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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2 05:11


알오AUㅈㅇ 연반ㅈㅇ



어머니는 결혼식을 허투로 준비하지 않으셨지만, 결혼식은 촉박하게 잡혔다. 사교시즌이 끝나고 모든 귀족이 각자의 영지로 흩어지기 전, 스즈키가의 영지에 들렀다 갈 수 있도록 결혼식은 사교시즌 직후로 잡혔다. 결혼식에 관련한 모든 것이 노부와 상관없이 정말 정신없이 진행됐다. 그러던 차에 한 꼬마가 그 사람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 사람이 다른 공작가문에 들어가기 전, 먼 친척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곧잘 심부름을 하던 아이였다. 한동안 계속 노부를 피하려고만 하던 이에게 편지가 왔지만 예전과 달리 가슴이 간질간질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착잡해다. 편지 겉면에 적힌 그의 이름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봉투를 열자, 아직도 예법을 익히지 못했는지 여전히 예법에 맞지 않는 장황한 인사말이 가득했다. 바로 얼마 전에 그런 '귀여운' 인사말 뒤에 잔인한 이별 통보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 인사말의 끝에는. 
 
그동안 연락이 소원했네요. 만나서 할 말이 있어요. 오늘 저녁 연극 '보이지 않는 날개'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에요. 거기서 봐요.. 

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왜 갑자기 또 만남을 청했는지는 없었다.  

노부가 옷을 갈아입고 공작저를 나가자, 공작저의 입구 앞에 세워진 마차가 보였다. 마차에는 가문의 문장이 붙어 있지 않았지만, 공작저의 문지기들과 기사들이 아무런 저지를 하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신원확인이 끝난 거겠지. 노부가 공작저를 나오자 문 앞에 있던 기사가 다가와서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마차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스즈키 소공작님을 만나 뵙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누구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밖의 소리를 들었는지 마차의 창이 열리며 노부의 약혼자가 얼굴을 드러냈으니까. 마치다 케이타는 늘 그랬듯이 어째서인지 아득히 깊어 보이는 까만 눈으로 노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노부의 발은 저절로 마차를 향해 갔다. 어차피 그 사람이 말한 오페라 공연은 4시간이 넘는 공연이고, 인터미션에 들어가면 되기에 시간 여유가 있다는 핑계도 있었고. 노부가 마차에 오르자, 마치다 케이타는 자세를 고쳐앉으며 노부의 옷차림을 바라봤다. 오페라 공연에 가야 하기 때문에 관람 에티켓에 맞게 옷을 차려입었던 노부가 머쓱함에 헛기침을 하자, 마치다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 미소를 지었다. 

"1시간 가량 마차를 좀 달릴까요? 같이 있어주시겠습니까?"

노부가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몇 시인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시간은 확인했으니까. 약속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자, 마치다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자니, 아무래도 마음이 복잡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복잡한 사람끼리 이야기나 좀 할까 해서요."

노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 기대앉자, 마치다는 마차 벽을 두드려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곧 마차가 달그닥거리는 말발굽소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마치다는 깍지끼고 있던 손가락을 잠깐 까딱거리다가 혼잣말인 것처럼 나직하게 말을 시작했다. 

"새 주인을 맞기 위해 단장 중이던 튤립궁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느긋하게 마차벽에 기대있던 노부가 등을 떼고 황급히 몸을 세웠지만, 마치다는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화재는 밤에 튤립궁 내에 아무도 없을 때 발생했고, 순찰 중이던 근위대가 바로 발견해서 크게 번지진 않았습니다. 덕분에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불을 지르기 전에 황궁 마굿간에서 나온 오물을 궁 내외부에 뿌린 뒤에 불을 질러서 지금도 악취가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명백한 모욕과 경고가 느껴지는 행위였다. 불만 질렀다면 튤립궁에 들어가려는 그에게 향한 경고일 뿐이겠으나, 궁 전체에 오물을 그것도 짐승의 오물을 뿌렸다는 건 그를 향한 멸시와 모욕을 진하게 담고 있는 행위가 아닌가. 그게 대체 무슨 짓이야. 감히 황궁 내에서 그런 짓을 하는 이가 있다고? 노부가 눈을 크게 뜨고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자, 마치다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범인은 잡았습니다. 백합궁의 시녀가 황실 마굿간의 하인을 포섭해서 저지른 일이라고 밝혀졌죠."
"... 백합궁에서 저지른 일이란 겁니까?"
"그럴 리가요."

