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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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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 날씨 : 맑음
일기란 걸 처음 써보기로 했다. 팩스가 일어나고 난 후에 그 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해주려면 기록을 참고하는 편이 좋으니까. 
팩스가 리차징을 시작한지도 벌써 ■̗̤͇̙͈̣̰̾̋͊͊̇̽̊̐̆̋͢ͅ■̵̡̤͔̝̯̠̊̋̊̀̉̚■̼̥͎̙͂̔̾̏̔̔̐̾̈͟사이클이다. 처음에는 금방 일어나겠지 싶어 리차징 베드에 눕혀두기만 했을 뿐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 오랜 리차징 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봇들 중에는 동체가 굳어 재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봇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가적인 처치가 필요할 것 같아 내 쿼터로 데려왔다. 지금은 주기적으로 윤활유로 동체와 관절부를 닦아주고 녹을 제거해주고 있다. 오늘도 작업을 완료했다. 일어나면 이 값은 이자까지 쳐서 받아낼 줄 알아, 팩스.

□□□사이클 / 날씨 : 전자구름 약간
새로 출시된 윤활유를 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상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메이드 바이 휠잭!'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발랐다가 괜히 폭발하는 건 아니겠지.

□□□사이클 / 날씨 : 흐림
스타스크림이 와서 화내고 갔다. '우리는, 나는...최소한 네가 우리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주군으로 모셨던 거라고!'
날 주군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다니, 웃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군. 항상 내가 언제 약점을 보일지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던 주제에 말이다.
...아, 팩스에게 말해줄 거였지. 이 부분은 나중에 삭제해놓자.


젠장, 언제까지 그 고물을 끌어안고 있을 거야? 정신차려! 우리는, 나는...최소한 네가 우리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주군으로 모셨던 거라고! 프라임들을 지키지 못했으면서 동체도 수습하지 못하고 50사이클동안 녹슬게 내버려 둔 무능한 하이가드보다는!! 도망쳐 숨는 건 안 하겠다고 한 건 네놈이란 말이다. 넌 저게 그냥 리차징 중인 걸로 보이냐? 저건- 프라임은-
 
□□□사이클 / 날씨 : 햇빛이 비쳐 들어옴
손은 섬세하고 녹이 슬기 쉬워서 더 꼼꼼하게 닦아줘야 하는 부위다.
휠잭의 윤활유는 생각보다 성능이 좋았다. 녹 제거 기능도 있다고 광고하길래 사와봤는데 그러길 잘했던 모양이다.
손을 다 닦아주고 나서 손에 내 페이스 플레이트를 묻어봤다. 딱 기분좋을 정도로 시원해서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유독 채굴이 힘들었던 날, 채굴이 끝나고 나서 우리끼리의 비밀기지로 숨어들어가 팩스의 무릎을 베면 팩스는 내 아이가드 위에 손을 얹어 식혀주곤 했다. 사실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너와 그러고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었어.
팩스가 일어나면 이것도 반드시 말해줘야지. 체크.

□□□사이클 / 날씨 : 산성비
팩스가 음악을 들으면 좀 좋을까 싶어서 간 LP샵에서 오랜만에 재즈를 만났다. 적의없이 만나는 건 꽤나 오랜만이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약간 헤맸지만 재즈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아니면 티를 내지 않았거나. 신정부에 대한 얘기, 에너존에 대한 얘기, 단골 바에서 새로 출시한 신메뉴가 최근 메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 다양한 주제였지만 너무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 가던 재즈는 곧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며 나갔다. 최근 오토봇들 사이에서 뭔가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모양이다. ......역시 너는 너무 물렀어, 팩스. 나였다면 그런 움직임이 있기 전부터 다 뿌리 뽑았을 거다. 재즈의 일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리차징 중인 팩스를 누군가 습격하기라도 한다면 무방비한 상태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쿼터의 방비를 강화하기로 했다. 

