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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7 01:45
ㅂㄱㅅㄷ
허니는 제 시종의 손을 붙잡고 심장이 터지도록 달렸음. 아니, 이렇게 뛰다가 로마군을 마주치지 않고 심장이 터져 죽길 원했음. 하지만 허니는 이곳에서 벗어나야했음. 죽지않고 사는 것. 그게 허니의 사명이니깐. 허니는 맞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싣고 고개를 살짝 돌려 숨을 헐떡이며 내뱉었음.
"비밀통로가 있어. 그곳으로 나가면 바다랑 이어지는 수로가 나와...사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 우린 배를 타고 떠날거야."
우리의 멸망해버린 고국에서 멀고도 먼 곳으로 사라지는거야. 우린 할 수 있어. 허니는 다짐을 하며 조금 더 속력을 올렸지만 시종이 발걸음을 멈췄음. 우리 말고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다는 것 같다며. 그 말을 듣자 허니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지만 꾹 참아내고 그의 팔을 잡아당겼지. 그리고 이를 악물고 낮게 외쳤음. 우린 멈추면 안 돼.
하지만 코너에서 몸을 옆으로 돌리는 순간 제 몸이 등 뒤로 거칠게 당겨지는게 느껴졌음.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시종이 로마군의 손에 붙잡혀 있었음. 허니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머리 위로 검은 천이 뒤집혀졌고 알수없는 누군가의 손길로 코와 입이 틀어막혀 점차 숨이 막혀오다 정신을 잃게됐음.
허니가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 건 무릎에 느껴지는 아찔한 고통과 함께 제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불길의 열기와 찢어지는 울음소리와 비명 때문이었음. 까맣게 차단된 시야는 천이 벗겨짐과 동시에 붉은 빛이 그녀의 눈을 찌르듯 파고들어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지. 재단 위에 성을 집어 삼킬 정도로 강렬한 불 속에서 황실의 핏줄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싶었음. 밤하늘에 흩날리는 아지렁이와 불씨와 찢어진 옷감이 제 손등에 툭 떨어졌을 때 허니는 속을 개워낼 뻔 했지만 입술을 꾹 깨물며 참았음.
그리고 허니는 누군가의 손에 강제로 몸이 들려졌음. 기력이라곤 전혀 남지 않은 상태라 종이조각처럼 불씨를 키우는 바람에 몸이 힘없이 휘청거렸지.
"조심히 다뤄라. 비록 역사에서 사라진 제국의 하찮은 공주 신분이지만..."
강제로 몸이 돌려진 허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음. 핏물이 여전히 흥건하게 흐르고 있는 빨간 망토가 펄럭이자 진한 피냄새가 퍼져나가며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리겠지.
"내 아내가 될 여인이다."
아카시우스. 이 제국을 멸하고 황족을 멸한 로마의 사랑을 받고 어쩌면 신의 총애도 받았을지 모를 장군. 필히 그의 칼과 손에 제 가족들의 피와 살가죽이 묻어있을 거라 허니는 믿어 의심치 않겠지. 근데 그런자와 난데없이 혼인이라니. 허니는 반항하며 붙잡힌 팔을 비틀어 빼봤지만 허니의 몸만 애처롭게 흔들릴 뿐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음.
"허니...공주님!"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와 더불어 허니의 옆에 로마 군인 한 명이 지나가 장군 앞에 서서 말했음. 저 시종은 어찌하면 되냐고. 공주와 함께 붙어있던 자라면서. 아카시우스 장군은 허니를 힐긋 쳐다보고 그 뒤 포박당한 채 무릎이 꿇려진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제 부하에게 말하겠지. 죽이라고.
"오직 공주만 내 배에 태워 나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허니는 제 팔을 붙잡은 남자의 손을 거칠게 깨물고는 제 시종에게로 달려갔고 그 애의 어깨를 끌어안은 뒤 두 팔을 벌려 그 앞에 섰음. 단호하고 완강한 태도로 말하겠지. 이 아이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자신도 죽겠다고. 허니의 이런 태도를 어쭙잖다는 듯이 바라본 장군은 지친 한순을 쉬고 더욱더 피곤해진 얼굴로 허니 앞에 다가와 물었음. 그대 손에 무기하나 없는데 어떻게 죽을거냐며. 허니는 제 발목에 숨겨놨던 칼집을 꺼내 제 중지 손가락보다 조금 더 길지만 그 끝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목덜미에 갖다대며 아카시우스 장군을 올려다봤음.
"당신이 멸한 나의 나라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
"로마인 손에 죽을 바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기꺼이 지옥으로 떨어지겠노라."
