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ie Miller - Here's Your Perfect 꼭 들어주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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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는 앞에 놓인 화장품들의 나열을 쳐다보았음.
한 번도 써볼 생각을 하지 못한 D사의 블러쉬, C사의 파운데이션, P사의 립밤, T사의 립스틱까지..
“이게 다 뭐예요?”
칼럼은 개구지게 웃으며 두 손으로 콕콕 찍어 얼굴에 바르는 모습을 연출했음.
“전남자친구 만난다며,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어?”
냅다 말을 놓는 칼럼에 허니의 눈썹이 가볍게 들렸다 내려왔음.
“봐줘, 내가 나이 더 많잖아. 이 참에 말 놓는 건 어때?”
“저 아직 아무와도 말을 못 놓았는데..”
칼럼이 빙그레 웃었음.
그러니까, 나랑 제일 먼저 말 편하게 하자고.
“아무튼, 이걸 다 오늘 아침에 사왔다구요?”
“응, 좋아할 것 같아서.”
허니는 슬쩍 화장품을 들춰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음.
“나한테 이게 어울릴지 어떨지 어떻게 알구요.”
“대충 봐도 알아. 눈썰미 좋은 편이거든, 나.”
그거, 여자 많이 만나봤다는 소리죠?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면서 허니는 파운데이션부터 바르기 시작했음.
정말 신기하게도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색이었음.
“예쁘네.”
칼럼이 미소지었음.
허니는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뒤 단정하게 옷을 입고 나왔음.
“데려다줄게, 가자.”
허니가 사양하자 칼럼은 전남자친구 만나는 거 비밀로 해줄게, 아직 아무도 모르잖아. 말했고,
숨기는 걸 도와준다는 확답을 받은 후에야 허니는 칼럼의 차에 올라탔음.
전남자친구의 회사 근처로 가는 길은 너무도 익숙하고, 또 시렸음.
칼럼이 툭툭 내뱉는 질문이 없었다면 도착하기도 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어떻게 만난 사이야?”
“회사 상사였어요.”
“선배도 아니고 상사? 나이차이 좀 나겠네.”
“네, 10살 정도. 대학 졸업하고 첫 취업한 곳에서 만났으니까 이십대 중반, 삼십대 중반 즈음.”
사실 허니는 아직도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함. 다정한 미소와, 어려운 일들을 척척 처리해주었던 어른스러움을.
밤마다 잠을 설쳤던 마음과 회사 가는 일이 즐거웠던 경험들을.
남몰래 숨겼던 마음을 들켰을 때, 차갑게 내치리라고 상상했던 것과 달리
내일부터 연인 사이로 만날까, 덤덤하게 물었던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던 일을.
칼럼은 운전하면서 허니의 옆모습을 곁눈질했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갈색 눈매가 더 깊어졌음.
칼럼을 두고 먼 곳으로 흘러가는 생각의 흐름이 맘에 들지 않아 칼럼은 허니의 눈 앞에 손을 튕겼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이 아가씨야.
이미 지나간 사람이잖아.”
허니는 희미하게 웃었음.
“그러게요, 이미 지나간 사람인데.”
“어차피 영 아니다싶으면 제작진도 자를 테니까. 재미없게 하고 와, 재미없게.”
허니를 내려주면서 칼럼은 미소를 지었음.
올 때는 내 생각하고, 알았지?
허니는 출발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음.
긴가민가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음.
모두에게 다정한 마음은 가벼워보일 수는 있지만, 그건 다른 말로 친절한 사람이라는 뜻도 되니까.
문을 열고 매튜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인영이 눈에 띄었음.
허니는 작게 심호흡을 했음.
재미없게 해, 재미없게. 칼럼의 말이 떠올랐음.
미처 다가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웃어보였음.
“오랜만이야.”
