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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sd 어나더 3나더 4나더 5나더 6나더 7나더 8나더 9나더 10나더 11나더
6년 전, 그날 팀원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들떠 있었다고 해도 다들 프로였고 미사일이 쏟아지는 전장이나 불길이 치솟는 화재 현장이나 반군의 총탄이 날아다니는 정글이나 박격포가 펑펑 터지는 사막에서 굴러먹은 세월이 1-2년이 아닌 베테랑들이라 장비를 점검하는 손길도, 침투 계획을 점검하는 눈빛도 매서웠지만 확실히 들떠 있었다. 그들의 막내가 또 한 살을 먹은 걸 기념해줄 막내의 생일이었다. 팀원들은 작전을 수행하고 돌아가서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막내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도 주문해 놓고 선물도 각자 준비해 놨다. 그들의 막내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잘 마시지도 않았다. 막내의 말로는 외인부대 시절 술에 취해 있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입에 대지 않아 익숙지 않은 것이라 했다. 막내가 팀에 들어온 후로는 가끔 술자리도 했으나 막내는 그저 맥주만 홀짝거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팀원 한 명이 오늘 막내의 생일을 맞아 고급 위스키를 준비했다.
"우리 여우 위스키 처음 마셔보는 건데, 좋은 걸로 시작해야지."
직접 큰 돈을 들여 위스키를 준비한 팀원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마치다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 달 월급을 쏟아 부어 산 위스키니까 기대하라고 장난스레 거들먹거리기도 했다.
왠지 불길한 느낌에 아침부터 체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미묘한 복통과 두통에 시달리고 있던 건 마치다 케이타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마치다는 팀원들을 믿었다.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7년을 구르고 와서 웬만한 살육에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 냉혈한을 막내로 두고도 그 무시무시한 막내가 예뻐 죽는 팀장이고 팀원들이지만 그 무시무시한 막내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베테랑들이었기 때문에 팀원들을 믿었다.
알파 팀이 들어가기로 예정된 폐광에는 몇 년 전 숨겨놓은 무기와 장비들이 있었다. 무기를 폐광에 숨겨놓은 건 일본 국내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 PMC의 특성상 권총 외에 무기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일본은 민간 조직의 무기 소유 및 이용이 불법인 나라였고 함부로 대형 무기를 휘둘렀다가는 회사가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권총 외의 무기는 거의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쓸 일은 더더욱 없었다. 폐광에 숨겨놓은 무기는 몇 년 전 이 조직이 태평양의 모 국가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만일을 대비해서 몰래 국내에 반입했으나 쓸 일이 없고 들켰을 때 결과를 감당할 수 없어 숨겨둔 것이었다. 이 폐광의 소유주가 PMC 소유주와 모종의 관계가 있어서 안전하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퍠광을 감시하던 요원들이 이 폐광 주변에서 주기적으로 열반응이 감지됐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숨겨놓은 무기와 장비를 회수하면서 폐광 주변과 내부에 외부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내부에서 적발됐을시 신변을 확보하는 것까지가 작전의 목표였다.
폐광 주변을 먼저 수색했지만 소형 동물들의 발자국이나 배설물 흔적이 조금 있을 뿐 사람이 밟고 다닌 흔적은 전혀 없었다. 정말로 전혀.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때 마치다의 불길한 기분은 더욱 심해졌다.
열반응이 있었다며?
마치다가 이 회사에서 아는 사람들이라고는 같은 현장팀인 알파팀 사람들 뿐이었다. 팀장의 추천을 받아 들어왔기에 면접도 형식적이었고 그때 면접을 본 사람과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도 않아서 면접 때 만난 부대표는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같이 훈련했던 사람들 얼굴은 알지만 그때 같이 훈련한 사람들이 어느 팀으로 갔는지도 몰랐다. 고작 1년 공동 훈련을 할 때 만났다가 지령팀 훈련코스로 간 사람들은 더더욱. 그래서 이 폐광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사람 뽑을 때 까탈스러운 이 조직의 특성상 일을 허투로 하는 놈들은 아닐 텐데 사람과 소동물의 열반응 차이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함정인가.
