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995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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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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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인지는 모르겠구나."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요. 그래도 마음이 쓰여서 어쩔 수가 없네요... 죄송해요 부인."
"죄송하긴, 이제껏 휴가 한번 쓴 적이 없었잖니. 난 괜찮아. 언제든 돌아오렴."
나는 리츠 부인에게 양해를 얻고 잠시간 데이비드 다임과 붙어지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냥 붙어있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하녀로.
"..."
데이비드 다임은 표정없이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미묘하지만 불만이 가득한것이 티났다.
"당신 혼삿길 막고 싶지 않아요."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을 아무 맥락없이 집으로 초대해 함께 지내는건 양쪽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었다. 나야 이젠 미혼으로 살겠노라 다짐했으니 상관 없지만 데이비드 다임은 달랐다.
나는 이 젊은 군인의 정열이 얼마 가지않아 사그라들것이라 장담하고 있었다. 원래 끌림이라는 감정은 무지에 기반하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나에게 거절을 당했으니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더 애가 끓었던것일테지.
함께 지내며 내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는걸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이 넓다는것을 알게 된다면 결국 마음도 돌아설것이다.
계약서를 2부 작성하여 나눠가진 뒤 데이비드 다임은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1층의 방으로 안내했다. 침대와 옷장, 책상 이 간소하게 있는 방이었고 일반적인 하인 방보다는 괜찮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은 방은 아니었다.
"점심이 준비되면 불러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곤 그를 쫓아냈다. 데이비드 다임은 미련이 남은 표정으로 느릿느릿 방으로 돌아갔다.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혹시 내 심기를 거스르면 내가 돌아가버릴까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볼이 움푹 패여있던 남자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워낙 튼튼하기도 했고, 내가 매끼 고열량으로 고루 챙겨먹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우울함에 잠겨있었다. 태도는 차가웠고 입을 여는 일이 드물었다. 그 전에도 말 수가 적긴 했지만 정말 이젠 하루에 두마디쯤 하면 아주 수다스러울 수준이었다. 그래도 언제나 밤 인사를 잊지는 않았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는 석유등을 들고 2층의 계단참 앞에 서있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남자는 내가 인사를 하자 몸을 휙 돌려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잘 풀려가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데이비드 다임의 태도에서 날 연모하는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가끔 지난날 자기 태도를 부끄러워하는 기색만이 언뜻언뜻 비쳤다. 뒤늦게 감정에서 깨어난것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방으로 돌아와 잠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창문을 젖혔다. 주택은 꽤 언덕쪽에 있었기 때문에 아래로 좁게 달라붙은 건물들이 내려다보였다. 문득 소금기가 섞인 짭짤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멍하게 바깥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꿉꿉해.'
...이곳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월경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오늘은 특히 땀을 많이 흘렸다.
번듯한 욕실은 2층, 데이비드 다임의 방 안에 있었으나 1층에도 씻을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날 수도가 고장나 오늘은 무리였다. 오전까지만 해도 하루쯤 씻는것을 건너뛰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일이 모두 끝나자 찬물로 몸을 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마당에서 씻을까?'
담벼락이 높아 밖에서 보일 일은 없었다.
몸은 피곤한데 온몸이 끈적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1시간동안 뒤척이다 결국 대야와 속옷을 챙겨 마당으로 향했다. 이 집에 있는 것은 나와 데이비드 다임뿐인데 그의 방에선 뒷마당이 보이지 않았고 더욱이 그는 군인 답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나는 조금 눈치를 살피다 먼저 발을 씻었다. 지하수가 소름끼치게 시원했다.
팔다리를 닦자 머리와 몸도 씻어내고 싶어졌다. 나는 주위를 살피곤 재빠르게 옷을 벗었다.
"아.. 시원해..."
꿉꿉함이 싹 날아갔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감았다. 젖은 머리를 꾹 짜며 몸을 숙이는데 갑자기 뒤에서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
데이비드 다임이 어쩔 줄 몰라하며 서있었다. 그의 당황이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입만 뻐끔거리다 간신히 말했다.
"뒤, 뒤돌아, 주세요..."
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황급히 몸을 돌렸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몸에 걸쳤다. 침묵속에 내 옷자락이 펄럭대는 소리만 울렸다.
그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목이 말라서..."
"탁자에 물병... 올려 뒀잖아요."
"..."
