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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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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호랑이는 도망치듯 쾨니히의 방을 떠나와 제 침대에 머리를 박으며 중얼거렸음. 매트리스에 눌린 제 가슴이 쿵 쿵 울리는 건 방금 뛰어와서 그런 거라고, 홍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했음. 하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그 방의 온도공기조명습도쾨니히의눈과목소리 뭐 그런 것들이 떠올라서 결국 호랑이는 사자후를 내지르며 자정이 넘은 시각, 트레이닝룸으로 달려감. 그리고는 닥치는대로 무게를 치고, 샌드백을 두들겨 패고, 런닝머신을 최고속도로 올려놓은 후 헛구역질이 날 때까지 뛰었음. 한참동안 전력질주를 한 호랑이는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드러누웠는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이 아무래도 운동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소리없이 몸부림을 쳤겠지. 씨발, 씨발–!! 

결국 밤을 꼬박 샌 호랑이는 몽롱한 눈을 애써 선글라스 뒤에 숨겨놓고 조용히 포크를 들었음. 어이, 오늘 영 기운이 없어 보이네. 무슨 일 있어? 평소 자주 어울리던 한 동료가 등을 툭 치며 묻는데 호랑이는 대답할 기력도 없어 대충 손이나 휘젓고 말겠지. 주변이 다시 조용해지고 다 식어버린 해쉬브라운을 포크로 쿡쿡 찌르던 호랑이는 카페테리아에 들어오는 쾨니히를 발견하곤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음. 제쪽으로 오고 있는 쾨니히가 혹시나 어젯밤에 대해 말이라도 걸어올까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그런 일은 없었음. 호랑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드는 감정이 아쉬움인지, 미약한 짜증인지 구분하지 못했지.





식당으로 내려온 쾨니히는 평소와 달리 구석에 혼자 앉아 불쌍한 감자를 조지고 있는 호랑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조용히 떠났을 거임.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좋아보이는데 미처 그 원인에 제 지분이 있을 거란 생각까진 못하고... 애석하게도 쾨니히는 어젯밤 자신이 호랑이에게 폭탄을 던졌다는 걸 모르고 있음. 쾨니히에겐 어렸을 때부터 사실만을 말해야 하는 버릇이 있었겠지.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숨기면 아버지에게 피가 배어나오도록 맞았으니까. 그래서 쾨니히는 무슨 맥락이든, 어떤 상황이든 간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 결국 그 지나친 솔직함은 인간관계에 독으로 작용했지만, 쾨니히는 왜 사람들이 저와 대화하기를 점점 그만두는지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렇게 몸은 이제 아버지를 이길 만큼 커다랗게 자랐지만, 정신은 아직도 거기에 갇혀 여전히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쾨니히여라.

사과를 사과라 부르듯 최근 관심사가 호랑이었기에 너라고 말한 거였고, 호랑이가 말한 ‘이런 거’의 의미를 이해한 후 생각해보니 본인도 좋아서 좋다고 말한 건데. 이번에도 사실 말하면 안되는 상황이었던 걸까? 쾨니히는 그날 이후 눈에 띄게 저를 피해다니는 호랑이를 보며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음. 자기가 아무리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하다지만, 상대의 반응이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구별도 못하는 바보까진 아니었으니까. 여태 자신이 축적해온 통계를 살펴보자면, 호랑이의 ‘시선을 피하고, 말도 안하고, 우연히라도 신체가 부딪히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등’의 행동은 후자에 속했겠지. 안타깝게도 쾨니히는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행동이 좋은 신호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걸 학습하지 못했을듯. 쾨니히는 그날 밤을 떠올렸음. 지금까지 순탄하게 이어지던 쪽지 릴레이가 완전히 멈추게 된 그날을.

