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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 11:35
입을 모아 말했다.


강징이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났고, 그 반대로 염리가 건강하게 태어나면서 일종의 운몽삼남매 역할 반전이 일어나는 게 bgsd

강징은 팔삭둥이로 태어났는데 크든 작든 병을 달고 살 팔자고, 타고난 영기도 약해서 금단을 맺어봤자 결코 높은 경지의 수사는 되지 못할 거라 연화오의 의원들 모두 장담했음. 풍면자연 부부 생각이 복잡해짐.

건강하게 태어난데다 영기 역시 뛰어나 앞날이 밝다는 염리는 딸이었고, 제대로 수련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강징은 아들이었음. 미래를 생각하면 운몽 강씨에 둘 중 누가 더 후계자로 적합한지는 강풍면과 우자연 모두에게 분명했음. 그래도 두 사람 모두 우선은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 보단 셋째 아이를 계획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후계자 결정은 보류함.

그러나 강징을 마지막으로 우자연에겐 애가 좀처럼 들어서지 않았음. 강징이 팔삭둥이로 태어난 것 자체가 우자연의 몸에서 보낸 일종의 신호였던 걸 수도 있음.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약을 그렇게나 먹고, 잠자리 횟수를 늘리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그랬음. 필요와 의무에 의한 잠자리였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으니까 우자연도 스트레스 오지게 받음. 그러니까 이게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걸 알면서도 애들이랑 강풍면한테 더 까칠하게 대응함. 삼낭이 왜 그러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거 다 받아주고 있지나 강풍면도 지치고 부부 사이 존⃫나⃫ 살얼음판임. 우자연 건강도 걱정 되니 강풍면이 결국 우자연 설득하겠지 아이 갖는 거 포기하자고.

그렇게 염리가 공식적인 연화오의 후계자가 되고, 난릉의 소종주와의 태중 약혼을 물렀을 때, 강징의 나이 5살이었음. 강징이 기억하기로 부모님은 항상 사이가 나빴는데, 4살 때까진 그 이유를 모른 채 자랐음. 식사 중 부부 말다툼이 격해지면서 아슬아슬하게 강징이 언급될 때가 되면, 염리가 조용히 강징 데리고 빠져나가서 괜한 말 강징 귀에 안 들어가게 해줘서 그랬음.

의원들의 예상대로 잔병치레가 잦은 강징은 의약당과 방 안에만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아서 기회만 되면 그렇게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음. 그 날은 강징이 여름감기를 털고 일어난 날이었는데, 연화오를 한 바퀴 빙 돌던 강징이 건물 뒤에서 쉬던 하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만 거임. 오늘도 우부인이 던져서 깬 접시가 몇이나 되는지 아느냐, 세간이 다 작살나겠다, 이미 강징이 알고 있는 얘기인 데다가 공자로서 남의 말을 엿듣는 건 아니다 싶었음. 그래서 강징이 막 몸을 돌리려는데 딱 듣고 만 거지

에휴, 딱하게 하필 막내 공자가 그렇게 태어나셔서.

호기심이 발목을 잡은 강징은 결국 그 뒤로도 자신과 부모님에 관해 이어지는 한탄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음. 한참 뒤 강징은 말도 없이 사라진 강징을 찾아나선 의원들에게 발견됐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강징은 그늘 하나 없이 무자비한 여름 햇살을 그대로 버틴 탓에 열이 올라 혼절하기 직전이었음.

강징이 눈을 떴을 땐 새벽이었는데도 의원들이 대부분 깨어있었음. 강징이 눈을 깜빡이는 걸 보고 나서야 다들 안심하며 하나 둘 눈을 붙이러 각자의 숙소로 갔고, 강징이 부모님보다 더 자주 보는 의원 한 명만 남아 강징 곁을 지켰음. 강징의 조부 때부터 연화오에 있던 의원이라 강풍면과 강징이 크는 걸 다 지켜본 사람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강징을 정말 자기 손주처럼 예뻐해서 강징이 제일 좋아하는 의원이기도 했음.

