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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1:50
매버릭의 유일한 친구이자 오랜 전우였던 닉 "구스" 브래드쇼가 죽었다. 아내인 캐롤과 함께 처갓집에서 돌아오다가 마차가 산사태에 휘말린 것이다. 매버릭에게 캐롤은 단순히 친구의 아내 이상이었다. 밝고 따듯한 성격을 가진 캐롤은 천애고아인 매버릭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좋은 친구이자 가족을 동시에 잃은 매버릭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냥 슬픔에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다. 구스와 캐롤에겐 8살 난 외동아들, 브래들리가 있었다. 장례식장에 모인 친척들은 브래들리가 느낄 슬픔이나 두려움 따윈 관심이 없었다. 명절에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던 그들은 브래드쇼 부부가 남긴 유산에 대해서만 떠들어댔다. 구스가 아무리 소탈하게 살았다고 해도 토벌에서 돌아올 때마다 받은 포상금이 한가득이었다. 소탈하게 산 덕에 그 돈이 줄지도 않고 그대로였으니 속물적인 인간들의 탐욕을 부추기기엔 충분했으리라. 브래들리는 부모를 꼭 닮아 햇살처럼 밝은 아이었지만, 지금은 제 처지를 아는지 아무 표정도 없이 오도카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구역질 나는 이야기를 수근거리는 어른들 사이에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니 매버릭은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딱 브래들리의 나이 즈음에 매버릭도 부모를 잃었다. 용기사였던 아버지가 전사하자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아버지를 따라가 버렸고, 어린 매버릭은 막대한 유산을 구경도 못 한 채 친척집을 전전해야 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들었다. 구스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이 술만 취하면 브래들리를 부탁한다고 중얼거렸다. 매버릭, 나와 캐롤이 없으면 네가 브래들리의 가족이야. 구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 해서 매버릭은 눈을 감았다. 그런 부탁이 없었더라도 나는 브래들리를 지켰을 거야.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잡아 내린 매버릭은 브래들리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친척들에게 브래들리의 후견인은 자신임을 공표하자 조용했던 장례식장 안이 금세 떠들썩해졌다. 유산 없이 아이만 데려간다고 했다면 다들 만족스럽게 입을 다물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이 역겨운 인간들 틈에 브래들리를 두고 싶지 않아졌다. 매버릭은 항의하는 친족들을 무시한 채 정원을 걷고 또 걸었다. 어차피 유언장엔 자신이 후견인으로 되어 있을테니 상대해 줄 이유도 없었다. 한참을 걸어 한적한 곳에 다다르자 매버릭은 품에서 브래들리를 내려 주었다. 처음으로 익숙하고 믿을 수 있는 어른을 보자 브래들리는 그제야 울먹이기 시작했다. 브래들리는 매버릭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브래들리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매버릭은 아이의 작은 등을 가만히 두드려주었다.



브래들리를 데리고 온 것까진 좋았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후견인은 소송을 통해 언제든지 뺏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견인보다 법적으로 가까운 관계가 되는 방법은 입양과 결혼인데, 제국의 법은 미혼자의 입양을 금지했기에 매버릭에게 남은 선택지는 결혼 뿐이었다. 아이를 보호한답시고 입양을 금지해놓고 결혼을 하는 건 된다니. 이딴 법이 어디 있냐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부질 없는 일이었다. 결국 매버릭은 브래들리에게 약혼 서약서를 건넸다. 그나마 혼인이 아니라 약혼으로 미적댈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집사가 브래들리의 옆에서 약혼 제도에 대해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었지만 완전히 이해한 눈치는 아니었다. 여기에 사인하면 매버릭이랑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거죠? 매버릭은 작은 손이 제 이름 옆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적어 넣는 걸 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용서해 줘, 구스. 브래들리가 성인이 되면 바로 파혼할게. 매버릭은 착잡한 마음으로 황실에 약혼 서약서를 보냈다. 나이 차이를 보고 반려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날같은 희망을 품어 봤지만 약혼 서약은 반려되지 않았다. 그렇게 매버릭은 한참 어린 남편을 들이게 되었다.



브래들리를 맡기로 했다곤 해도 매버릭이 늘 함께 있어줄 수는 없었다. 매버릭은 제국 내에서도 손 꼽히는 용기사였고, 북쪽에서 마물들이 끊임 없이 몰려 오는 상황에 육아를 핑계로 토벌에 빠질 순 없었다. 결국 매버릭은 브래들리를 두고 몇 번이고 저택을 떠나야만 했다. 운이 좋으면 몇 달만에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일 년을 꼬박 지새우고도 간신히 상황을 마무리 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브래들리는 울거나 떼를 쓰지 않았다. 그저 꼭 돌아와야 한다며 얌전히 손을 흔들 뿐이었다. 어른스럽게 구는 브래들리를 보고 있으면 입 안이 썼다. 구스 부부가 함께 있을 때는 투정도 부리고 제 나이같이 행동했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그 때의 기억은 마음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보호자가 함께 있어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국가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었다. 매버릭은 말에 오르기 전 다시 한 번 브래들리를 돌아 보았다. 마냥 병아리 같던 금발은 색이 짙어져 갈색에 가까워졌고, 뼈대가 부쩍 자란 게 눈에 보였다. 매버릭이 토벌에서 돌아올 때마다 브래들리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매버릭이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춰줘야 했던 아이는 어느새 매버릭의 가슴께까지 자라더니, 이제는 눈높이가 얼추 비슷해졌다. 이번에 돌아오면 내 키를 추월해 있겠구나. 밝고 활기차던 어린 브래들리는 이제 매버릭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 그를 한층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가기 전에 곱슬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지 오래인지라 아이 취급 한다고 싫어할 것 같았다. 고민하던 매버릭은 결국 브래들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 없이도 잘 지내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편지를 보내. 매버릭의 걱정과 애정이 담긴 인사에 돌아오는 건 네, 하는 짧은 대답 뿐이었다. 목소리도 변성기가 오기 시작했구나.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끝도 없었다. 여기서 더 머물다간 감상에 젖어 전장에서 실수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매버릭은 서둘러 말에 올랐다.



