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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AUㅈㅇ 연반ㅈㅇ
연회가 열린 날, 마치다는 노부와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 사교시즌 초기에는 다들 가족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지만 사교시즌이 끝날 시즌에는 이미 약혼자를 찾아서 약혼자와 함께 참석하는 경우가 많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다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위축된 모습이었다. 꿀밤까지 맞아가면서 용감하게 페르몬 샤워를 주장하더니 막상 닥치니 겁나나. 노부는 제 팔에 손을 얹고 있는 마치다의 손을 토닥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겁 먹을 거 없습니다."
마치다는 노부를 흘긋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다 알아챌까요?"
그쪽이 걱정이었나. 노부는 다시 마치다의 손을 토닥였다.
"아주 가까이 오지 않는 한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마치다가 노부의 페르몬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들 알아챌 정도는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치다의 반경 5걸음 정도 내의 범위에 들어오면 느낄 수 있는 정도? 그러니까 마치다와 대화를 하려고 하거나 마치다와 춤을 추는 파트너가 되지 않는 한 알 일이 없었다. 노부와 마치다도 마치다가 노부의 페르몬으로 샤워를 하고 왔다는 걸 굳이 널리 퍼뜨릴 필요는 없으니 웬만하면 사람이 몰린 곳은 피하기로 했고. 그러니까... 마치다와 춤을 추기로 돼 있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해야 하는데.
황태자가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오더니 미간을 눈에 띄게 찌푸렸다.
그러니까... 이렇게 일부러 다가오지 않으면 모를 거란 말이지.
"황태자 전하."
마치다와 노부가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를 하자, 황태자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까딱했다.
"스즈키 공작가와 마치다 후작가가 이렇게 개방적인 가풍이 있는지 몰랐군."
노부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마치다는 싱긋 웃었다.
"집안마다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지요."
황태자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마치다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픽 웃었다. 사람이 웃는데 저렇게 비열해 보일 수가 있나. 스즈키 공작가는 대대로 한 번도 황위쟁탈전에 관여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 황태자만큼은 정말로 믿음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수도에 남아서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황태자는 개차반이지만 구제불능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인성도 개차반에 능력도 바닥이었다면 황태자가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런 만큼 황태자는 왜 마치다가 노부의 페르몬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 바닥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건 아닌지.
물러나야 할 때를 모르고.
"마치다 영식이 이제 수도를 떠난다니. 앞으로 언제 다시 볼 일이 있겠는가. 작별 선물로 왈츠 한 곡 어떤가?"
콕 찍어 왈츠라니. 역시 무례한 자다웠다. 왈츠는 서로 붙어서 추는 춤이라서 신체접촉이 많기에 가족이거나 약혼자가 아니면 권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무례였다. 노부는 이번에 마치다와 함께 왈츠를 연습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왈츠를 춘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였다. 영지에 있을 때는 무도회에 참여해도 왈츠 때는 쉬고 있었고, 이번에 수도에 올라온 뒤에는 '그'와 왈츠를 추고 싶었지만 그는 처음 참석한 연회에서는 노부에게도 왈츠를 허락하지 않았고 쉬었고, 두 번째 연회부터는 황태자와만 왈츠를 췄으니까.
노부의 표정이 굳자, 마치다는 다시 노부의 팔을 살짝 도닥이고는 입장할 때 전달받아 이미 손목에 걸고 있던 댄스카드를 살짝 흔들었다.
"유감입니다. 왈츠는 전부 스즈키 소공작과 추기로 했습니다."