□□□사이클 / 날씨 : 맑음
윤활유를 사오던 중에 저번에 재즈가 말했던 신메뉴가 어떤지, 먹어보고 팩스에게 얘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에 들렀다.

~ 우리의 프라임을 기억하며 맥카담에서 새롭게 내놓는 신메뉴 :: 매트릭스의 해방 ~

아무것도 마시지 못하고 쿼터로 돌아왔다.
헬름이 아프고 스파크가 울렁거린다.
쿼터에 돌아와서 팩스의 손을 붙잡고 헬름에 가져다대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헬름에 댄 손이 싸늘했다. 대체 얼마나 과열된 거냐.
상한 에너존이라도 잘못 먹었나. 혹시 몰라 저장고를 살펴보니 텅 빈지 꽤 된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은지 꽤 됐다.
네 희̴҈생҈̴으로 돌아온 에너존을 내가 어떻게- 대체 어떻게
내일은 좀 뭐라도 먹을 것을 사와야겠다.

□□□사이클 / 날씨 : 맑음
...엘리타에게 한 대 맞았다. 사령관의 주먹은 어째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매서워지는 것 같다. 퓨전 캐논이라도 한 방 갈겨주려고 했는데 쇼크웨이브가 막아섰다. 허, 옛 주군보다 자기 콘적스가 더 중요하다 이거냐. 쇼크웨이브에게도 퓨전 캐논을 한 방 갈겨주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냥 그만두었다. 팩스가 일어나서 둘 중 하나라도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화낼 것 같아서. 아니, 화를 내기보다는... 슬퍼하겠지. 그건 화를 내는 것보다 더 싫어서 그냥 그만두었다. 비는 엘리타를 말리지 않았다. 나를 가만히 보다가 가끔은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글쎄다. 내가 광부였을 때처럼 엘리타에게 바싹 오그라드는 것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할 때는 필요없다. 다 필요없는데...젠장.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팩스. 일어나면 지금까지의 몫을 다 더해서 불평해주마. ...그래도, 충분히 쉬다 와.
너는 지금까지 너무너무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모든 게 끝나고 사이버트론이 평화로워진 지금은 지금까지 못했던 몫만큼 쉬는 거겠지.
나는 언제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충분히 쉬다 와.



이제 그만 팩스를 놓아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는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어. 마땅한 곳에 안치될 자격이 있다고!
휴식이라면 지금도 취하고 있다. 만약 오토봇의 멍청이들이 녀석을 억지로 깨우는 거라면,
너야말로 박살난 메크같은 헛소리는 집어치워! 너도 알잖아, 디식스틴. 함께 프라임들의 잔해를 봤잖아! 프라임들은 숨을 거둬도 동체의 색이 바래지 않아, 오라이온은, 옵티머스 프라임은-- 그 날 이미 죽҈̀̓̈́͆͗̍̇̈́̚͝었҈̛̉͂̿̄͊̅̒̾̆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엘리타 원. 너야말로 그 날 함께 봤지 않나. 그 날 구덩이로 떨어지던 팩스의 색을. 그러니까 팩스는-
아아아아아아악!!!
엘!!
놔, 쇼크웨이브!! 저 자식 내가 이번에야말로 죽여버릴거야!!! 내가 망가지든 뭘하든 죽여버릴 거라고!!!
제발, 엘, 진정해다오! 당신도 확실히 인지하십시오, 메가트론! 당신이 예시로 든 건 오라이온 팩스입니다. 그러니까, 옵티머스 프라임이 된 이후의 그의 죽҉҇͌̏̀̿͛́͊̓̀͊̒음̸̀͒̏̆̋̅̔́͆̀̄͂̾̈̚̚͝은-
진정해 엘리타. 디에게 시간을 주자.
왜 막는 거야, 비!
네가 화내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가끔은 그런 것도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게 되는 때가 있어. 너도 오라이온에게 들었었지? 내 얘기.
.........
그러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자. 디도,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조금만이야. 그 후에도 저 양철깡통이 저 모양이면 내가 저 놈의 퓨전캐논을 뽑아다가 헬름에 직접 갈겨버릴 거야.
응, 고마워. 쇼크웨이브, 엘리타를 데려다 줄래? ...고마워. 있잖아, 디. 슬퍼지면 말해줘. 오라이온도 그걸 바랄 거야.

