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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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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사다리를 타고 위에 올라가자 첫 번째 집과 달리 이곳은 부엌이었다. 스즈키가 멍하게 부엌을 둘러보고 있자 마치다는 지하로 들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작은 선반 뒤로 손을 넣었고 곧 사다리가 위로 접히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타일이 닫혔다. 

"... 뭐예요?"

마치다는 어깨만 으쓱하고는 바구니를 들여보였다. 

"밤이라 라면은 부담스럽지 않아? 뭐 다른 거 먹을래? 밥 할까? 반찬은 별로 없는데."
"라면 괜찮아요. 어차피 우리 밤새는 거 아니에요? 들을 얘기가 많아요, 나."
"그래, 뭐."

마치다는 바구니를 스즈키에게 넘겨줫다. 

"네가 끓여."

스즈키가 부엌 선반과 문을 여닫으면서 냄비를 찾는 동안 마치다는 선반의 서랍을 열더니 손을 넣어 한참 손가락을 움직였다. 옆에서 들여다보자 평범하게 나뭇젓가락이나 플라스틱 포크 같은 것들이 들어 있던 서랍의 바닥이 통 올라오더니 작은 전자기기가 나타났다. 마치다는 그 전자기기를 하나 꺼내더니 버튼을 하나 눌렀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 한 번 더,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한 번. 마치다는 그 전자기기를 다시 서랍에 넣고 다시 손을 선반 뒤로 넣어서 여기저기 눌렀다. 그러자 바닥이 스르륵 닫히더니 다시 평범한 서랍으로 돌아갔다. 

대체 뭐지... 집까지 오는 지하 비밀 통로도 그렇고 집 자체도 무슨 요새 같잖아. 

"... 뭐예요?"
"아까 그 집, 원격으로 조명 끈 거야. 누가 지켜보고 있다면 우리가 잠든 줄 알겠지."
"그러니까 이게 다..."
"배 안 고파?"

지금 배고픈 게 문제냐고 하고 싶었지만 사실 배가 좀 고프긴 했다. 저녁은 먹었지만 두 사람이 침대 위에서 보낸 시간도 길었고 두 사람이 각자 숨기고 있던 비밀을 공개하면서 둘 다 감정적 스트레스가 커서 체력이 소모되기도 했고, 돌아오는 길에 꼬리가 붙는 바람에 또 잔뜩 긴장해서 지쳤으니까. 그런 까닭에 마치다도 얼굴이 창백해 보여서 스즈키는 5개들이 라면팩을 흔들었다. 

"몇 개 먹을 거예요?"
"1개."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어리둥절한 눈빛을 받은 스즈키는 머쓱해하며 라면을 3개 꺼냈다. 아니, 2개는 먹어야 되지 않나. 1개만 먹을 거면서 왜 5개들이 팩을 두 개나 챙긴 거야. 라면 1개 먹고 온몸이 근육인 저 몸을 어떻게 유지하는 거야? 이런저런 불만은 많았지만 마치다가 많이 먹지 않는다는 걸, 식욕 자체가 없는 인간인 것 같다는 건 알았기 때문에 스즈키는 속으로만 궁시렁거렸다. 마침내 적절한 냄비를 찾아낸 스즈키가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이는 동안 마치다는 사부작사부작 냉장고에서 병조림을 몇 개 꺼내서 작은 반찬그릇에 옮겨담고 있었다. 뭔가 들여다보자 간단한 절임류 밑반찬들이었다. 시판 절임들이었지만 그래도 인스턴트만 먹고 사는 건 아닌가 보네. 왠지 안심되는 마음으로 라면을 끓여서 내가자 마치다가 이미 수저와 반찬이 세팅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원래 스즈키는 인스턴트 라면에도, 가게에서 먹는 라면에도 고추기름을 뿌리는 걸 선호했지만 쌀과 계란 말고는 온통 인스턴트나 반찬가게 반찬밖에 없는 것 같은 이 집의 펜트리에는 고추기름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고추기름은 포기했다. 맛계란도 계란 말고는 다른 재료도 없는 데다가 맛이 들 시간이 없어서 포기해야 했고. 식초나 간장도 없는 집이라니.

"다음에는 맛계란도 만들어서 얹어줄게요. 탱글탱글하고 짭ㅉ..."

신나서 떠들다가 마치다가 미각을 잃었다는 걸 떠올린 스즈키가 어물거리며 입을 다물자,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서 오물오물 씹어삼킨 마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필요한 재료 있으면 사 놓게 말해."
"그거... 저 또 여기 와도 된다는 말이죠?"
"..."
"뭐 있는 재료가 없어서 사야 될 거 많으니까 저랑 같이 장 보러 가요."
"... 아니야. 오지 마. 너네 집 가서 많이 먹어."
"엎질러진 물이란 말 알아요?"
"네 라면을 엎어버리기 전에 쉿."