들어올 때 마치다가 받은 댄스카드에는 왈츠가 두 번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마치다가 말한대로 왈츠는 모두 노부와 추기로 했다. 지금은 연회에서 왈츠 2-4곡 정도 넣는 것은 용인되지만 몇십 년 전에는 왈츠가 너무 신체접촉이 많은 춤이라 미혼의 알파와 오메가들이 추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불만이 적잖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마치다의 친형인 마치다 소후작도 '왈츠는 절대로 너랑 안춘다'고 미리 못을 박았다고 했다. 마치다는 처음부터 왈츠는 노부랑만 출 거라고 했는데 혼자 헛물 켜고.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외교관은 어떻게 하지. 물론 노부는 마치다 소후작이 거절했다는 걸 듣고 기쁜 마음으로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연습했지만. 그런 춤이 왈츠인데 황태자가 감히?
황태자는 얼굴을 사납게 구기더니 머리를 굴리는지 잠깐 말이 없었다. 하지만 황후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보통 요즘은 3-4번 정도 넣는 왈츠를 딱 두 번만 넣었고 왈츠 외에는 보통 가볍게 손을 잡는 정도로 신체접촉이 없었고 대부분 둘씩 둘씩 짝지어서 파트너를 교체하기도 하는 그룹댄스였다. 물론 마치다와 노부는 이 그룹 댄스를 출 땐 주변에 마치다의 형과 사촌들로 포진해 놓기로 하고 준비도 해 두었다.
황태자는 짜증스럽게 그러면 그룹댄스를 함께 추자고 했지만 마치다는 고개를 저으며 댄스카드를 펼쳐보였다. 댄스카드의 12곡 중 첫 번째 곡인 미뉴엣은 황제와 황후만 추기로 돼 있기 때문에 마치다는 플로어에 나갈 필요도 없고 나갈 수도 없기에 남은 곡은 11곡이었고, 왈츠 두 곡을 포함해서 6곡을 노부와 추고, 마치다의 친형인 마치다 소후작이 2곡, 마치다 후작이 2곡, 나머지 1곡을 마치다의 사촌이 함께 추기로 돼 있었다. 마치다의 댄스카드가 다 차 있는 걸 본 황태자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입구에서 댄스카드를 받았을 텐데 벌써 다 채운 건가? 빠르기도 하군. 혹시 이번 무도회에서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었나?"
황태자가 아무리 개차반이라고 해도 대놓고 너를 꺼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황권이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다고 해도 황실은 황실이니까. 그러나 영리한 마치다는 무슨 말이냐는 듯 놀란 얼굴을 하더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스즈키 소공작은 저와 부부가 될 이인 만큼 서로 친밀함을 쌓아야 하지 않습니까?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인데요. 스즈키 소공작과 친밀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감사하게도 공작 부인과 제 어머니께서 좋은 분을 제 상대로 선택해 주셨고요. 그리고 제가 곧 스즈키 영지로 가지 않습니까? 아버님과 형님, 사촌형님은 앞으로 자주 보지 못할 테니 아쉬운 마음을 담아서 함께 춤을 추기로 했을 뿐입니다."
"나와 헤어지는 건 아쉽지 않나 보군."
당연하지. 미친놈아.
하지만 마치다는 이번에도 흥분하지 않고 정중하게 웃었다.
"어떻게 아쉽지 않겠습니까?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를 다시 뵙기 어려워지는 것도, 황태자 전하를 앞으로 못 볼 것도 아쉽지만. 가족과 헤어지는 게 더 아쉽지 않겠습니까?"
황태자는 기어이 노부에게서 왈츠곡을 빼고 싶은지 계속 시비를 걸었지만, 곧 황후의 대시종이 다가와서 황후 폐하께서 황태자를 부른다며 데리고 가 버렸다. 황제와 황후는 마지막에 입장하게 돼 있지만, 미리 연회장 사정을 살피다가 망나니 아들을 끌고 가기로 한 모양이다.
황태자는 황후에게 한 소리 들었는지, 미뉴엣 이후 이어진 첫 번째 그룹댄스 타임의 세 곡이 끝나고 첫 번째 왈츠곡이 끝난 시점, 그러니까 5번째 곡이 끝날 때까지 접근하지 않았다.
