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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20:53
마크 레이놀즈가 형제들보다 총명한 머리를 가졌음에도 태자로 책봉되지 못한 것은 다름 아닌 잔혹한 성정 때문이었어
검술 훈련을 할 때면 상대방 어디 하나를 부러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처사에 모두들 학을 떼곤 했다지
그럼 그가 반정이라도 일으켜 황제가 되었나 싶겠지만
다행히도 마크 역시 황제의 자리를 탐낸 적은 없었어 그는 늘 책보다 검을 가까이 두는 이였고 숨 막히는 황궁을 벗어나 성질껏 전장을 돌아다닐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하는 사내인지라 대부분을 황궁이 아닌 전쟁터에서 시간을 보내기 바빴기 때문에 마크의 형님은 형제의 난도 없이 황위를 이을 수 있었는데
보위에 오른 황제가 태생부터 약했던 몸에 병까지 얻어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나
기어이 병마를 이기지 못해 황제가 승하하시자 보위는 자연스레 다음 서열인 마크에게로 넘어갔어
반정도 없이 오른 황위, 게다가 적통인 그의 전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고 어느새 본인 성질껏 휘두르고 다닌 전장에서의 활약은 대단한 무용담이 되어 황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게 되었다지 쓸데없이.
그렇게 그는 마음에도 없는 황제 자리를 떠맡게 되었어
그래서일까 황제는 비상한 머리로 조정을 이끌어 나갔으나 지나치게 냉철하였지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성정에
조정 대신들은 황제가 광증을 앓는다 할 정도였는데
어느 날 황후를 들이시더니 묘하게 변하셨다지
이를테면
"그대의 아들이 지방관리로 부임하여 하라는 일은 않고 주지육림을 즐기고 있다는군?"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그대의 아들과 가문을 내 어찌하면 좋을까
올려진 상소를 바라보다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황제를 보자 좌상은 혼미 백산하여 바닥에 이마를 찧었어 황제가 조정에서 웃음을 보이는 날이면 그날은 필시 피바람이 부는 날이었으니
당장에 목숨 구걸을 위해서 뭔들 못할까
"소인의 아들이 큰 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이번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시면 소인 가문의 재산을 모조리 털어서라도 바로잡아 놓겠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바들바들 떨며 바닥을 기고 있는 꼴에도 조정에선 모두들 숨조차 허투루 내쉬지 못하였어 저리 처절하게 빌어봤자 황제가 이미 알아차려 버린 이상 그의 아들은 물론이고 가문 역시 무사치 못하리라 그리 생각하였는데 황제께서 칼을 뽑아드는 대신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마치 화를 참는 것처럼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고 있던 그는 뜻밖에 말을 내뱉었지
"오늘 짐이 그대를 죽인다면 나의 황후께서는 또 슬퍼하시겠지.. 황후께 감사하거라 그대의 목숨은 황후가 살린 것이니."
좌상 가문의 재산을 몰수하고 직을 파한다.
짧은 명을 끝으로 어좌에서 일어난 황제는 경악으로 물든 대신들이 보이지도 않는지 유유히 조정을 파하였어
그 뒤로 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지
예전 같았다면 못해도 사지 하나는 잘릴 만한 일에 황제는 성미에 맞지 않게 화를 눌러 참으면서 늘 황후를 거론하였어
이리 하면 황후가 슬퍼할 것이니-, 황후께서 너를 살린 거다.라는 말이 이제는 입버릇처럼 튀어나오는 황제의 행태가 쌓여가자
황궁에서는 오직 황후만이 황제의 광증을 잠재울 귀인이라며 칭송이 자자했어
이러니 황후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어 원체 그럴 담이 없으셨거든
--
"여기 왜 생채기가 난 겁니까?"
분명 어젯밤엔 보지 못한 상처가 무르팍에 나있자 황제는 인상을 찌푸렸어
그럼 그 단조로운 음성에도 황후는 화들짝 놀라 어설픈 손짓으로 상처를 가렸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산책을 나갔다 넘어진 것뿐입니다.."
