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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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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를 처음 만난 건 반 년 전이었다.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랩탑으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던 중이었는데 불쑥 그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앞에 앉아도 되나요?' 많고 많은 자리를 두고 자기 앞에 앉겠다는 게 조금 찝찝했지만 어차피 여럿이 앉는 테이블이었으니 그냥 그러라고 했다. 가방에서 책 한 권과 핸드폰 충전기를 꺼낸 뒤, 자신이 주문한 음료를 받아오더니 갑자기 또 말을 걸어왔다. '초콜릿 하나 드실래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손끝으로 톡톡 밀어 결국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일을 끝낼 때까지 그 초콜릿엔 손도 대지 않았지만 카페를 나설 땐 그래도 챙겨야 했다. 그대로 놓고 나오는 건 아무래도 실례니까.

3일 뒤에도, 5일 뒤에도 그 카페에서 스즈키를 마주쳤다. 차라리 스즈키가 먼저 들어와 있었다면 어색해서라도 다른 카페로 갔을 텐데 신기할 만큼 마치다가 자리에 앉으면 5분 뒤에 바로 나타났다. 두 달 가까이 매주 두세 번씩 마주치면서 주머니엔 초콜릿이 하나 둘 늘어갔다. 단 걸 좋아하지 않아 난감했다. 집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린다고 그 사람이 알 리 없는데도, 괜히 죄책감이 들어 버리지 못했다. 병원을 이전하면서 한동안 카페에 오지 못하다가 동물 병원 개원 전단지를 붙이던 중 우연히 스즈키를 다시 만났다. '전단지 아르바이트 하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여기 초콜릿도 좀 드세요. 그동안 못 만나서 꽤 많이 모였어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쳐내지 않으면 스토커짓을 할지도 몰랐다. '죄송하지만 말 걸지 말아주세요. 카페에서도 그렇고... 사실 좀 불편하네요. 그리고 저 초콜릿 원래 안 먹어요. 안 받을게요.' 놀란 얼굴이 꽤 어린애 같아서 순간적으로 나이를 물어보고 싶어졌다. '도대체 몇 살이에요?' 이제 막 서른이 됐다면서,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면서 명함을 건네는 손이 굉장히 깔끔했다. 병원에서 동물들을 진료하며 생긴 버릇 중에 하나가 상대방의 손을 보는 것이었다. 환자가 사람이 아닌 강아지이다 보니 딱히 눈 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니터, 강아지의 얼굴, 그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보호자의 손을 번갈아 보는 게 루틴이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명함엔 스즈키 노부유키, 팀장이라고 쓰여있었고 집에 돌아와 회사명을 검색해 보니 인테리어 관련된 곳이었다. 사이트엔 직원들의 사진도 있었다.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됐지만 주머니 안에 또 초콜릿이 하나 늘어 골치였다.