손 끝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조이는 기분이었지만 마치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팀장을 바라봤다. 우연인지 마침 마치다를 보던 팀장과 눈이 마주치자 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치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직도 배 아파, 우리 여우?"
"괜찮아요."
"괜찮아야지. 오늘 우리 막내 생일인데, 배가 안 아파야 우리 여우 좋아하는 치즈케이크 잔뜩 먹지."
함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파 팀에 함정을 팔 사람들이 없었다. 여기는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도 아니고 테러범이나 반군이 설치는 곳도 아닌데 대체 누가 이들에게 함정을 파겠는가. 게다가 함정이라면 주변에 사람들이 다닌 발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폐광 주변 숲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요 며칠 비가 많이 내려 흙길에 발자국이 있었다면 지워졌겠지만... 마치다가 흙길을 꼼꼼히 살피고 있자,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으로 팀장과 지령팀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주변에 발자국이나 사람이 다닌 흔적은 전혀 없다."
[확실한가?]
"그쪽도 카메라로 다 봤잖아. 열반응 있었다는 거 확실해?"
[확인해 보겠다.]
"주변에서 더 확인할 곳 있나?"
[없다.]
"그럼 안으로 진입하겠다."
[오케이.]
팀장은 장난스럽게 폐광 감시하던 놈들 징계 먹이고 우리는 포상금 타자며 웃었지만 폐광 입구로 다가가는 팀장과 팀원들의 얼굴에는 다시 김장감이 깃들었다. 밖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고 해도 내부까지 안전하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폐광이라 안에 연결돼 있던 조명은 이미 수명을 다한 지 오래여서 팀원들은 전부 손전등과 권총을 같이 들고 있었다. 모두 왼손에 손전등을 들고 권총을 든 오른손을 받친 채로 안으로 들어갔지만 안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오래된 폐광 특유의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짓눌렀고 기분나쁜 냄새가 가득했다. 마치다는 주변을 꼼꼼히 확인했다. 지령팀의 지령을 들으며 갱도를 따라서 쭉 이동하니 안쪽에서 넓은 공동이 나왔고 공동에서 연결된 작은 통로로 들어가자 세로로 긴 상자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상자 발견."
팀장은 가슴팍에 달고 있던 카메라를 떼서 층층이 쌓인 상자들을 카메라에 보여줬다.
"이 상자 맞나?"
[맞다.]
"개봉하겠다."
[오케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당연히 모두가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지 살폈고 주변에 작은 통로가 나올 때마다 꼼꼼히 확인했다. 인기척은 전혀 없었고 먼지가 가득 쌓인 광차용 레일 위에 남은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갱도는 좁고 광산이 폐쇄된 후 그대로 남겨진 광차나 장비들이 군데군데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널부러져 있었지만 먼지가 쓸린 곳도 많지 않았다. 몇몇 군데에서 이상하게 먼지가 쓸린 흔적이 보였지만 누군가 반복적으로 다닌 흔적이라기엔 남은 흔적이 너무 적었다. 게다가 사람이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먼지가 쓸린 흔적이 너무 얇았다. 사람이 지나가면서 몸으로 쓸었다면 더 넓게 쓸려야 할 텐데 그저 얇은 선이 몇 개 남았을 뿐이었다. 뭐지. 마치다가 그 흔적을 유심히 바라보며 대체 뭐에 쓸린 흔적인지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상자를 열어서 총기를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자가 열리는 소리가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들렸다. 상자를 열 때마다 팀장과 팀원들 몇이 안에 들어있는 소총을 확인했다.
"이 5개 상자가 전부 총기라고? 그때 총기를 이만큼 쓰진 않았을 텐데. 예비용으로 대체 몇 정을 구매한 거야? 돈도 많아, 하여튼."
팀원 한 명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마치다의 귓가를 스쳤다.