그가 강징한테 아무리 다 나았다고는 하나 며칠 더 조심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져서는 뭣하러 울고 있었냐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니까, 자기가 어쩌다 이러고 있는지 퍼뜩 기억난 강징 얼굴 위로 순식간에 깊은 절망이 떠오름. 진짜 절망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표정이어서 의원은 심장이 덜컹하는데 강징이 개미만한 목소리로 그게 다 나 때문이었냐고 말함.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부모님이 힘들었어. 다 내 탓이라서, 부모님은 지금까지... 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냐고 힘 없이 중얼거리는데곧바로 무슨 뜻인지 파악한 의원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 거임. 그래서 바로 강징한테 단호하게 말함. 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세상에는 하늘의 뜻이 있어서 감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지만, 공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으니 다른 길을 찾아 가면 된다.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면 된다. 

강징은 그 말에 매달려 매일 매일을 버텼음. 검과 활 같은 체술을 익히는 건 꿈도 꿀 수 없으니 다른 분야를 파고 들었음. 시, 서, 화와 수학, 의학, 약학 등 갖은 학문에 매진했고, 실전에서 자기가 쓸 일은 없겠지만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한 부적과 결계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음. 그 끝이 보잘것 없는 금단일지 몰라도 명상을 하며 단전에 영기를 순환시켰음. 또한 남들보다 몸이 약하니 입고 먹는 것과 행동거지에도 전보다 더 배로 신경을 썼음.

끊임없이 노력한 덕에 강징의 실력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날이 갈수록 성장했고, 건강도 예전처럼 기복이 심하지는 않아졌음. 그러면서 아이다운 면은 완전히 사라져서, 연화오 사람들은 모두 칭찬 내지 우스갯소리로 우리 공자님은 어찌나 아정하신지 옷만 다르게 입었으면 고소 남씨 사람이라고 착각을 할 거라고 말했음. 그렇지만 강징의 마음은 여전히 병적인 생각들로 좀 먹어가고 있었음. 부모님이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계속해서 자신을 대체할 동생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는 건 어린 강징에게 너무 큰 충격이어서 어쩔 수 없었음. 모든 진상을 알게 된 이후, 어느 날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악몽은 강징의 단골 밤손님이 되어 언제라도 연화오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만들었음. 그러니 자신을 짐이 아닌 '쓸모 있는' 사람으로 가꾸기 위해 노력했음. 사그라지지 않는 이 불안감이 자신을 갈고 닦게 하는 원동력이 된 건 맞았지만 그게 건강하단 건 아님 오히려 반대지.... 부부의 불화 때문에 원래도 위축되어 있던 강징은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더 내성적으로 변함. 우자연에게서 물려받은 불 같은 성정은 마음의 벽에 겹겹이 갇혀 강징의 속 가장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들어갔음. 강징은 여전히 염리를 아꼈지만, 이제 강징이 완전히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상대는 무조건적으로 강징을 사랑하는 강징의 개 세마리 뿐이었음. 염리는 당연히 그런 강징의 변화를 불안해했는데, 그 이유가 짐작이 되어 슬프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음.

강징은 감히 심기를 거스를까봐 부모님의 말씀에는 일절 맞서지 않았고, 불만이 있어도 언제나 속으로 삼키고 순종했음.

그렇기 때문에 위무선과는 처음부터 틀어질 수밖에 없었음.

강징이 9살이 되던 해, 강풍면은 위무선을 데려왔음. 강풍면에게 안겨 들어오는 위무선을 봤을 땐, 강징은 결국 아버지가 자길 대신할 아들을 찾은 거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함. 아영이 개를 무서워하니 강징이 키우는 개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했던 것도 같았는데, 확실하진 않음. 그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눈 앞이 캄캄해진 탓이었음.