허니는 오래 전 헤어졌던 날을 떠올리며 마주 웃었음.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
그 시각, 발레리나는 칼럼과 허니가 함께 나갔다는 사실을 곰곰 곱씹었음.
칼럼에게 문자를 받지 못했을 때 그가 누구에게 문자를 보냈을지는 명백했음.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허니보다 자신이 외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은 사실이었음.
하지만 허니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것이 있었음.
편안함 같은 특질은 아무리 훈련해도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음.
조급해하지도 않았고, 계산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여자는 누구에게나 매력있어 보일 것이 분명했음.
발레리나는 그런 점에서 허니가 좋았음.
화려하고 도파민의 유혹에 약하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감정에 투명한 자신과 달리 평온하고 솔직해서 모순적으로 숨겨지는 것이 많은 허니가 재미있었음.
하지만, 재미있고 친해지고 싶은 것과 별개로 마음이 얽히는 건 또 다른 문제였음.
앞으로 남은 시간을 헤아려보며 발레리나가 결심한 것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었음.
되든 안 되든, 프로가 끝나면 스스로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도록.
*
“어떻게 지냈어?”
“그냥 회사 다니고, 취미 생활하면서 살고 있었죠.”
“연애 프로그램에 나올 줄은 정말 몰랐어. 누구 아이디어야?”
“제인이요, 아시잖아요. 이런 생각은 제 주변에 제인 외에 할 사람 없는 거.”
“그럴 것 같았어, 재미있더라.”
빙빙 도는 대화에 허니의 기분이 묘해졌음.
회사에 일하러 와서 갑작스럽게 하루만 만나달라고 하지를 않나, 만나서는 별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만 한가득 하고 있지를 않나.
“용건이 뭐예요? 시덥잖은 사는 이야기하려고 부른 건 아닐 거 아녜요.”
매튜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내려왔음.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었음.
아마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뉘앙스를 눈치 챌 사람은 없겠지만
허니는 안타깝게도 그를 너무 속속들이 알았음.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연인이었다보니 매튜는 그녀를 공주처럼, 아기처럼 대했지만 결코 곁을 완전히 내주지는 않았으며,
흔하디 흔한 연인들의 다툼처럼 감정싸움이 번지는 일도 없었음.
매튜는 언제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표정의 균열로 드러냈고,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허니를 달랬지만 허니는 자신이 그의 선을 넘지는않을까 늘 노심초사했음.
상장회사가 되면서 눈코 뜰 새 없어진 매튜의 생활을 이해하고, 채근하지 않도록 허니는 늘 노력해야 했음.
매튜는 늘 변함없이 다정하려고 했지만, 피로에 그 다정 역시 차츰 깎여갔고 다른 연인처럼 자주 보자고, 연락을 하라고, 외롭다고 하면 언제든 끈을 놓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굴었음.
매튜가 실제로 이별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허니는 이 관계가 아슬아슬하다고 느꼈음.
한 번이라도 화를 내 볼 걸.
외롭다고 분통이라도 터트려 볼 걸.
헤어진 후 허니는 매튜가 자신을 사랑했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가늠해볼 때마다 이 관계를 그렇게 성급하게 놓아버린 것을 후회했음.
화를 냈다면, 미안하다는 사과라도 들었다면,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이제는 다 지난 일이었음.
그 옆에서 외롭게 시들어가던 자신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어 내린 결정이었음.
“헤어져요. 그나마 우리 마음이 있을 때,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내가 알 수 있을 때.”
매튜의 표정이 어땠지.
허니는 그 순간을 돌아볼 때 매튜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를 않았음.
그가 아팠었더라면 좋겠다고, 딱 나만큼만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음.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의 회사는 쭉쭉 잘 치고 나갔고, 매튜는 영향력있는 100대 젊은 기업인 이런 수식어를 붙였지만.
매튜가 입을 열었음.
“내가 사과를 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안 나서. 울던 네 모습은 기억이 선명한데 내가 네게 사과를 했었는지 돌이켜봐도 생각이안 나서. 그래서 불렀어.”