마치다는 노부의 순진함이 귀엽다는 듯 다정하게 웃더니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백합궁은 자작가의 4녀로 황태자의 후궁 자리를 꿰찬 인물입니다. 절대로 만만한 인물이 아니죠. 그가 황태자궁에 들어가던 당시 어떤 수를 썼는지까지는, 제가 당시에 수도에 없었기 때문에 알지 못하지만... 그 해의 사교시즌은 정말 여러 가지 일이 많았더군요. 자작가의 4녀라 본래라면 아직 데뷔탄트 연회에 나가지 않은 언니와 오빠들을 제치고 혼자서 그 해에 데뷔탄트 연회에 나갈 수 없는 처지였는데 그 해 그 가문에서 혼자 데뷔탄트 연회에 참가한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었고. 그러니 수완이 남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런 눈에 띄는 짓을 할 리가 없죠."

마치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목소리를 더 낮춰서 속삭였다. 

"범인은 히스궁입니다. 히스궁의 주인도 백합궁 못지 않게 만만찮은 인물이긴 하나, 이 일로 백합궁의 원한을 샀으니 앞으로 어찌될지는... 아, 물론 이 사실은 황태자 전하와 황제 폐하, 황후 폐하도 알고 계십니다. 백합궁과 장미궁도 물론 알고 있고요."
"다 알고 있다고요?"
"매일 궁으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해도 왕실의 일원도 아닌 제 형님도 이미 정황을 다 파악했는데 궁에서 모르겠습니까?"
"... 어떻게 됐습니까?"
"백합궁의 시녀와 마굿간의 하인이 처벌받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공식적으로 히스궁에 책임을 묻지는 않았지만, 히스궁의 주인이 중병에 걸려 궁 밖 출입이 불가능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 '중병'이 언제 나을지는 황제 폐하의 마음에 달려 있겠지요. 물론 히스궁의 주인은 완전히 건강한 상태입니다만."
"..."
"다만, 궁을 시끄럽게 한 일로 튤립궁이 아직 궁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움을 산 모양이라."

마치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듯이 노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황후 폐하께서 황태자 전하에게 튤립궁을 채우는 것을 재고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노부는 그제야 왜 그동안 노부를 피하려고 애쓰던 이가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노부에게 황태자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인지, 궁에 못 들어갈 것 같으니까 노부를 잡으려고 하는 건지... 아니, 아니야. 이건 마치다 형제의 말일 뿐이잖아. 그도 노부가 이미 약혼했음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란 걸 당연히 알고 있을 텐데.

노부는 급격하게 마음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마치다를 바라봤다. 마치다의 잘못이 아닌 건 알았다. 마치다는 노부가 모르고 있던 궁의 사정을 알려줬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모든 건 그와 황태자와 황태자의 비와 후궁들이 저지른 짓이었다. 마치다와는 전혀 무관했다. 당연히 마치다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노부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는 '그'의 행보가, 너무 실망스럽고 분노를 일으켰다. '그'와 노부 자신에 대한 분노가 엉뚱하게 마치다에게 튀었다.

"제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를 확실히 치워버리고 공작가에 들어오고 싶은 겁니까? 스즈키 공작가의 이름이 그렇게 탐났습니까? 그가 황태자의 후궁이 되든 말든 나와 결혼할 이는 당신입니다. 나는 당신을 이름뿐인 공작부인으로 만들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마치다는 노부의 날선 말에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여유롭게 마차의 창틀에 팔꿈치를 댄 채로 턱을 괴고 빙긋 웃었다. 

"스즈키 공작가의 이름을 탐내느냐... 스즈키 소공작은 듣지 못하셨나 봅니다. 공작부인께서 저희 집안에 저와 스즈키 소공작의 결혼을 제안하셨을 때, 아버지와 형님이 격렬하게 반대하셨다는 거 모르셨습니까?"
"... 반대했다고요? 격렬하게?"
"아버지는 원래 저를 멀리 보낼 생각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저희 가문의 영지와 스즈키 가문의 영지가 꽤 멀지 않습니까. 둘 다 국경에 가까운 영지지만 그 국경이 서로 극과 극으로 떨어져 있으니니. 그래서 아버지도 형님도 단호하게 반대하셨죠. 물론 어머니도."
"마치다 소후작은 어째서...?"