강징이 지난 4년간 얼마나 그 개들을 의지하고 애정을 쏟아부었는지 모르지 않는 염리가 곧바로 강징의 안색을 살폈는데, 역시나 핏기가 싹 가셔 창백했음. 그 개들은 이미 강징에겐 또 다른 가족이나 다름 없었음. 염리는 곧바로 강풍면에게 반대하고 나섰음. 굳이 개들을 아예 보내야 하냐, 연화오는 넓으니 아이가 머무는 곳과 완전히 격리하면 되지 않느냐 아버지와 강징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음. 강징은 간신히 염리의 말을 알아 듣고, 아주 잠시나마 미약한 희망을 가졌음.

그러나 문제는 위무선이 거의 경기를 일으킬 지경으로 개를 무서워 한단 점이었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미 연화오 어딘가, 같은 공간에 세 마리나 되는 개들이 있다고 인식한 순간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여서 땅에 발을 디디지도 못했음. 

그래서 강징은 여느 때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했음. 

강징은 위무선의 흐느낌 소리를 뒤로하고 말리, 사랑이, 왕비님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음. 강징은 멍하니 개들이 쓰던 장난감 등을 챙겼음. 영문을 모르지만 강징이 동요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개들은 강징의 손과 얼굴을 핥으며 애교를 부렸음. 강징은 너무 슬픈 나머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음.

각각 목줄을 채운 개들을 끌고 연화오 정문으로 가니 멀리 염리와 강풍면이 저를 기다리는 게 보였음. 염리는 걸어오는 강징을 보자마자 뛰어와서 다급하게 말했음.

아징, 지금 개들 안 보내도 돼. 먼저 금공자에게 서신을 써보자. 우리는 금린대에 자주 왕래하니 개들을 금공자께 맡기는 건 어때? 그렇게 하면 영영 말리, 사랑이, 왕비님과 헤어지는 게 아니잖아. 응? 내가 아버지께 허락도 받았어. 당장 가서 서신을 쓰자. 답장이 올 때까지는 개들은 계속 네 방에 두는 거야.

아무리 태중약혼이라도 파혼을 했으니 두 가문과 당사자 사이가 껄끄러울 거란 건 대중의 오해였음. 지금까지도 강염리, 강징, 금자헌의 사이는 퍽 괜찮았음. 파혼은 어디까지나 염리가 운몽 강씨의 소종주가 되면서 생긴 정치적인 결정이었지, 서로 감정이 상해 그런 게 아니었음. 게다가 강징이 태어난 순간부터 염리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태중약혼 역시 그때부터 보류되어서 우자연과 금부인 모두 두 아이에겐 상대가 미래의 배우자가 될 지도 모른단 언급을 피해왔음.

금자헌이 기존(진정령)에 염리에게 가졌던 불만들은 자신의 의사는 완전히 배제된 약혼이었다는 점, 금자헌이 오냐오냐 저 잘난 맛에 살아와 콧대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에서 비롯된 거였음. 하지만 이곳에선 싫기만 한 약혼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염리 역시 뛰어난 제 실력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할 줄 아는 성정이었으니 금자헌도 염리를 무시하지 않았음. 또 연화오에 갈 때마다 항상 방 안에서 앓고 있는 강징에겐 무슨 악감정을 갖기가 어려웠음. 격자 창 안에서 물끄러미 저랑 염리를 쳐다보기만 하는 작은 얼굴을 보면 오히려 연민을 느꼈음. 그래서 조금 어색한 사이임에도 금린대에서 잊지 않고 강징의 선물까지 챙겨오면, 강징이 창백한 뺨에 간신히 홍조를 띄우며 고맙다 말하는 모습이 금자헌의 눈엔 조금 귀엽게 보이기도 했음. 

