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11799136
view 6540
2024.11.19 18:47
트포원 기반 종전 이후
알못주의
오랜 내전이 끝났다.
외부의 적으로 인해 불안정한 임시동맹으로 시작했던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버트론이 처참해질 수록 견고해졌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을 때, 고향을 재건하는 데에 내전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메크는 없었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추며 누가 오토봇이며 누가 디셉티콘인지에 대한 심리적 구분은 이미 흐릿해진지 오래였다.
마침내 사이버트론은 평화를 되찾았다. 이번에는 꾸며진 가짜가 아닌, 진짜 평화를.
그리고 옵티머스 프라임은 지쳐 있었다.
아주아주 많이.
***
옵티머스가 프라임직을 내려놓고 오라이온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종전 후 격무에 시달리던 어느날 밤이었다.
사이버트론은 바뀌고 있었다. 민주정이 도입되고, 의회가 설립되었다. 모든 지성체의 권리인 자유를 믿는 옵티머스도 과도한 정치적 힘을 가진 채 영적인 상징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신성한 상징이라기엔 그는 오랜시간에 걸쳐 마모된 메크일 뿐이었다. 오토봇들도 그의 은퇴를 짐작하는 듯 했다. 프라울을 비롯한 몇몇은 메가트론과 그의 전 참모들은 죄다 하이가드로 편입되면서 권력을 가져가는데 오토봇 총사령관이 모든 직위를 포기하는 게 말이 되냐고 길길이 날뛰긴 했지만... 옵티머스는 프라울의 옵틱에서 강요의 기색은 찾지 못했다.
원래 그는 최대한 한적한 지역에서 잠적에 가까운 생활을 할 계획이었다. 더 이상의 의무가 없으니 이번에야말로 좋아하던 것을 소소하게 하며 살겠노라고. 옵티머스는 원만한 잠적을 위해 도색을 바꾸거나, 라쳇에게 부탁해서 매트릭스를 가릴 수 있는 약간의 동체 개조를 부탁할까 고민하며 바쁘게 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손을 털 거라면 인수인계는 확실해야 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 리차징 베드에 누워있던 옵티머스는 자신의 손 안에 어떤 구체가 잡히는 걸 느꼈다.
감았던 옵틱을 뜨고 손을 내려다보니 밝은 주황빛을 발하는 코그가 들려 있었다.
그 코그는 분명히, 원래 오라이온 팩스의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리더십의 매트릭스를 사이버트론에 돌려주고 이 코그를 끼우면, 평화로운 세상에 쓸모가 없는 마지막 프라임은 사라질 것이고......
자신은 어쩌면 오라이온으로서의 자유를 돌려받을 수 있겠다고.
'어떤 변신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옵티머스는 금방 납득하기를 선택했다.
프라이머스의 안배를 어떻게 이해하겠어.
***
코그리스 광부 시절의 무모함과 근거없는 낙천성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건지, 다음 날 옵티머스는 몸소 그 안배에 전부를 걸고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서, 체스트 체임버에서 매트릭스를 꺼내고, 오라이온의 코그를 끼우는 미친 짓을. 오토봇 간부들 중 한 명한테라도 걸렸다간 절대 안 된다며 팔 다리를 잡고 늘어질 게 뻔했고, 프라울에게 걸리면 최소 강제 셧다운일테니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결과는 성공이었다.
프라임 때에 비하면 훨씬 작아진 스스로의 동체를 내려다보며 옵티머스 프라임, 아니, 오라이온 팩스는 아주 오랜만에 해방감에 함성을 내질렀다. 야호! 만세! 안온한 은퇴 잠적 생활의 순조로운 첫 걸음이었다!
물론 아직 오라이온에게 전 총사령관으로서의 업무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바로 다음 솔라 사이클에 오토봇 전체가 뒤집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토봇 중앙회의실로 걸어들어온, 도색은 비슷하지만 프라임보다 훨씬 작은 동체에 오토봇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곧 프라임의 광부시절을 아는 간부들은 귀신을 본 것처럼 경악했다.
