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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5 22:44

위무선은 모든 게 전생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게 마냥 서운했던 나는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서야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운했던 기억도, 네가 원망스러웠던 순간도 나는 다 잊었으니 너도 이만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발개진 눈으로 나를 에워싼 연화오의 식솔들과 여란을 보면서 나는 네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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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뜨고 바라본 세상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내 기억이 만들어 낸 환영일까, 내가 이곳을 와 본 적이 있던가.
발 아래 펼쳐진 풍경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걸음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단정한 얼굴의 미남자가 은은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인물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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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음, 오랜만이구나."
"저는 초면인 것 같습니다만, 어찌 제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천제라고 하면 믿어줄테냐."
"믿어야지요. 죽은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선인 밖에 더 있겠습니까."

떨떠름한 얼굴로 대꾸하자 그가 살포시 웃었다.

"여전히 예쁜 말은 잘 못하는구나.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네 마음을 헤아려주겠느냐."

그가 소리 없이 웃으며 내 손목을 잡았다.
가슴 언저리까지 올라온 손목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옥색 빛을 내는 실이 새끼손가락에 감겨 있었다.

"…이게 뭡니까."
"너와 무선을 이어주는 인연이지."

그의 말에 의하면, 위무선과 나는 푸른 실로 얽힌 사이라고 했다.
'인연'을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붉은 실도 아니고 웬 푸른 실이냐고 묻자 '천제'는 그게 그와 나의 운명이라는 말만 했다.

"너와 무선은 푸른 실로 얽힌 사이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든, 얼마나 많은 생을 겪든 너는 그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는 너를 만날 수밖에 없단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너희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거지."
"…남망기는요?"
"그 또한 소중한 인연이지. 그가 끝까지 믿어주고 곁에 있어준 덕분에 무선이 다시 일어날 수 있던 게 아니냐. 하지만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장담은 못하겠구나."

어째서 위무선과 수많은 생을 같이 할 운명이 남망기가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둘이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인데 제 운명에 남망기가 아닌 내가 있다고 하면 얼마나 실망할까, 목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위무선도 알고 있습니까?"
"그가 똑똑한 아이라는 건 너도 알지 않느냐. 그 아이도 너처럼 등선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다음 생에도 저와 남망기가 함께하기 어렵다는 것 쯤은 알고 있을 거다."
"예…"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그 아이를 증오하지 않듯, 그 아이도 너를 원망하지 않는단다."

그가 살포시 웃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고기를 잡으러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였다.
나의 가정은 이전의 삶에 비해 부와 명예는 부족하더라도 사랑만큼은 충분한 곳이었다.
풍족하진 않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삶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위무선을 찾을 수 있을까.
작은 도시에서 꿈을 펼치기에 위무선은 너무나도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만일 그가 다른 곳에 있다면 나는 그를 찾기 위해 이 곳을 벗어나려면 어느 분야에서든 뛰어난 재능을 가져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노력 뿐이었다. 식사와 잠, 사회성을 포기하는 건 이전에도 해본 일이라 어렵지 않았다.
사람이기를 포기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내가 위무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공부를 하느냐 물었고, 나는 착한 아이의 얼굴을 하고 '출세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기특함과 안쓰러움, 고마움과 미안함이 가득한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면 죄책감이 들었다.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했으나, 출신이 비천했던 나는 수도의 변두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번화가도 낙후된 지역도 아닌, 말 그대로 수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학생들의 수준 역시 크게 뛰어나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매일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혼을 내며 뒤치닥거리를 하다 보면, 정말 위무선과 내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짬이 날 때면 저잣거리에 나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소문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그 어디에도 위무선의 소식은 없었다.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이 지나고 주변에서 넣어대는 혼담을 더이상 거절할 수 없게 된 시기에 다다라서야 나는 정말 우연처럼 위무선을 만났다.
누가 봐도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란 여식이었고, 누가 봐도 나보다 십 년 이상 어렸다.
함께 할 운명이라는 게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건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보다도 앳된 얼굴에 헛웃음이 나왔다.
찾긴 찾았는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답답함에 눈만 굴리다가 나도 모르게 덥석 손목을 잡아챘다.

