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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동안 노부는 몇 박스의 흥분제를 팔았다. 그러나 한 달 목표 판매량이 백 박스였던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실적이었다. 평소 실적이 좋기로 소문난 직원 A는 진작 백 박스를 팔았다는데 그의 영업 비밀은 언제나 일급 기밀이었다. 사재기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마저도 돈 나올 구멍이 있어야 가능하니 할 수만 있다면 노부도 사재기로 실적을 올리고 싶었다. 실적은 개판이지만 분기 막바지에 몰려있던 보고서를 처리하고 나니 오랜만에 저녁 시간이 여유로웠다. 노부는 해 지는 거리를 걸으며 그날 일을 떠올렸다. 앳된 소년을 안고 가게를 나오면서 케이타를 다시 못 본 게 내심 아쉬웠다. 난생 처음 남자를 안았던 환락가의 밤이었건만 기억에 남는 건 케이타의 얼굴이었다. 뾰족한 눈매와 턱, 반짝이는 피부와 입술 그리고 남자의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굴곡, 가녀림. 그래, 물건을 떼어버린 이상 남자의 몸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는 몸이지만. 확실한 건 노부는 한가해진 시점 가장 먼저 그를 떠올렸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발은 알아서 그곳을 향했다.

"오늘은 장사 접었어요."

덩치 큰 남자 대신 예쁘장하고 싸가지 없는 직원이 문 앞을 지키고 서있었다. 실제로 문 앞엔 '영업 끝'이라는 표시가 되어있었고 반쯤 열린 문 안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벌써요?"

"두 번 말해야 돼요?"

피곤에 절어 더 이상 불쾌하고 싶지 않았던 노부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저번에 타고 왔던 차는 회사 소유라 근무 시간 외에는 탈 수 없어 늘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이용했다. 회사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40분, 또 여기에서 집까지는 못해도 1시간은 걸릴 것이었다. 버스를 타려면 정류장까지 꽤 돌아가야해서 마음속으로 그냥 걷기를 택하는데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삼십대 초반으로 아직 아저씨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그였지만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고 시야에 그 소년이 걸렸다. 노부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라니... 나 서른한 살 밖에 안 됐어."

"내내 안 오다가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오셨어요."

"아... 그래. 오늘 왜 장사 안 하는 거야?"

소년은 누가 들을까 주변을 여러 번 두리번거린 뒤 노부에게 바짝 붙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버릇이 안 좋은 손님이 한 명 있었는데요... 우리 가게뿐만 아니라 이 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에서 출입금지를 당했대요. 그런데 1년만에 이름도 외모도 싹 바꿔서 나타난 거예요. 지난달에 와서 케이타님 앞으로 예약 걸고 갔고요. 그땐 아무도 몰랐죠."

"그래서... 요점이 뭐야? 그 사람이 어쨌는데."

"케이타님을 때렸어요. 심하게요... 미닫이 문이 열리지 않게 안에서 기다란 막대기까지 받쳐놓고. 하필 힘 좀 쓰는 직원들은 죄다 외출 중이거나 쉬는 날이었고요. 그 미친놈 떼어내느라 진짜 애먹었어요."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맞는다니, 싫었다.

"병원에 실려갔다가 방금 돌아오셨어요. 입원할 일은 아니라고요. 장사는 아무래도 당분간 못하지 싶어요. 얼굴이 엉망이 되셨으니까... 로비 물건도 마구 던지고 난리법석을 떨어서 청소만 두 시간 째예요."

"왜 그런 거래?"

"모르겠어요. 다른 가게들도 지금 비상이에요. 다음 타겟은 자기들일거라고. 출입 금지 먹었던 게 억울했나...? 애초에 이상한 짓을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때 소년이 오른쪽 귀에 끼고 있던 물체에서 파란색 빛이 깜빡였다.

"아... 그만 떠들고 들어오래요. 갈게요 아저씨."

노부 다음으로 다른 손님들도 받았는지 그때와 달리 뭔가 능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다가 노부는 충동적으로 소년을 불러세웠다.

"케이타님 예약은 어떻게 하는 거야?"


















분명 안내받았던 예약일은 두 달 뒤였는데 나흘도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도착했다. 가게 번호가 아닌 저장되지 않은 일반 번호였다. [케이타님이 내일 와도 된대요. 장사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닷새 동안 못 온 손님들부터 스케줄 빼느라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아저씨는 특별히 내일 받아준대요. 대신 저녁 8시에요. 그땐 케이타님 휴식 시간이라 원래 아무것도 안 하시는데...]

메시지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길게 답장할 수 없어 [갈게.] 라고만 보낸 뒤 번호를 저장했다. 이름은 멋대로 '슌'이라고 입력했다. 그러고 보니 몇 주 전 약을 팔러 갔을 때도 그 시간이었다. 몇 시부터 손님을 받는지는 몰라도 중간중간 30분씩 쉬어주긴 해야겠지. 싱거운 생각을 하며 다시 일에 집중해 보지만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 그리고 아저씨 무슨 약 판다면서요? 흥분제 같은 거요. 그거 저한테도 파시면 안 돼요?]

왠지 애한테 그런 걸 파는 건 양심에 걸린다는 생각도 잠시, 그 애와 밤까지 보내놓고 이제 와서 양심을 논하는 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박스에 6만엔이야. 50ml짜리 다섯 병 들었어.]

[헥. 비싸네요. 그래도 주세요. 한 박스 살게요!]

돈도 안 내고 공짜로 안았던 애가 한 박스 팔아준다니 기분이 영 개운하지 못했지만 노부는 엑셀에 판매 수량을 수정했다. 겨우 한 박스 더 판다고 실적이 티나게 오르지는 않지만 판매액이 상승한 걸 보고 조금 안심됐다. 얼마 전 신혼 여행을 다녀온 후배 직원이 돌린 쿠키 선물세트가 여전히 서랍 안에 들어있었다. 약 한 박스를 내밀고, 돈을 받은 뒤 감사의 의미로 이 쿠키를 주면 딱일 것 같았다.

그날 밤 케이타가 나오는 꿈을 꿨다. 얼굴은 흐릿해 보이지 않았고 몸만 선명했다. 긴 팔과 다리로 자신을 끌어안고 깊이 넣어달라 보채는 장면이 반복됐다. 최선을 다해도 케이타를 만족시키란 쉽지 않았다. 그는 계속 아래를 붙여오며 격렬하게 허리를 지분거렸다. 끝내 원하는 곳에 다다르지 못한 짜증으로 급하게 로브를 챙겨 입더니 술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덩치 좋은 문지기가 들어와 자신을 들어 문밖으로 내던졌다. 꿈에서 깬 노부는 자신의 속옷이 젖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 줄에 몽정하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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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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