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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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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평행 세계를 건넜지만 그 세계 중 네가 행복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넌 언제나 평생을 책임감에 눌려살다가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평화를 위해 삶 전체를 바쳐 노력하지만 그 끝에 네가 얻을 행복은 없다. 왜 모든 세계의 너는 언제나 죽음을 드디어 찾아낸 평안으로 받아들일까. 그 어떤 세계더라도 같은 선택과 비슷한 삶 속에서 고통에 점철되어 살다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죽을 때에서야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모든 세계의 너는 모두 같은 영혼일지도 모르겠다고. 비록 다른 삶을 살고, 가진 기억은 다를지 모르나 네가 모두 같은 영혼을 지닌 동일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 뒤에 난 그 가설을 확인 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했다. 난 살아있는 네가 필요했다. 사실 널 찾아내고 나서도 난 정말 그 가설이 사실이길 바랬는지 확언 할 수 없다.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네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므로, 난 네 죽음에 매혹되면서도 정말로 그게 네 끝이길 바랬다, 그 아름다움은 네가 정말로 죽어야 의미가 있으므로.

 

그러니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오라이온, 너에게 영원한 끝을 주려는게 정말로 나쁜 일일까? 네 아름다움이, 한때 존재하던 찬란함이 세계를 구하려 애쓰다가 결국 소모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날이 오게되는 것보다는, 네가 아직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을때 끝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사이버트론의 한가운데, 옵티머스 프라임이 되살아났다는 우물은 지금은 에너존으로 가득차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유니크론의 피를 뿌린다면 이 행성, 곧 프라이머스는 죽어갈 것이다. 그는 수도 없는 세계의 옵티머스의 결말을 알고 있다. 어차피 옵티머스는 이 행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 죽을 것이다. 사이버트론의 생명의 근원을 담은 올스파크건, 리더십의 매트릭스건, 그는 그의 안에 품은 것을 저 우물 깊은 곳에 돌려놓고 죽은 행성을 위해서건, 유니크론을 막기 위해서건 세상의 혼돈과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그걸 조금 빠르게 만들 뿐이다.

​메가트론은 프라이머스가 죽기를 바란다고, 프라임이 없어지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그 감정적인 어린애가 끝까지 그걸 밀고 갈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몰래 네메시스에서 빠져나왔다.

쇼크웨이브는 메가트론의 허락 없이 나오긴 했으나 사운드웨이브가 자신의 명령없이 행동하는 걸 눈치채고 오토봇측에 흘렸으리라는 것과 메가트론에게 알렸으리라는 것도 예측했다. 곧 옵티머스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 그는 속에서 약간의 기쁨이 찾아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쇼크웨이브, 잠깐만 생각하고 행동해. 왜 이런 짓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결국 너도 후회할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끝까지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는 걸 보니 외려 반가웠다.

"아, 오라이온. 기다리고 있었지."

옵티머스는 이미 충분히 약해진 상태였다. 옵티머스의 매트릭스는 그의 코그를 대신하고 있는데다 그의 약해진 스파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그는 확실하게 영영 죽겠지. 다른 때라면 소용 없겠지만, 지금은...

"이 봉인구로도 충분히 자넬 막을 수 있겠더군."

쇼크웨이브는 사슬모양의 매트릭스 봉인구를 자기 한쪽 손에 감은채로 옵티머스의 가슴을 꿰뚫어 매트릭스를 끄집어냈다. 옵티머스의 악문 이 사이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봉인구에 감싸인 매트릭스가 바닥에 떨어져 푸른 빛을 잃었다. 곧 그의 몸을 감싼 철갑이 부서지며 그의 모습이 코그없는 작은 동체로 돌아갔다. 하지만 오라이온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없어보였다. 그는 비명을 삼키며 일어나려 애썼지만 한쪽 옵틱은 깜빡이고 한쪽팔은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는듯 했다. 그 부위가 메가트론이 쏜 부위라고 했던가, 매트릭스가 복원은 시켜줬어도 고통은 그대로 남았나. 한발 늦게 찾아온 메가트론이 코그도 없는 광부시절의 오라이온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굳은 얼굴로 쇼크웨이브를 바라보았다. 오라이온의 몸은 쇼크웨이브의 손에 힘없이 들려있었다, 깜빡이는 한쪽 옵틱, 제발...하며 속삭이는 목소리. 마치 그때처럼.