명함을 받은 날로부터 딱 사흘 뒤, 병원으로 스즈키가 찾아왔다. 멀쩡한 놈인 줄 알았는데 또라이 스토커였구나 싶던 순간, 데스크 직원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나오신 거죠? 이쪽으로 오세요.' 아직 마치다를 발견하지 못했던 스즈키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고, 제법 능숙한 동작으로 이런저런 시안을 꺼내 보였다. 그때 고슴도치가 밥을 먹지 않는다며 울고 불고 난리가 난 초등학생 보호자가 뛰어 들어왔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아이에게 꽂혔다. 그리고 스즈키의 눈은 곧장 아이를 달래는 마치다에게 닿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치 잃어버린 피붙이라도 찾은 것처럼 손목을 낚아챘다. '맞죠? 초콜릿.' 초콜릿은 먹지도 않는 사람에게 대뜸 초콜릿이라니. 앞뒤 사정을 모르는 직원이 괜한 오해를 할까봐 속사포처럼 그동안의 일을 줄줄이 설명하는 사이 아이의 울음 소리가 더 커졌다. '일단 고슴도치 좀 보고 다시 나올게요.' 직원에게 한 말이었는데 스즈키가 대답했다. '네. 기다릴게요.' 고슴도치 진료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진료실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스즈키는 보채지도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결국 사무실로 복귀하느라 병원을 나선 그는 세 시간 뒤 다시 병원 앞으로 찾아왔다. 병원 문을 닫고 돌아선 마치다가 악 소리를 지를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갑작스럽고, 커다란 사람이었다. '초콜릿 안 드신다고 해서 커피 사왔어요. 커피는 먹죠?' 그 말이 연애의 시작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테리어를 핑계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가끔은 예고도 없이 병원에 찾아와 무료로 인테리어를 손봐주고, 두 번 정도 병원 앞 우동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마치다가 말을 놓게 되기까지는 서너달 정도 걸렸다. '혹시 나랑 친하게 지낼래요? 지금보다 더 친하게요.' 사귀자는 말보다 더 어이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귀자고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숨은 뜻은 결국 사귀자는 거겠지만, 그걸 둘러싼 단어가 밋밋하고 투박한 친해지잔 말이어서 얼렁뚱땅 승낙하게 됐다. 집에 데려다 준다는 말에 그건 싫다고 단번에 거절하고 돌아섰다. 그래봐야 몇 걸음 내려가는 게 전부인 언덕 아래의 집이면서. 마치다는 그걸 갖고 딴지를 걸거나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않는 모습에 안심하게 됐다. 여기 사느냐, 혼자 사느냐, 들어가도 되느냐 쉽게 묻지 않는 타입인 게 의외였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평생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다. 그저 조심하고 망설이다 보니 기회를 많이 놓쳤을 뿐이다. 가까워지려고 하면 도망치고, 섞이려고 하면 기름처럼 분리되어 버렸다.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꾸만 튕겨져 나갔다. 누군가와 하나가 되는 건, 친밀한 사이가 되고 삶을 공유하는 건 어려운 걸 넘어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다. 연애가 될 뻔 했던 알쏭달쏭한 사이를 몇 번 겪어는 봤어도 스킨십 경험은 제로였다. 두 살 어린 연하 남자친구에게 놀림 받을 일을 아예 차단하고자 마치다는 그날 바로 말했다. 나랑 친하게 지낼래요?라고 했던 그날. '나는 연애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그러니까 재미도 없을 거고, 답답할 거야. 자신 없으면 그냥 없던 일로 하자. 우리 다 어린 나이도 아닌데 시간 낭비 할 필요 없잖아.' 연애가 처음이란 말에 딱히 눈을 빛내지 않는 모습도 마치다에겐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었다. '난 연애할 떄 안정적인 게 중요해요. 재밌고 말고는 20대때나 따지지.' 그래봐야 이제 막 서른이 된 주제에, 마치다는 속으로 몰래 웃었지만 낯빛에 웃음기가 띄었는지 스즈키가 금세 알아 봤다. '웃으면 정말 예쁠 것 같아요. 안 웃어도 예쁘지만요.'

'내가 사는 집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게 무섭지 않은 건 처음이야.' 11시면 건전지 빠진 로봇처럼 바로 잠들던 사람이 본격적인 첫 연애에 뒤척이게 된 건, 남자친구가 연하라거나 미남이라거나 하는 그런 표면적인 이유가 아니라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느낄 수 있는 게 있었다. 날 놀래키거나 당황스럽게 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물론 첫 만남은 끝내주게 당황스러웠지만, 알아갈 수록 잔잔하고 기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카페에서 몇 번이나 초콜릿을 건네고 여우짓을 한 게 신기할 정도였다. 스즈키는 스즈키 나름대로 마치다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다. 사귀기로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스즈키는 당시 그 카페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 1층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통유리를 통해 마치다를 발견하면 얼른 뛰어와 앞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젠 사무실이 확장 이전을 해 완전히 다른 동네로 가 버렸지만 그 카페 덕에 마치다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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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마치
2024.01.21 13:59
ㅇㅇ
모바일
센세 올거지ㅠㅠㅠㅠㅠㅠㅠ
[Code: fd27]
2024.01.22 15:39
ㅇㅇ
모바일
언제오시지 내센세ㅠㅠㅠㅠ
[Code: eacd]
2024.01.23 16:46
ㅇㅇ
모바일
부케비도 기다려요 센세
[Code: 4093]
2024.01.24 12:14
ㅇㅇ
모바일
센세돌아와줘......
[Code: 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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