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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1 05:21
알오AU주의 연반주의
노부는 그 사람을 만나서 진심을 들으려고 했지만, 노부가 그 사람을 입양한 공작가에 몇 번 찾아가자, 그 공작가에서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며 황태자의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다시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에서 그 사람은 항상 황태자와 함께 나타났다. 황태자가 태자비나 후궁들을 궁에 남겨두고 직접 데리고 온 황태자의 파트너에게 나를 좋아한 게 아니었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여름이 깊어갈 무렵, 황궁에서는 다시 연회가 열렸고 그는 황태자의 파트너로 참석했다. 황궁에서 열리는 연회기에 태자비와 황태자의 후궁들이 모두 연회장에 참석해 있었는데도, 황태자는 황제와 황후가 첫 번째 춤을 춘 후, 태자비와 두 번째 춤을 춘 후 세 번째 곡에 그를 파트너로 춤을 추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곡은 그의 후궁과 플로어에 올랐다. 그리고 여섯 번째 곡부터는 내내 그와 함께 플로어를 누볐다. 황태자가 그에게 마음이 있는 건 분명했다. 귀족들은 모두 공작가에 양자로 들어간 이가 황태자의 후궁이 될 모양이라고 수군거렸다. 관례적으로 황실에서는 후작 이상 가문에서 부인을 맞지 않는 법인데, 아무리 양자라 해도 공작가 출신을 후궁으로 들이려는 걸 보니 어지간히 반한 모양이란 말도 있었다. 황태자는 법으로 네 명의 후궁을 둘 수 있었고, 현재 태자비는 백작가에서 들였다. 기존의 후궁 두 명 역시 백작가와 자작가 출신이었다. 공작가문에서 왜 귀족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집안의 오메가 자제를 양자로 받아들였나 했더니, 처음부터 황태자와 따로 이야기가 돼 있었던 모양이었다.
노부가 황태자의 초청을 받아 늘 그를 데리고 연극이며, 브런치 만찬이며 사냥대회 등을 다닐 때부터 이미.
그 연회에서 황후가 7번째 춤곡이 끝난 이후 연회에 참가한 오메가 귀족들을 모두 불러모아 잠시 휴식 겸 티타임을 가졌기 때문에, 노부는 그때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전하. 후궁을 새로 들이실 모양입니다."
황태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지금 튤립 궁을 단장 중이네."
노부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황태자가 몰랐을 리 없었다. 황태자는 정말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노부는 잊고 있었던 아카데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노부, 그리고 황태자와 함께 수학했던 마치다 후작가의 장남은 황태자를 싫어했는데 아카데미 시절에 마치다가의 장남이 몇주간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며 공들여 자료를 준비하고 작성한 외교학 과목의 논문을 황태자가 가로챈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다가의 장남에게 공동연구를 하자고 해 놓고 실제로 자료조사 및 논문 집필은 마치다가의 장남이 다 했는데 논문을 제출할 때 논문에 황태자가 자기 이름만 올려서 내 버렸다. 황태자는 황제와 교수들의 기대 때문에 너무 부담을 느껴서 그랬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며 보상도 해 준다고 한 모양이었지만, 논문 미제출로 그 과목에서 낙제를 받아 나중에 재수강해야 했던 마치다가의 장남은 보상을 거부했다. 뭐, 황태자인 만큼 교수들은 그 비하인드를 알고도 입을 다물었겠지만. 마치다가의 장남은 그 사실을 유포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주었다. 그리고 그 일 이후 마치다가의 장남은 황태자와 데면데면해졌다.
사실 태자비를 뽑을 때 마치다 후작가의 차남도 후보에 있었지만 마치다 후작이 강경하게 반대하기나 했거니와 황태자와 장남과의 사이가 영 좋지 않기 때문에 후보에서 빠졌다는 말도 있었다. 스즈키 공작가와는 다른 쪽의 국경을 지키는 동시에 외교에서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는 마치다 후작가는 집안을 위해 자식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집안은 아닌 모양.
아무튼 그런 전적이 있는 황태자인 만큼 황태자는 노부가 그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차지하고 싶을 때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라 황태자에게 호소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노부를 적극적으로 피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그도 노부보다 황태자가 마음에 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축하드립니다. 전하."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는 내가 후궁을 늘리는 게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니, 수련궁은 한동안 더 비워둬야겠지만 말이야."
태자비와 황태자 후궁들의 궁은 황태자궁 안에 각각의 독채로 있었으며 태자비의 궁이 장미궁, 후궁들의 궁이 백합, 튤립, 히스, 수련궁이었다. 그 중 현재 백합궁과 히스궁만 주인이 있었는데 노부가 함께 살고 싶었던 이가 튤립궁에 들어갈 예정이라...
"스즈키 소공작도 이번에 혼처를 찾으러 수도에 왔다고 들었는데 결혼할 때 꼭 말하게. 내가 외조모에게 물려받은 옐로 다이아몬드를 결혼 선물로 준비해 두고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뺏아간 대가가 옐로 다이아몬드인가. 비싸기도 하네. 노부는 학창 시절 저 때문에 외교학 과목에 낙제했던 마치다가의 장남에게도 대가를 제공하겠다고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하던 황태자를 다시 떠올리며 사양했지만, 황태자는 거절할 것 없다고 사람 좋게 웃으며 노부의 어깨를 두드렸다.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다만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노부는 결혼이고 뭐고 그냥 변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황태자의 비가 아니라 후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화려한 결혼식은 없겠지만, 사교 시즌의 마지막 연회에서 그를 황태자의 새 후궁으로 소개할 것이라 했다. 그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결혼 상대를 찾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뼛속까지 군인인 아버지가 노부가 결혼 상대를 찾을 수 있도록 내년에도 또 수도에 보내준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올해 26세인 노부의 나이가 이미 혼기를 너무 넘긴 나이인 것도 이유였고.