신첩이 조심치 못해서 그렇습니다.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도 그는 화가 풀리지 않았어
자신의 황후가 덤벙거리는 거야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 그러니까 황제도 알고 있는 것을 궁인들이 모를 리가 있나
"아랫것들이 웃전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그런 것이니 내 저들에게 본을 보여야겠군요."
"..! 폐하. 그러지 마시어요. 신첩이.. 신첩이 잘못한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칼을 빼들어 것 같은 황제에 황후는 하얗게 질려 옷자락을 움켜쥐었어 고작 손톱만 한 생채기일 뿐인데
이렇게 화를 내는 마크가 메이저는 무서웠지 마자 황후는 황제가 두려웠어
신방에서 처음 저를 보고 웃어줬을 때도 메이저는 마치 호랑이를 보는 것 같았대
당장이라도 저의 목덜미를 콱 물어버릴 것 같은 황제가 무서워서 그만 가채를 내려주려던 손길에 픽 기절해 버렸지
그럼에도 마크는 파리하게 질려 쓰러진 메이저가 썩 마음에 들어차버렸어
우습지
마크가 황후를 간택할 때만 해도 이럴 줄 몰랐거든
그맘때의 황제는 사사건건 비워져있던 황후 자리를 걸고넘어지는 대신들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어 그래서 그는 외척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전에 없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황후를 간택하였지
커다란 과녁에 여러 가문을 적어다 붙인 다음 눈을 가리고서 쏜 화살이 정중한 가문에 음인을 황후로 맞이할 거라고 말이야
그걸 지켜보던 조정 대신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외척이 되어 티클만 한 권력을 움켜보려던 그들은 서슬 퍼런 눈으로 활을 쥔 황제를 마주하자 그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어
세상천지 처가 대접을 저리 하는 파렴치한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지존인 황제라도 말이다
외척에게 낙인을 찍겠다는 것과 진배없는 황제의 태도에
대신들은 활터 구석에 비루하게 서서 부디 자신의 가문만은 아니길 바랐지
그날 무작위로 쏜 화살에 우연히 박힌 메이저의 가문이 별 볼일 없는 말단 관리였으니 황제는 제 뜻을 이룬 거나 마찬가지였어
반면 화살이 꽂히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메이저의 아비는 그대도 주저앉고 말았지만 말이야
이런 야만적인 방식으로 황후가 된 메이저이니 어찌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크는 첫날밤 제 손짓하나에 쓰러져 버린 황후를 밤새 지켜보면서 처음으로 후회란 걸 해보았어
전통에 따라 간택을 하였다면 그랬다면 황후께서 이리 겁먹지 않으셨을까 하는 그런 뻔한 거
...헌데 그랬다면 한미한 가문의 이 사람은 내 황후가 되지 못하였을 텐데
그날 내 손을 떠난 화살처럼 이미 지나간 과거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니 현재에 충실해야지
곱슬거리는 머리와 모난 곳 없이 동그랗고 보드라운 얼굴을 찬찬히 쓸어보면서 생각을 뜯어고친 마크는 이제부터라도 정인에게 환심을 사보려 노력했어
갖은 비단과 보석을 한 아름 쥐여주어도 여전히 울상이던 황후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고작 조약 한 모형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쯤이면 황제의 잔혹한 성정도 조금씩 변해갔지
어쩌다 용포에 묻은 핏자국에도 까무룩 혼절해 버리는 연약한 심성을 가진 메이저가 안쓰러워서 조정에 피바람이 불때마다 이불 속에 숨어 바들바들 떠는 황후가 가여워서 어울리지도 않게 성질을 꾹꾹 눌러 참아온 마크였지만 도무지 황후와 관련된 일엔 자제가 되질 않았어
고작 이런 작은 생채기조차 용인할 수 없을 만큼
이미 겁을 먹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황후를 보아도 마찬가지였지
“나에겐 황후 몸에 티클만 한 상처가 그 무엇보다 아픕니다.”