그 말을 들은 장군은 비웃는 건지 아니면 허니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건지는 몰라도 얕은 실소를 내뱉으며 한 쪽 무릎을 꾼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조심히 손을 뻗어 칼을 붙잡고 있는 허니의 손을 어깨 아래로 천천히 내리겠다.
"죽지 않아도 지옥을 마주할 때도 있지요."
"........"
"공주는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아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허니의 손을 거세게 붙잡아 칼을 떨어뜨리겠지. 외마디 비명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음.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허니를 내려다보며 말하겠지.
"이 둘을 내 배에 태워라. 다친 곳을 치료하고, 음식도 넉넉히 챙겨주는게 좋겠군."
허니는 제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시종의 손을 끌어안았음.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그을림 가득한 얼굴 위로 눈물길을 만들겠지. 허니는 빗물대신 핏물을 흡수하고 퇴비대신 시체를 양분 삼아 죽어갈 이 땅을 둘러봤음. 눈에 닿는 곳곳마다 불길이 피어올랐고,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거리 곳곳에 곡소리가 울려퍼졌음.
장군의 말이 맞았음. 굳이 죽을 필요도 없이 허니는 지옥 한복판에 놓여있었지. 로마의 장군 아카시우스가 만든 지옥 속에. 그리고 허니는 죽을 때까지 그 지옥에서 살게 될 예정이었음.
/
로마로 돌아오자마자 허니는 몸에 생긴 자잘한 상처들이 아물때까지 거대한 성과 같은 감옥에 갇혀 상처 치료에 힘썼음. 몸 상태가 멀끔하게 돌아오고 나서야 둘의 결혼식을 올렸지. 로마가 사랑하는 장군의 결혼식이라고 하기에는 짧고 소박했음. 원치도 않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장군을 기다리면서 이제부터 허니를 도울 시종들은 눈치도 보지않은 채 허니의 뒤에서서 대놓고 뒷담을 까댔음.
"장군님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 분과 결혼하고 싶다는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말이! 로마를 위해 목숨을 받치는 장군님이 왜 이런 수준 낮은 혼인을 치뤄야하는거지?"
"원로회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군님에게 저런 야만인을 짝이라고 붙여주신건지..."
허니는 보드라운 실크를 쥐락펴락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수치스럽게하는 말을 모조리 감당해야했음. 하지만 아카시우스의 등장에 시종들은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고개를 잔뜩 조아리며 경의를 표했지. 허니는 그들의 이중적인 면모에 살짝 놀랐지만 티내진 않았음. 야만인이라고 불려도 상관없지만, 멍청한 야만인이라고 그들에게 인식되고 싶진 않았으니깐.
아카시우스는 시종들을 물렸고, 허니에게 제 팔을 내어줬음. 황제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겠지. 새하얀 대리석 바닥 위에 깔린 장밋잎 위를 즈려밟으며 걸어갈 때마다 허니는 속이 메스꺼웠음. 향긋한 장밋잎이 끈적하고 비릿한 핏자국처럼 보였거든. 이 긴 통로 끝에는 황제가 제단 위에 서서 장군을 기다리고 있었음.
곧 있으면 허니는 저 황제 아래에 무릎을 꿇고, 죽을 때까지 아카시우스의 아내가 되겠다는 서약을 해야됐음. 통로의 양 옆에는 악단들이 경쾌한, 축복을 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지만 연주하는 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서인지는 몰라도 노래는 음울하게 느껴져 통로의 분위기는 사뭇 처참하겠지. 더군다나 이런 소음이 허니에게는 비명소리처럼 들려서 속을 더 뒤집어놓겠지.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 눈 앞이 흐릿해지며 발걸음 조차 비틀거릴 때 아카시우스가 잠시 걸음을 멈춰 허니를 쳐다봤음. 그리고 달래듯이 제 팔을 감싼 허니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겠지.
"힘든건 알지만, 하셔야 됩니다."
허니의 목울대가 조여졌고 그 아래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점차 얼굴 위로 스멀스멀 열기를 뿜으며 올라오고 있었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음. 그 기미조차. 하지만 허니는 신체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 완전 바싹 말려진 상태라 이런 동정 섞인 행동에도 마음이 울렁거렸지. 허니는 작은 숨을 내쉬고 이제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음. 허니는 그의 팔을 조금 더 거세게 붙잡으며 물었음. 제 시종은 어디에 있냐며. 감옥에 보낸 것이냐며. 아니면 노예 시장에 내다 팔았냐면서.
"그는 내 지휘 아래에 있습니다."
"...지휘 아래라뇨?"