"전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찾지 못했습니다."
"괜찮다. 내가 찾아놨으니."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가 노부에게 결혼 상대로 제안한 사람은 마치다 후작가의 차남이었다. 노부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연회에서 마주쳤던 얼굴을 떠올렸다. 자기만큼 우아한 느낌의 댄스카드에 노부의 이름을 유려하게 적어가던 손은 노부가 사랑했던 이의 그저 곱고 보드라왔던 손과 달리 손가락 관절이 툭툭 불거져 있고, 펜을 잡고 있던 손에는 검을 쥔 사람 특유의 굳은살이 보였음에도 보기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유려하던 필체만큼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다면 몰라도. 게다가 펼친 부채 위로 고요하게 노부를 바라보던 눈빛도... 노부를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었는데도 노부를 재단하거나 감시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그 눈과 눈을 마주할 때마다 어떤 얼굴이 떠오를 듯 말 듯했는데... 마치다는 어머니의 독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플로어에 나갔을 때도, 춤 솜씨가 너무 뛰어나서 그 순간만큼은 같은 플로어 위에서 다른 남자와 춤을 추던 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노부의 품 안에서 부드럽게 발을 놀리며 팔을 뻗고 허리를 꺾던 마치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날 노부는 그 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이들 중 누구보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춤을 추던 이의 모습에 매료돼 7번째 곡을 함께 춘 후, 10번째 곡도 아직 비어 있다면 같이 출 수 있겠느냐고 청하기도 했었다.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의 청을 수락해서 10번째 곡도 함께 췄었다.
그렇지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그림으로 그린 듯 완벽한 마치다 케이타가 싫은 건 아니었다. 이상하게 마치다 케이타와 함께 있으면 그에게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마치다 케이타만 보였다. 비오던 산길에서 처음 만난 이후 내내 노부의 가슴을 간질거리게 한 게 그 사람이란 걸 잊을 정도로 이상하게 마치다 케이타와 있으면 그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
제 몸이 다 젖는 걸 모르고 기꺼이 우산을 기울여준 손...
비에 젖은 머리카락과 작은 얼굴...
그리고 우산 아래...
노부를 바라보며 장난꾸러기처럼 웃던...?
올 여름의 기억인지 먼먼 옛날 어느 날의 기억인지 분간되지 않는 그 빗속의 기억이...
그를 놓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노부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마치다 후작가와 약혼을 추진했고, 노부와 마치다 케이타는 스즈키 공작가가 수도에 소유하고 있는 저택에서 약혼 연회도 열었다. 두 사람은 약혼 연회에서 반지를 교환했고, 연회의 주인공으로서 모든 연회 참가자들 앞에서 첫 번째 춤을 추기도 했다. 결혼식은 스즈키 공작가의 영지에서 열기로 했지만, 두 사람이 황태자로부터 사교 시즌 마지막 황궁 연회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약혼 연회 직후 황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황태자는 예상했던 대로 태자비를 제치고 튤립궁의 주인이 될 그와 첫 번째 춤을 함께 췄다.
이제는 영원히 남의 사람이 돼어 버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노부의 약혼자가 된 마치다 케이타가 손에 샴페인 잔 두 개를 들고 와서 하나를 노부에게 주었다. 노부가 샴페인 잔을 받아들자, 노부의 옆에 붙어 선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가 바라보고 있던 쪽, 황태자와 새로운 후궁이 될 이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낮게 물었다.
"저와의 약혼을 무르고 싶으십니까?"
노부는 말없이 마치다 케이타를 바라봤다. 이미 알고 있었나. 하긴 그 사냥 대회에서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의 행동을 눈빛으로 저지했었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정말이었다. 하지만... 뭔가... 그를 놓치면 그날 그 산길에서 떠오르려다 말았던 기억도 영영 놓칠 것 같아 절로 마음이 불안해지고 다급해졌다.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의 대답에 환하게 웃었다.
"다행입니다.기쁘네요."
그래, 그때도 이렇게 기쁘게 웃었...? 어?
마치다 케이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지나가는 황궁 시종의 쟁반에 잔을 올려놓고 노부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제와 황후 대신 첫 곡을 연 황태자와 그 사람의 첫 곡이 끝나면, 미뉴엣으로 모든 사람이 무도회를 시작하게 돼 있었다. 노부도 마치다 케이타와 약혼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첫 춤을 추기로 했다. 노부가 시종의 쟁반에 샴페인 잔을 올리고 팔을 내밀자,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의 팔에 손을 올리고 플로어를 향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나아갔다.
마치다 케이타의 댄스는 여전히 우아하고 부드러웠고, 노부는 홀린 듯 그 몸놀림에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밤인데도 후덥지근한 덥고 맑은 날이었는데 음악 사이로 어째서인지 빗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노부마치
#첫사랑과두번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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