말은 못됐게 해도 또 오게 해 줄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꼬리가 붙었으니 스즈키가 마치다를 밖에서 만나서 함께 다니는 것을 조직의 사람들에게 들킨 이상 마치다가 아무런 방비도 없이 스즈키를 집으로 그냥 돌려보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냥 그런 근거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붕붕 떠서 스즈키는 신나게 라면을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열심히 씹고 궁금하던 걸 물었다. 

"아까 그 집에 도청기 같은 게 설치돼 있어요? 누가 설치한 거예요? 조직에서?"
"내가 설치했어."

그렇겠지. 그러니까 아까 감지기가 그렇게 요란한 불빛을 내며 신호를 보냈는데도 당황하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자기 집에 그런 걸 잔뜩 설치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우리 조직에서 사람을 보내 도청기 같은 걸  설치할까 봐요?"
"응."
"진짜 침입한 사람이 있었어요?"
"응."

설마해서 물었는데 진짜 그렇다는 말을 들으니 머리에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예상했지만 예상했기 때문에 더 끔찍한 기분에 한숨을 삼켰다. 

"있었다고요? 정말로 우리 조직 사람이 침입했다고요?"
"응."

스즈키의 안색이 나빠졌는지 마치다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스즈키의 손을 잡았다. 멍하게 내려다보고 있자 마치다는 자연스럽게 엄지와 검지 사이 오목한 곳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아무 일 없었어. 그 자식이 도청장치를 설치했는데 그걸 내가 그냥 떼 버리면 내가 눈치챘다는 걸 조직에서도 알게 되잖아."
"...네."

어디선가 불안할 때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누르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실제로 눌러본 적은 없었는데 마치다가 무심한 얼굴로 꾹꾹 눌러주니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혀있는 것까지 확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지압이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무심한 얼굴을 하고는 딱 적당한 힘으로 손을 꾹꾹 눌러주는 새침한 여우의 마음이 따뜻해서인지.

"그래서 내가 설치한 도청장치 같은 건 미리 싹 제거하고 놈들이 설치한 것만 남기고 경찰 불렀지."
"... 네?"
"법치주의 국가잖아. 당연히 신고했지. 무단침입해서 이상한 거 설치한 놈들 있으니까 잡아가라고."
"조직원을요?"
"응."
"어떻게 됐어요?"
"잡혀갔으니 빨간 줄 생겼지."

이 조직이 조직원이 생포됐을 때 조직원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매정하긴 했지만 사기는 아니었다. 입사할 때 쓰는 동의서에 포함된 항목이니까. 그래도 정말로 체포돼서 전과가 남게 방치했다니. 물론 그렇다고 침입한 요원이 안타까워지거나 하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자업자득이지. 나쁜 짓을 하려던 놈이 벌을 받았다는 명쾌한 결말에 라면도 더 맛있어진 기분이었다. 

"그놈은 경찰에서 뭐라고 했어요?"
"자기가 흥신소 직원이라고."
"흥신소에서 케이를 왜 조사했다고 했는데요?"
"내가 어떤 유부녀의 바람상대라고 착각했다고."

바람? 감히 누굴 불륜남으로 엮으려고! 평생 감옥에 처박혀서 콩밥이나 잔뜩 먹어라! 미친놈!

"그래서 다시 온 적은 없어요?"
"한 번 더 들어왔는데 또 신고하니까 그 다음부턴 안 오긴 하더라. 세 번이나 같은 집에 도청기를 설치하려다 잡히면 위장도 안 먹힐 테니까."
"지금 집에 있는 건 다 케이가 직접 다 설치한 거예요?"

"나랑 전 동료가."
"전 동료?"

그러고보니 이 조직은 입사할 때 반드시 경력을 요구했다. 그러니 케이도 어딘가를 거쳐서 오긴 했을 터였다. 어디를 거쳐온 거지? 경찰? 소방관 경력도 인정해 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군대인가?

"어디에 있을 때 동료요?"
"프랑스 PMC."
"네?"

PMC가 스즈키와 케이의 조직 같은 민간군사조직을 가리킨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 나라같은 아시아 국가들보다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에 PMC가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프랑스 PMC 출신이라고? 갑자기? 난데없이?

"프랑스 PMC에 있었어요?"
"응."
"어쩌다가요?"
"어쩌다가."

마치다는 스즈키의 안색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는지 지압을 마치고 다시 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스즈키의 라면보다 양이 적었기 때문인지 먼저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고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더니 스즈키를 빤히 바라봤다. 

"팀장님이 이 이야기도 안 해줬나보네."

뭐요? 또 뭘 숨긴 건데요, 그 아저씨! 자기만 알고!

"나 프랑스인이야. 프랑스 국적."

네?

"Merci pour le repas. J’ai bien mangé."

네???

"F...Fine thank you? 아, 아니지 이건 영어지... m...merci?"

아니 뭐냐고요 진짜!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는데 생전 웃는 법이 없는 사람이 당황해서 멍해진 스즈키가 귀여웠는지 피식 웃는 걸 보니 가슴이 미친 듯이 쿵쿵 뛰었다.

아, 심장이... 심장이 너무 아파.







"식사 고마워, 잘 먹었어." 라고 말한 거라고 번역기가...
#요원놉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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