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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6 03:06
ㅂㄱㅅㄷ 어나더 3나더 4나더 5나더 6나더 7나더 8나더 9나더
케이는 평소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자신은 아예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라는 건 사소한 거짓말이라고 해도 실제의 내가 아닌 나 혹은 현실과 다른 가상의 상황을 만드는 하나의 시나리오기 때문에 나중에 말이 조금만 달라져도 거짓말이라는 게 탄로나기 십상이다. 그런데 케이는 이전에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고 누군가와 대화하기 전에 그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짓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케이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안 들키는 게 불가능해서.
괜히 어설프게 상황을 모면하려다 사람만 우스워지지.
케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당연히 케이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 케이에게 거짓말을 해도 케이는 그게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하거나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고 본인이 직접 말했었는데.
그런데도 케이는 노부가 전문의를 추천하며 하는 이야기에 성심성의껏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노부가 케이처럼 가까운 사람들의 사진을 전부 찍어서 폰에 가지고 다니는 타입이었다면 사진이라도 보여주고,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했을 텐데 츠지무라가 가까운 사이긴 해도 같이 찍은 사진을 폰에 가지고 다닐 정도는 아니라서... 츠지무라의 홈페이지라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일반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라 소개를 받은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지라 홈페이지도 없어서. 쳇. 정말 도움 안 되네, 이 선생님.
그래서 노부는 츠지무라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하거나 상담을 하는지 말해주고, 츠지무라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 같은 것을 몇 개 들려준 다음에는 츠지무라에게 상담을 받으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디저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츠지무라 형 아버지인 할아버지 선생님이 재작년까지는 남미를 돌아다니셨는데, 작년부터 이제 유럽에 계시거든요. 지금은 오스트리아에 계세요. 그래서 얼마 전에 자허토르테 보내주셨거든요. 이번에도 하나 더 보내달라고 할까요?"
케이가 1주년 기념 저녁식사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자허토르테를 보고 '맛있겠다'고 한 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노부가 얼른 미끼를 흔들었다. 맨날 츠지무라가 흔드는 미끼에 당해보기만 하고 미끼를 흔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모르겠지만.
"츠지무라 형한테 자허토르테 받으러 가는 김에 상담도 한 번 해 봐요. 전에 케이가 의사들 만났을 때 어땠는지 기록해 둔 기록 같은 것도 챙겨가고, 기록 좀 보여주고, 이야기 좀 하고 자허토르테 받아오면 되죠. 맛있더라고요. 받아와서 같이 먹어요. 츠지무라 형 상담이 별로면, 자허토르테 먹으면서 같이 욕해 줄게요."
케이가 아무리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해도 자허토르테 받으러 가자는 말에 홀랑 넘어갈 리 없다는 걸 물론 알고 있었다. 노부가 웬만해선 이 나라에서 구하기가 꽤 번거로운 특별한 디저트를 준비해 놨으니 병원에 오라는 말에 넘어가지 않는 것처럼. 케이도 자허토르테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노부가 항상 부모님의 걱정이나 츠지무라의 마음을 신경써서 디저트를 핑계로 병원을 가 보는 것처럼 케이도.
"그래, 본고장에서 만든 진짜 자허토르테 한 번 먹어보자. 우리 노부가 맛있다고 보증하니까 먹어 봐야지."
라고 넘어가 주는 척해줄 걸 알아서.
츠지무라의 병원에 갔을 때 케이는 예전에 다른 의사들을 만났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적은 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점이 우려되는지에 대해서 솔직히 말했고 츠지무라는 그 사정을 가만히 잘 들어주었다.
"저는 보통 방문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만, 마치다 상 같은 경우에는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본인의 기억에 기반한 대화는 힘든 상황이시잖아요."
"네, 저는 학습적인 기억만 유지되는 터라. 선생님이 저와 구구단 외기 놀이를 하고 싶은 게 아니시라면, 제가 할 말이 없죠."
"구구단 잘 외시나요?"
"9단까지는 알아요. 요즘 애들처럼 20단까지는 못하지만요."
"저도 9단까지만 욀 줄 아니까 구구단 놀이는 금방 끝나겠네요."
두 사람은 처음에 인사를 주고받고는 그런 헛소리나 하기 시작했지만 물론 계속 헛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케이의 기억이 어떻게 어떤 식으로 지워지는지, 기억이 리셋되고 나면 어떤 상태인지, 기억이 사라진 후 기록을 봤을 때 기억이 어떤 식으로 환기되는지 혹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지, 문제의 그 오래전 사건 이후 초기 상태가 어땠는지 등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고 한다. 왜 '했다고 한다'냐면, 당연히 노부는 케이의 상담 자리에 함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인이라고 해도 민감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정신 상담 자리에 환자도 의사도 아닌 사람이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케이가 상담을 하는 동안 노부는 밖에서 오스트리아의 특산품을 검색하고 있었다. 다음엔 뭘 미끼로 케이를 병원에 데리고 올지 고민하면서. 츠지무라가 노부와 상담을 하고 싶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뭘 미끼로 노부를 부를지 고민했겠구나 잠시 츠지무라의 기분도 느끼고.