 

그래, 그 표정 알아. 네가 원하는 것이긴 했지만 네가 원한 것의 결과가 이런 것일 줄은 몰랐겠지.

 

"원하시던 겁니다, 메가트론 각하."

쇼크웨이브는 힘을 완전히 잃은 오라이온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메가트론을 향해 조소했다. 감정없는 낮은 목소리로 고했다.

"제가 당신이 원하던 것을 들어 줄 수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저 당신이 원하던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진 않았을 뿐."

메가트론의 안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있었던 디16이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오라이온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 유니크론의 피를 우물 안에 푼다면, 그는 영원히 프라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각하께서 죽으라면 죽어야하고, 살길 바란다면 살 뿐."

메가트론은 분노도 슬픔도 내뱉지 못한채 가느다란 생명줄을 겨우 붙잡고 있는 오라이온을 품에 안고만 있었다.

쇼크웨이브가 우물 안에 유니크론의 피를 뿌리려고 하기 전에, 푸른빛의 포탈이 그의 뒤에서 열리더니 누군가 쇼크웨이브가 들고 있던 유니크론의 피가 담긴 시험관을 쏘았다. 그는 쇼크웨이브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대화했을 때와 아무 다름없이, 여전히 서늘한 분노를 남은 한쪽 옵틱 안에 담고 있었다.

"...프라울."

​"지금 네가 하는 짓은 뭘로도 변명 못할거다."

서늘하게 노려보는 깨지지 않은 옵틱 한쪽이 차가운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총구를 쇼크웨이브에게 겨눈채로 경계를 풀지 않았다. 유니크론의 피가 깨진건 좀 아쉽지만 샘플은 다시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어차피 오라이온을 지금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 없을 것이다.

"난 예전과 다름없이 내 오랜 친구를 도와주고 싶을 뿐인데."

프라울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저건 우리 세계의 옵티머스가 아니야. 네가 이렇게 집착해서 남는건 아무것도 없었을텐데, 다른 세계에서까지 같은 짓을 벌일 생각이냐?"

"아니, 이건 우리 세계의 오라이온이다. 그는 어느 세계에서든 똑같지. 태어나 고통받고, 세상을 위해 죽고, 또 다른 혼란스러운 세계에 태어나 그 세계를 구하고 죽고 영원히 반복하는, 같은 영혼이지. 나는 그저 그 고통의 고리를 일찌감치 끝내주고 싶을 뿐이다."

쇼크웨이브는 혼란스러워하는 프라울을 뒤로하고 메가트론의 품에 안긴 오라이온에게 손을 뻗었다. 메가트론은 오라이온의 몸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냥 공격하면 그만일텐데, 온 신경이 품안에 있는 오라이온을 보호하는데 가있는 모양이었다.

"그를 보호하기엔 조금 늦었습니다, 각하."

쇼크웨이브의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에서 섬짓함이 느껴졌다.

"이게 당신이 고르신 일이고, 이게 결과입니다."

쇼크웨이브의 붉은 눈 하나 뿐인 얼굴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메가트론은 품에 안은 오라이온의 얼굴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정말 난 이런식으로 널 돌려받고 싶었던 걸까. 힘으로 너의 모든 것을 빼앗아서, 껍데기 뿐인 상태로?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늘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

쇼크웨이브가 마치 메가트론에게 교훈을 남기듯 말했다. 쇼크웨이브가 메가트론의 품 안에 있는 오라이온에게 레이저포를 조준하자, 오라이온이 메가트론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프라울이 저 미친놈의 진짜 목적에 분노할때 쯤 다른 뒷쪽에서 쇼크웨이브의 등쪽으로 손바닥 만한 장치들이 쏘아졌다. 쇼크웨이브의 동체의 움직임이 멈추자 프라울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설마 내가 혼자 온 줄 알았냐?"

사각에서 쇼크웨이브를 조준하고 있던 재즈가 동체정지트랩을 한발 더 발사했다. 프라울은 다시 총구를 조준하며, 메가트론의 품에 안은 옵티머스에게 다가가는 쇼크웨이브의 레이저포로 된 한쪽 손을 쏘았다. 쇼크웨이브는 자신의 박살난 레이저포를 무감각하게 바라보곤 다시 프라울에게 고개를 돌렸다.