ZIPZIP하고... (어째저째 강징이랑 위무선이랑 잘 만났음)

위무선은 여전히 능글맞고 속을 알 수 없었다. 난감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항상 웃었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이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굳이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어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승이라는 명분 아래 위무선과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인 사제지간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은 하지 못했다.
나보다도 운몽강씨 같았던 그는, 밤마다 몰래 무술을 연마하더니 여성은 조정에 나갈 수 없다는 통념을 깨고 장군이 되었다.
첫 출정을 앞둔 저녁, 위무선은 양손 가득 술단지를 들고 나타났다.

"내일 동이 트는 대로 출발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스승님이랑 술 한 잔 못 나누는 건 아쉽잖아요."
"제가 아무리 장군의 스승이라고는 하나, 해가 진 후에 사내 혼자 사는 곳에 찾아오는 건 남들이 보기에 썩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공을 세우기도 전에 평판만 나빠질 거고요."
"뭐 어때요. 우리만 떳떳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위무선이 사람 좋게 웃어보이더니 뜰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승님이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이라 혼인을 못 하신 거예요."
"……"
"제가 자꾸만 스승님을 따라다니니까 애 딸린 홀애비인 줄 알고 혼담이 뚝 끊긴 것도 있죠."
"……"
"아무튼, 제가 출정하면 스승님을 성가시게 할 사람도 없으니 괜찮은 분 있으면 잘해보세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술 다 마시면 얼른 돌아가세요."

내 말에 위무선이 입을 삐죽였다.

결국 위무선은 밤새 나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동이 트는 대로 떠났고, 이후에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출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이 도진 탓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의 생을 반복했다. 나이와 성별, 국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나는 인기 아이돌이 된 위무선을 만나기 위해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친 적도 있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그의 모습이 스치듯이 지나간 것 하나만 보고 외국행 티켓을 끊기도 했다.
위무선을 찾는 게 유난히 힘에 부쳤던 어느 생에는 그와의 시간을 SNS에 소설처럼 써내려갔고, 그게 좋은 반응을 얻어 너에게까지 닿을 수 있었다.
그와 나는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는지 한 번도 위무선을 만나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가 내게 싫은 기색을 보인 적도 없었다.
위무선은 항상 내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 나아간 적은 없었다. 그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 자리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위무선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를 찾지 않기로 했다. 위무선의 행적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나와 같은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내가 입학할 즈음 대학원에 진학해 조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 대학을 선택한 건 위무선의 영향이 크다. 중학생 무렵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 끝에 그의 행방을 알아냈고, 그를 만나기 위해 또다시 무리해가며 중연대에 진학했다.
내가 왜 위무선을 찾아야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설령 그와 좋은 인연이 되지 못하더라도 중연대를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생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위무선은 우리 학교의 인기 스타였다.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 석박사 과정을 마친 후의 외국 유학까지 보장된 사람…
어떻게든 옆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다시 자신의 꿈을 위해 떠날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수강하는 교양과목의 조교였다. 교수님보다 먼저 강의실에 들어와 출석을 부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강의가 끝나면 다시 들어와 과제를 내주고 사라졌다.
지금까지의 위무선 중 가장 조용한 편이었다. 오리엔테이션 당시,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싱긋 웃어보이는 게 전부였다.
수업의 시작과 끝에 얼굴을 보는 것도 모자라, 학교 이곳저곳을 오가며 몇 번이고 그를 마주쳤지만 한 번도 말을 주고 받지 않았다.

그렇게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다.
교수님 대신 시험 감독관으로 들어온 위무선은 "시험 시작하고 30분 이후부터는 답안지 제출하고 나가셔도 돼요"라는 말을 하고는 줄곧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30분이 지나자 하나둘씩 답안지를 제출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실에는 나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학생과 위무선만 남았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 때면 위무선과 눈이 마주치곤 했다. 왠지 모를 불편함에 빠르게 답안을 작성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강만음 학생은 복도에서 잠깐 기다려 줬으면 좋겠는데. 지난번에 제출한 과제에서 궁금한 게 있어서요."
"아, 네‥"