첫 번째 그룹댄스 타임에서는 노부와 마치다 후작, 마치다 소후작이 차례로 마치다와 춤을 췄는데, 노부는 마치다 소후작이 춤을 끔찍하게 못 춘다는 마치다의 말이 노부를 위로하려던 마치다의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 사교계에 애처가라고 소문난 마치다 후작은 물론이고 마치다 소후작도 춤을 정말 잘 췄으니까.
마치다 소후작이 마치다와 춤을 추고 나온 뒤 노부가 다가가서 춤을 이렇게 잘 추는지 몰랐다고 하자, 마치다 소후작은 묘하게 으스대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뚝딱이 외교관이 있을 것 같나?"
그렇게 으스대고 자기 부인에게 떠나는 마치다 소후작을 보고 있자, 마치다가 노부의 팔짱을 끼며 속삭였다.
"거짓말이에요. 결혼 전 연회에서 형수님 되실 분 발을 제대로 밟아버린 후로 발이 퉁퉁 붓도록 연습한 결과죠."
노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치다의 발을 바라보자, 마치다는 키득키득 웃었다. 실제로 노부는 왈츠를 연습할 때 몇 번 마치다의 발을 밟을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발을 빠르게 빼서 밟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연습 때보다 더 긴장했기 때문에 안 밟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어서 노부가 긴장된 얼굴로 바닥을 탁탁 치는 마치다의 발을 내려다보자, 마치다는 노부의 턱 끝을 살짝 쥐고 고개를 들게 하더니 싱긋 웃었다.
"발 좀 밟으면 어때요. 내 발 부어서 코끼리 발 되면 소공작님이 날 안고 다니면 되지."
"코끼리발이 되지 않아도... 원하면 언제든 안고 다닐 테니까 걱정 말아요."
발긋해지는 마치다의 뺨이 정말 예뻤다. 그때는 정말 연회가 어서 끝나기만 바랐다. 연회만 끝나면, 영지로 돌아갈 거라고, 그리고 마치다와 결혼을 하고 정말 매일 안고 다닐 거라고, 그런 달콤한 꿈에 젖어 있었다.
이 연회에서 무슨 일이 기다리는지 모르고.
뭔가 잘못 돼 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그'가 마치다의 사촌형수의 옷에 와인을 엎질렀을 때였다. '그'가 하필이면 마치다의 사촌형수의 옷에 와인을 엎질렀을 때부터 황태자의 지시가 뒤에 있었다는 걸 알아야 했다. 원래는 이번 연회에서 원래 튤립궁의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는 것을 알린다고 했었는데, 정작 연회에서 황실 측은 튤립궁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의 튤립궁 입성이 틀어졌을 때, '그'가 어떻게든 살 길을 찾으려 할 것을 예상해야 했다. 노부와 마치다는 그룹 댄스를 출 때 마치다의 사촌형 부부, 그리고 마치다 소후작 부부가 노부와 마치다 양 옆에서 춤을 추게 하기로 약속했었다. 마치다가 노부의 페르몬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알리지 않고, 파트너가 교체됐을 때 마치다가 사촌형이나 소후작과 춤을 출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였는데.
하지만 마치다의 사촌형수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다음 곡이 시작됐고, 마치다의 사촌형 부부가 들어가기로 했던 자리에 황태자와 '그'가 들어와 섰다. 그 다음 그룹댄스를 앞두고는 황태자궁의 시종이 마치다 소후작 부인의 드레스를 밟아서 드레스가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황태자와 '그'가 노부의 형 부부가 들어오기로 한 자리에 서서 노부와 마치다 옆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왈츠가 끝나고 노부가 잠깐 와인을 가지러 갔다 왔을 때, 마치다가 사라졌다. 황급히 홀을 둘러보자, 황태자도 보이지 않았다. 노부에게 보이는 건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해진 채 덜덜 떨고 있는 '그' 밖에 없었다.
#노부마치
#첫사랑과두번째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