호랑이에게 용기를 내어 왜 답장을 주지 않는지 물었고, 메모지가 없었다는 홍진의 말에 속으로 제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방으로 돌아온 쾨니히는 마음이 편해져서 히히 웃으며 본인의 노트를 정주행했음. 다시 이어질 쪽지가 기다려지기도 하고 다음 주제는 뭐가 될까, 상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베개 밑에 급하게 노트를 숨겼겠지. 호랑이가 직접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누구지? 경계하고 있는데, 한 번의 노크 뒤에 모를 수 없는 그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자동으로 몸이 튀어나간 쾨니히였음. 호랑이는 쾨니히의 방에 들어간 이후부터 쭉 녀석에게 말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쾨니히는 안식처나 다름없는 이곳에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과부하가 와서 긴장하고, 손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음. 홍진이 내 방에 왜 왔지? 설마 이제 쪽지를 그만하자고 말로 하려고 온 건가? 메모지가 없었다는게 완곡한 거절의 뜻이었는데 내가 또 멍청이처럼 눈치를 못챘던 걸까? 온갖 생각을 하면서.

이처럼 쾨니히는 뭔가 사람이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거란 느낌이 있음.. 그러니까 사회에서는 적응 못하고 동떨어졌어도 군대에서는 착실히 계급 밟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거긴 정말 상관의 말을 그대로 이행해야만 죽지 않는 곳이니까. 그래서 홍진의 말 하나하나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인거지. 정작 호랑이는 도박판에서 구를대로 굴러서 거짓말에 도가 튼 놈인데. 암튼 쾨니히는 언제나 그랬듯 사실적시만을 한 건데, 판치는 블러핑 세상에서 살다온 호랑이는 생각과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날것의 솔직함에 면역이 없어서 쾨니히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신 못차리는 거일듯.





자신이 도망치듯 나온 그날 밤 이후, 쪽지 릴레이는 당연히 정지 상태였음. 피한다고 피했지만, 동료인 이상 오가며 보게 되는 쾨니히는 평소와 다를게 없어 보였고, 누군가 혼란스러워 한다면 그건 자기 하나였겠지. 솔직히 그게 고백이 아니면 뭔데. 비록 Like you 까지 듣고 뛰쳐나온 건 본인이지만, 그래서 뭐 사귀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홍진은 회피성향이 강하면서도 답답함을 참지 못했음. 그래 이건 내게 주어진 시험이다. 난 이걸 헤쳐나가야해. 물론 자기가 뛰어드는 판은 대개 지는 판이었고, 그랬기에 그 바닥에서 호구라 불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는 늘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편을 택했음.


[맥주 좀 빌려줘 -H]


며칠째 어딘가에 우울감이 도사리고 있어 처지는 몸을 이끌고 운동을 마친 쾨니히는 방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왔음. 그리고는 회색 페인트칠 된 문 위로 노랗게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두 번 깜빡였겠지. 종이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고 나서야 천천히 떼어내 방에 들어가 쿵, 문을 닫은 쾨니히는 기대감을 억누르며 그 큰 손으로 행여 찢어질세라 조심히 쪽지를 폈음. 맥주 좀 빌려줘..? 맥주? 쾨니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아차, 하고는 호다닥 카페테리아로 내려가 홍진이 준 뒤로 딱 한 캔만 마신 뒤 지금까지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를 하나 챙겨 호랑이의 방으로 향했음. 맥주를 달라는 말에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챙기긴 했는데, 막상 문앞에 서니 이게 지금을 말하는 건지, 맞다면 이렇게 직접 줘도 되는 건지, 고민하는 쾨니히. 그러다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조심히 두드리자 잠시 후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내겠지.


“… 들어와.”


호랑이의 방은 처음이었음. 그도 그럴게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둘은 데면데면한 동료 1,2에 불과했으니까. 새삼 감격스러운 관계의 발전에 쾨니히의 입꼬리는 절로 씰룩이겠지. 홍진의 체취가 머무르고 있는 공간에 발을 디디며 쾨니히는 흥분을 감추려고 노력했음. 그리곤 아주 자연스러운(삐걱) 동작으로(삐걱) 호랑이에게 맥주를 건네겠지. 최근 들어 마치 화난 것처럼 선글라스 너머로 노려보는게 느껴져 쳐다보면 언제 그랬냐는듯 고개를 휙 돌리고, 가까이 다가갈라 치면 피하는 듯한 호랑이에 끙끙 앓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기를 불러줬다는 건 무언가 할 말이 있다거나, 혹시 나랑 다시 ‘Like this’를 하자는 뜻..? 

