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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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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께 유산은 알리지 않았다. 애초에 임신도 알리지 않았으니까 상관없다.

겨울에 내려온게 초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의 어느날. 그 날은 유독 새가 지저귀는 날이었다. 초여름에도 꼭 가을하늘처럼 푸른색이 선명했다. 엄마와 난 부엌의 작은 창 너머를 보며 왠 강아지 모양의 커다란 구름이 지나가는 걸 구경했다. 그 구름이 퍽 귀여워서 우리는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누나."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뒤이어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 왔어요."

네가 돌아왔다.





*
어디서부터 말해야할지. 일단 충격적인 소식은, 제리 레인이 몇 년 전에 결혼을 했단다. 엄마는 너무 기뻐 비명을 지르다가도 퍽 서운해하며 울다 웃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넌 무슨 애가...!"
  "식은 따로 안 올렸어요. 서운해하지 마세요."
  "집에 한 번 데리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해놓을게."

엄마의 말에 눈을 접어 웃는다. 난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 저렇게 가식적인 건 어디서 배웠대. 어쨌든 제리 레인의 부인을 볼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제리 레인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것. 해외파견으로 최근엔 유럽에서 지냈단다. 무슨 일을 하느냐 물으니 웃기만 할 뿐 또 대답하진 않았다.

  "어떤 사람이야?"
  "누나가 궁금해할 줄은 몰랐네."
  "궁금하지. 없던 처제가 생겼는데."

근데 물어봐도 대답 안 할 거잖아, 너. 내 말에 제리 레인은 작게 웃었다. 착한 사람이야. 네 말에 난 눈을 굴렸다.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괜히 서먹해진 분위기에 난 애써 어깨를 툭 치며 말을 붙였다. 설마 나 닮은 사람은 아니지? 내 말에 제리는 또 작게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입을 여는 건 한참 뒤였다.

  "나 이제 누나 안 좋아해."
  "언젠 뭐 좋아했냐."

내 말에 네가 짧게 웃는다. 안도했다. 그저 어린 날의 기우였구나.

  "나이 들고 보니까 그래. 내가 너한테 너무 박했나 싶어. 엄마 아빠는 맨날 없고, 집엔 나 뿐이니 네가 그럴만도 했다 싶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그러니까. 모른척하고 좀 예뻐해 걸 그랬어. 그럼 너 삐딱선도 안 탔을텐데."

설거지하던 바쁜 손길이 멎는다. ...설거지 잘 해라? 난 그 손을 애써 모른체하며 네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지나갔다. 내가 부엌을 완전히 벗어날 때엔 등 뒤로 물 쏟아지는 소리 뿐, 그릇 부딪히는 소리는 없었다.





*
간만에 온가족이 모였다. 마당에 앉아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불을 피우는 것도, 고기를 굽는 것도, 내 접시에 고기를 놓은 것도 모두 제리 레인의 몫이다. 고기를 한 점에 맥주 한 모금. 낮에 비해 선선하니 시원해서 맥주가 유난히 잘 들어갔다. 평소보다 무리했지만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은 제리 레인이 돌아온 날이다. 우리가족은 꽤 들떠있었다.

  "제리. 그만 굽고 와서 앉아."

제리 레인은 불 앞에 섰음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난 내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제리 레인은 금방 앉을 것처럼 한 번 웃어 보이다가도 끝까지 앉이 않았다. 난 은근히 그 옆태를 훑었다. 사실 술에 꼴아서, 나중엔 작정하고 꼴아본 것 같다.

어릴 때에도 몸은 꽤 탄탄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의 빌리나, 빌리의 전성기만큼은 아니어도 꽤 근육이 붙어 탄탄해 보였다. 어깨가 저렇게 넓었나 싶기도 하고. 하긴. 마지막으로 본게 벌써 몇 년 전이야. 어느새 난 제리 레인을 위아래로 한참이라 훑어 내리며 왕복하고 있었다. 술김에도 제리 레인이 애써 입술을 말고 잘근잘근 깨무는 모습, 안 흘리던 식은땀을 흘려 목에 붙은 머리카락이 보였을 땐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들어가게? 더 먹지..."
  "아니 나 취했어. 먼저 잘게요."