"이제 그는 로마를 섬기는 군인입니다."
그는 황제가 아닌 날 섬겨야할 것입니다. 로마의 모든 군인들이 그렇듯 그도 예외는 없습니다. 허니는 충격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음. 그리고 둘은 어느덧 황제의 앞까지 도달했겠지. 황제는 당연히 허니를 투명인간 취급했음. 마치 바닥을 기어다니는 눈에 띄지않는 벌레 정도로 인식하는 것 처럼 보였음. 식은 굴욕스러웠음. 오직 허니에게만. 황제가 명을 내렸거든. 원래는 결혼을 할 남녀가 황제 아래에 두 무릎을 꿇고 서약서에 순종하겠다며 맹세를 해야했지만 황제는 허니에게만 무릎을 꿇렸음. 로마의 위대한 장군의 무릎은 아주 귀하기 때문에 꿇릴 수 없다면서.
이 말을 즉, 이 결혼에서 순종해야하는 사람은 허니 뿐이라는 거임. 아내라는 단어는 이 로마에서 그녀의 사회적 체면일 뿐, 실상 그녀는 아카시우스의 종이 되는거였음. 치욕스러웠지만 허니는 무릎을 꿇고 맹세했음.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황제 앞에 서기 전 아카시우스와 거래를 했거든. 결혼식을 무사히 끝내면 공주가 아끼는 시종을 데려오겠다고.
"내가...당신을 어떻게 믿죠?"
허니의 말에 그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음.
"공주를 위해서라도 내 말을 믿는게 좋을텐데요."
황제 앞에서의 맹세가 끝이 나고 최소한의 규모로 파티가 열리겠지. 허니는 아카시우스의 에스코트를 받아 온실정원으로 향했고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한 뒤 모든 시종을 뒤로 물렸음. 그리고 얼마안가 허니의 시종이 몸을 보이겠지. 허니는 그가 모습을 보이자 마자 눈물이 그렁거릴 정도로 울상을 지으며 장군의 손을 놓고 빠르게 그에게 걸어갔음. 할 수만 있다면 달려가 그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무늬 하나 없이 길기만한 드레스가 그녀의 반가움과 안도감을 저지시키겠지.
하지만 그녀의 시종은 그녀만큼 반가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음. 살풋 미소를 보이는가 싶었지만 그녀가 입고있는 옷을 보고 그녀와 대비되는 걱정과 슬픔이 표정에 묻어났고 그 표정은 아카시우스의 미간을 좁혔음.
"티모시!"
"...아가씨..."
허니는 티모시를 와락 안아줬음. 그도 자신을 안아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허니를 제 품에 밀어낼 뿐이었음. 보석 하나 없고, 무늬와 자수하나 없는 하얀색 실크 드레스를 걸친 허니와 그녀의 약지 손가락에 걸쳐진 실반지를 보며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결혼을 축하드린다는 말을 할 뿐이었음.
예상과는 달리 다소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정적인 그의 반응에 허니는 살짝 당황했지만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잘 지냈냐며 정말로 보고싶었다고 말했음. 티모시는 허니의 등 뒤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카시우스에게 시선을 돌렸고 허니도 그를 따라 몸을 뒤로 돌렸음.
"장군님의 은혜로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낸다니 다행...이구나. 난 혹여 네 신변에 문제가,"
"작별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공주...아니, 부인."
"작별...인사라뇨? 그게 무슨..."
허니는 놀란 눈으로 폴의 눈을 들여다보려고 했지만 그는 입술을 꾹 다문채 시선을 피했음. 그리고 티모시가 말하겠지. 남쪽 해안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 그걸 제압하러 가야한다고. 출전 전 결혼 축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문한거라면서. 허니는 맞잡은 손을 벌벌 떨며 말했음. 가지마. 가면 안 돼, 라고. 하지만 이번에도 티모시는 천천히 제 손을 허니의 손에서 빼내려고 했지만 아카시우스가 허니의 손을 덥석 붙잡고 제 팔 위에 올리겠지.
"이제 그만 가봐야 되겠군."
하면서 허니가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거의 끌고가다시피 온실정원으로 나오더니만 파티장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고 이제 허니와 함께 살게 된 제 집으로 곧장 향하겠지. 화가 난건지 뭔지 그의 발걸음은 지나지게 빨랐음. 그에 비해 키가 작고 옷이 불편한 허니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에 나중에는 거의 그의 팔에 매달린 채로 질질 끌려가는 것 같았겠다.