"난 저게 어느 세계의 옵티머스건 상관 없어. 난 내 세계에서 탈출한 죄수를 박살내러 온거니까."

"그렇게 해서 그에게 영원히 안식이 주어지지 않아도 말인가?"

프라울은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은데 왜 날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쇼크웨이브를 분노에 차서 내려다 보았다. 옵티머스를 죽게 만든게 애당초 너잖아. 네가 헛짓거리만 하고 다니지 않았어도 옵티머스는 죽지는 않았을거야. 그런데 네가 왜 그의 삶을 멋대로 재단해서 죽는게 낫다고 판단하는거지?

"내 눈엔 네가 유일하게 진정으로 아끼던 존재를 네 손으로 죽음으로 이끌고 간 걸 합리화하려고 이러는 걸로 밖에 안보여."

네가 없었다면 내 옵티머스에게도 다른 삶이라는게 있었을거라고.

"지금 오라이온을 살게 내버려두면 결국 언젠가는 그도 똑같이 세상을 위해 죽고,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다시 그 세상을 위해 죽을 뿐이다.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순간은 지금 뿐이야. 정말로 그를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다면 내 의도를 이해할텐데."

"네가 결정할 일은 아니지."

프라울이 증오어린 눈으로 쇼크웨이브를 내려다보며 총구를 그의 헬름으로 조준했다.

"네 소원은 그 어떤것도 이뤄지게 두지 않을거다."

프라울이 방아쇠를 거의 당기려 하기 직전 작달막한 오라이온이 구석에서 튀어나와 프라울의 총을 그 작은 손으로 막으려 애썼다. 오라이온의 작은 몸이 형편없이 밀려나고 총구를 붙잡은 그 손이 엉망으로 까졌다. 프라울이 재빨리 총구를 돌리지 않았다면 거의 그를 쏠 뻔 했다.

​몰려든 시민들 중에선 디셉티콘이나 오토봇들도 몇몇 그 광경을 경악에 차서 보고 있었다. 개중에서 보라색의 거대한 디셉티콘이 그 광경을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프라울은 순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금 그가 구하려고 드는게 어떤 존재인지 아는걸까?

"저 놈을 살려두면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알긴 해? 너한테 무슨 짓을 했었는지는? 저 놈 하나때문에 죽은게 얼마인지 알긴 하는거야?"

"모르겠어..."

속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왜 어떻게 늘 그런 선택을 하는거야? 왜 조금 효율적인 선택을 하면 어디가 잘못되기라도 해?

"네가 지금 저놈을 살려둬서 앞으로 이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야 할지 감은 잡혀? 왜 지금 내가 저 놈을 살려야 하는지 제대로된 이유를 댈 수는 있어?"

코그없는 모습으로 돌아간 오라이온의 힘은 너무나도 약해서 아마 프라울이 그냥 뿌리치면 그만이겠지만 그는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오라이온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답하곤 분노한 프라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곧 깨달았다, 프라울은 분노한게 아니었다. 그의 슬픔에 가득찬 표정에선 그저 상처만 가득했다. 스스로가 계속 낸 상처에 망가지고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수 없이 반복해 결국 스스로의 영혼마저 상처입힌 얼굴일 뿐이었다.

"난 그냥 네가 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라이온의 걱정스러운 얼굴에 프라울의 일그러진 얼굴이 점점 슬픔으로 물들었다.

슬퍼보이는 두 눈에서 드디어 나는 당신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달려가면서 다른 사람을 계속 다치게 할 것이 두려운게 아니었다, 내가 그러다가 다치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스스로의 선택에 상처입는걸 보고 싶지 않아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 그것 뿐이었다. 프라울의 총이 바닥에 떨어지고, 대신 그는 두 팔로 오라이온을 감싸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오라이온은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어깨에 얼굴을 묻은 프라울의 눈물을 받아주며, 그를 감싸안았다.

"많이 무서웠지. 미안해, 미안해..."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선 봉인사슬에 감아둔 매트릭스가 여전히 깨진 상태에다 오히려 오라이온에게 통증을 유발한단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선, 고치는 방법을 알때까진 잠시 봉인된 채 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재즈와 프라울은 쇼크웨이브를 머리 하나만 남기고 전부 해체해버렸다. 재즈가 프라울을 알아온 이래 그렇게 상쾌하고 행복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쇼크웨이브를 머리 하나만 남겨두고 해체한 프라울은 드릴 하나를 손에 든채 협박조로 말했다.