“.. 신첩이 잘못한 것이오니.. 신첩을 벌, 벌하여 주세요. 폐하..”
“야속하여라.. 짐이 어찌 황후를 벌할 수 있겠습니까.”
방금까지 야차 같은 얼굴로 서서 궁인들을 바라볼 땐 언제고 벌을 달라는 황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크는 무너지듯 황후 앞에 주저앉아 아닌 척 서운한 표정을 지어냈어
“... 신첩이 앞으로는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겠사옵니다.. 그러니 저들은 그만 물려주세요. 둘, 둘이서만 있고 싶습니다. 폐하.”
여전히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제 사람을 지키겠다 애쓰는 것이 귀여워 황제는 결국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지 병풍처럼 서있는 궁인들 쪽엔 시선 한 줄 주지 않고서 손짓 하나로 궁인들을 모두 내보냈어
일순간의 소란이 멎고 적막이 찾아왔지 바라는 대로 단둘만 남게 되었으나 황후께선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여전히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였어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마크가 나직이 황후 하고 부르자 메이저는 이내 결심한 듯 눈을 꼭 감았다 뜨더니 느릿하게 황제의 무릎을 타고 올라와 그의 목에 팔을 감고는 답싹 안겨들었어
이만 화를 풀어달라는 아양이었지
베갯머리송사는 꿈도 꿀 수 없는 황후이니 지금 한 행동은 메이저 입장에서 볼 때 가히 파격적인 것이었어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절로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 같지 뭐야
결국 메이저의 뜻대로 되었어
황제는 제가 화를 내었다는 것도 잊을 만큼 황후의 품이 마음에 들어찼거든
그렇게 잠깐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왔어 경직되었던 메이저의 몸도 어느새 노곤해져 마크의 품에 완전히 밀착되었지 오로지 서로의 심장소리만 울리는 그런 찰나의 고요한 시간은 등을 가만 쓸어내리던 마크의 큰손이 불쑥 메이저의 옷 속을 파고들면서 깨졌지
등 사이 튀어나온 뼈를 빠짐없이 훑다가 판판한 가슴으로 향하는 거침없는 손에 메이저가 헉하고 헛숨을 삼켰지만 그는 아량곳 하지 않았어 어차피 황후께선 가볍게 스치는 제 손짓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제법 몸을 섞었다고 딸꾹질을 할지언정 픽 쓰러지진 않는 황후가 기특하여 마크는 눈물진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어
“언제쯤이면 황후께서 이 손짓을 기꺼이 받아주실까요?"
“.. 흐응.. 폐하.. 무서워요.”
“겁먹지 마세요. 짐이 언제 황후를 아프게 한적 있습니까?”
매일 밤 우악스레 양물을 밀어 넣는 사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메이저는 차마 뱉지 못할 진심에 울컥하여 조가비처럼 입을 앙 다물자 마크는 그 앙증맞은 입술에 하하 웃음을 터트리더니 가벼운 입맞춤을 나신 위로 여기저기 찍어냈어
사실 오늘 난 무릎 위에 손톱만 한 생채기보다 메이저의 허벅지, 허리춤에 마크의 손자국대로 잡힌 멍이 더 크고
쇄골 위와 가슴팍에 입질 자국이 훨씬 더 알록달록 화려하지만 마크는 모른 척 허벅지 안쪽으로 고개를 파묻었어
그저 여린 메이저의 살성 인 탓이려니 하고 말이야
마크는 정말 제 딴엔 힘 빼고 메이저를 어루만지는 것인데 잡는 족족 자국이 남아서 좀 어굴하고 매번 엉엉 울어대는 황후가 가엽기는 한데 사실 가학성이 짙은지라 귀여움이 더 크고 언제 한번 이 조막만 한 엉덩이를 흠씬 때려도 보고 싶대
그럼에도 마크는 사랑에 넹글돈 황제인지라 황후인 메이저한테 정말 정말 잘해주고 있는 중임 어쩌겠어 메이저가 감당하고 살아야지
행맨밥
검술 훈련을 할 때면 상대방 어디 하나를 부러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처사에 모두들 학을 떼곤 했다지
그럼 그가 반정이라도 일으켜 황제가 되었나 싶겠지만
다행히도 마크 역시 황제의 자리를 탐낸 적은 없었어 그는 늘 책보다 검을 가까이 두는 이였고 숨 막히는 황궁을 벗어나 성질껏 전장을 돌아다닐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하는 사내인지라 대부분을 황궁이 아닌 전쟁터에서 시간을 보내기 바빴기 때문에 마크의 형님은 형제의 난도 없이 황위를 이을 수 있었는데
보위에 오른 황제가 태생부터 약했던 몸에 병까지 얻어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나
기어이 병마를 이기지 못해 황제가 승하하시자 보위는 자연스레 다음 서열인 마크에게로 넘어갔어
반정도 없이 오른 황위, 게다가 적통인 그의 전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고 어느새 본인 성질껏 휘두르고 다닌 전장에서의 활약은 대단한 무용담이 되어 황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게 되었다지 쓸데없이.