"프라임 당신 미쳤-"
"이젠 다시 오라이온 팩스라네, 라쳇."
"너 진짜 미쳤어요???"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몸을 막 굴리는 상관을 둬 늘 골머리를 썩는 메딕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맘 같아선 오라이온의 동체를 갈아 엔젝스로 마시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갑자기 작아진 동체에 라쳇은 제대로 손도 올리지 못했다. 오라이온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떠는 메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회의실을 곁눈질했다. 가장 걱정했던 건 엘리타 원이나 프라울의 반응이었는데, 둘은 예상 외로 무덤덤한 낯을 하고 오라이온을 보고 있었다. 침착한 건지 충격에 굳은 건지는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것보단 재즈의 언제나 건재한 미소가 사라진 게 훨씬 두려웠다.
타이밍 좋게 라쳇이 동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며 그를 회의실 밖으로 연행해갔기에 오라이온은 당장은 그의 부관들의 심문을 모면할 수 있었다. 오라이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 뒤의 옵틱들이 얼마나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 채로.
***
오토봇들 수많은 장점 중 하나는 포용력과 이해심이다.
오라이온은 걱정했던 것 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변화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오토봇들을 보고 새삼 스파크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오랜 내전과 수많은 전투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메크들이었다. 가슴에 매트릭스를 품고 있지 않아도, 거대한 동체가 평범한 크기로 바뀌어도, 그들은 오토봇 총사령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아본다. 그가 옵티머스 프라임으로서 가져야 했던 막중한 짐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비로소 평화의 시대에 조금이나마 짐을 덜 오라이온 팩스를 환영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훈훈한 마음으로 퇴근을 준비했다. 얼마 후 재즈와 함께 다른 행성에 들르는 업무가 있었기에, 그는 쿼터로 돌아가는 길에 데이터센터에 들려 행성 간 비행에 필요한 정보를 업데이트할 생각이었다. 이제 동체도 바뀌었고, 이름도 오라이온 팩스가 되었으니. 데이터센터로 향하는 오라이온의 발걸음은 경쾌하기까지 했다. 잠시 후 그가 마주할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는 너무나 다르게.
"어? 사망하신 메크라고 뜨는데요..?"
데스크에서 신원 정보 확인을 위해 오라이온의 동체를 스캔하던 메크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오라이온이 얼빠진 소리를 내자 데스크의 메크가 디짓을 바쁘게 놀리며 오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패드에 떠오르는 일치된 행정기록에 당황해서 옵틱을 깜빡였다.
"왜 이런 오류가 생겼는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nnnn년 대공동 추락사라고-"
"앗, 그럼 맞긴 합니다만."
"예?"
이번에는 데스크 메크가 얼빠진 소리를 낼 차례였다. 아, 그러니까... 오라이온은 장황한 이야기를 최대한 간추려서 설명했다. 자신이 전에는 옵티머스 프라임이었고, 그 전에는 오라이온 팩스였으며, 어느 날 제 손으로 돌아온 오라이온의 코그 덕분에 최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다행히 프라이머스에 대한 신앙이 견고한 사이버트론에서는 상당히 납득되는 이야기였다. 데스크 메크도 무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네요, 이해가 가요."
그러나 곧 메크는 매우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사이버트론 새 행정법상 옵티머스 프라임과 오라이온 팩스는 다른 메크로 봐야 합니다. 동체를 개조한 수준이 아니라 코그가 아예 달라진 거여서요. 근데 이미 내전 협상 기간동안 사이버트론의 시민이 되길 원하는 메크들은 다 등록을 마쳤고, 등록 기간은 끝나서..."
당연히 오라이온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후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시민권 시스템 설립과 등록에 힘을 쏟은 게 누군데. 바로 자신과 오토봇들이었다.
"저도 그 시기 내에 사이버트론 시민으로서 등록을 마쳤습니다."
"네, 옵티머스 프라임으로는 등록하셨죠."
"오라이온으로서는요?"
그 데스크 메크는 아주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헬름을 긁적였다.
"저도 사이버트론의 영웅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오라이온 팩스님은 현재... "
난민이십니다.