"옵티머스의 의사니까 널 살려두긴 하겠지만, 널 봐줘선 아니야. 매트릭스를 어떻게 고치지?"

"내가 말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쇼크웨이브의 당연히 말할 생각 없다는 듯한 저 외눈대가리가 이렇게 짜증 날 수가 없었다. 프라울이 이를 갈면서 전동드릴을 켜는 소리가 들렸다. 재즈가 그를 말리며 말했다.

"아니 이럴거면 몸은 왜 해체했어? 고통을 줄거면 몸이 남아있어야 할거 아니야."

프라울이 잠시 눈을 깜빡이며 생각을 하고는 다시 드릴을 켰다.

"그러게. 다음번에 저 망할 깜빡이자식 고문할때는 알아둘게."

 

다른 세계의 자신들이 신나게 쇼크웨이브를 고문하고 있을때 재즈와 프라울은 발꿈치를 올리고 둘이 뭐하는지 보려고 애썼다. 사백만년동안 전쟁경험을 쌓은 둘의 고문기술은 어떨지도 궁금하기도 했고. 하지만 둘이 뭘 보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몸이 검은 오일과 에너존으로 범벅된 둘이 걸어나왔다.

 

"니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되니까 괜히 들여다 보지 마라."

한쪽눈이 깨진 프라울이 이 세계의 아직 어린 프라울과 재즈를 귀찮은거 대하듯이 손짓하며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옵티머스에겐 말하지 말고."

​재즈가 피를 뒤집어쓴 끔찍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로 아직은 젊은 자신을 향해 말했다.

 



결국 둘이 매트릭스를 고치는 법에 대해선 알아내지 못하자, 메가트론이 쇼크웨이브의 머리를 회수하겠다고 나섰다. "그래봤자 너흰 오토봇이야. 정보는 내가 캐내도록 하지." 라면서 붉은 눈으로 쇼크웨이브의 머리를 네메시스에 봉인해 두었다. 사실 그게 더 안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오라이온이 신뢰해본다고 하니 별 수 없었다. 게다가 사실 저 끔찍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오라이온과 같은 공간에 둔다는게 더 끔찍한 생각 같기도 했고.

 

 

 

​오라이온과 쇼크웨이브의 그 사건이 있은 이후에도 디셉티콘과 오토봇은 평화협정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아슬아슬한 평화지만, 이 모든 사건 이후에도 기능주의자 놈들이 살아숨쉬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제거하는게 우선적 목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조금 재미있게도, 디셉티콘 중에 오라이온의 모습을 보고 전향을 결심한 메크가 있다고 했는데 메가트론이 오토봇으로 전향한다는 소리에도 순순히 보내줬다고 한다.

아이언하이드는 눈 앞에 자기 덩치의 몇배는 될듯한 흉악하게 생긴 메크를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덩치도 손에 꼽을 정도로 커다란게 검은색 보라색의 흉흉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아름답긴 했지만 한쪽 얼굴에 큰 흉터가 있었다. 그는 그 흉폭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미성과 예의바른 어투로 왜 자신이 오토봇으로 전향했는지 설명했다.

"가장 무력한 상태에서도 자길 해치려는 메크조차 구하려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보통의 용기로 가능한 건 아닐텐데 그 와중에도 평화적인 해결책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모습에 전향을 결심했습니다."

"네 친구는?"

"어설픈애라 제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되서요."

니켈이라고 소개받은 작은 메크가 무덤덤하게 설명하자 덩치큰 친구가 감동받은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원래 이 세계의 쇼크웨이브의 제자라고 들었는데, 굳이 전향을 결심한 이유는 뭔가? 그 쇼크웨이브도 우리와 대적했고, 오토봇 손에 목숨을 잃은걸 알텐데."

"제가 알던 쇼크웨이브 선생님은 사회의 약자였던 절 도와주신 분이십니다. 물론 오토봇과 싸우던 때의 선생님은 제가 알던것과 많이 변했겠지만, 적어도 제가 알던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어요. 그분도 제 선택을 이해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아이언하이드는 이름 란에 여러번 지웠다 썼다한 흔적을 보곤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제대로 적혀져 있지 않은데,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에게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세계의 쇼크웨이브는 그가 알던 선생님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장소는 그의 쇼크웨이브 선생님이 처음으로 아웃라이어를 위한 학교를 만들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굳이 다른 이름을 댈 필요는 없었다.