그렇게 그는 마음에도 없는 황제 자리를 떠맡게 되었어
그래서일까 황제는 비상한 머리로 조정을 이끌어 나갔으나 지나치게 냉철하였지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성정에
조정 대신들은 황제가 광증을 앓는다 할 정도였는데
어느 날 황후를 들이시더니 묘하게 변하셨다지
이를테면
"그대의 아들이 지방관리로 부임하여 하라는 일은 않고 주지육림을 즐기고 있다는군?"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그대의 아들과 가문을 내 어찌하면 좋을까
올려진 상소를 바라보다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황제를 보자 좌상은 혼미 백산하여 바닥에 이마를 찧었어 황제가 조정에서 웃음을 보이는 날이면 그날은 필시 피바람이 부는 날이었으니
당장에 목숨 구걸을 위해서 뭔들 못할까
"소인의 아들이 큰 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이번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시면 소인 가문의 재산을 모조리 털어서라도 바로잡아 놓겠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바들바들 떨며 바닥을 기고 있는 꼴에도 조정에선 모두들 숨조차 허투루 내쉬지 못하였어 저리 처절하게 빌어봤자 황제가 이미 알아차려 버린 이상 그의 아들은 물론이고 가문 역시 무사치 못하리라 그리 생각하였는데 황제께서 칼을 뽑아드는 대신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마치 화를 참는 것처럼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고 있던 그는 뜻밖에 말을 내뱉었지
"오늘 짐이 그대를 죽인다면 나의 황후께서는 또 슬퍼하시겠지.. 황후께 감사하거라 그대의 목숨은 황후가 살린 것이니."
좌상 가문의 재산을 몰수하고 직을 파한다.
짧은 명을 끝으로 어좌에서 일어난 황제는 경악으로 물든 대신들이 보이지도 않는지 유유히 조정을 파하였어
그 뒤로 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지
예전 같았다면 못해도 사지 하나는 잘릴 만한 일에 황제는 성미에 맞지 않게 화를 눌러 참으면서 늘 황후를 거론하였어
이리 하면 황후가 슬퍼할 것이니-, 황후께서 너를 살린 거다.라는 말이 이제는 입버릇처럼 튀어나오는 황제의 행태가 쌓여가자
황궁에서는 오직 황후만이 황제의 광증을 잠재울 귀인이라며 칭송이 자자했어
이러니 황후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어 원체 그럴 담이 없으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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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왜 생채기가 난 겁니까?"
분명 어젯밤엔 보지 못한 상처가 무르팍에 나있자 황제는 인상을 찌푸렸어
그럼 그 단조로운 음성에도 황후는 화들짝 놀라 어설픈 손짓으로 상처를 가렸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산책을 나갔다 넘어진 것뿐입니다.."