매버릭의 예상대로 곧 성년을 맞이하는 브래들리는 어느새 매버릭을 내려다 보게 되었다. 조카 같은 아이에게 키를 따라 잡힌 건 뼈 아픈 걸. 하지만 기사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건 좋은 일이었다. 체격이 좋으면 어딜 가도 무시 받진 않으니, 저와 비슷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고달팠을 것이다. 이제 슬슬 브래들리를 놓아줄 때가 오고 있었다. 약혼을 파기하고 맡아 뒀던 유산을 돌려주면 새 출발을 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처녀들이 힐끔거릴 정도로 멋지게 성장했으니 좋은 아가씨와 가정을 꾸릴 수도 있겠지. 위험하지 않게 검술은 자기 방어가 될 정도로만 가르쳤으니 안전한 수도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매버릭의 머릿속엔 온통 언제 파혼 소식을 알릴지에 대한 것 뿐이었다. 오늘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내일? 파혼이 기쁜 소식은 아니니까 눈치를 봐 가며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사이 먼저 입을 연 것은 브래들리 쪽이었다. 저 기사 시험 합격했어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매버릭이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떨어트렸다. 똑똑히 들었음에도 그의 머리는 이 한 마디를 이해하는 걸 거부했다. 브래들리, 지금 뭐라고... 제가 입단속을 시켜서 소식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전부터 꾸준히 준비했어요. 용 다루는 법도 익혔고요. 이번에 합격해서 기사 서훈도 받았고요. 그러니 이젠 브래들리가 아니라 루스터예요. 매버릭은 희게 질려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아, 구스... 네 아들을 지키지 못 했어. 위험한 전쟁터에서 떨어트려 놓으려고 검술 연습도 막았는데, 일이 틀어져 버렸어... 구스의 장례식에서 느꼈던 갑갑함이 매버릭을 엄습했다. 브래들리는 가슴께를 붙잡고 얼어붙은 매버릭의 얼굴을 살피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전 성인이고, 정식 기사가 되었으니 당신과 같이 전쟁터에 나갈 거에요. 매버릭의 얼굴은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었다. 사형 선고라도 받은 듯 희게 질린 얼굴을 보면서도 브래들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결심을 더욱 굳힌 듯 했다. 나는 당신의 약혼자로서 당신과 함께 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약혼을 무르는 일도 없을 겁니다. 매버릭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가 없으면 네가 브래들리의 가족이야, 매버릭. 구스의 목소리가 유언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란다. 어른들의 생각이 따라잡지 못 할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매버릭은 지금, 아이의 성장을 과소평가한 대가를 치루고 있었다.






루버릭
2024.06.26 02: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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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니 센 세 미친 너무 재밌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린 브래들리를 지키기 위해 쓴맛을 삼키면서 약혼하는 매버릭이랑 그저 매버릭 곁에 있고 싶어서 싸인한 브래들리라니 ㅠㅠㅠㅠㅠㅠㅠ 근데 거기다 매버릭이 곁에 거의 못 있어줬는데도 너무나도 잘큰 브래들리가 선전포고 하는것도 약혼 무를일 없다고 하는것도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작던 애기가 매버릭이 없을때 매버릭과 함께 하고 싶은 방법을 고민한거 같아서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25b]
2024.06.26 10: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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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캐롤 가고 나서 어른스러워진 브래들리 맴찢ㅠㅠㅠㅠㅠㅠ 그 애기가 다 커서 매버릭 따라가고 싶다고 그러는데 매버릭 진짜 세상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듯ㅠㅠㅠㅠㅠㅠㅠ 하지만 예쁜 삼촌이 먼저 브래들리에게 약혼하자고 했으니 책임지는 게 맏따 응응
[Code: f000]
2024.06.26 10:35
ㅇㅇ
센세 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제발 어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57b]
2024.06.26 12: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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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구스캐롤이 매브 가족이라고 햇으면 매브가 순순히 매느리 돼주는게 맞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파혼 그럼거 없어
[Code: 4740]
2024.06.26 14: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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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나죽어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c6b]
2024.06.27 00: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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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센세 홀린듯이 읽었어 미친 존잼 ㅠㅠㅠㅠㅠ개붕적으로 이건 반드시 어나더가 있어야해 ㅠㅠㅠㅠ어린 신랑이 이제 진짜 남자로 성장해서 당당하게 매버릭 곁에 서겠다고 선언했으니 억나더를 주세요 다음편이 너무 궁금해 ㅠㅠㅠㅠ
[Code: f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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