합법적으로 사이버트론에 체류할 수 있는 건 1 스텔라 사이클이 최대이구요.
'정말 죄송합니다. 법이 그래서요.'라고 고개를 숙이는 메크를 만류하며 오라이온은 생각했다. 당연히 법이 그렇다는 건 알았지. 그 법을 추진한 게 누군데... 다만 자신이 만든 법이 자신의 헬름을 내려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뿐. 이게 시적 정의라는 건가? 총사령관으로서 사이버트론을 더 잘 지키지 못한 업보가 이런 식으로 철퇴를 휘두르는 건가?
오라이온은 스파크가 동체에서 빠져나갈 것 같은 혼미한 정신으로 그 메크에게 물었다.
"시민권을 얻을 방법은 없는겁니까...?"
그 메크는 더욱 어쩔 줄 모르는 태도로 답했다.
"사이버트로니안의 배우자인 난민에게는 사이버트론 시민권이 부여되기는 하는데요..."
'망했군.' 이 오라이온의 프로세서를 스치는 생각의 전부였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오라이온 팩스가 되었다.
오라이온 팩스는 난민이다.
오라이온 팩스가 시민권을 얻으려면 이미 시민권이 있는 사이버트로니안 콘적스 엔듀라를 구해야 한다. 1 스텔라 사이클 내에.
프라이머스시여.
어쨌든 이 문제로 행성 간 이동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재즈와의 임무를 다른 메크에게 넘기기 위해서 오라이온은 위의 정보를 오토봇에게 모두 실토해야만 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오토봇 중앙회의실은 오라이온 팩스가 코그를 갈아끼우고 나타난 첫날 그 이상으로 뒤집어졌다.
오라이온 너 진짜 정신 나갔어? 프라울 진정해. 진정하긴 뭘 진정해 이거 놔봐 내가 대공동에 들어가겠어 들어가서 매트릭스를 회수한 다음 저 놈 가슴에 다시 박아넣고 의회에 출마시키고 보좌관이 돼서 평생 옆에서 감시할 거야- 프라울 너 사심 나왔어.
"그래서? 시민권을 얻을 방법은."
그래도 뭔가 타계책이 있겠지, 라는 일말의 신뢰를 가진 채 엘리타 원이 오라이온에게 물었다. 프라울도 회의실 저편에서 재즈에게 팔이 묶은 채 오라이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디 뭐라고 하는지 보자는 듯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오라이온은 안심하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1 스텔라 사이클 안에 나와 서류상 콘적스 엔듀라가 되어줄 메크를 찾아야 해."
회의실이 물리적으로 뒤집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
내전이 끝난 이후 전 오토봇 간부들과 전 디셉티콘 간부들은 예전 오토봇 청사 건물을 공유하고 있었다.
디셉티콘 집무실은 오토봇 중앙 회의실 바로 밑 층에 위치했다. 여러 메크가 우당탕탕 돌아다니는 듯한 격렬한 층간소음에 디셉티콘들은 오랜만에 옵틱의 붉은빛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운드웨이브. 쟤네 오늘 왜 저래? 에너존 잘못 먹었대?"
"......."
그리하여 오라이온 팩스가 졸지에 서류상의 난민이 되었으며 사이버트로니안인 콘적스 엔듀라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은... 오토봇 뿐 아니라 전 디셉티콘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리고 그 소식에 옵틱을 빛내는 메크들도 있었다.
오토봇에도.
디셉티콘에도.
아아,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순진한 오라이온,
프라이머스의 안배는 무슨.
프라이머스의 개판의 서막이었다.
***
머릿속에선 짧았는데 왜이렇게 길어졌냐...
어휴 어쨌든 1 스텔라 사이클이라는 유효기간 동안 '계약' 콘적스 엔듀라 해줄 메크 찾는 졸지에 난민된 오라이온과
이 기회에 호로록 오라이온의 봇생 제 옆에 꽉 붙잡아두려는 메크들의 우당탕탕 오해삽질견제암투 로코가 보고싶다
+ 1 스텔라 사이클은 지구 유기체 기준 1년 정도
옵티텀
알못주의
오랜 내전이 끝났다.