"...탄이라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아마 프라울이 이 세계로 넘어오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그럴수도 있었겠지. 아마 다른세계라도 해도 옵티머스가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세상을 위해 싸워나가고 있을거라는 사실도 몰랐을테고. 둘은 이 사건이 일단락 되자마자 곧장 떠나겠다고 전했다.

 

"조금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재즈는 약간 아쉬워하는 오라이온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데이터칩을 여러개 꺼냈다.

"저번에 이 세계의 기록보관소 자료가 거의 파기됐다는 이야길 한게 기억나서 말이야. 여기 우리 세계의 기록보관소 데이터야. 쓸모 있을진 모르겠지만, 네가 좋아 할 것 같아서."

"고마워."

재즈는 오라이온을 품에 부드럽게 안고는 위로하듯 등을 쓸었다.

"잘 지내야 해, 이번엔 행복하려고 노력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부서질듯이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 이상의 말은 욕심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라이온에게 충분히 그 마음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프라울은 오라이온을 그리움과 슬픔이 섞인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매트릭스일 해결되면 다시 올거지? 쇼크웨이브 다시 네 세계로 데리러."

"아마도."

프라울은 오라이온의 뒤를 지키고 선 아직 어리고, 덜 상처입고, 아직은 기회가 많은 이 세계의 프라울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래, 이 세계는 내것이 아니지...

오라이온의 눈을 보니 잠시 마음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입 밖에 낼 자격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것이 아닌걸 원해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자신은 이미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많이 썼고, 그리고 그에게 주어졌던 기회마저 잡지 못하고 놓친 이 일 뿐이다.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미래, 조금 더 평화로운 삶, 당신과 나눌 수 있을거라고는 내가 감히 꿈꿔 보지도 못했던 모든 것을 옆에서 이뤄갈 것은 내가 아니었다. 당신과의 내 삶은 이미 다 써버렸으니까.

"전에, 네가 나에게 그 어떤 우주의 나던지 아꼈을거라고 했었지."

"응. 여전히 그렇고."

오라이온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프라울은 오라이온의 작은 동체를 부드럽게 안고는, 끝끝내 사랑한다는 한마디는 억눌렀다. 지금 말해봤자 당신에게 짐일 뿐이다. 당신은 내것이 아니고, 내것일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 나는 당신과 나누었던 시간들로 만족해야겠지. 이 세계의 나도 아마 나와 같은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반목을 하며 귀한 시간들을 낭비하고, 고집과 이기심으로 당신에게 줘선 안될 상처를 줄지도 모르고, 당신도 내 믿음에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당신에겐 모두가 당신을 숭배하고 믿는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내 믿음이 큰 가치가 없던걸까. 당신 역시 나를 조금은 믿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당신에게 바친 믿음과 숭배의 크기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노력하건간에, 당신은 내 과격한 방식의 사랑을 영영 이해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당신에게 필요한 일을 계속 할테니까.

 

기억이 없건, 다른 삶을 살건 당신은 계속해서 같은 선택을 할거고, 언젠가는 이 세계에서도 또 똑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에겐 당신이 나가야 할 길을 막을 방법도, 내가 당신을 설득할 방법도 없을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당신이 언젠가 나아가게 될 길을 함께 가겠다고, 당신이 고른 길을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 할 수 있을 뿐이다.

 

프라울이 오라이온의 앞에 무릎 한쪽을 꿇고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몇 메크들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재즈 역시도 그 광경을 조금 놀란듯한 표정으로 봤다.

"그럼 난 당신이 태어나고 존재하게 될 모든 세계에서 당신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충성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어느 세계의 나던지, 모든 우주의 내 충성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계속해서 다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난 그 모든 세계마다 매번 당신을 따라가리라. 매번 당신의 곁을 지키리라. 나에게는 당신의 죽음을 막을 힘도, 대신 세상을 구할 힘도 없다. 하지만 대신 당신이 가는 모든 길의 곁에 있으리라.

 

오라이온은 잠시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아무 말 없이 미소지었다. 이미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또 보자."

어디엔가, 어느 우주에서라도, 어느 시간에서라도.




프라옵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