위무선이 답안지를 건네 받으며 낮게 속삭였다.
뭐지, 지난번에 제출한 과제는 자료 조사하는 게 전부라 딱히 물어볼 것도 없을 텐데, 다른 사람이 낸 과제랑 비슷한 점이 있었나, 그래도 0점은 안 주겠지?
복도 창가에 기대서서 걱정만 쌓고 있는데 어느새 시험이 끝난 건지 한두 명의 학생과 위무선이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조교님, 지난번 과제에서 궁금한 게 있으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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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번에는 나를 찾지 않았어?"
"…네?"
"너랑 나는 만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네가 항상 나를 찾아왔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나한테 와 줬잖아."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우면서도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졌다.

"…너에게 실망할까봐."
"뭐…?"
"몇 번이고 너를 찾으면서 생각했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위무선도 날 찾고 있지 않을까'‥ 내가 널 찾지 못한 적은 없었지. 네가 나를 달가워하지 않은 적도 없었어. 너는 항상 내 곁에 있어줬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네가 날 먼저 찾은 적도 없더라고."
"……"
"이상하지. 정말 나를 기다려왔다면 너도 한 번쯤은 나를 찾았을 텐데. 널 찾아내는 건 나의 몫이라고 해도 네가 정말 나를 찾고 싶었다면 네가 먼저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너보다 못한 나도 어떻게든 너를 찾았는데, 너는 나보다 똑똑하잖아."
"……"
"그래서 생각했어. '아, 위무선은 날 찾고 싶지 않은 거야. 만나면 반갑지만 굳이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는 않은 거야'. 그래서 나도 이제는 너를 그만 찾고 싶었어. 또 다시 나 혼자 네게 기대하고 실망하기 싫어서."
"……"





글이 너무 늘어졌는데 대충 이런 거 보고 싶었다
2022.03.15 22:50
ㅇㅇ
모바일
찾았다 내센세
[Code: 4e35]
2022.03.15 22:51
ㅇㅇ
모바일
센세 그래서요? 무선이 대답은요???ㅠㅠㅠㅠㅠ여기서 끊고 가버리시면 붕키 여기 누워서 기다릴거야ㅠㅠㅠ
[Code: 4e35]
2022.03.15 23:25
ㅇㅇ
모바일
크으으ㅠㅠㅠㅠㅠ 징아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e60]
2022.03.15 23:41
ㅇㅇ
모바일
무선아 강징한테 할 말 있음 해봐 없지? 뭐? 있다고? 알았어 센세 통해서 들을게 즉 센세 어나더ㅜㅜㅜ
[Code: 68d1]
2022.03.16 00:58
ㅇㅇ
모바일
센세 나 울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3b3]
2022.03.16 12:39
ㅇㅇ
모바일
억나더가줘 센세 해피엔딩해죠 ㅠㅠ
[Code: f1dc]
2022.03.16 17:27
ㅇㅇ
모바일
에라이.. 드러눕자 ㅠㅠ
[Code: bcbc]
2022.03.16 22:01
ㅇㅇ
모바일
마른 장작처럼 건조해보이지만 매 생마다 어떻게든 위무선을 찾아내고야 말았던 강징,,, 눈물 난다 정말
그 많은 생 동안 한 번을 놓치지 않고 위무선을 찾아낸 강징은 꺼지지 않는 불씨 같았는데 이번 생에는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사람처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초연해졌고 이제 위무선 차례인 것 같네 어떻게 할 거야 위무선ㅠㅠㅠㅠ 센세 이거 엔딩 꼭 봐야 돼 억나더ㅠㅠㅠㅠ
[Code: 790f]
2022.03.17 00: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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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강징은 매번 무선이를 찾았는데 무선이는 그 많은 생 중 단 한 번도 강징을 찾지 않았다는게 너무 슬프다 결국 마지막도 강징이 모른채 한거지 무선이가 강징을 찾으려고 애쓴게 아니네ㅠㅠㅠㅠㅠ센세 글 너무 재밌어ㅠㅠㅠㅠ
[Code: 9a4c]
2022.04.19 01: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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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임마 무선아.아오
강징이ㅠㅠㅜㅜ아오심장아파
[Code: 06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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