엄마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보이고 집에 들어갔다. 정신없이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푹신하니 바로 곯아 떨어졌다.





*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파란 벽지. 이마를 짚었다. 방을... 잘못 들어왔네. 뒤늦게 몸을 일으키려는데 방문이 열린다. 난 바로 죽은척 몸을 뉘였다.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게 내쉬는 데에만 집중한다.

막 씻고 들어오는지 방 안에 샴푸향으로 가득 찬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내 방으로 가야하는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난 그대로 수마에 올라탔다.





*
문득 잠에서 깼다. 완전히 어둡다. 몇 시간이 훌쩍 갔구나. 흘긋 고개를 돌려보니 제리 레인이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려있다.

자는 건가... 물끄러미 그 뒤통수를 보는데 돌연 진동이 울린다. 제리 레인은 차분하게 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이질적이었는데, 갑작스런 진동소리에 오히려 놀라긴 내가 더 놀랐다.
제리 레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단어가 정확히 들리진 않지만, 여자 목소리인 걸 보니 아무래도 부인인 것 같은데.

  "...시차 확인 안 했어?"

목소리가 차갑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다. 제리 레인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곤 상체를 일으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당분간 연락 못 한다고 했잖아. 그게 왜 궁금해."

쉐리. 제리 레인의 한숨 어린 목소리를 끝으로 더이상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제리 레인은 통화를 매정히 끊었다. 이게 부부 간의 통화인가? 나와 빌리는 절대 이러지 않았는데. 어느새 난 제리 레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리 레인은 날 바라보지 않았다. ...시끄러워서 깼어요? 그럼에도 먼저 말을 붙이는 건 제리 레인이었다.

  "착한 사람이라며. 너무 못되게 구는 거 아냐?"

시큰둥하게 답했다. 동문서답이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이제와서 못 들은척 하는게 더 구려.

  "상관없어. 착해서."

제리 레인이 고개를 돌렸을 땐 또 내가 싫어하던 개눈깔을 하고 있었다. 시선은 길지 않았다. 곧 책상에 다시 머리를 박았으니까. 그 뒤통수를 꼭 후려쳐주고 싶었다. 당연히 그럴 순 없다. 난 애초에 자격미달이다.





*
제리 레인은 하룻밤의 신기루였던 양 동이 트자마자 사라졌다. 잠귀가 밝은 엄마 만이 막내아들을 배웅할 수 있었다.





*
그 다음 제리 레인의 소식을 들은 건 며칠 뒤였다. 소식통은 무려 빌리였다. 빌리한테 제리 레인의 이야기를 들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걔가?"
  '그러게. 구단주가 바뀌어버렸네.'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구단이 한 두 푼도 아니고 무슨..."

전 구단주가 오클랜드가 낙동강 오리알 될 틈도 없이 구단을  B그룹에 팔아버렸다고. 며칠 전 구단을 찾아온 B그룹 관계자가 바로 제리 레인이었단다.
소문엔 B그룹 외동 사위라는 얘기가 돌던데. 빌리가 말했다. 처음 든 생각은 당연히... 그래서 난 빌리에게 제리 레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전화번호는 있어? 명함... 아니면 사무실 주소?

아쉽게도 빌리 빈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다음 미팅이 사흘 뒤 구단 내 사무실이니 그 날엔 오지 않겠느냐고. 오후 3시. 그래서 난 그 날 2시부터 가서 죽치고 기다렸다. 단장 전부인의 등장에 직원은 물론 선수들까지 눈알을 굴려대며 기웃댔지만 빌리가 사무실 블라인드를 퍽 퍽 소리내며 거칠게 내린 후엔 잠잠해졌다.