마치다 가문의 장남인 소후작과 노부는 아카데미에서 같이 수학했었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는데? 아카데미 졸업 이후 스즈키가 저 먼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 보니 수도에 있는 마치다가의 장남과는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라 절친한 친우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형님께서 아카데미에서 논문을 도둑질당했을 때... 스즈키 소공작의 태도에 다소 실망하신 것 같던데..."
"아..."

황태자의 편을 들어주려 한 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교수들이 황제의 눈치를 봐서 황태자의 편을 들어줄 테니 마치다 소후작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해서 황태자에게 보상이라도 받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했었는데 그 일로 신뢰를 잃은 모양이었다. 

"뭐... 어차피 형님은 외교관이라 군인들을 좋아하지 않기도 합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마치다 후작과 당신이 군인인데도 말입니까?"

가문의 일원이 전부 검을 쥐고 활을 매거나 창을 드는 스즈키 가문과 달리 마치다 후작가는 군인의 길을 걷는 이들도, 외교관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었다. 현 마치다 후작의 동생이자 마치다 케이타의 삼촌이 외교관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고, 마치다 소후작도 삼촌의 뒤를 이어 외교관이 되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친부와 친동생이 군인인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 몹쓸 사람이죠."

몹쓸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유쾌하게 웃는 걸 보면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그저 농담인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런 이유로 그가 지금 나를 불러낸 이유를 알려준 게 아니라면 어째서?"

마치다는 여전히 창틀에 올려놓은 팔에 턱을 괸 채로 윙크를 했다. 한쪽 눈만 감으며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터질 듯 부풀면서 간지러웠다.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인데도. 

"스즈키 공작가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는데, 스즈키 소공작은 또 욕심이 나서?"
"... 네?"
"말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 누구를? 그 사람 말입니까?"
"네. 그 사람 집안 사정은 들었으니 그가 왜 그렇게 절박하게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지 이해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장남이 그를 인근에서 큰 영지를 운영하고 있는 백작에게 재취로 보내려 했다지요. 백작의 평판이 나쁜 건 아닌 듯했으나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그 백작의 나이가 그의 부모님보다 많았다고 하니 그다지 내키진 않았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게다가 그의 집안 영지보다 크다고 해 봐야 다른 영지들에 비하면 그 백작가의 영지도 그다지 풍요로운 편도 아니고... 싫었을 건 물론 이해합니다. 수도에서 미래를 찾고 싶었겠지요. 미모도 상당하고... 나이도 어리고. 집안이 한미하다고 해도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으니. 그런 그에게 제국에 단 둘 뿐인 공작 가문 중 하나의 유일한 후계자... 욕심이 생겼을 것도 당연히 이해합니다. 황태자라는 더 먹음직스러운 목표가 나타나자 바로 갈아탄 것도 이해합니다. 그 먹음직스러운 목표가 자신을 쳐낼 것 같자, 다시 소공작을 찾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의 모든 사정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는 마치다 케이타는 여전히 은은하게 웃고 있는데도 순식간에 한기가 든다고 느껴질 정도로 눈빛이 스산해졌다. 분명히 눈을 접으며 웃고 있는데도 저 표정을 웃는다고 말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서늘하고 싸늘한 얼굴이었다.

"그 사람이 순진한 스즈키 소공작의 진심을 저울대에 올리거나 더 좋은 기회가 보이자 제대로 예의도 갖추지 않고 버리는 파렴치한이 아니었다면 소공작의 첫사랑을 방해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노부의 나이가 지금 26살인데... 첫사랑이었다는 건 어디서 들은 거야. 어머니인가? 노부는 머쓱해져서 헛기침을 하고 조용히 물었다.

"...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이해합니다. 사람의 진심을 그저 수단으로만 여기고 제 인생을 위해 타인을 멋대로 이용하고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심성이라면  그건 그 사람의 복이거나 화일 테니 제가 관여할 바도 아니고... 하지만 그 대상이 스즈키 소공작이라면..."
"..."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납할 수도 없고."

이렇게까지 들어놓고 이걸 물어보는 건 바보다... 알지만... 

"어째서...입니까?"

마치다는 정말 당연하지 않냐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스즈키 소공작을 좋아하니까."





그때....

'내가 마음을 줬으니까'

언제인지 모를 오래 전 그날에 비에 젖은 얼굴로 노부를 바라보며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빗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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