부끄러워서 괜시리 화가 났다. 나는 젖은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옷가지를 챙겨들고 그를 지나쳤다. 다임은 안절부절 못하며 내 뒤를 졸졸 따랐다.
"냉침한 밀크티라도 드실래요?"
나는 쌀쌀맞게 물었다. 그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찻물을 올리는동안 오갈데 없던 분노도 점점 흩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연결된 바깥에서 몸을 씻은 내 잘못이었으니까... 분노 다음은 부끄러운 풀죽음이었다. 나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으며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1층 욕실이 고장났어요."
"아..."
내가 변명하듯 중얼거리자 그가 맥아리없이 답했다. 뭐라고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딱히 할말이 없었다.
삐이-
주전자에 물이 끓었다. 나는 꿀과 찻잎을 넣은 티컵에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우유를 꺼냈다.
"여기요."
다임은 물끄러미 컵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구석에 있던 석유등에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노란 불빛이 잉크처럼 어둠속에 퍼졌다.
아무것도 타지않은 뜨거운 물을 홀짝거리는데 그가 물었다.
"안마십니까? 밀크티..."
"밤에 마시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러고보니 그때도,"
"그때요?"
그는 고개를 젓더니 대답없이 한모금을 삼켰다.
"불편한건... 없습니까?"
"불편할게 뭐 있겠어요. 할 일도 그다지 없는데..."
잠시간의 침묵, 다임은 컵을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
"...실례가 안된다면 묻고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세요."
그는 망설이며 말했다.
"더이상 사랑할 마음이 없다는 건,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까?"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몇시간 전 이제는 감정도 사그라들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우습도록 선명한 무언가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조용히 대꾸했다.
"네."
그는 입술을 깨물고는 조금 조급하게 물었다.
"누가 당신을 아프게 했습니까? 상처를 남겼습니까?"
"그런건..."
부정하려다말고 말을 멈추었다.
잠시후에 나는 이제까진 꺼내놓은 적 없는 도련님의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6년이나 지나, 갑자기 말 할 마음이 들었다는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밤이라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어둠속에 잠긴 그의 얼굴이 도련님과 닮아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임은 혼란스러워보였다. 이상하게도 기쁜것 같기도 했다.
"그는 당신에게 부족한 남자였던 것 같은데요."
"그런식으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작고 어리고 볼품없었습니다, 당신을 지켜주지도 못했고..."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괜히 말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전..."
나는 화가 났다. 그러나 다임의 얼굴은 몹시 붉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그.. 그 분이 돌아온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의미없는 가정이에요. 무엇보다 그 분을 그런식으로 사랑했던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그 사람이 가장..."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답 해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돌아오신다고 하더라도, 그 분이 절 좋아하진 않겠죠."
"아닙니다."
다임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몸을 숙이며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당신을 좋아했을겁니다, 당신은 상냥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우니까요. 당신은 당신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나는 그 진심을 다한 칭찬에 볼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레 몹시 들떠, 전날 꾼 꿈을 설명하는 꼬마처럼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그였다면 당신이 너무 좋아 차라리 죽고 싶었을겁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했을겁니다. 아마 어른이 되자마자 당신에게 청혼했겠죠. 당신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하며... 언젠간 아이도 낳았을겁니다. 아니, 사실 그런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내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뤄질 수 없는 가능성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다임은 내게 가까이 오더니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 따뜻한 손이 볼을 스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 그의 숨결이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그였다면..."
그러나 다임은 가렛 헤드룬드가 아니었다. 그는 그를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들뜬 기색이 씻겨나갔다. 나는 애써 미소지었다.
"정말 그랬다면 좋았겠네요."
머리는 어느새 말라있었다. 몸을 뒤로 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임의 얼굴에 낯익은 무표정이 돌아와있었다. 그는 입가를 만지작거리더니 테이블 위에있던 등을 들었다.
"방 앞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먼 곳도 아닌걸요."
그는 여전히 우두커니 서있었다. 나는 주방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가..."
갑자기 다임이 말했다.
"네?"
"그가 나쁜 사람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도련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걸요."
"그냥, 가정입니다. 그가 아주 잔인하고 교활한 어른으로 자랐어도 당신은 그를 사랑했을까요?"
"글쎄요..."
나는 의미없이 웃었다.
"너무 늦었네요, 주무세요."
대답대신 인사를 건내자 다임도 더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목이 말랐던게 아니라 방에 허니가 없어서 찾고 있었던거임ㅇㅇ
가렛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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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인지는 모르겠구나."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요. 그래도 마음이 쓰여서 어쩔 수가 없네요... 죄송해요 부인."