  "구단을 어떻게 하기야 하겠어."
  "네 손등도 찔렀던 애야. 발등 찌르는 건 더 쉽겠다."

내 말에 빌리는 허, 참. 하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웃었다. 오늘 저녁은 같이 먹고 가. 빌리의 말에 난 대답 대신 콧김을 뱉었다. 제리 레인은 3시 정각에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책상에 기대 앉아있던 빌리가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주었을 때 난 빌리의 바로 뒤에 서있었다.

  "예. 뭐. 들어오시죠."

빌리가 설렁거리며 길을 텄다. 난 그대로 빌리의 등에 갇혀 벽에 호떡처럼 눌러졌다. 읍... 작게 터진 신음에도 빌리는 돌연 장난기가 돌았는지 내 몸을 더 눌렀는데, 먼저 자리를 잡은 제리 레인이 이쪽을 바라봤다. 그제서야 빌리가 문고리를 잡고 날 밀어 내보낸 후 문을 닫았다.

그 찰나에 마주한 건 역시나 개눈깔이었다.





*
회의는 1시간이 넘어갈 때 즈음 겨우 끝났다. 사무실에서 로비로 먼저 나온 빌리는 열이 받았는지 표정이 굳어있었는데, 내가 무슨 일이냐는 말 대신 눈썹을 까딱여도 고개를 젓는게 다였다. 뭐... 구단 사정이야 들어도 모르긴 한다만, 일이 쉽게 풀리진 않는듯 하다.

난 빌리를 뒤따라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이따금씩 열이 받아 머리뚜껑이 열릴락 말락 할 때마다 해주던 우리만의 루틴이다. 그래서 뒤이어 나온 제리 레인을 뒤늦게 알아챘다. 제리 레인은 무감한 얼굴로 우리 둘 뒤에 버젓히 서있었다.





*
빌리는 그 날 저녁식사에서 만취했다. 주량을 가늠 못 할만큼 말술이었는데 오프로더에 주유하듯 끝도 없이 들이키더니 결국 테이블에 이마를 쾅 처박고 가버리셨다. 난 몇 분을 그 정수리를 보며 멍 때렸다. 이 덩치를 어떻게 들고 가지. 막막했다.

  "빌리. 저 앞까지만... 어? 아 제발..."

빌리는 사지를 내게 맡긴 채 겨우 서있었고 난 약 80kg의 거구를 짊어진 난쟁이가 되었다. 아 시발 모르겠다. 난 벤치에 빌리를 던져버렸다. 말이 던진 거지 빌리의 팔이 내 목을 감싸고 있었으므로 둘이 겹쳐 널브러졌다.

  "너 술 좀 깨야지 안 되겠다. 잠깐만 기다려."
  "허니..."
  "왜, 속 안 좋아? 토할 것 같아?"
  "...키스해줘."

빌리가 머리통을 내 품에 기대며 말했다. 난 한숨을 뱉으며 그 머리를 몇차례 쓰다듬었다. 네가 취하긴 취했구나. 내 말에 빌리는 신음을 뱉으며 내 품을 더 끌어안았다. 옅은 잠에 빠진 빌리를 혼자 두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숙취해소제랑 초콜렛. 얼음컵과 생수 하나를 비닐봉지에 넣고 털레털레 돌아오고 있었는데.

벤치 앞에 누군가 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가 곧 손에 잡히는대로 그를 향해 집어 던졌다. 하필 병음료인 숙취해소제가 걸려선. 보도블럭에 떨어진 유리병은 시끄럽게 깨지며 진창을 구른다. 그제서야 제리 레인이 날 돌아본다.

  "너... 당장 떨어져."

저 개눈깔 진짜. 제리 레인은 내 목소리에 고개를 느리게 돌릴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마주한 그 눈은 지난 기억 속 눈깔보다 더 어두웠는데 이젠 정말 사람 눈이 아니라 후벼판 인형눈과 다름 없었다.