츠지무라는 노부는 한두 달에 한 번씩만 불렀다. 한 달에 한 번 부르는 것도 어차피 노부가 한 달에 한 번씩 안 올 걸 알아서 두 달에 한 번 올 걸 기대하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르는 식이었다. 노부가 한 번은 튕긴다는 걸 아니까. 그러나 케이는 한 달에 한 번씩 기억이 삭제돼 버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처음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상태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서로 익숙해지기 위해서인지 한 주에 한 번씩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3주차, 그러니까 케이가 츠지무라의 병원을 세 번째로 찾은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상담실에 들어가지 못한 노부는 상담실 앞 소파에 앉아서 폰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벌써 자허토르테도 받고, 모차르트 쿠겔도 받았기 때문에 또 뭘 부탁할까 고민하면서... 아니, 고민하는 척하면서. 츠지무라는 케이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치료할 건지 노부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노부를 신뢰하는 케이는 상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다음 상담은 어떤 식으로 할 건지에 대해서도 다 허심탄회하게 말해줬는데, 오늘 츠지무라와 케이가 써 보기로 한 방법이 너무 신경 쓰여서 사실 디저트 같은 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케이는 이번 상담 시간에 츠지무라와 최면요법을 시험해 볼 거라고 했다.
노부가 어릴 때, 막 사건을 겪었을 무렵 노부의 부모님은 당시 노부의 주치의였던 할아버지 선생님에게 노부에게 최면을 걸어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어떨지 상담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할아버지 선생님은 단호하게 반대했었다. 노부의 뇌가 그 사건 당시의 심리적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서 기억을 묻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떠올리게 하려고 하면 되려 위험할 수 있고, 그렇게 떠올린 기억이 진짜 기억인지, 아니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혹은 떠올릴 수 없는 기억을 억지로 떠올릴 것을 강요받은 뇌가 억지로 만들어낸 기억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하지만 츠지무라는 자신의 부친보다 담대한지. 츠지무라는 당시 사건 전체를 다 떠올릴 필요도 없고, 최면을 통해서 사건 전체를 기억해 낼 수도 없을 거라고 하면서도 케이에게 최면을 권했다. 아무래도 최면요법에 성공한다면, 그 사건 당시에 가장 크게 충격을 줬던 일이나, 기억에 가장 깊게 새겨진 일이 떠오르게 될 텐데, 그만큼 강렬한 충격을 남겼다면, 그 특정한 일이 기억을 리셋시키고 있는 게 아니겠냐고. 그 사건 당시에 있었던 여러 일들 중 어떤 일이 케이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삭제시키고 있는 건지 알게 되면 케이의 기억이 리셋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노부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케이가 이번 달의 기억이 또 리셋돼 버리기 전에, 애써 츠지무라와의 사이에 형성해 둔 라포가 다 사라지기 전에 츠지무라와 함께 최면을 시도해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노부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특산품 디저트를 검색하는 척하면서 초조하게 폰 스크롤을 올렸다 내리길 반복하고 있을 때, 상담실에서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상담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노부! 노부!"
얼굴이 말도 못하게 창백해진 채로 온 얼굴이 눈물로 온통 젖어 버린 케이가 어쩐지 초점이 흐릿한 눈빛을 하고는 뛰어나왔다.
"케이!"
노부가 들고 있던 폰도 던져 버리고 케이에게 달려가서 품에 안자, 케이는 노부를 끌어안은 채로 노부의 한 손을 찾아내 꽉 부여잡고 헐떡거렸다.
"케이, 왜 그래요? 뭐 잘못됐어요? 무슨 일이에요?"
불안하고 초조해서 미칠 것 같은데, 더 불안해 보이는 케이가 품에 있어서 억지로 불안을 누르며 케이를 꽉 끌어안자, 노부의 한 손을 잡은 채로 노부를 꽉 끌어안고 있던 케이가 품 속에서 울먹이면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노부... 형이랑... 형이랑 같이 나가는 거야. 형이랑, 우리끼리 여기서 나가야 돼. 형 손 놓으면 안 돼... 내 손 꼭 잡고 있어야 돼...절대로 놓지 마."
.... 어?
#놉맟기억상실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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