.....
.......
......... 

□□□사이클 / 날씨 : 번개 폭풍
오랜만에 꿈을 꿨다.
꿈에는 팩스가 나왔다. 반짝반짝 잘 닦여져 있는 모습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팩스는 슬픈 얼굴로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뻐끔뻐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했을 뿐이다.
입모양을 읽어보았다. 그만둬도 돼.

무엇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팩스가 눈을 뜨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와달라고 빌 때는 절대 나오지 않았었는데.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것 같아.


















...오토봇 제4사단 소속, □□와 ■■입니다. 예, 군적 박탈 및 추방은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혹은 선동당하거나 조종당해 벌인 일이 아닙니다. 세뇌당한 것도 아닙니다. 필요하시다면 브레인 모듈 확인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희가 벌였던 일은 누구의 개입도 없는, 순수한 저희의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라임에게 마땅한 안식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메가트론은- 그가 자신의 쿼터에 프라임의 동체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만약 디셉티콘들과 일부 오토봇들이 주장하듯이 정신이상에서 온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걸 존중해줘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가 우리의 프라임을 마치 트로피마냥 박제하고 보존하여 자신만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것을?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우리가 한 일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메가트론의 파괴는 저희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프라임의 동체만을 모셔가려 했을 뿐입니다. 그를 위해 최대한 은밀하게 잠입했는데도 메가트론이 알아채고 날뛰기 시작한 것은, 정말이지 저희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예, 거리의 파괴가 상당했던 걸로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프라이머스의 우물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건 본의 아니게도 프라임의 동체가 방패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변의 파괴로 건물이 붕괴되며 튄 돌멩이가 프라임의 동체에 실금을 남기는 것조차 그 자는 견디지 못해 하더군요.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수천 사이클의 내전 동안 프라임의 동체를 파괴하는데 가장 열중했던 것은 그라고 하는데.
본래라면 준비했던 매장지에 격식을 갖춰 매장할 계획이었지만 메가트론에게 발각될 경우를 대비해 생각해뒀던 후보 중 하나가 프라이머스의 우물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났고 올라온 곳에 그를 돌려보내는 게, 실패보다는 나은 차악이라 생각했죠. 그리고 계획은 이루어졌습니다. 메가트론이 프라임을 따라 우물에 몸을 던지는 건, 그 어떤 계획에서도 없었지만.
그는 프라임의 왼팔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우물 가장자리에 매달렸습니다. 우리는 당황했죠. 메가트론을 살해하면 봉합되어가던 디셉티콘의 갈등이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건 프라임의 마지막 유지와도 어긋납니다. 그래서 애초에 메가트론을 제압하지 않고 프라임만 모셔가려 했던 것인데. 실패를 감수하고서라도 메가트론을 구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프라임의 팔이 메가트론의 손 안에서 미끄러졌습니다. 빗물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가 매일 프라임을 손질하며 발라줬다는 윤활유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확실한 건 프라임이 메가트론의 손에서 빠져나가 우물로 낙하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메가트론은... 매달려 있던 손을 놓았습니다. 프라임의 손을 다시 잡기 위해.
심문은 이상으로 끝인가요, 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네? 네. 마지막에 그가 뭐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듯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빗소리가 워낙, 시끄러워서.














뭐야, 지금 일어난 거야? 너무 늦잖아.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고.
응, 응...
안녕, 팩스.
좋은 아침.

트포원
디오라 메가옵티 메옵 약 숔엘 쇼키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