게다가 금자헌 역시 개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개들이 강징의 발치에서 꼬물거리는 새끼였을 적부터 그 강아지들을 꽤 귀여워했었음. 강징이 강박적으로 수련과 공부에 집착하면서부터 세 사람, 개 세 마리의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음.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다소 서먹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강징의 인생에서 그나마 가깝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염리와 금자헌이었음. 금자헌에게도 사촌과 같은 혈연이 아닌 친구는 염리와 강징 뿐이었음.

그래서 강징은 금자헌이 흔쾌히 개를 보내라는 답신에도 놀라지 않았음. 강징은 다음날 곧바로 짐을 꾸려 개 세 마리를 데리고 금린대로 떠났음.

개 이름 바꿔도 돼?
...마음대로 해!

가뜩이나 개 뺏기는 것도 마음 아파 죽겠는데 저런 눈치코치 팔아먹고 사람 속 뒤집는 소리나 해서 강징 빡치겠지 며칠 밤낮을 고민하며 고르고 고른 이름인데. 그냥 맡아주기만 하는 거라면서. 순간 울컥해서 강징은 간만에 금자헌한테 까칠하게 대답함.

...흥, 그냥 해본 말이야.

...진심이 반쯤 섞였긴 했지만 어쨌든 빈말이었음. 연화오로 떠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강징이 개를 쓰다듬는 손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여서 금자헌도 그냥 한 번 해 본 말이었음. 금자헌은 불퉁한 얼굴과 달리 여전히 손길이 부드러운 강징을 내려다보며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렸음.

금자헌은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강징 : ?) 통 그 눈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요령이 없었음. 그래서 왜 더 이상 연화오에서 개를 키울 수 없는지, 강징이 서신에서 부러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며 얼버무린 이유를 강징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물을 정도로 없었음. 악의 없는 질문을 듣자마자 그때껏 강징이 애써 눌러두었던 서러움과 불안이 크게 부풀어 터졌음. 말리랑 사랑이랑 왕비님이 금세 나를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나보다 금자헌을 더 좋아하면 어떡하지. 연화오로 돌아갔는데 내 방도 더 이상 없으면 어떡하지. 내 물건을 싹 정리했으면 어떡하지.

강징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자 금자헌은 잔뜩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음. 왜, 왜 울어????? 어????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다, 소매를 더듬다, 마침내 품 안에서 찾은 손수건을 꺼내 강징한테 내밀었음. 강징은 금자헌을 무시하고 대뜸 바닥으로 무너지듯 앉았음. 그리곤 끙끙거리는 개들 중 사랑이의 목에 냅다 얼굴을 묻고 울었음.

강징이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땐 금자헌이 물린 건지 주위의 수사들과 하인들이 모두 사라진 뒤였음. 금자헌은 좀 전에 강징이 무안을 줬는데도 떠나지 않고, 옆에 뻘쭘하게 서 있었음. 표정은 당장 도망치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용케 이리 저리 발에 체중을 옮겨 실으며 얼쩡대는 걸로 참고 있었음. 강징이 고개를 든 걸 본 금자헌이 다시 한 번 손수건을 내밀었음.

강징도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음.

강징한테 대충 사정을 전해 들은 금자헌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했음. 평생을 금린대의 유일한 적장자로 떠받들며 자란 금자헌이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음. 연화오의 공자는 너인데 왜 네 개들을 쫓아내야 돼? 위영인지 뭔지 걔가 피해다녀야지. 강풍면이 지난 몇 년간 찾아헤맨 장색산인의 아들이라는 설명을 해도 금자헌은 고개만 저었음.

그래도 연화오의 공자는 너잖아.

그렇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아들은 내가 아니지,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강징은 말을 아꼈음.