"상자 한두 개는 실탄이나 다른 장비일걸? 상자가 5개나 될 정도로 구매하진 않았어. 짠돌이들잖아. 윗대가리들."
다른 팀원이 키득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쌓여있던 상자는 총 5개였다. 팀원이 세 번째 상자를 열려는 듯 달칵하고 잠금쇠를 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여전히 불길한 기분은 가시지 않아서 주변을 둘러보던 마치다는 순간 코 끝을 스치는 기름 냄새를 맡고 팀장 쪽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팀장은 상자 쪽으로 손전등을 비춰주고 있었고 다른 팀원이 상자 앞에 앉아서 상자를 열고 있었다.
"열지 말아요! 열지 마!"
그러나 마치다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자 뚜껑이 열렸고 안에는 외인부대 시절 정글이나 사막에서 징그럽게 많이 봤던 C4 폭탄이 눈앞에 드러났다.
"뭐야! 폭탄이잖아!"
[폭탄? 무슨 소리야? 폭탄이 왜 있어?]
지령팀은 자기들도 몰랐다는 듯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이 폭탄은 오래 보관된 폭탄이 아니었다. 상자를 여는 순간 짙은 기름 냄새가 확 풍겼다. 그리고 갱도에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없는지만 보느라고 미처 살피지 못했던 상자 주변의 기름 자국도 이제야 보였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기름 자국을 문지르자 손가락에 젖은 기름이 묻어났다. 이건 절대로 몇 년 전에 남은 흔적이 아니었다. 누군가 며칠 전에 설치한 폭탄이었다.
함정.
분명히 함정이었다. 눈을 확 돌리자 상자 안의 폭탄에 연결된 도화선이 보였다. 도화선의 끝쪽을 보자 붉게 타들어오는 작은 불빛도 보였다.
"함정이에요!"
"철수해!"
마치다와 팀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고 팀원들은 전속력으로 출구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뒤에서 폭탄이 터지는 커다란 굉음과 폐광의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전속력으로 달렸으나 여기저기 방치된 장비며 광차들 때문에 몇십 미터도 채 가지 못했을 때, 팀원의 억누른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무너진 천장에 온몸이 깔린 팀원의 팔만 조금 나온 게 보였다. 마치다와 팀원들은 바로 몸을 돌려 구하려고 했으나 또 폭음이 울리며 깔려 버린 팀원과 마치다 사이에서 또 천장이 무너졌다. 조금만 더 돌아갔으면 마치다와 팀원들까지 전부 깔릴 뻔했다.
그제야 지금까지 발자국을 찾느라 아래쪽으로만 손전등을 비춰서 미처 보지 못했던 천장 쪽으로 쭉 연결된 도화선이 보였다. 폐광 전체에 폭탄이 깔려 있었다. 아니, 폐광 전체에 폭탄이 붙어 있었다. 팀장이 이를 악물고 앞쪽의 천장을 비추자 천장에 붙어 있는 폭탄들이 보였다. 폐광의 흙벽과 비슷한 색으로 위장해 놔서 진입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폭탄들이 수십 개나.
이 폐광의 갱도는 줄줄이 무너지게 돼 있었다.
"뛰어! 무조건 뛰어!"
조금 전 천장에 깔린 팀원이 비명을 크게 지르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팀원들이 저를 구하러 돌아올까 봐. 무너지는 천장에 깔리면서도 그냥 저를 버리고 가라고 이를 악물어서 윽하는 작은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리라.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지만 울면 시야가 흐려진다. 남은 팀원들이라도 살려야 했다. 조금 전의 폭발로 여전히 귀가 멍멍하고 머리가 멍했지만 마치다는 이를 악물고 달려야 했다. 그러나 처음 터진 폭탄에 연결돼 있던 도화선은 빠르게 타들어갔고 줄줄이 폭탄이 터지며 천장은 계속 무너져 내렸다. 뒤따라 달려오던 팀원들의 발자국 소리가 줄어들고 폭탄이 터지는 굉음과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늘어나는 동안 마치다의 심장도 계속 무너졌다.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어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언제 어떤 파편에 맞았는지 피부가 드러난 손등이며 얼굴에서는 눈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것들이 계속 흘렀다.