아카시우스는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복도에서 쩌렁쩌렁 외친 후 부부가 같이 써야할 침실의 침대 위로 허니를 내려줬음. 거의 내동댕이 쳐진 허니는 그를 짧게 노려보다 옷 매무새를 정리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거리겠지. 시종들을 다 물리고 침실로 끌고왔으니 이 안에서 벌어질 일들은 뻔했음.
아카시우스가 짙은 한숨을 내뱉고 한 걸음 발을 떼자 허니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손을 떨겠지. 이미 예상을 했던 상황이지만 막상 닥쳐오니 무서운건 어쩔 수가 없었음. 아카시우스는 허니 곁으로 더는 다가가지 않았음. 그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거친 손으로 제 눈가를 마사지하듯 어루만지겠지.
"시종과 무슨 관계입니까?"
"...관계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 묻는겁니다."
"장군이 묻는다고 해도 내가 답해줄 필요는 없죠."
"아뇨. 그대는 답을 해야됩니다. 내 아내이니깐."
"난 당신의 아내가 아닌,"
"신을 섬기는 제단 아래에서 우리 둘 다 맹세한 걸 그세 까먹진 않았을텐데요."
"그가 나와 무슨 관계인지가 중요한가요?"
"중요하지요. 오늘부터 난 당신의 남편이니깐."
턱 끝을 어루만지며 말하는 그의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자신과 같은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음.
"시종이 남자인 것도 믿기지가 않았는데 그렇게 격없이 대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
"애정하고 있습니까, 그 애를?"
"감히...내가...그 애를 애정하다니요."
허니는 입술을 꾹 깨물었음. 그리고 이어 말하겠지. 어릴 때부터 함께, 남매처럼 지내온 아이입니다. 넓은 궁에 또래라고는 티모시 밖에 없었으니... 뭐든 할려면 그 애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아주, 아주 아끼던 아이지요. 그리고 비소를 흘리며 그를 노려봤음.
"내 가족을 모조리 죽인게 모자르셨나봅니다. 그 아이를 다시 전쟁터로 보내시는 걸 보니..."
".........."
"그냥 죽는거였는데..."
아카시우스는 테이블에 놓여진 주전자들 기울여 찻 잔에 천천히 따랐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향긋한 꽃향이 은은하게 방 안에 퍼지겠지. 그가 차를 마셨고, 허니는 침대 위에서 두 다리를 끌어안고 그를 외면했음. 허니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음. 이불을 끌어안고 자포자기 한 상태로 엉엉 울고 싶지만 이 남자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음. 하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않아서 티모시를 잃는 것도 싫은거지.
아카시우스 장군은 막무가내에 비열한 인간이 아님을 앎. 그 증거가 티모시와 허니 그 자체였지. 그러니 허니는 결혼식을 할 때처럼 이번엔 본인이 거래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허니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제 몸뚱이가 전부였으니 이걸 담보로 티모시를 전쟁터에서 빼내는거지. 허니는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그는 이미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음. 움찔거리는 허니의 손에 찻잔을 쥐여줬음. 캐모마일 차라고 말해주겠지.
"난 홀아비가 되긴 싫습니다, 부인."
"......."
허니는 하얀 꽃잎이 올라간 꽃차를 내려다봤음. 그가 같은 주전자에 담긴 차를 눈 앞에서 마셔줬으니 독이 들어있을리는 만무했지.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더군요. 그의 말에 허니는 살짝 입술만 축일 정도로 차를 마시겠지.
"거래를 합시다."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버티셔야 됩니다."
"어딜...가시나요?"
허니의 물음에 그는 씩 웃으며 그녀의 손에 들린 찻잔을 들어주며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겠지.
"어린 군인들에게는 베테랑 군인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는 허니가 물었던 부분을 엄지 손가락으로 살짝 훑어낸 뒤 탁상 위에 올리며 벗어놨던 망토를 다시 어깨에 걸치며 이어 말했음.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부인이 애정하는 그 아이와 함께."
그가 떠나고 난 뒤 허니는 시녀들이 말하는 얘기를 의도치않게 엿듣게 됐겠다. 장군님이 안 가도 되는 해안마을에 가서 반란을 잠재우고 있다고. 그곳을 간 이유는 필히 자신의 쓸모없는 부인과 집에서 마주하는게 죽을만큼 싫어서 가게 된 거라고.
하지만 허니는 진실을 알겠지. 그는 자신과의 거래를 위해 간 거라고. 그러니깐 티모시를 지키고 자신이 이곳에서 죽지 않고 혼자 살아남을 방법을 터특하길 원하기에 전쟁터로 되돌아간거라고.
하...기력빨려
보고싶은건 하나도 안나왔네...