"죄송하긴, 이제껏 휴가 한번 쓴 적이 없었잖니. 난 괜찮아. 언제든 돌아오렴."
나는 리츠 부인에게 양해를 얻고 잠시간 데이비드 다임과 붙어지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냥 붙어있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하녀로.
"..."
데이비드 다임은 표정없이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미묘하지만 불만이 가득한것이 티났다.
"당신 혼삿길 막고 싶지 않아요."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을 아무 맥락없이 집으로 초대해 함께 지내는건 양쪽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었다. 나야 이젠 미혼으로 살겠노라 다짐했으니 상관 없지만 데이비드 다임은 달랐다.
나는 이 젊은 군인의 정열이 얼마 가지않아 사그라들것이라 장담하고 있었다. 원래 끌림이라는 감정은 무지에 기반하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나에게 거절을 당했으니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더 애가 끓었던것일테지.
함께 지내며 내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는걸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이 넓다는것을 알게 된다면 결국 마음도 돌아설것이다.
계약서를 2부 작성하여 나눠가진 뒤 데이비드 다임은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1층의 방으로 안내했다. 침대와 옷장, 책상 이 간소하게 있는 방이었고 일반적인 하인 방보다는 괜찮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은 방은 아니었다.
"점심이 준비되면 불러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곤 그를 쫓아냈다. 데이비드 다임은 미련이 남은 표정으로 느릿느릿 방으로 돌아갔다.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혹시 내 심기를 거스르면 내가 돌아가버릴까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볼이 움푹 패여있던 남자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워낙 튼튼하기도 했고, 내가 매끼 고열량으로 고루 챙겨먹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우울함에 잠겨있었다. 태도는 차가웠고 입을 여는 일이 드물었다. 그 전에도 말 수가 적긴 했지만 정말 이젠 하루에 두마디쯤 하면 아주 수다스러울 수준이었다. 그래도 언제나 밤 인사를 잊지는 않았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는 석유등을 들고 2층의 계단참 앞에 서있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남자는 내가 인사를 하자 몸을 휙 돌려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잘 풀려가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데이비드 다임의 태도에서 날 연모하는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가끔 지난날 자기 태도를 부끄러워하는 기색만이 언뜻언뜻 비쳤다. 뒤늦게 감정에서 깨어난것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방으로 돌아와 잠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창문을 젖혔다. 주택은 꽤 언덕쪽에 있었기 때문에 아래로 좁게 달라붙은 건물들이 내려다보였다. 문득 소금기가 섞인 짭짤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멍하게 바깥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꿉꿉해.'
...이곳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월경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오늘은 특히 땀을 많이 흘렸다.
번듯한 욕실은 2층, 데이비드 다임의 방 안에 있었으나 1층에도 씻을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날 수도가 고장나 오늘은 무리였다. 오전까지만 해도 하루쯤 씻는것을 건너뛰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일이 모두 끝나자 찬물로 몸을 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마당에서 씻을까?'
담벼락이 높아 밖에서 보일 일은 없었다.
몸은 피곤한데 온몸이 끈적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1시간동안 뒤척이다 결국 대야와 속옷을 챙겨 마당으로 향했다. 이 집에 있는 것은 나와 데이비드 다임뿐인데 그의 방에선 뒷마당이 보이지 않았고 더욱이 그는 군인 답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나는 조금 눈치를 살피다 먼저 발을 씻었다. 지하수가 소름끼치게 시원했다.
팔다리를 닦자 머리와 몸도 씻어내고 싶어졌다. 나는 주위를 살피곤 재빠르게 옷을 벗었다.
"아.. 시원해..."
꿉꿉함이 싹 날아갔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감았다. 젖은 머리를 꾹 짜며 몸을 숙이는데 갑자기 뒤에서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
데이비드 다임이 어쩔 줄 몰라하며 서있었다. 그의 당황이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입만 뻐끔거리다 간신히 말했다.
"뒤, 뒤돌아, 주세요..."
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황급히 몸을 돌렸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몸에 걸쳤다. 침묵속에 내 옷자락이 펄럭대는 소리만 울렸다.
그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목이 말라서..."
"탁자에 물병... 올려 뒀잖아요."
"..."