'우리 여우. 우리 막내'하며 챙겨주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발자국 소리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마치다의 마음도 조금씩 깎여나가는 것 같았다. 태아나자마자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라던 시절에도 빛은 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 마치다와 친구들을 보살펴 주던 다정한 사람. 하지만 보육원을 운영하던 이들이 도망치면서 보육원이 폐쇄되고 옮겨간 곳은 지옥이었다. 갑작스러운 폐쇄로 서류들이 몽땅 사라졌다더니 어린 마치다의 빛이 돼 줬던 사람은 마치다가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해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 새로 간 곳에는 후원자 따위는 없었고 보육원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은 보육원장에게 비싼 밥과 술을 얻어먹고 허허 웃으며 돌아갔다. 보육원의 큰 누나와 형들도 동생들에게 서슴없이 손찌검을 했고 원장과 몇 안 되는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심심하면 손을 댔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그 지옥을 탈출해서 길거리를 헤매다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고 나쁜 어른들에게 끌려가 험한 일을 당할 뻔한 일을 수차레 겪고 마치다는 숙식을 제공한다는 공장으로 갔다. 그곳은 또 다른 지옥이었다. 밤낮으로 험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공장장은 숙식제공이라는 핑계로 안 그래도 미성년자라고 적던 월급을 반이나 뜯어갔다. 공장장과 공장 기숙사 방장은 수시로 마치다와 마치다 같은 어린 가출 청소년들을 때렸다. 그래도 갈 데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식당 TV로 본 프랑스 외인부대의 활약이 마치다의 삶을 바꿨다. 물론 그곳이 천국일 거라고, 그곳에 낭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지옥에서는 탈출할 수 있겠지. 그곳이 다른 지옥일지라도.
프랑스 외인부대는 역시 지옥이었다. 하지만 희망은 있는 지옥이었다. 외국인이었고 이제 막 성년이 된 나이였지만 무슨 일이든 악으로 해내는 마치다를 본 상사들은 마음에 들어했다. 입대 초기에는 학대도 가혹행위도 있었지만 마치다의 훈련 성과를 좋게 본 상사 하나가 마치다를 자신의 부대로 뽑아갔고 몇 개월의 지옥훈련을 더 거친 뒤 처음 해외로 파병됐다. 그 후 마치다는 몇 년 동안 정글로 사막으로 떠돌며 반군을 상대하고 테러범들과 싸웠다. 돈을 벌고 성과를 챙겼으나 마음을 열지는 못했다. 그때부터 따라붙은 지긋지긋하지만 밉지 않은 인간들, 그들이 스스로 마치다의 '친구'라 말하는 이들도 생겼다. 그때까지 친구 같은 게 없었던 마치다는 그 귀찮은 인간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으나 '친구'는 끈질겼고 마치다가 중사를 단 후 제대를 선택하자 마치다를 따라 제대해 마치다가 입사한 프랑스 PMC까지 따라왔다. 그곳에서 스스로 '친구'라고 주장하는 인간이 또 생겼다.