페드로너붕붕
약티모시너붕붕
허니는 제 시종의 손을 붙잡고 심장이 터지도록 달렸음. 아니, 이렇게 뛰다가 로마군을 마주치지 않고 심장이 터져 죽길 원했음. 하지만 허니는 이곳에서 벗어나야했음. 죽지않고 사는 것. 그게 허니의 사명이니깐. 허니는 맞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싣고 고개를 살짝 돌려 숨을 헐떡이며 내뱉었음.
"비밀통로가 있어. 그곳으로 나가면 바다랑 이어지는 수로가 나와...사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 우린 배를 타고 떠날거야."
우리의 멸망해버린 고국에서 멀고도 먼 곳으로 사라지는거야. 우린 할 수 있어. 허니는 다짐을 하며 조금 더 속력을 올렸지만 시종이 발걸음을 멈췄음. 우리 말고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다는 것 같다며. 그 말을 듣자 허니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지만 꾹 참아내고 그의 팔을 잡아당겼지. 그리고 이를 악물고 낮게 외쳤음. 우린 멈추면 안 돼.
하지만 코너에서 몸을 옆으로 돌리는 순간 제 몸이 등 뒤로 거칠게 당겨지는게 느껴졌음.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시종이 로마군의 손에 붙잡혀 있었음. 허니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머리 위로 검은 천이 뒤집혀졌고 알수없는 누군가의 손길로 코와 입이 틀어막혀 점차 숨이 막혀오다 정신을 잃게됐음.
허니가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 건 무릎에 느껴지는 아찔한 고통과 함께 제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불길의 열기와 찢어지는 울음소리와 비명 때문이었음. 까맣게 차단된 시야는 천이 벗겨짐과 동시에 붉은 빛이 그녀의 눈을 찌르듯 파고들어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지. 재단 위에 성을 집어 삼킬 정도로 강렬한 불 속에서 황실의 핏줄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싶었음. 밤하늘에 흩날리는 아지렁이와 불씨와 찢어진 옷감이 제 손등에 툭 떨어졌을 때 허니는 속을 개워낼 뻔 했지만 입술을 꾹 깨물며 참았음.
그리고 허니는 누군가의 손에 강제로 몸이 들려졌음. 기력이라곤 전혀 남지 않은 상태라 종이조각처럼 불씨를 키우는 바람에 몸이 힘없이 휘청거렸지.
"조심히 다뤄라. 비록 역사에서 사라진 제국의 하찮은 공주 신분이지만..."
강제로 몸이 돌려진 허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음. 핏물이 여전히 흥건하게 흐르고 있는 빨간 망토가 펄럭이자 진한 피냄새가 퍼져나가며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리겠지.
"내 아내가 될 여인이다."
아카시우스. 이 제국을 멸하고 황족을 멸한 로마의 사랑을 받고 어쩌면 신의 총애도 받았을지 모를 장군. 필히 그의 칼과 손에 제 가족들의 피와 살가죽이 묻어있을 거라 허니는 믿어 의심치 않겠지. 근데 그런자와 난데없이 혼인이라니. 허니는 반항하며 붙잡힌 팔을 비틀어 빼봤지만 허니의 몸만 애처롭게 흔들릴 뿐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음.
"허니...공주님!"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와 더불어 허니의 옆에 로마 군인 한 명이 지나가 장군 앞에 서서 말했음. 저 시종은 어찌하면 되냐고. 공주와 함께 붙어있던 자라면서. 아카시우스 장군은 허니를 힐긋 쳐다보고 그 뒤 포박당한 채 무릎이 꿇려진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제 부하에게 말하겠지. 죽이라고.
"오직 공주만 내 배에 태워 나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허니는 제 팔을 붙잡은 남자의 손을 거칠게 깨물고는 제 시종에게로 달려갔고 그 애의 어깨를 끌어안은 뒤 두 팔을 벌려 그 앞에 섰음. 단호하고 완강한 태도로 말하겠지. 이 아이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자신도 죽겠다고. 허니의 이런 태도를 어쭙잖다는 듯이 바라본 장군은 지친 한순을 쉬고 더욱더 피곤해진 얼굴로 허니 앞에 다가와 물었음. 그대 손에 무기하나 없는데 어떻게 죽을거냐며. 허니는 제 발목에 숨겨놨던 칼집을 꺼내 제 중지 손가락보다 조금 더 길지만 그 끝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목덜미에 갖다대며 아카시우스 장군을 올려다봤음.
"당신이 멸한 나의 나라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
"로마인 손에 죽을 바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기꺼이 지옥으로 떨어지겠노라."