외부의 적으로 인해 불안정한 임시동맹으로 시작했던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버트론이 처참해질 수록 견고해졌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을 때, 고향을 재건하는 데에 내전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메크는 없었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추며 누가 오토봇이며 누가 디셉티콘인지에 대한 심리적 구분은 이미 흐릿해진지 오래였다.
마침내 사이버트론은 평화를 되찾았다. 이번에는 꾸며진 가짜가 아닌, 진짜 평화를.
그리고 옵티머스 프라임은 지쳐 있었다.
아주아주 많이.
***
옵티머스가 프라임직을 내려놓고 오라이온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종전 후 격무에 시달리던 어느날 밤이었다.
사이버트론은 바뀌고 있었다. 민주정이 도입되고, 의회가 설립되었다. 모든 지성체의 권리인 자유를 믿는 옵티머스도 과도한 정치적 힘을 가진 채 영적인 상징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신성한 상징이라기엔 그는 오랜시간에 걸쳐 마모된 메크일 뿐이었다. 오토봇들도 그의 은퇴를 짐작하는 듯 했다. 프라울을 비롯한 몇몇은 메가트론과 그의 전 참모들은 죄다 하이가드로 편입되면서 권력을 가져가는데 오토봇 총사령관이 모든 직위를 포기하는 게 말이 되냐고 길길이 날뛰긴 했지만... 옵티머스는 프라울의 옵틱에서 강요의 기색은 찾지 못했다.
원래 그는 최대한 한적한 지역에서 잠적에 가까운 생활을 할 계획이었다. 더 이상의 의무가 없으니 이번에야말로 좋아하던 것을 소소하게 하며 살겠노라고. 옵티머스는 원만한 잠적을 위해 도색을 바꾸거나, 라쳇에게 부탁해서 매트릭스를 가릴 수 있는 약간의 동체 개조를 부탁할까 고민하며 바쁘게 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손을 털 거라면 인수인계는 확실해야 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 리차징 베드에 누워있던 옵티머스는 자신의 손 안에 어떤 구체가 잡히는 걸 느꼈다.
감았던 옵틱을 뜨고 손을 내려다보니 밝은 주황빛을 발하는 코그가 들려 있었다.
그 코그는 분명히, 원래 오라이온 팩스의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리더십의 매트릭스를 사이버트론에 돌려주고 이 코그를 끼우면, 평화로운 세상에 쓸모가 없는 마지막 프라임은 사라질 것이고......
자신은 어쩌면 오라이온으로서의 자유를 돌려받을 수 있겠다고.
'어떤 변신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옵티머스는 금방 납득하기를 선택했다.
프라이머스의 안배를 어떻게 이해하겠어.
***
코그리스 광부 시절의 무모함과 근거없는 낙천성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건지, 다음 날 옵티머스는 몸소 그 안배에 전부를 걸고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서, 체스트 체임버에서 매트릭스를 꺼내고, 오라이온의 코그를 끼우는 미친 짓을. 오토봇 간부들 중 한 명한테라도 걸렸다간 절대 안 된다며 팔 다리를 잡고 늘어질 게 뻔했고, 프라울에게 걸리면 최소 강제 셧다운일테니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결과는 성공이었다.
프라임 때에 비하면 훨씬 작아진 스스로의 동체를 내려다보며 옵티머스 프라임, 아니, 오라이온 팩스는 아주 오랜만에 해방감에 함성을 내질렀다. 야호! 만세! 안온한 은퇴 잠적 생활의 순조로운 첫 걸음이었다!
물론 아직 오라이온에게 전 총사령관으로서의 업무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바로 다음 솔라 사이클에 오토봇 전체가 뒤집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토봇 중앙회의실로 걸어들어온, 도색은 비슷하지만 프라임보다 훨씬 작은 동체에 오토봇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곧 프라임의 광부시절을 아는 간부들은 귀신을 본 것처럼 경악했다.
"프라임 당신 미쳤-"
"이젠 다시 오라이온 팩스라네, 라쳇."