그러나 마치다가 정말로 다시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건 프랑스 PMC에서 일본지사를 열어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놀랍게도 어린 시절 마치다의 빛이었던 그 사람은 지사장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몇 년 더 프랑스 PMC의 일본지사에서 활동하다 프랑스 PMC에서 일본지사에 지사를 관리할 소수의 인원만 남기고 철수하기로 했을 때, 마치다는 귀국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마치다의 빛이 있는 조직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치다는 작은 빛을 여러 개 만났다. 아저씨와 한 팀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전부 마치다의 작은 빛이 되었다. 마치다가 프랑스 외인부대에 있던 시절 부대 내에서 마치다의 별명은 염라였다. 사실 그 서양인들은 염라가 어떤 존재인지도 몰랐다. 다만 누군가가 동양의 염라는 서양에서 말하는 지옥의 수장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저 녀석이 딱 지옥의 왕 아니냐고 해서 별명이 염라가 돼 버린 것이었다. 마치다가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기계처럼 오직 임무에만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치다가 정말로 아무나 마구 죽여댄 건 아니었다. 심지어 테러범이나 반군들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도 꼭 죽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목숨을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목숨을 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전혀 망설이지 않고 눈 깜빡할 사이에 목숨을 거둬버렸다. 그래서였다. 그런데 마치다를 팀의 막내로 받아들인 마치다의 빛과 작은 빛들은 그저 마치다가 그들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아껴주고 애지중지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텅 비어 있던 마치다의 가슴에도 작게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그 마음은 계속 조금씩 조금씩 자랐다.
그리고 지금 마치다의 작은 빛들이 하나씩 꺼져가는 가운데, 마치다의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다시 깎여나가고 있었다.
폐광 내에 설치돼 있던 폭탄들은 줄줄이 도화선으로 연결돼 있어서 사람의 발로는 그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속도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천장이 무너지는 속도를 가까스로 앞지르는 게 고작이었다.
마침내 저 멀리 출구가 보이는 곳까지 갔을 때 마치다의 옆에 있는 건 팀장뿐이었다. 모두가 무너지는 폐광 천장에 깔려 버렸다. 심장이 찢어지고 목구멍으로 피가 치솟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총과 손전등을 꽉 쥔 손가락 끝까지 피가 닿지 않아 손이 차갑게 굳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출구가 코앞이었다. 팀장님은 아직 괜찮아. 팀장님만이라도 살릴 수 있어. 뛰어! 뛰어!
그때였다.
옆에서 달리던 팀장이 마치다의 등을 앞으로 확 밀면서 눈앞에 흙먼지가 확 일었고 귓가에 다시 끔찍한 폭음이 울렸다. 귀가 윙 울리며 멍멍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머리는 또 핑 돌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마치다가 뒤를 돌아보자 무너지는 천장에 깔려서 온몸이 피범벅이 된 팀장이 보였다.
"팀... 팀장님!"
마치다가 주저앉아서 팀장을 깔아버린 돌을 치우려고 하자, 팀장이 출구까지 이어진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걸 흘긋 보더니 마치다의 손을 꽉 잡았다.
"우리 팀에 새 막내 들어온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스즈키 노부유키야. 너 막내 탈출시켜줄 예정이었던 우리 새 막내. 기억해."
"팀장님, 기다려요. 제가 금방."
"나가. 케이타."
"안 돼요. 제가 구해줄게요. 제가."
"나가. 스즈키 녀석 혼자야. 나 없으면 이 세상에 걔 옆에 있어줄 사람 아무도 없어. 이제 걔가 막내니까 형님답게 네가 스즈키를 잘 돌봐 줘. 네가 걔 지켜 줘. 이제 둘이 서로 지켜줘라. 응? 여우야."
"안 돼요. 싫어요."
마치다가 계속 팀장의 몸을 뒤덮은 돌을 치워냈지만 팀장은 이미 날카로운 돌에 등과 허리, 다리까지 전부 찔리고 눌려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아니야. 이 정도로 부상을 입어도 산 사람들 봤잖아. 데리고 나가면 살 거야. 살 수 있어. 아직 안 늦었어. 마치다가 미친 듯이 돌을 치워낼 때 팀장이 다시 손을 내밀어 마치다의 손을 잡았다. 팀장님의 손은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축축했다. 피는 뜨겁지 않나... 아니... 손이 차가웠다. 팀장님이 피를 너무 흘려서... 안 돼. 죽을 리 없어. 마치다가 돌을 치우기 위해 다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팀장은 과다출혈로 더 이상 견디기 힘든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도 마치다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명령이다. 마치다 케이타."