-

금자헌은 마침내 마차에 오른 강징에게 불만족스러운 말투로 자주 오라는 인사를 전했음. 지금까진 금자헌이 연화오에 오는 횟수가 더 많았음. 볼거리는 금린대에 더 많을지 몰라도 놀거리는 연화오에 비할 바가 못 되었기 때문임. 그래서 금자헌은 다음번에 개를 데리고 연화오로 가겠다고 했지만, 강풍면이 그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음. 아버지가 퍽이나 허락하시겠다며 쏘아붙이자 금자헌이 또 다시 얼굴을 찡그렸음. 금자헌의 마음 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위영'에 대한 호감도가 팍팍 깎여 나가는 소리가 강징 귀에도 들리는 것 같았음. 

연화오로 돌아가보니 강징의 방이 사라지진 않았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돌아간 제 방 속 물건들은 그대로였음. 대신 처음 보는 물건들이 방을 채우고 있었음. 침상도 하나 더, 서안도 하나 더, 의자도 하나 더, 옷장도 하나 더... 방이 워낙 넓었던 탓에 모든 것이 두 배로 늘어났는데도 좁지 않았음. 그저 알맞게 꽉 차 보였음. 강징이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음.

사제, 안녕.

뒤를 돌아보니 강풍면과 위영이 서 있었음. 위영은 며칠 사이였지만 그래도 잘 먹고 잘 잤는지 처음 꾀죄죄하던 몰골에선 벗어난 상태였음. 몸에 꼭 맞는 운몽 강씨 문하생의 복장이 잘 어울렸음.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걸려 있고, 회빛 눈동자도 약한 긴장감과 반가움으로 빛났음. 순간 말문이 막혀 강징은 화답할 적절할 때를 놓치고 말았음. 정신을 차린 강징은 서둘러 강풍면과 위무선에게 금린대에서 무사히 다녀왔음을 알렸음.

강풍면은 서로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지 않았냐며 직접 위영을 소개하고 나섰음. 소개가 끝나고 강징은 두 손을 모아 위영에게 공수례를 했음.

사제 강만음, 위사형을 뵙습니다.

강징이 이렇게나 예를 갖출 줄 몰랐던 위영과 강풍면 모두 놀랐음. 위영은 특히 어쩔 줄을 몰라하며 강풍면을 올려다봤음. 길거리에서 발에 채이고 개에 쫓기며 괄시받던 위영은 지금껏 이렇게 깍듯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음. 온 몸이 간지럽고 부끄러웠음. 당황이 역력한 위영에게 강풍면은 자기도 모르게 힘 빠진 웃음을 내보였음. 강징이 이럴 걸 미리 예상이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아프기만 하던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돌변하여 항상 이런 식이었음. 강풍면이 연화오의 주인이었으니 역시 연화오의 사람들이 강징을 두고 하는 소리를 듣는 게 당연했음. 강풍면에게도 강징이 흰 옷을 걸치고 말액을 두른 모습은 상상하기 쉬웠음.

강징은 운몽 강씨의 가풍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음.

어찌됐든 강풍면은 두 아이가 형제로 지내길 바랐지, 이런 딱딱한 관례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걸 바라지 않았음. 그래도 다행인 것 위영에게 잔뜩 토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강징이 굉장히 차분했고, 위영에게도 적대적으로 굴지 않았단 것이었음. 나름 안심한 강풍면은 강징한테 그렇게 딱딱하게 굴 것 없다, 너희 둘은 이제 형제나 다름 없다고 말했음. 강징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음. 연화오의 다른 사형제들도 마찬가지로 저의 형제자매들과 다름 없지만 지금껏 그에 걸맞은 예를 갖추어 대해왔으니, 위영에게 격식없이 대하면 모두에게 오히려 실례인 게 아니겠냐고. 원칙주의가 똑똑 묻어나는 그 말에 강풍면은 입술을 몇 번 달싹였으나, 곧 더 말을 얹지 않고 자리를 떠났음. 아이 둘이 알아서 친해지는 시간도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음. 