쾨니히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 호랑이는 제게 주어지는 단 하나의 맥주를 보고 ㅅㅂ 이 찐따새끼 당연히 두 개 가져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진짜 맥주 하나 달라고 널 불렀겠냐 속으로 방방 뛰다가 그래. 오히려 이 편이 나을지도. 체념하곤 그자리에서 바라클라바를 살짝 내려 캔을 따고 벌컥벌컥 들이킴. 그리고는 입술을 훔친 후 다시 올리고 쾨니히에게 자신이 마시던 맥주를 넘기겠지.  


“마셔.”

“어, 어…”


순식간에 절반 정도가 사라지고 제게 돌아온 캔을 얼떨결에 받아든 쾨니히가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치워 한모금 마시는 동안 호랑이는 의자를 끌고 와서 침대 앞에 마주보게 놓고 본인은 침대 위에 앉았음. 어느새 정리를 끝낸 쾨니히는 호랑이의 고갯짓에 맞은편 의자에 가서 앉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엄청난 정적. 당연함. 쾨니히는 쾨니히대로 누군가와 사적으로 이렇게 가까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게 처음이라 어색하고 힘든데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고백 아닌 고백을 받은 후라 민망해 죽을 지경임. 아씨, 의자 너무 가까이 놨네. 거의 무릎이 닿을락말락 하는 거리에 있는 쾨니히를 앞에 두고 호랑이는 괜히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뒷목만 긁적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질질 끄는 건 자기 페이스가 아니니까. 


“... 너… 남자 만나본 적 있어?”


호랑이의 말에 쾨니히는 곧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음. 남자가 웬말이야, 여자조차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는데. 쾨니히의 즉각적인 반응에 호랑이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음.


“... 그럼 남자랑 키스는?”


개큰 정적. 쾨니히는 본인이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 과정을 거친 후 삐그덕대며 고개를 다시 저었고 호랑이는 제 얼굴이 꽁꽁 가려져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화끈거리는 열감을 애써 무시했음.


“그러니까, 내 말은–.”

“… …”

“나랑 사귈 수 있겠냐고.”


내 패는 깠고, 이제 네가 들고 있는게 뭐야. 겨우 파묻은 후 잊고 지내던 감각이 아주 오랫만에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걸 느끼며 호랑이는 간지러운 손끝을 손톱으로 쿡, 쿡 눌렀음. 입술이 마르고 다리를 달달 떨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태연한 척하고 있는 호랑이는 곧바로 이렇다할 대답이 없는 쾨니히에 조금씩 김이 빠지기 시작했지. 왜 짜증이 나는지 본인 스스로를 이해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음.

 
“됐다. 역시 안–,” 

“너, 라면 가능해.”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호랑이는 다급하게 자길 붙잡는 쾨니히에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멈추고 말았음. 호랑이가 다시 자리에 앉는 걸 확인하며 맥주캔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던 쾨니히가 고개를 들어 잠잠히 말했음.


“넌 예외야.”


시발 진짜 좆됐다. 홍진은 탄복憚服했음. 저 빌어먹을 푸른 시선이 그날 밤처럼 또다시 자기를 박제해오자 홍진은 그대로 굳어 아무 말도 못하겠지. 그거 알아? 지나치게 솔직한 것도 죄야. 호랑이는 지금 당장 저 집채만한 덩치가 구겨져 있는 의자를 밀어 복도로 쫓아내고 싶었음. 그렇게라도 해서 자꾸만 감당하기 벅찬 감정만 주는 쾨니히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거든. 





오타ㅈㅇ..

쾨니히호랑이 쾨호
[Code: 8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