부끄러워서 괜시리 화가 났다. 나는 젖은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옷가지를 챙겨들고 그를 지나쳤다. 다임은 안절부절 못하며 내 뒤를 졸졸 따랐다.
"냉침한 밀크티라도 드실래요?"
나는 쌀쌀맞게 물었다. 그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찻물을 올리는동안 오갈데 없던 분노도 점점 흩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연결된 바깥에서 몸을 씻은 내 잘못이었으니까... 분노 다음은 부끄러운 풀죽음이었다. 나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으며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1층 욕실이 고장났어요."
"아..."
내가 변명하듯 중얼거리자 그가 맥아리없이 답했다. 뭐라고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딱히 할말이 없었다.
삐이-
주전자에 물이 끓었다. 나는 꿀과 찻잎을 넣은 티컵에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우유를 꺼냈다.
"여기요."
다임은 물끄러미 컵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구석에 있던 석유등에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노란 불빛이 잉크처럼 어둠속에 퍼졌다.
아무것도 타지않은 뜨거운 물을 홀짝거리는데 그가 물었다.
"안마십니까? 밀크티..."
"밤에 마시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러고보니 그때도,"
"그때요?"
그는 고개를 젓더니 대답없이 한모금을 삼켰다.
"불편한건... 없습니까?"
"불편할게 뭐 있겠어요. 할 일도 그다지 없는데..."
잠시간의 침묵, 다임은 컵을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
"...실례가 안된다면 묻고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세요."
그는 망설이며 말했다.
"더이상 사랑할 마음이 없다는 건,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까?"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몇시간 전 이제는 감정도 사그라들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우습도록 선명한 무언가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조용히 대꾸했다.
"네."
그는 입술을 깨물고는 조금 조급하게 물었다.
"누가 당신을 아프게 했습니까? 상처를 남겼습니까?"
"그런건..."
부정하려다말고 말을 멈추었다.
잠시후에 나는 이제까진 꺼내놓은 적 없는 도련님의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6년이나 지나, 갑자기 말 할 마음이 들었다는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밤이라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어둠속에 잠긴 그의 얼굴이 도련님과 닮아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임은 혼란스러워보였다. 이상하게도 기쁜것 같기도 했다.
"그는 당신에게 부족한 남자였던 것 같은데요."
"그런식으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작고 어리고 볼품없었습니다, 당신을 지켜주지도 못했고..."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괜히 말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전..."
나는 화가 났다. 그러나 다임의 얼굴은 몹시 붉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그.. 그 분이 돌아온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의미없는 가정이에요. 무엇보다 그 분을 그런식으로 사랑했던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그 사람이 가장..."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답 해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돌아오신다고 하더라도, 그 분이 절 좋아하진 않겠죠."
"아닙니다."
다임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몸을 숙이며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당신을 좋아했을겁니다, 당신은 상냥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우니까요. 당신은 당신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나는 그 진심을 다한 칭찬에 볼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레 몹시 들떠, 전날 꾼 꿈을 설명하는 꼬마처럼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그였다면 당신이 너무 좋아 차라리 죽고 싶었을겁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했을겁니다. 아마 어른이 되자마자 당신에게 청혼했겠죠. 당신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하며... 언젠간 아이도 낳았을겁니다. 아니, 사실 그런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내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뤄질 수 없는 가능성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다임은 내게 가까이 오더니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 따뜻한 손이 볼을 스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 그의 숨결이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그였다면..."
그러나 다임은 가렛 헤드룬드가 아니었다. 그는 그를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들뜬 기색이 씻겨나갔다. 나는 애써 미소지었다.
"정말 그랬다면 좋았겠네요."
머리는 어느새 말라있었다. 몸을 뒤로 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임의 얼굴에 낯익은 무표정이 돌아와있었다. 그는 입가를 만지작거리더니 테이블 위에있던 등을 들었다.
"방 앞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먼 곳도 아닌걸요."
그는 여전히 우두커니 서있었다. 나는 주방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가..."
갑자기 다임이 말했다.
"네?"
"그가 나쁜 사람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도련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걸요."
"그냥, 가정입니다. 그가 아주 잔인하고 교활한 어른으로 자랐어도 당신은 그를 사랑했을까요?"
"글쎄요..."
나는 의미없이 웃었다.
"너무 늦었네요, 주무세요."
대답대신 인사를 건내자 다임도 더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목이 말랐던게 아니라 방에 허니가 없어서 찾고 있었던거임ㅇㅇ
가렛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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