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소리를 내며 빨간 뒤통수가 매정하게 돌아갔다. 케이아는 갓 짜낸 포도 주스를 컵에 쪼르륵 따르며 다시 한 번 포도밭의 주인을 설득하기에 나섰다.

“이상한 기계가 아니라 ‘발신기’라는 물건이라고. 이전까지 바람의 행방은 그저 숨기만 하면 되니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잖아? 발신기를 설치하면 더 많은 사람이 바람의 행방을 즐길 수 있을 거야. 가이각스 씨의 의견에 따르면 말이지."
"그 '발신기'라는 게 몇 개나 필요한데?"
"한두개는 아니지만... 당연히 설치 과정에서 밭을 훼손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건 장담하지."
"한두개가 아니라고?"
"그렇지만 다이루크, 다운 와이너리는 가장 전통적인 바람의 행방 장소 중 하나였어. 그리고 거기엔 매년 장소 사용을 허가해준 다이루크 어르신의 넓은 아량이 큰 몫을 했지. 티바트에 있는 그 어느 부자 어르신의 집에서도 4년 연속 바람의 행방을 열지는 못했다고. 그 기록적인 역사가 고작 발신기 설치 문제 때문에 깨지다니, 이제껏 쌓아온 다운 와이너리의 명성이 아깝지도 않아?"
"..."

고작 이런 도발로 그가 마음을 바꾸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다이루크가 애도 아니고. 하지만 즉시 대답하지 않고 꾹 다물린 다이루크의 입을 본 순간 케이아는 확신했다. 그가 걸려들었다.

"밭을 훼손하지 않는 조건 하에 허락하는 거야."
"역시 다운 와이너리야! 나는 이 기쁜 소식을 가이각스 씨에게 전하러 이만 돌아가볼게. 발신기를 설치할 때는 내가 직접 감독할 테니, 포도밭이 훼손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맛있는 와인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건 나도 바라지 않으니까."

케이아는 그렇게 장담하더니 유유히 저택을 나가버렸다. 며칠 후, 저택 현관문을 연 다이루크는 아침부터 문 앞에 떡하니 자리한 흉측한 기계와 마주했다. 마치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파직거리는 흉물은 케이아가 말했던 '발신기'임이 틀림없었다. 

-총 여섯 개나 설치해야 하는데, 다섯 개는 밭의 빈 자리에 설치했지만 남은 하나는 적당한 자리가 없어서 여기에 설치했어. 현관 앞도 밭을 훼손하지 않고 설치할 수 있는 딱 좋은 자리잖아? 한동안 매일 이 발신기가 현관에서 다이루크 어르신을 맞이하고 배웅해줄거야.

다이루크는 한숨을 쉬며 발신기에 붙은 메모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확실히 밭을 망가트리지 않는 방식으로 발신기를 설치하긴 했지만 현관 앞에 보란 듯이 커다란 기계를 놓은 것은 녀석의 장난임이 분명했다. 

"새로운 바람의 행방은 어때?"

행사 기간 도중 케이아가 다운 와이너리에 방문하여 의견을 물었다.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하고 가이각스 씨에게 들려주어 다음 바람의 행방 때 참고하기 위함이었다. '현관 통행에 방해돼.' 다이루크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소파에 등을 편히 기댄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발신기를 수리하느라 사람들이 지붕에 덜 올라가서 좋아."

그렇게 말하는 다이루크의 얼굴은 작년 바람의 행방 때보다 조금 더 편한 밤을 보낸 듯 보였다. 설문지를 든 케이아는 발신기 항목의 매우 만족 칸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으며, 다음 바람의 행방 때 장소 제공 의향이 있냐는 항목에도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이케이
 
2024.05.16 19:47
ㅇㅇ
모바일
하습 이런생각 어케하냐 존나귀엽다
[Code: 2091]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