"너 진짜 미쳤어요???"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몸을 막 굴리는 상관을 둬 늘 골머리를 썩는 메딕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맘 같아선 오라이온의 동체를 갈아 엔젝스로 마시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갑자기 작아진 동체에 라쳇은 제대로 손도 올리지 못했다. 오라이온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떠는 메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회의실을 곁눈질했다. 가장 걱정했던 건 엘리타 원이나 프라울의 반응이었는데, 둘은 예상 외로 무덤덤한 낯을 하고 오라이온을 보고 있었다. 침착한 건지 충격에 굳은 건지는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것보단 재즈의 언제나 건재한 미소가 사라진 게 훨씬 두려웠다.
타이밍 좋게 라쳇이 동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며 그를 회의실 밖으로 연행해갔기에 오라이온은 당장은 그의 부관들의 심문을 모면할 수 있었다. 오라이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 뒤의 옵틱들이 얼마나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 채로.
***
오토봇들 수많은 장점 중 하나는 포용력과 이해심이다.
오라이온은 걱정했던 것 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변화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오토봇들을 보고 새삼 스파크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오랜 내전과 수많은 전투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메크들이었다. 가슴에 매트릭스를 품고 있지 않아도, 거대한 동체가 평범한 크기로 바뀌어도, 그들은 오토봇 총사령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아본다. 그가 옵티머스 프라임으로서 가져야 했던 막중한 짐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비로소 평화의 시대에 조금이나마 짐을 덜 오라이온 팩스를 환영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훈훈한 마음으로 퇴근을 준비했다. 얼마 후 재즈와 함께 다른 행성에 들르는 업무가 있었기에, 그는 쿼터로 돌아가는 길에 데이터센터에 들려 행성 간 비행에 필요한 정보를 업데이트할 생각이었다. 이제 동체도 바뀌었고, 이름도 오라이온 팩스가 되었으니. 데이터센터로 향하는 오라이온의 발걸음은 경쾌하기까지 했다. 잠시 후 그가 마주할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는 너무나 다르게.
"어? 사망하신 메크라고 뜨는데요..?"
데스크에서 신원 정보 확인을 위해 오라이온의 동체를 스캔하던 메크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오라이온이 얼빠진 소리를 내자 데스크의 메크가 디짓을 바쁘게 놀리며 오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패드에 떠오르는 일치된 행정기록에 당황해서 옵틱을 깜빡였다.
"왜 이런 오류가 생겼는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nnnn년 대공동 추락사라고-"
"앗, 그럼 맞긴 합니다만."
"예?"
이번에는 데스크 메크가 얼빠진 소리를 낼 차례였다. 아, 그러니까... 오라이온은 장황한 이야기를 최대한 간추려서 설명했다. 자신이 전에는 옵티머스 프라임이었고, 그 전에는 오라이온 팩스였으며, 어느 날 제 손으로 돌아온 오라이온의 코그 덕분에 최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다행히 프라이머스에 대한 신앙이 견고한 사이버트론에서는 상당히 납득되는 이야기였다. 데스크 메크도 무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네요, 이해가 가요."
그러나 곧 메크는 매우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사이버트론 새 행정법상 옵티머스 프라임과 오라이온 팩스는 다른 메크로 봐야 합니다. 동체를 개조한 수준이 아니라 코그가 아예 달라진 거여서요. 근데 이미 내전 협상 기간동안 사이버트론의 시민이 되길 원하는 메크들은 다 등록을 마쳤고, 등록 기간은 끝나서..."
당연히 오라이온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후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시민권 시스템 설립과 등록에 힘을 쏟은 게 누군데. 바로 자신과 오토봇들이었다.
"저도 그 시기 내에 사이버트론 시민으로서 등록을 마쳤습니다."
"네, 옵티머스 프라임으로는 등록하셨죠."
"오라이온으로서는요?"
그 데스크 메크는 아주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헬름을 긁적였다.
"저도 사이버트론의 영웅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오라이온 팩스님은 현재... "
난민이십니다.
합법적으로 사이버트론에 체류할 수 있는 건 1 스텔라 사이클이 최대이구요.