내가 벌컥 다가가 손목을 쥐려하자 쥐고있던 커터칼을 하수구에 던져버린다. 난 씨근덕대는 숨을 연거푸 뱉으며 개눈깔을 노려봤다.

  "너 진짜 뭐하는 새끼야? 왜이래, 너 진짜!"
  "약지를 썰어버릴까 했어."
  "너..."
  "반지고 손가락이고 다 으깨버리고 싶었는데."

누나 손엔 없어서 참은 거야. 그리곤 뒤돌아서 가버린다.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그렇게 쪼그려 앉아있었다. 손바닥이 흥건하다.

제리 레인은, 내 예상보다도 더 최악으로...





*
애석하게도 얼마 뒤, B그룹의 외동딸 쉐리 블랙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그들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호화스럽기 그지 없었는데 그중 대중이 주목한 건 외동딸의 숨겨져있던 남편이었다. B그룹 사위의 출중한 외모가 빛을 발했다. 눈부신 금발의 단발머리는 장례식에서도 눈치없이 반짝였고, 그 아래 얼굴은 칼로 조각이라도 한 건지 날카로움에도 푸른 눈은 물기 어려 잠잠했다. 특히 장례식 뒤편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는 파파라치 컷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 인터넷은 한 바탕 뒤집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가 문 담배 끝이 누렇게 물든 건 분명 LSD라고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작 주목을 받은 건 따로 있다. 바람에 옅게 나부끼는 금발에 창백한 안색, 은근히 풀어헤쳐진 슈트 차림 등 장례식 입장 때완 전혀 상반된 모습이 또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는지. 아무튼 SNS에 그 사진이 판을 치는 바람에 난 한동안 휴대폰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 관한 정보를 알 순 없었다. 무슨 일인지 그의 모든 정보가 삭제되어있었다. 항간에선 이는 B그룹의 찝찝한 배후를 들먹였다. B그룹이 뒤에서 벌이는 온갖 불법유통과 마약제조 및 밀매 등을 담당하고 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신원정보를 다 세탁한 것이라고. B그룹을 거치는 마약은 미국 내에서 거래되는 약물의 약 70% 이상이라고 하는 루머까지 있으니 당연하다.

난 머리를 싸맸다. 그렇게 소득 없이 며칠을 보냈다.





*
제리 레인은 다시는 본가에 내려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B그룹 막내딸의 사망소식을 뉴스로 듣긴 했지만 문제의 '사위'는 뉴스에 대서특필되진 않고 커뮤니티 사이에서 돌았기 때문에 아직까진 내막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부모님이 TV를 볼 수 없도록 엄마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외식을 즐겼다. 반면 아빠는 그 내막을 아는듯 했지만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엔 이따금씩 전화가 왔다.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변소음만 웅웅 울리는 그런 통화였다.





*
요즘 제리 레인의 유서를 자주 들춰본다. 이따금씩 술에 젖은 날엔 눈물도 닦아야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너는.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그 날은 한참을 울었다.

하필이면 그 날에. 그 날에 전화가 와서. 전화는 받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난 제리 레인의 전화를 단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었다. 벨소리는 1분을 꼬박 다 채우곤 멎었다. 그리곤 잠깐도 안돼서 다시 울렸다.

그렇게 5시간을 계속 울렸다. 부재중이 290통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 날 처음으로 제리 레인이 무서웠다. 5시간 후엔 더이상 벨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당연하다. 결국 참지 못한 내가 전화를 받았으니까.

  "...미친새끼."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난 창문을 열었다. 그대로 휴대폰을 던졌다. 그 뒤로 다시 전화가 오는 일은 없었다. 난 몇 주간 휴대폰 없이 살았다.