신첩이 조심치 못해서 그렇습니다.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도 그는 화가 풀리지 않았어
자신의 황후가 덤벙거리는 거야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 그러니까 황제도 알고 있는 것을 궁인들이 모를 리가 있나
"아랫것들이 웃전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그런 것이니 내 저들에게 본을 보여야겠군요."
"..! 폐하. 그러지 마시어요. 신첩이.. 신첩이 잘못한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칼을 빼들어 것 같은 황제에 황후는 하얗게 질려 옷자락을 움켜쥐었어 고작 손톱만 한 생채기일 뿐인데
이렇게 화를 내는 마크가 메이저는 무서웠지 마자 황후는 황제가 두려웠어
신방에서 처음 저를 보고 웃어줬을 때도 메이저는 마치 호랑이를 보는 것 같았대
당장이라도 저의 목덜미를 콱 물어버릴 것 같은 황제가 무서워서 그만 가채를 내려주려던 손길에 픽 기절해 버렸지
그럼에도 마크는 파리하게 질려 쓰러진 메이저가 썩 마음에 들어차버렸어
우습지
마크가 황후를 간택할 때만 해도 이럴 줄 몰랐거든
그맘때의 황제는 사사건건 비워져있던 황후 자리를 걸고넘어지는 대신들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어 그래서 그는 외척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전에 없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황후를 간택하였지
커다란 과녁에 여러 가문을 적어다 붙인 다음 눈을 가리고서 쏜 화살이 정중한 가문에 음인을 황후로 맞이할 거라고 말이야
그걸 지켜보던 조정 대신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외척이 되어 티클만 한 권력을 움켜보려던 그들은 서슬 퍼런 눈으로 활을 쥔 황제를 마주하자 그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어
세상천지 처가 대접을 저리 하는 파렴치한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지존인 황제라도 말이다
외척에게 낙인을 찍겠다는 것과 진배없는 황제의 태도에
대신들은 활터 구석에 비루하게 서서 부디 자신의 가문만은 아니길 바랐지
그날 무작위로 쏜 화살에 우연히 박힌 메이저의 가문이 별 볼일 없는 말단 관리였으니 황제는 제 뜻을 이룬 거나 마찬가지였어
반면 화살이 꽂히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메이저의 아비는 그대도 주저앉고 말았지만 말이야
이런 야만적인 방식으로 황후가 된 메이저이니 어찌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크는 첫날밤 제 손짓하나에 쓰러져 버린 황후를 밤새 지켜보면서 처음으로 후회란 걸 해보았어
전통에 따라 간택을 하였다면 그랬다면 황후께서 이리 겁먹지 않으셨을까 하는 그런 뻔한 거
...헌데 그랬다면 한미한 가문의 이 사람은 내 황후가 되지 못하였을 텐데
그날 내 손을 떠난 화살처럼 이미 지나간 과거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니 현재에 충실해야지
곱슬거리는 머리와 모난 곳 없이 동그랗고 보드라운 얼굴을 찬찬히 쓸어보면서 생각을 뜯어고친 마크는 이제부터라도 정인에게 환심을 사보려 노력했어
갖은 비단과 보석을 한 아름 쥐여주어도 여전히 울상이던 황후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고작 조약 한 모형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쯤이면 황제의 잔혹한 성정도 조금씩 변해갔지
어쩌다 용포에 묻은 핏자국에도 까무룩 혼절해 버리는 연약한 심성을 가진 메이저가 안쓰러워서 조정에 피바람이 불때마다 이불 속에 숨어 바들바들 떠는 황후가 가여워서 어울리지도 않게 성질을 꾹꾹 눌러 참아온 마크였지만 도무지 황후와 관련된 일엔 자제가 되질 않았어
고작 이런 작은 생채기조차 용인할 수 없을 만큼
이미 겁을 먹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황후를 보아도 마찬가지였지
“나에겐 황후 몸에 티클만 한 상처가 그 무엇보다 아픕니다.”