'정말 죄송합니다. 법이 그래서요.'라고 고개를 숙이는 메크를 만류하며 오라이온은 생각했다. 당연히 법이 그렇다는 건 알았지. 그 법을 추진한 게 누군데... 다만 자신이 만든 법이 자신의 헬름을 내려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뿐. 이게 시적 정의라는 건가? 총사령관으로서 사이버트론을 더 잘 지키지 못한 업보가 이런 식으로 철퇴를 휘두르는 건가?
오라이온은 스파크가 동체에서 빠져나갈 것 같은 혼미한 정신으로 그 메크에게 물었다.
"시민권을 얻을 방법은 없는겁니까...?"
그 메크는 더욱 어쩔 줄 모르는 태도로 답했다.
"사이버트로니안의 배우자인 난민에게는 사이버트론 시민권이 부여되기는 하는데요..."
'망했군.' 이 오라이온의 프로세서를 스치는 생각의 전부였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오라이온 팩스가 되었다.
오라이온 팩스는 난민이다.
오라이온 팩스가 시민권을 얻으려면 이미 시민권이 있는 사이버트로니안 콘적스 엔듀라를 구해야 한다. 1 스텔라 사이클 내에.
프라이머스시여.
어쨌든 이 문제로 행성 간 이동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재즈와의 임무를 다른 메크에게 넘기기 위해서 오라이온은 위의 정보를 오토봇에게 모두 실토해야만 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오토봇 중앙회의실은 오라이온 팩스가 코그를 갈아끼우고 나타난 첫날 그 이상으로 뒤집어졌다.
오라이온 너 진짜 정신 나갔어? 프라울 진정해. 진정하긴 뭘 진정해 이거 놔봐 내가 대공동에 들어가겠어 들어가서 매트릭스를 회수한 다음 저 놈 가슴에 다시 박아넣고 의회에 출마시키고 보좌관이 돼서 평생 옆에서 감시할 거야- 프라울 너 사심 나왔어.
"그래서? 시민권을 얻을 방법은."
그래도 뭔가 타계책이 있겠지, 라는 일말의 신뢰를 가진 채 엘리타 원이 오라이온에게 물었다. 프라울도 회의실 저편에서 재즈에게 팔이 묶은 채 오라이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디 뭐라고 하는지 보자는 듯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오라이온은 안심하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1 스텔라 사이클 안에 나와 서류상 콘적스 엔듀라가 되어줄 메크를 찾아야 해."
회의실이 물리적으로 뒤집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
내전이 끝난 이후 전 오토봇 간부들과 전 디셉티콘 간부들은 예전 오토봇 청사 건물을 공유하고 있었다.
디셉티콘 집무실은 오토봇 중앙 회의실 바로 밑 층에 위치했다. 여러 메크가 우당탕탕 돌아다니는 듯한 격렬한 층간소음에 디셉티콘들은 오랜만에 옵틱의 붉은빛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운드웨이브. 쟤네 오늘 왜 저래? 에너존 잘못 먹었대?"
"......."
그리하여 오라이온 팩스가 졸지에 서류상의 난민이 되었으며 사이버트로니안인 콘적스 엔듀라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은... 오토봇 뿐 아니라 전 디셉티콘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리고 그 소식에 옵틱을 빛내는 메크들도 있었다.
오토봇에도.
디셉티콘에도.
아아,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순진한 오라이온,
프라이머스의 안배는 무슨.
프라이머스의 개판의 서막이었다.
***
머릿속에선 짧았는데 왜이렇게 길어졌냐...
어휴 어쨌든 1 스텔라 사이클이라는 유효기간 동안 '계약' 콘적스 엔듀라 해줄 메크 찾는 졸지에 난민된 오라이온과
이 기회에 호로록 오라이온의 봇생 제 옆에 꽉 붙잡아두려는 메크들의 우당탕탕 오해삽질견제암투 로코가 보고싶다
+ 1 스텔라 사이클은 지구 유기체 기준 1년 정도
옵티텀
https://hygall.com/611799136
[Code: af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