*
반 년 전까지 에이전시 소속 디자이너로 있다가 최근 개인작가로 독립하면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라고 하면 졸작이 마지막이라서 너무 까마득해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진이 다 빠졌는데. 일주일 간 주목은 커녕 판매된 제품도 작은 굿즈를 제외하곤 없었다. 시설대여는 2주로 계약했으니 이대로 가면 공간 대여비도 나오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첫 전시회가 이렇지 뭐... 하며 태평하게 맥주를 퍼붓길 며칠.

  "...네?"
  '전부요. 솔드아웃이에요, 작가님!'

믿기지 않았다. 기쁨보단 당혹감이었다. 누군가 내 작품을 전부 샀다고? 왜...?

대체 누가?





*
  "네. 구매자 정보를 알 수 있을까 해서요..."
  '클라이언트께서 익명 구매를 원하셔서 저희도 전달드릴 정보가 없습니다. 대리인을 통해 전액 현금결제를 하셨거든요.'
  "그럼 그 대리인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게...'

택배... 라서요.





*
두번째 전시회도, 세번째, 네번째 전시회도 그랬다. 반 년동안 꾸준히 진행한 모든 전시회는 익명의 누군가가 전시마감 며칠 전 내 작품을 모조리 구매하면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다섯번째 전시회에서 역시 또. 마감 이틀 전까지 한 편도 팔리지 않았는데, 또 익명의 누군가가 현금다발을 보내왔다. 전시회 로비에 앉아 택배기사가 박스를 들고 오는 모습을 봤다. 마음 먹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전시 담당자가 내 작품들을 내려 포장을 위해 모아놓은 룸으로 향했다. 액자에서 그림들을 전부 꺼냈다. 커터칼로 전부 그어버렸다. 되려 캔버스는 찢겨나가는 쾌감에 속이 후련했다. 직원이 들어왔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전부 다.





*
네 손에 절대 들어가지 않도록.





*
돈냄새는 참 지독하더라. 내 방 한 켠에 단프라 박스 하나를 가득 채운 현금다발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막상 태우진 못했지만... 네 방으로 옮겨놓았다.
나 역시 본가를 나왔다. 준비가 덜 된 채로 마음만 급했지. 마땅히 당장 머무를 데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미안..."
  "됐어. 원래 네 집이야."

빌리의 집으로 다시 들어오게 됐다. 참 영악하게도 난 오랜만에 빌리를 만나면서 제일 먼저 약지를 확인했다. 반지가 아직도 영롱하게 빛났다. 안심했다. 이런 걸 보면 너와 난 꽤 한 핏줄인 것 같다. 영악하기 짝이 없어.

빌리는 내 짐을 옮겨주러 잠깐 집에 들렀다가 금방 구단으로 향했다. 난 빌리가 없는 빈 집을 천천히 돌았다. 빌리는 짐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서재도. 화장실 속 칫솔도. 슬리퍼도, 식기도 전부. 울렁거리는 속에 목을 움켜쥐었다. 토사물이 목울대까지 올라오려는 걸 꾹 참았다.

일을 찾기 전까진 무직이었으니 대개 청소를 하거나, 빌리의 식사를 챙기며 시간을 보냈다. 아쉽게도 빌리는 여전히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으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난 보통 시리얼에 우유를 타서 대충 먹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날 주말 빌리는 날 질질 끌고 인근 마트로 향했다.

  "집에서 밥 먹는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많이 사?"
  "어차피 있으면 다 먹어."
  "썩을까봐 그러지..."

지금도 봐. 너 해물 무서운 줄 모르고 막 담으면... 난 빌리의 손을 잡아 말리다가 문득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인파 속에서 금방 사라졌지만 분명... 검은 볼캡 아래의 눈은 꽤 익숙했는데.






*
최근에 계속 잠을 설치긴 했지. 난 멍하니 눈을 떴다.

  "...미안."
  "더 자도 돼."
  "아냐. 조수석에서 자면..."

안... 눈을 의심했다. 뒤늦게 빌리의 어깨를 잡았다.

  "...자라니까."