마치다가 흠칫하며 팀장을 바라보자 식은땀과 피로 얼굴이 푹 젖은 팀장이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여우."
"... 팀장님."
"우리 여우, 생일 축하해."
"팀장님!"
다시 천장을 흘긋 바라본 팀장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마치다를 밀어냈다.
"나가! 당장!"
"안-"
팀장은 마치다가 평생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척추 부상까지 입은 것 같은데도 팀장은 마치다를 출구 근처까지 밀어버렸다. 바닥을 뒹군 마치다가 다시 일어나서 돌아오려고 하자, 팀장은 소리를 질렀다.
"나가! 명령이야!"
그 순간 다시 한 번 귀를 찢는 듯한 폭음이 울리며 마치다는 충격으로 인해 출구 밖으로 날아갔다. 충격 때문에 귀가 멍멍하고 온몸이 부서진 듯한 기분이었다. 눈앞이 흐릿하고 머리가 울려서 잠시 동안 쓰러져 있던 마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던 건지 하늘이 찢어진 것처럼 쏟아붓는 폭우 때문이었다. 몽둥이에 맞는 것처럼 거세게 내리는 비 덕분에 정신을 차린 마치다가 다시 출구 쪽으로 기어갈 때 다시 한 번 폭음이 울리며 폐광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팀장님과 팀원들을 모두 삼켜 버린 폐광은 완전히 무너져 거대한 흙더미로 변해 있었다.
"안 돼... 안 돼... 아니야. 아니야..."
귀가 멍멍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온몸이 덜덜 떨리는 데다 눈앞도 흐릿했지만 마치다는 폭우 때문에 웅덩이처럼 변한 흙바닥을 정신없이 기어가서 돌을 들어내고 흙을 파헤쳤다.
"팀장님. 팀장님! 제발... 제발 대답해 주세요!"
얼마나 흙을 파헤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비가 계속 미친 듯이 쏟아붓는데도 마치다의 주변에 흐르는 빗물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팀장님의 피야?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럴 수는 없어!
마치다는 갱도를 따라 탈출하면서 몇 번이나 무너지는 천장의 파편을 맞았고 폭발의 충격으로 몇 번이나 넘어져 구르면서 또다시 온몸을 다쳤다. 게다가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헤친 손 끝은 이미 온통 피범벅이었다. 그러나 아픈 것도 몰랐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오직 팀장님과 팀원들을 저 아래서 꺼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팀장님! 제발! 제발! 날 혼자 두지 말아요! 안 돼. 아니야! 안 돼!!!!!!!!!!!"
어느 순간 요원들이 다가와서 마치다를 끌어내려고 했다. 여전히 귀가 멍멍한 와중에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작은 소리가 귀찮게 울렸다.
"이미 폭발 신고가 들어갔습니다. 경찰이 바로 올 겁니다. 철수해야 해요. 빨리 일어나요. 폭스."
"이거 놔! 팀장님! 대답해 주세요! 팀장님!"
"폭스! 당장 철수해야 합니다!"
"이거 놓으라고! 개새끼들아! 이거 놔! 팀장님! 제발! 팀장님! 팀장님!!!!!!!!!"
마치다를 데리러 온 요원들은 경찰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져서 마치다의 뒷목을 내리쳤다.
마치다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너진 흙더미 아래로 붉게 흘러내리는 피의 강이었다.
팀장님.... 날 혼자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내가 우리 팀의 막내라고 했잖아.... 우리는... 우리 팀은 가족이라고 했잖아....
다시는 내가 혼자가 되지 않게 해 주겠다고 했잖아....
다시는....
마치다의 빛이 전부 꺼져 버렸다.
*****
케이는 자기가 울고 있는 것도 모르는 듯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물은 그날 케이의 몸 위로 쏟아졌다던 폭우처럼 멈추지 않고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즈키는 텅 비어 버린 듯한 눈을 하고 소리없이 울고 있는 케이를 품에 안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있잖아요. 케이. 내가 있잖아요..."
내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