그 말을 들은 장군은 비웃는 건지 아니면 허니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건지는 몰라도 얕은 실소를 내뱉으며 한 쪽 무릎을 꾼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조심히 손을 뻗어 칼을 붙잡고 있는 허니의 손을 어깨 아래로 천천히 내리겠다.
"죽지 않아도 지옥을 마주할 때도 있지요."
"........"
"공주는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아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허니의 손을 거세게 붙잡아 칼을 떨어뜨리겠지. 외마디 비명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음.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허니를 내려다보며 말하겠지.
"이 둘을 내 배에 태워라. 다친 곳을 치료하고, 음식도 넉넉히 챙겨주는게 좋겠군."
허니는 제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시종의 손을 끌어안았음.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그을림 가득한 얼굴 위로 눈물길을 만들겠지. 허니는 빗물대신 핏물을 흡수하고 퇴비대신 시체를 양분 삼아 죽어갈 이 땅을 둘러봤음. 눈에 닿는 곳곳마다 불길이 피어올랐고,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거리 곳곳에 곡소리가 울려퍼졌음.
장군의 말이 맞았음. 굳이 죽을 필요도 없이 허니는 지옥 한복판에 놓여있었지. 로마의 장군 아카시우스가 만든 지옥 속에. 그리고 허니는 죽을 때까지 그 지옥에서 살게 될 예정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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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돌아오자마자 허니는 몸에 생긴 자잘한 상처들이 아물때까지 거대한 성과 같은 감옥에 갇혀 상처 치료에 힘썼음. 몸 상태가 멀끔하게 돌아오고 나서야 둘의 결혼식을 올렸지. 로마가 사랑하는 장군의 결혼식이라고 하기에는 짧고 소박했음. 원치도 않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장군을 기다리면서 이제부터 허니를 도울 시종들은 눈치도 보지않은 채 허니의 뒤에서서 대놓고 뒷담을 까댔음.
"장군님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 분과 결혼하고 싶다는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말이! 로마를 위해 목숨을 받치는 장군님이 왜 이런 수준 낮은 혼인을 치뤄야하는거지?"
"원로회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군님에게 저런 야만인을 짝이라고 붙여주신건지..."
허니는 보드라운 실크를 쥐락펴락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수치스럽게하는 말을 모조리 감당해야했음. 하지만 아카시우스의 등장에 시종들은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고개를 잔뜩 조아리며 경의를 표했지. 허니는 그들의 이중적인 면모에 살짝 놀랐지만 티내진 않았음. 야만인이라고 불려도 상관없지만, 멍청한 야만인이라고 그들에게 인식되고 싶진 않았으니깐.
아카시우스는 시종들을 물렸고, 허니에게 제 팔을 내어줬음. 황제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겠지. 새하얀 대리석 바닥 위에 깔린 장밋잎 위를 즈려밟으며 걸어갈 때마다 허니는 속이 메스꺼웠음. 향긋한 장밋잎이 끈적하고 비릿한 핏자국처럼 보였거든. 이 긴 통로 끝에는 황제가 제단 위에 서서 장군을 기다리고 있었음.
곧 있으면 허니는 저 황제 아래에 무릎을 꿇고, 죽을 때까지 아카시우스의 아내가 되겠다는 서약을 해야됐음. 통로의 양 옆에는 악단들이 경쾌한, 축복을 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지만 연주하는 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서인지는 몰라도 노래는 음울하게 느껴져 통로의 분위기는 사뭇 처참하겠지. 더군다나 이런 소음이 허니에게는 비명소리처럼 들려서 속을 더 뒤집어놓겠지.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 눈 앞이 흐릿해지며 발걸음 조차 비틀거릴 때 아카시우스가 잠시 걸음을 멈춰 허니를 쳐다봤음. 그리고 달래듯이 제 팔을 감싼 허니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겠지.
"힘든건 알지만, 하셔야 됩니다."
허니의 목울대가 조여졌고 그 아래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점차 얼굴 위로 스멀스멀 열기를 뿜으며 올라오고 있었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음. 그 기미조차. 하지만 허니는 신체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 완전 바싹 말려진 상태라 이런 동정 섞인 행동에도 마음이 울렁거렸지. 허니는 작은 숨을 내쉬고 이제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음. 허니는 그의 팔을 조금 더 거세게 붙잡으며 물었음. 제 시종은 어디에 있냐며. 감옥에 보낸 것이냐며. 아니면 노예 시장에 내다 팔았냐면서.
"그는 내 지휘 아래에 있습니다."
"...지휘 아래라뇨?"