빌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불이 바뀐다. 빌리가 작게 욕을 뱉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빌리가 내 가슴 앞으로 팔을 뻗는다. 빌리의 몸이 앞으로 크게 쏠리곤 다시 등받이에 처박힌다. 괜찮아? 빌리가 물었다.

빌리의 이마는 찢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아까부터.





*
난 제리 레인의 유서 속 모든 구절을 외울 수 있다. 별 거 없는 글이었고, 생각보다 짧은 내용이다.





*
결혼 축하해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면 남자는 '제시'
여자라면, '케이시'라는 이름도 생각해봤어

아껴둔 이름이지만써도 돼   ...





*
운이 나쁘게도 그 날 야근을 한다던 엄마가 돌연 일찍 귀가했고 넌 그렇게 숨통을 끊지 못했다. 그 날 네가 죽었어야 했을까. 그래야 네가... 덜 불행해졌을까.

빌리는 욕실에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았다. 난 침대 구석에 웅크려 앉아 애꿎은 바지춤만 쥐어 잡았다.





*
잘 지내


나는 누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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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
넌 그렇게 매일 밤 나를 울린다.










빵발너붕붕 제리너붕붕

2024.06.16 20: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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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첫댓따묵
[Code: a39a]
2024.06.16 20: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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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아앙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ㅓㅏㅓㅓ제리야ㅜㅜ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으아 허니야 마 함 받아줘라 미안하지먼 내가 꼴리니까💦💦💦💦💦💦💦💦아니 와중에 빌리 시발 빌리도 아직 마음 그대로네 존맛이다 킬킬 억나더 억나더
[Code: a39a]
2024.06.16 20: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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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필력 뭐야...미쳤다 진짜ㅠㅠㅠㅠ어나더ㅠㅠㅠㅠ센세 제발ㅠㅠㅠ
[Code: 8297]
2024.06.16 20: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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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가 끝까지 무사했으면 좋겠다ㅠㅠㅠ제리 너무 무서워 ㅠㅠ
[Code: d3d9]
2024.06.16 20: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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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ㅠ진짜 스크롤 내려가는게 너무 아쉬워 어떻게 이렇게 누나한테 미친놈을 맛깔나게 쓸 수있냐구 진심 소름 돋고 무서운데 존나 꼴려 하 세상에 내가 맨날 센세만 기다리는 걸 센세는 알까 계속 꼭 써주기야 사랑해!!!!!!
[Code: 36a3]
2024.06.16 21: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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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미치겠다 제리 근데 하 미친놈인데 하 씁하 집착 존맛 ㅠㅠ
[Code: 1159]
2024.06.16 21: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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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진짜 지독한 순정 사람 미치게 만든다...
[Code: ea9b]
2024.06.16 22:00
ㅇㅇ
와.. 정신없는 빌리 앞에서 칼 들고 있었다는 거 보고 팔에 소름돋음;; ㅈㄴ 무서워 제리;; 집착 미쳤다..
[Code: cb78]
2024.06.16 23: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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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긴장감을 놓을수가 없다;
[Code: d3a2]
2024.06.17 00: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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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이건 진짜 마스터피스 너무 좋아서 숨이 막혀요............... 좋아서 이 글에서 한참을 못나갔어
[Code: 6562]
2024.06.17 01: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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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미친...진짜 돌았구나...허니한테 미쳐돌았어....근데 빌리도 허니한테 찐이고....걍 셋이 살면 안될까....세가완삼 좋잖아....
[Code: deb6]
2024.06.17 07: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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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게 재밌어서 나 눈물만 나
[Code: 9955]
2024.06.17 08: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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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문학이야…
[Code: be50]
2024.06.17 09: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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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수인 내센세 너무ㅠ사랑해서ㅠ나도 290통 전화 걸고싶어 센세 도망갈까봐 참는거야ㅠㅠㅠㅠㅠㅠ
[Code: 08ed]
2024.06.20 19: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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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이거는...작품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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