“그걸, 지금 이 프로그램을 하는 중에 불러내서요?”
매튜는 씁쓸하게 웃었고, 허니는 차갑게 식어가는 표정과 목소리를 다듬기 위해 노력했음.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너는 분명히 다른 사람을 만날거고 나는 미안하다는 인사를 영영 전하지 못할 것 같았어.”
매튜가 멀리서 그들을 찍고 있는 무인 카메라를 슬쩍 쳐다보았음.
“카메라가 여기까지 쫒아올 거라는 건 몰랐지만.”
정말 몰랐을까.
이 방송이 나가고 나면 매튜 회사의 주가는 더 치솟을 거였음.
그걸 정말 하나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신처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이.
허니는 묻고 싶었지만 딱히 그렇다고 말한들 방송을 엎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음.
“사업가 만나도 돼.”
허니가 고개를 들었음.
“내가 부족했다는 걸 인정해. 나는 네게 좋은 연인이 아니었지. 하지만 모든 사업가가 그렇게까지 바쁜 건 아니야. 내가, 소홀했을 뿐이야.”
허니의 얼굴에 발갛게 열이 오르는 걸 매튜는 물끄러미 바라보았음.
마른 세수를 하며 그는 말을 이었음.
이 이야기를 하면 둘 모두가 상처받겠지만, 그는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음.
“후회하고 있어. 정말 많이.”
허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음.
무엇을? 나를 돌보지 않은 것? 소홀해진 것? 좋은 연인이 아니었던 것?
모두 다 아니었음.
허니가 사과받고 싶은 건 딱 하나였음.
“매튜가 나한테 사과해야 할 건 딱 하나예요. 나한테 옆자리를 내주지 않은 것.”
그의 어른스럽고, 다정하고, 나긋한 마스크가 무너져가는 것을 보며 허니는 말을 이었음.
저 얼굴을 깨부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음.
어른스럽고 다정한 직장 상사가 아니라, 못나고 불완전한 연인으로서 갈라지고 터져서 제 앞에서 녹아내리길.
“가장 힘든 순간에 내게 안겨서 힘들다고 말하지 않은 것.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게 한 것. 한 번도 내 앞에서 불완전하지 않았던 걸 후회해야 해요.”
허니의 뺨이 눈물로 젖어들었음.
아, 이 말을 하면서는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사랑에 아무것도 내주고 싶지 않았던 걸 미안해하세요.”
그의 산산조각난 표정. 낯설고, 초라하며, 그늘진 날 것의 얼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그 얼굴이었음.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무인 카메라만이 그들을 찍고 있었지만 허니는 잠시 망설였음.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 것이 옳을까.
생각이 그리 길지는 않았음.
허니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음.
매튜에게 다가가 그를 안았음.
이제는 사랑도 아니고, 다 타고 남아 부스러진 연민만이 남았지만.
사랑 앞에서 오만했던 그의 어린 낯을 그녀는 진심으로 연민했음.
그가 앞으로 겪을 날들은 지난 날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고, 허니는 그 날들을 앞으로 안아주지 못하겠지만, 사랑은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것이었음.
이미 흘러간 사랑마저도.
“잘 있어요. 당신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요.”
허니는 조용히 속삭였음.
사무실을 나오는 길에 뒤돌아 그를 보지 않은 것은 지난 날들에 대한 예의였다고 해두겠음.
지난 사랑이 발목에 걸려 달랑거렸음.
지하세계를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오르페우스처럼, 허니는 다소 후련한 마음으로 시그널하우스로 향했음.
맥카이가 좋아서 시작한 무순인데 아예 안 나오는 거 실화냐;;
하지만 꼭 지나가야할 에피소드였음ㅜ 분량 미안 노잼 미안
맥카이너붕붕 가렛너붕붕 칼럼너붕붕 약매튜좋은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