"이제 그는 로마를 섬기는 군인입니다."
그는 황제가 아닌 날 섬겨야할 것입니다. 로마의 모든 군인들이 그렇듯 그도 예외는 없습니다. 허니는 충격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음. 그리고 둘은 어느덧 황제의 앞까지 도달했겠지. 황제는 당연히 허니를 투명인간 취급했음. 마치 바닥을 기어다니는 눈에 띄지않는 벌레 정도로 인식하는 것 처럼 보였음. 식은 굴욕스러웠음. 오직 허니에게만. 황제가 명을 내렸거든. 원래는 결혼을 할 남녀가 황제 아래에 두 무릎을 꿇고 서약서에 순종하겠다며 맹세를 해야했지만 황제는 허니에게만 무릎을 꿇렸음. 로마의 위대한 장군의 무릎은 아주 귀하기 때문에 꿇릴 수 없다면서.
이 말을 즉, 이 결혼에서 순종해야하는 사람은 허니 뿐이라는 거임. 아내라는 단어는 이 로마에서 그녀의 사회적 체면일 뿐, 실상 그녀는 아카시우스의 종이 되는거였음. 치욕스러웠지만 허니는 무릎을 꿇고 맹세했음.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황제 앞에 서기 전 아카시우스와 거래를 했거든. 결혼식을 무사히 끝내면 공주가 아끼는 시종을 데려오겠다고.
"내가...당신을 어떻게 믿죠?"
허니의 말에 그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음.
"공주를 위해서라도 내 말을 믿는게 좋을텐데요."
황제 앞에서의 맹세가 끝이 나고 최소한의 규모로 파티가 열리겠지. 허니는 아카시우스의 에스코트를 받아 온실정원으로 향했고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한 뒤 모든 시종을 뒤로 물렸음. 그리고 얼마안가 허니의 시종이 몸을 보이겠지. 허니는 그가 모습을 보이자 마자 눈물이 그렁거릴 정도로 울상을 지으며 장군의 손을 놓고 빠르게 그에게 걸어갔음. 할 수만 있다면 달려가 그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무늬 하나 없이 길기만한 드레스가 그녀의 반가움과 안도감을 저지시키겠지.
하지만 그녀의 시종은 그녀만큼 반가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음. 살풋 미소를 보이는가 싶었지만 그녀가 입고있는 옷을 보고 그녀와 대비되는 걱정과 슬픔이 표정에 묻어났고 그 표정은 아카시우스의 미간을 좁혔음.
"티모시!"
"...아가씨..."
허니는 티모시를 와락 안아줬음. 그도 자신을 안아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허니를 제 품에 밀어낼 뿐이었음. 보석 하나 없고, 무늬와 자수하나 없는 하얀색 실크 드레스를 걸친 허니와 그녀의 약지 손가락에 걸쳐진 실반지를 보며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결혼을 축하드린다는 말을 할 뿐이었음.
예상과는 달리 다소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정적인 그의 반응에 허니는 살짝 당황했지만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잘 지냈냐며 정말로 보고싶었다고 말했음. 티모시는 허니의 등 뒤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카시우스에게 시선을 돌렸고 허니도 그를 따라 몸을 뒤로 돌렸음.
"장군님의 은혜로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낸다니 다행...이구나. 난 혹여 네 신변에 문제가,"
"작별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공주...아니, 부인."
"작별...인사라뇨? 그게 무슨..."
허니는 놀란 눈으로 폴의 눈을 들여다보려고 했지만 그는 입술을 꾹 다문채 시선을 피했음. 그리고 티모시가 말하겠지. 남쪽 해안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 그걸 제압하러 가야한다고. 출전 전 결혼 축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문한거라면서. 허니는 맞잡은 손을 벌벌 떨며 말했음. 가지마. 가면 안 돼, 라고. 하지만 이번에도 티모시는 천천히 제 손을 허니의 손에서 빼내려고 했지만 아카시우스가 허니의 손을 덥석 붙잡고 제 팔 위에 올리겠지.
"이제 그만 가봐야 되겠군."
하면서 허니가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거의 끌고가다시피 온실정원으로 나오더니만 파티장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고 이제 허니와 함께 살게 된 제 집으로 곧장 향하겠지. 화가 난건지 뭔지 그의 발걸음은 지나지게 빨랐음. 그에 비해 키가 작고 옷이 불편한 허니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에 나중에는 거의 그의 팔에 매달린 채로 질질 끌려가는 것 같았겠다.
