했다.
내 앞길을 막았다고.

*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국가장학금과 학교의 도움으로 생활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과외로 꽤 큰 돈이 매달 들어오기도 했고, 칼럼과 서울 살이를 시작하면서는 그 애가 생활비를 전부 담당해서 오히려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나도 염치가 있어서 이런저런 생필품을 사두긴 했지만, 어쨌든.

"교환 한 번 지원해보려고."

"어디로?"

"영국. 나중에 대학원 다니면 그쪽으로 갈 것 같아서. 일단 유럽 여행하고싶어서가 제일 큰 이유이긴 한데."
"가야지, 그럼."
"내 돈으로 갈 거야."

"응."


밥 숟가락을 입에 물고 힐끔 바라보니 별 표정 변화가 없다. 그래도 반 년밖에 안 되니까 혼자 잘 있을 수 있겠지. 

.
.
.
떠나는 날, 칼럼은 오천 유로가 든 봉투를 주고 공장으로 떠났다.
.
.
.
첫 정장은 엄마와 칼럼이 맞춰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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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를 드디어 땄다. 내 과외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야 알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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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 날, 나는 그 애는 절대 못 사는 버킨백을 받았다.
.
.
.
너는 내 결혼식에서 무슨 생각을 했니?

*

시험은 끝나도 생기부 정정은 해야 해서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지는 못했다.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칼럼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달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와 절실히 후회한다.

너는 도대체 나를 왜 사랑했니?
너를 위해 아무 것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왜 너는...

2024.06.20 03: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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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센세 오랜만이야ㅜㅜ 근데 칼럼이 너무 슬프다ㅜㅠㅠㅠㅠㅠ 여전히 애틋하고 슬퍼ㅠㅠㅠㅠ
[Code: 2e1c]
2024.06.20 03:24
ㅇㅇ
모바일
ㅅ...센세......? 내가 이거 보려고 칼럼덕질 안멈췄어 세상에나 ㅠㅠㅠㅠㅠㅠ 돌아와줘서 기뻐 무릎꿇ㄱㅎ 보러간다 와 센세가.... 미국다녀오셨어...
[Code: 6d7d]
2024.06.20 03:55
ㅇㅇ
모바일
헐..센세???,
[Code: c8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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