“.. 신첩이 잘못한 것이오니.. 신첩을 벌, 벌하여 주세요. 폐하..”
“야속하여라.. 짐이 어찌 황후를 벌할 수 있겠습니까.”
방금까지 야차 같은 얼굴로 서서 궁인들을 바라볼 땐 언제고 벌을 달라는 황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크는 무너지듯 황후 앞에 주저앉아 아닌 척 서운한 표정을 지어냈어
“... 신첩이 앞으로는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겠사옵니다.. 그러니 저들은 그만 물려주세요. 둘, 둘이서만 있고 싶습니다. 폐하.”
여전히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제 사람을 지키겠다 애쓰는 것이 귀여워 황제는 결국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지 병풍처럼 서있는 궁인들 쪽엔 시선 한 줄 주지 않고서 손짓 하나로 궁인들을 모두 내보냈어
일순간의 소란이 멎고 적막이 찾아왔지 바라는 대로 단둘만 남게 되었으나 황후께선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여전히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였어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마크가 나직이 황후 하고 부르자 메이저는 이내 결심한 듯 눈을 꼭 감았다 뜨더니 느릿하게 황제의 무릎을 타고 올라와 그의 목에 팔을 감고는 답싹 안겨들었어
이만 화를 풀어달라는 아양이었지
베갯머리송사는 꿈도 꿀 수 없는 황후이니 지금 한 행동은 메이저 입장에서 볼 때 가히 파격적인 것이었어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절로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 같지 뭐야
결국 메이저의 뜻대로 되었어
황제는 제가 화를 내었다는 것도 잊을 만큼 황후의 품이 마음에 들어찼거든
그렇게 잠깐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왔어 경직되었던 메이저의 몸도 어느새 노곤해져 마크의 품에 완전히 밀착되었지 오로지 서로의 심장소리만 울리는 그런 찰나의 고요한 시간은 등을 가만 쓸어내리던 마크의 큰손이 불쑥 메이저의 옷 속을 파고들면서 깨졌지
등 사이 튀어나온 뼈를 빠짐없이 훑다가 판판한 가슴으로 향하는 거침없는 손에 메이저가 헉하고 헛숨을 삼켰지만 그는 아량곳 하지 않았어 어차피 황후께선 가볍게 스치는 제 손짓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제법 몸을 섞었다고 딸꾹질을 할지언정 픽 쓰러지진 않는 황후가 기특하여 마크는 눈물진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어
“언제쯤이면 황후께서 이 손짓을 기꺼이 받아주실까요?"
“.. 흐응.. 폐하.. 무서워요.”
“겁먹지 마세요. 짐이 언제 황후를 아프게 한적 있습니까?”
매일 밤 우악스레 양물을 밀어 넣는 사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메이저는 차마 뱉지 못할 진심에 울컥하여 조가비처럼 입을 앙 다물자 마크는 그 앙증맞은 입술에 하하 웃음을 터트리더니 가벼운 입맞춤을 나신 위로 여기저기 찍어냈어
사실 오늘 난 무릎 위에 손톱만 한 생채기보다 메이저의 허벅지, 허리춤에 마크의 손자국대로 잡힌 멍이 더 크고
쇄골 위와 가슴팍에 입질 자국이 훨씬 더 알록달록 화려하지만 마크는 모른 척 허벅지 안쪽으로 고개를 파묻었어
그저 여린 메이저의 살성 인 탓이려니 하고 말이야
마크는 정말 제 딴엔 힘 빼고 메이저를 어루만지는 것인데 잡는 족족 자국이 남아서 좀 어굴하고 매번 엉엉 울어대는 황후가 가엽기는 한데 사실 가학성이 짙은지라 귀여움이 더 크고 언제 한번 이 조막만 한 엉덩이를 흠씬 때려도 보고 싶대
그럼에도 마크는 사랑에 넹글돈 황제인지라 황후인 메이저한테 정말 정말 잘해주고 있는 중임 어쩌겠어 메이저가 감당하고 살아야지
행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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