아카시우스는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복도에서 쩌렁쩌렁 외친 후 부부가 같이 써야할 침실의 침대 위로 허니를 내려줬음. 거의 내동댕이 쳐진 허니는 그를 짧게 노려보다 옷 매무새를 정리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거리겠지. 시종들을 다 물리고 침실로 끌고왔으니 이 안에서 벌어질 일들은 뻔했음.
아카시우스가 짙은 한숨을 내뱉고 한 걸음 발을 떼자 허니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손을 떨겠지. 이미 예상을 했던 상황이지만 막상 닥쳐오니 무서운건 어쩔 수가 없었음. 아카시우스는 허니 곁으로 더는 다가가지 않았음. 그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거친 손으로 제 눈가를 마사지하듯 어루만지겠지.
"시종과 무슨 관계입니까?"
"...관계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 묻는겁니다."
"장군이 묻는다고 해도 내가 답해줄 필요는 없죠."
"아뇨. 그대는 답을 해야됩니다. 내 아내이니깐."
"난 당신의 아내가 아닌,"
"신을 섬기는 제단 아래에서 우리 둘 다 맹세한 걸 그세 까먹진 않았을텐데요."
"그가 나와 무슨 관계인지가 중요한가요?"
"중요하지요. 오늘부터 난 당신의 남편이니깐."
턱 끝을 어루만지며 말하는 그의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자신과 같은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음.
"시종이 남자인 것도 믿기지가 않았는데 그렇게 격없이 대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
"애정하고 있습니까, 그 애를?"
"감히...내가...그 애를 애정하다니요."
허니는 입술을 꾹 깨물었음. 그리고 이어 말하겠지. 어릴 때부터 함께, 남매처럼 지내온 아이입니다. 넓은 궁에 또래라고는 티모시 밖에 없었으니... 뭐든 할려면 그 애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아주, 아주 아끼던 아이지요. 그리고 비소를 흘리며 그를 노려봤음.
"내 가족을 모조리 죽인게 모자르셨나봅니다. 그 아이를 다시 전쟁터로 보내시는 걸 보니..."
".........."
"그냥 죽는거였는데..."
아카시우스는 테이블에 놓여진 주전자들 기울여 찻 잔에 천천히 따랐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향긋한 꽃향이 은은하게 방 안에 퍼지겠지. 그가 차를 마셨고, 허니는 침대 위에서 두 다리를 끌어안고 그를 외면했음. 허니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음. 이불을 끌어안고 자포자기 한 상태로 엉엉 울고 싶지만 이 남자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음. 하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않아서 티모시를 잃는 것도 싫은거지.
아카시우스 장군은 막무가내에 비열한 인간이 아님을 앎. 그 증거가 티모시와 허니 그 자체였지. 그러니 허니는 결혼식을 할 때처럼 이번엔 본인이 거래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허니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제 몸뚱이가 전부였으니 이걸 담보로 티모시를 전쟁터에서 빼내는거지. 허니는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그는 이미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음. 움찔거리는 허니의 손에 찻잔을 쥐여줬음. 캐모마일 차라고 말해주겠지.
"난 홀아비가 되긴 싫습니다, 부인."
"......."
허니는 하얀 꽃잎이 올라간 꽃차를 내려다봤음. 그가 같은 주전자에 담긴 차를 눈 앞에서 마셔줬으니 독이 들어있을리는 만무했지.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더군요. 그의 말에 허니는 살짝 입술만 축일 정도로 차를 마시겠지.
"거래를 합시다."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버티셔야 됩니다."
"어딜...가시나요?"
허니의 물음에 그는 씩 웃으며 그녀의 손에 들린 찻잔을 들어주며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겠지.
"어린 군인들에게는 베테랑 군인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는 허니가 물었던 부분을 엄지 손가락으로 살짝 훑어낸 뒤 탁상 위에 올리며 벗어놨던 망토를 다시 어깨에 걸치며 이어 말했음.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부인이 애정하는 그 아이와 함께."
그가 떠나고 난 뒤 허니는 시녀들이 말하는 얘기를 의도치않게 엿듣게 됐겠다. 장군님이 안 가도 되는 해안마을에 가서 반란을 잠재우고 있다고. 그곳을 간 이유는 필히 자신의 쓸모없는 부인과 집에서 마주하는게 죽을만큼 싫어서 가게 된 거라고.
하지만 허니는 진실을 알겠지. 그는 자신과의 거래를 위해 간 거라고. 그러니깐 티모시를 지키고 자신이 이곳에서 죽지 않고 혼자 살아남을 방법을 터특하길 원하기에 전쟁터로 되돌아간거라고.
하...기력빨려
보고싶은건 하나도 안나왔네...
페드로너붕붕
약티모시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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