강풍면이 떠나고 둘만 남았음. 혹시 방에 있는 물건들은 위사형의 것입니까? 먼저 어색한 침묵을 깬 건 강징이었음. 위영은 잠시 의아해하다가 네 말이 맞다며 고개를 주억였음. 강숙부가 우리 둘이 함께 방을 쓰랬어. 나 지금까지 계속 여기서 잤는데 네 물건은 아무것도 안 건들였어, 진짜야. 그런데 사제, 난릉은 어떤 곳이야? 금린대는 어때? 곧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위영의 말은 조잘조잘 끝없는 질문으로 이어졌음. 그러나 강징은 위영의 입에서 '강숙부'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그 뒷말들은 그저 강징을 스쳐지나갔음.

한참을 떠들어도 강징이 대답하지 않자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한 걸 느낀 위영이 눈치를 보며 물었음. 사제? 괜찮아?

강징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나중에 얘기하자고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했음. 여행길이 아무래도 피곤했던 것 같다, 몸이 안 좋아서 지금 쉬고 싶다는 강징의 얼굴과 목소리는 정말 피로해보였음. 그래서 위무선은 군말없이 자리를 피해주었음. 사제, 그래도 조금만 쉬어야 돼! 반 시진도 안 돼서 저녁 먹을 시간이잖아. 난 사저한테 가 있을게. 쪼르르 장랑을 달려 사라지는 위영의 뒷모습을 보던 강징은 곧 조용히 위영과 저의 방 안으로 들어갔음. 정말 너무나도 피곤했음.

한편 강징한테 사과하는 걸 까먹었단 걸 깨달았을 때 위영은 이미 방에서 한참 멀어진 뒤였음. 사저가 그렇게나 당부를 했는데 그걸 그새 까먹냐! 이마를 찰싹 때린 뒤 위영은 온 길을 향해 몸을 돌렸지만, 다시 돌아가자니 이미 강징이 잠에 빠져들고도 남았을 것 같아서 망설여졌음. 엄청 피곤해보였는데 괜히 쉬는 걸 방해만 하는 것 같았음. 사제는 몸도 엄청 약하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사저가 말했던 것처럼 강징이 그렇게 속상해 보이지도 않았음. 강징이 금린대로 떠나기 전까진 계속 제 방에만 틀어박혀 개 세 마리와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낸 탓에 위영도 강징이 개를 정말 많이 좋아하나 보다, 나 때문이야, 어떡해, 하면서 맘을 졸였었음. 그렇지만 그렇게나 아끼는 개들이란 것치고, 강징의 반응은 이상했음.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강숙부가 개들을 내보내자고 했을 때도 군말없이 따랐었음. 다시 만난 지금도 개들을 보내버린 것에 대해 자신에게 크게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음. 어쩌면 사저와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징이 개들을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음. 애초에 위영에겐 사나운 짐승일 뿐인 개를 좋아한다는 발상 자체가 경악스러웠으니 제 생각이 더 그럴듯하게 들렸음. 그래, 지금은 쉬게 두고 이따가 제대로 사과하자! 위영은 다시 사저를 찾아서 발을 옮겼음.

그러나 강징은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음. 우자연이 의원과 함께 확인을 하러가니 너무 곤히 자고 있어 그냥 두는 게 낫겠다 했음. 식사를 마친 뒤 위영이 사저와 함께 강징을 살펴보러 갔을 때도 곤히 자고 있었음. 야심한 밤이 되고, 위영 역시 꼬물꼬물 이불 밑을 파고 들 때도 강징은 아까 전 보았던 그 자세 그대로 죽은 듯이 자고 있었음. 사제, 자? 소근소근 물어보니 역시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음.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해야겠다. 그리 생각했지만 다음 날 위영이 눈을 떴을 때, 강징은 이미 기상하여 이불 정리까지 마치고 방을 비운 뒤였음. 위영은 하루 온종일을 틈틈이 강징에게 말을 붙일 기회를 노렸지만, 애초에 두 사람이 받는 교육이 너무나도 달라서 마주칠 기회가 적었음. 더구나 이 사제는 어찌나 바쁜지 위영이 쉬는 시간을 틈타 행적을 좇으면 항상 여러 스승을 앞에 두고 다양한 가르침에 몰두하고 있었음. 꼬장꼬장한 선생들이 보내는 뾰족한 시선에 위영도 항상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음. 또 식사 시간엔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개 얘기만 나오면 아직도 우부인이 무섭게 노려보는 까닭에 위영도 식탁에서 감히 그 화제를 입에 올리지 못했음. 밤에는 위영이 얼마나 서둘러 방으로 향하는 것과 관계없이, 쉽게 지치는 몸 탓에 일찍 잠자리에 든 강징을 따라잡을 수 없었음. 이런 일이 수 없이 반복되니 결국 때를 놓친 사과는 위영의 혀끝에서 사라지고 말았음.

