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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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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표정의 소라를 마주하자 시시오는 제가 준비한 말을 모두 잊고 말았어 제가 먼저 화가 나서 나온 건 맞지만 그래도 소라 역시 제게 서운한 말을 한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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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소라..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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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 싫어서 나갔잖아. 근데 왜 다시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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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니에요. 왜 그렇게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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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밉다고 소리치고 나간 사람은 그럼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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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시시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어 억울한 제 마음과는 별개로 소라의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거든

명색에 보호자라는 사람이 제 수인을 내버려두고 나가버린 건 제 잘못이 분명했지만 소라가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이자 서러움이 밀려왔지

그래서인지 잊었던 말이 번뜩 떠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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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소라도 나한테 미운 말 했잖아요! 기껏 빌려온 요트인데 거기다 대고 누가 빌려오라고 했냐느니. 그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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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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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요..”








하나뿐인 비장의 카드마저 소라의 무감한 한마디에 사라져 버리자 시시오는 정말이지 더 이상 내세울 게 없었어 그러니 어떡해? 이제 그가 할 말은 오직 사과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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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운 소리를 좀 했기로서니. 보호자가 돼서 그렇게 집을 나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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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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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나도 그때 말이 심했어요. 그럼 대화로 풀어야죠. 서운하다고 상황을 회피하면 어쩌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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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소라..”












차라리 소라가 저처럼 감정적으로 소리쳤다면 덜 무서웠을까.
이렇게 표정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제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할 때마다 시시오는 소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뽀족한 송곳이 되어 저의 양심을 콕콕 찌르는듯했어

그래도, 이렇게 차분한 소라니까 조금만 더 숙이고 들어간다면 이제 그만 저를 용서해 줄 것 같다고 그런 대단한 착각을 하던 시시오 였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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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정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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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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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갈까요? 시시오가 나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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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소라. 왜 나가요?”












방금까지 멋대로 나간 자신을 매섭게 비난하던 소라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시시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 내가 중간에 소라의 말 중 놓친 게 있는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둘 중 하나가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될리 없잖아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동공으로 제발 설명해달라는 눈빛을 보내자 소라는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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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거 우리 오늘 하루는 떨어져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난 솔직히 아직 시시오를 용서해 주고 싶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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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지금 저보고 소라를 놔두고 다른 곳에서 자라고요? 어쩜. 그런 잔인한 말을… 차라리 나를 때려요. 소라. 화 풀릴 때까지 때리고 나 용서해 주면 안 될까요? ”













어느새 무너지듯 주저앉은 시시오가 소라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애원해 보아도 소라는 인상을 작게 찌푸릴 뿐이었어 대체 날 뭘로 보고 때리라 느리 그런 말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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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시오를 왜 때려요. 일어나요. 고작 하루잖아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갖고 그러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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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도 떨어지기 싫어요. 게다가 아까 혼자 충분히 생각했다고요. 소라.. 어디 가요? 소라!”










정말이지 이러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소라는 말없이 침실로 들어와 문을 잠갔어 그럼 그것도 못 참겠는지 문 앞에서 시시오가 저를 조심스레 불러댔지
나 참 누가 수인인지. 이럴 때 보면 시시오가 꼭 강아지 수인 같았어 주인을 너무 좋아하는 성가시게 큰 리트리버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소라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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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예요.”






바로 시시오의 부모님께 였지







“너는 파트너라는 녀석이 혼자 집을 나가?”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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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엄마 아파요! 아빠 놔요. 악! ”










소라가 방으로 들어간 지 십 분 만에 부모님이 들이닥치셨어 방밖에 있던 시시오만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영문도 모른 채 두 분을 바라보다 애꿎은 등짝을 얻어맞았지
정신없이 쏟아지는 아픔보다 시시오는 소라에 대한 배신감으로 눈이 세모꼴이 되었어 그 잠깐 사이에 전화로 저희 둘 일을 다 일러 받치다니! 안 하던 유치한 짓을 다하고 치사해 정말!



게다가 '소라 나 좀 살려줘요.' 하고 일부러 죽는소리를 해봐도 못 본 척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거 있지
오늘 못 보던 소라 모습을 잔뜩 보게 된 시시오는 당황하고 말았어 그리고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
어떡해, 소라가 정말 화났나 봐.



감정이 널을 뛰는 시시오가 덜컥 겁이 나서 소라와 얘기해 보려 했는데 그 사이에 끼어든 부모님이 저를 짐짝처럼 끌고 나가려 하는 거야.
시시오는 다급하게 두 분을 번갈아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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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왜 이러세요."







"왜긴 소라가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잖니. 그러니까 네가 나가야지."

"여기 소라 명의인 거 잊었냐? 넌 소라가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 거야."