그렇게 두 사람의 삐걱대는 관계는 위영이 손 쓸 새도 없이 악화일로를 걸어갔음.







진정령 무선강징 사랑과 전쟁(?)
2022.08.07 11: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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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풍면이 때문이다. 징징이 어쩌니 ㅠㅠ
[Code: 1ff2]
2022.08.07 12:23
ㅇㅇ
아니 아정한 강징이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돼 헠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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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 12: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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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짜 시작부터 너무 맛있다.......아슬아슬한데 너무 좋음 ㅠㅠㅠㅠㅠ
[Code: 0b7b]
2022.08.07 12: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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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해 어나더ㅠㅠㅠㅠㅠ
[Code: 4f79]
2022.08.07 13: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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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너무 좋다 ㅠㅠㅠㅠ
[Code: 50dc]
2022.08.07 13: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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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아슬아슬한 무선강징 너무좋아 어나더어나더!!!
[Code: 0c63]
2022.08.07 19: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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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삐걱거리는거 진짜 너무좋다
[Code: 11fd]
2022.08.07 21:48
ㅇㅇ
허억허억 센세 이거 제발 억나더 둘이 관계성 진짜 너무 최고야
[Code: 94ed]
2022.08.07 21:54
ㅇㅇ
센세 사랑해 어나더ㅓㅓㅓㅠㅠㅠㅠ
[Code: fdb5]
2022.08.07 22: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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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진짜 티 안나게 서서히 무너지는 사이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dd5]
2022.08.07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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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 재밌어...
[Code: e9fa]
2022.08.08 18: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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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타이밍 흑흑흑 ㅠㅠㅠ 센세 어나더 안가져오면 난장강에 투신할거다
[Code: baa8]
2022.08.09 01: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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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센세 미쳤다ㅜㅜㅜ 사랑해ㅜㅜㅜㅜ 비 조심하구 아님 폭염 조심하구ㅜㅜㅜ 언제나 건강해야해ㅜㅜㅜㅜ
[Code: 7629]
2022.08.10 02: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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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의 글을 이제보다니..아너무 감격이다 ..
졸리던잠이 싹사라졌어 어나더 기다릴게 ....
[Code: 1715]
2022.11.14 00: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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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돌아와......
[Code: 400e]
2022.11.16 13: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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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날이 추워...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지...
[Code: 01ad]
2022.11.23 10: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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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나 언제까지나 기다려...
[Code: 3e07]
2022.12.15 08: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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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다려..흑흑
[Code: 95e8]
2023.08.20 16: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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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붕새끼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돌아와조ㅜㅠ 강징 너무 안됐는데 무선이가 잘못한것도 아니라서 미워할수도없고ㅠㅠ
[Code: 9186]
2023.12.10 02: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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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ㄱㅅㄷ...
[Code: 3e77]
2023.12.26 01: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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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강징 아ㅠㅠㅠㅠㅠ존나 눈물ㅠㅠㅠㅠㅠㅠㅠ무선이 잘못은 아닌데 그것이ㅠㅠㅠㅠ강풍면 너 장난하냐고ㅠㅠㅠㅠ
[Code: 52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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