아... 그랬지.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오르자 시시오는 잠시 멍해졌어
이 집은 소라와 파트너를 맺은 날 부모님이 선물이라며 소라 명의로 선물해 준 집이었어 도보 5분 내에 부모님 집이 있어서 두 분의 사심이 가득하긴 했지만 빵집과 가깝기도 했고 둘이 살기엔 과분히 좋은 집이라 처음에 그저 감사하기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랬지 엄연히 따지면 이곳은 소라의 집이었어 저는 소라가 나가라면 군말 없이 나가야 하는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 시시오는 왠지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지
그래서 버둥거리던 몸부림도 멈추고 얌전하게 부모님한테 연행되어 나갔어 물론 미련은 남아서 현관문이 닫히는 내내 소라를 빤히 쳐다보긴 했지만 말이야


무슨 누가 보면 영영 헤어지자고 한 줄 알겠네. 고작 하룻밤일 뿐인데 주인한테 버림받은 강아지 눈을 하던 시시오 때문에 소라도 내심 심란해져 버렸어
분명 제가 원한 거였는데, 그래서 치사하게 시시오의 부모님까지 소환해서 시시오를 두 분 댁에 강제로 보내버린 건데. 왜인지 공허한 기분이 들지 뭐야 소라는 잡생각을 떨쳐내려 주방으로 향했어 뭐라도 해서 이 기분을 떨쳐내고 싶었거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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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시시오가 해준 건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이제껏 소라가 주방에서 했던 건 시시오의 보조 노릇뿐이었어 그마저도 샐러드용 야채를 손질하거나, 다 만들어진 음식을 1인분씩 그릇에 옮겨 담는 다던가, 식탁에 소라 마음에 드는 카트리지를 놔두는 것 정도였지 그러니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를 해본 적 없던 여우는 제가 만든 이상한 토마토 파스타를 앞에 두고 세상 심각해져 버렸어 분명 시시오는 엄청 쉽게 만드는 거였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운 거지? 게다가 맛은 또 왜 이러냐고 겨우 이걸 만들겠다며 한 시간 동안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소라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





그래, 고작 요리를 망쳤을 뿐인데 기분이 바닥을 쳤지


오늘 하루 종일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
아니 이렇게 된 건 전부 제 탓일지 몰라 그냥 아까 시시오가 요트 타러 가자고 할 때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면 지금쯤 요트 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지 모르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요트 빌려왔다고 했을 때 미운 말은 하지 말걸 그럼 시시오가 혼자 나갈 일도 없었을 거고. 이렇게 나 혼자 요리를 할 일도 없었을 텐데 뒤늦은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오자 소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주르륵 미끄러지듯 주저앉았어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식욕이 하나도 들지 않았지

그때였어


띵똥-





초인종이 울렸지 사람인 채로 여우 귀를 내놓고 있던 소라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랐어
누구지? 시시오인가? 그 생각이 들자 소라는 저도 모르게 꼬리를 살랑였지 제가 무력까지 동원해서 쫓아냈으면서 말이야
엉망인 주방을 뒤로한 채 와다다 달려가서 현관문을 열었지만 그곳엔 소라가 기대하던 누구도 없었어 대신 커다란 도시락통이 쪽지와 함께 놓여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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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생각해 보니 집에 먹을 게 없을 것 같아서 도시락 싸왔어요.
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었죠? 미안해요.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아요.
오늘은 소라 말대로 할게요. (... 근데 솔직히 나는 정말 소라와 떨어지는 거 싫어요ㅠㅜㅠ)
잘 자요.
p.s.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가 보고 싶어지면 언제든 말해줘요. 문자로 점 하나만 찍어보내도 갈 테니까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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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글씨는 다정한 시시오를 빼닮아있었어
그러고 보면 시시오가 저한테 이런 편지를 써준 게 처음이었지 늘 한시도 떨어진 적 없으니 이런 걸 써볼 일이 없었던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 소라는 문득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 서러움이 밀려왔어 아까부터 쌓인 감정이 한계치에 다다르자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퐁퐁 흘러내렸지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겠다, 소라는 엉엉 소리 내 울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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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엉..시시오.."







오늘 하루를 모두 자신 때문에 망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거든
아무것도 필요 없이 시시오가 보고 싶었지 그래서 시시오의 이름을 중얼거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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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소라 왜 울어요? 내가 오지 말랬는데 멋대로 도시락 줘서 그래요? 미안해요. 나는 그냥 소라가 걱정돼서.. 울지 마요 응? 내가 잘못했어요."










눈앞에 시시오가 나타났지 뭐야. 알고 보니 시시오는 도시락을 들고 들어가는 소라라도 보고 가고 싶어서 나무 뒤에 숨어있었대
그런데 갑자기 소라가 울음을 터트려서 혼비백산한 채로 튀어나온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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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끅,,,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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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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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요..."













원망을 들을 줄 알았던 시시오는 의외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잠시 굳어버렸는데 그 찰나를 참지 못하고 소라가 시시오의 품을 파고들었지 그리곤 곧장 여우로 변해서 낑낑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어 그 모습이 어찌나 서럽던지 품에 꼭 안고 있던 시시오도 울컥하고 말았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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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소라.. 내가 미안해요. 끅, 울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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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엉..나도 미안해요. 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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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흑, 소라는 잘못 없어요. ”










결국 시시오의 가출 아닌 가출과 두 사람의 다툼은 현관 앞에서 볼썽사납게 울어버리는 것으로 겨우 끝이 났어















+
아무리 어른스러운척해도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여우라서 자존심 때문에 + 화난 감정에 휩쓸려 시시오 쫓아내긴 했찌만 소라 혼자 남겨질 때부터 괜히 우울하고 슬프고 그랬대

+
소라가 엉망으로 만든 주방은 시시오가 바보처럼 실실 웃으면서 다 정리했고 소라는 현관에서 울어버린 게 너무 창피해서 방으로 숨어버렸대


+
소라는 시시오와 협의해서 한달에 한번은 온전히 시시오랑만 보내기로 했대












ㅎ..변명의 여지도 없이 그냥 존나 늦음 미안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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