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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가는 디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음. 터덜터덜 걷고 있으려니 어느 새 숙소에 도착했지. 하지만 오라이온은 어디에도 없음. 오라이온이 어딜 갔지. 오라이온이 없어지면 항상 다른 광부들이 디에게 오라이온의 행방을 물었는데. 그럼 디는 당연하게도 오라이온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고.
왜 이렇게 됐지. 그 이상한 행위가 대체 뭐라고...
디는 항상 오라이온과 함께 앉아있던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오라이온을 기다렸음. 하지만 오라이온은 돌아오지 않았어. 리차징 시간이 되어 다들 정리를 시작하자 디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치웠지. 그리고 맞은 편의 비어있는 충전 포드를 바라보며 옵틱을 감았어.
'디. 리차징 중이야?'
디는 오라이온의 음성을 들었음. 평소랑 달리 음량은 소근거리지 손으로 디의 헤드를 두들기지도 않음. 꿈인가 생각했지만 꿈이거나 말았거나 상관 없어. 디는 초고속으로 동체에 전력을 주입하며 리차징 모드에서 벗어났음. 옵틱을 뜨니 오라이온이 뒤를 돌고 있었어. 디는 급하게 뛰쳐나와 오라이온을 붙잡았음.
"팍스..!"
"아, 미안해. 깨우려는 건 아니었는데..."
"괜찮아 언제든지 깨워! 무슨 일이든 내가 해줄게! 다른 놈한테 갈 생각하지마!"
디는 너무 급해서 거의 헐떡대고 있었음. 오라이온은 디의 기세에 놀라 쭈뼛대다가 품에서 작은 스티커 하나를 꺼냈지.
"뭘 해달라는 게 아니고.. 이걸 주려고.."
디는 오라이온이 내민 걸 받았음. 메가트로너스 프라임의 스티커였어.
"급하게 구하느라 크기도 작고 상태도 안 좋지만.. 구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
오라이온은 디의 눈치를 보며 답지 않게 주눅들어 있었지. 디는 작은 스티커를 멍하니 바라봤음.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
"정말?"
오라이온은 그제야 안심하며 표정이 활짝 폈지. 디는 며칠간의 그 맘고생이 오라이온의 웃는 얼굴로 녹아내리는 거 같았음. 대체 그딴 게 다 뭐라고 그 난리를 쳤을까. 오라이온은 결국 자신의 옆에 있는데.
리차징도 깨버렸으니 둘은 밖에 나와서 도시나 구경했음. 그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찰싹 붙어서. 그래봤자 사흘 정도 떨어져 있던 게 다지만.
"디."
"왜?"
"이쪽 봐봐."
디가 고개를 돌리자 오라이온이 디의 헤드를 양손으로 잡더니 서로의 입을 부드럽게 맞댔음. 디의 옵틱이 크게 떠졌지. 옵틱을 감고 있는 오라이온이 바로 앞에 한가득 보였어.
입술에서 시작된 이상한 간질거리는 감각에 디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을 배회할 거임. 케이블을 연결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맞닿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전류가 찌릿거렸음.
잠시 뒤 오라이온이 떨어지자 디는 본능적으로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지.
"이건 키스라는 거래."
"키스..?"
"나 이건 너랑 처음 하는 거야. 앞으로도 다른 메크랑은 안 할게."
오라이온이 키득키득 웃더니 다시 정면을 보고 앉아 디의 어깨에 헤드를 기댐. 디는 얼굴의 표면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음. 방금 전까지 디도 몰랐던 걸 오라이온은 알고 있었어.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를.
부끄러워...
디는 무릎을 끌어안고 쭈그러 들었지. 오라이온은 그냥 계속 디에게 기댄 채로 도시 구경이나 함.
"나중에 인터페이스도 해볼래?"
지나가는 것처럼 가벼운 권유였음. 디는 그놈의 인터페이스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일 거임. 평생 그 망할 인터페이스란 것과 아는 척도 안 하고 살고 싶었음. 그렇지만....
"...해볼래."
다른 녀석은 한 걸 자기만 안 하는 것도 억울함. 오라이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반응했음.
"너랑 하는 건 어떨지 궁금하네. 왠지... 좀 더 다른 기분일 거 같아."
오라이온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위기 경보가 울린 디는 고개를 들어 오라이온을 한껏 째려봄.
"궁금하다고 상대 바꿔가면서 계속 해볼 생각은 아니겠지."
오라이온은 디의 반응에 오히려 짓궂게 웃을 거임.
"키스 독점으론 부족해?"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다른 녀석들하고 또 할 거 아니지?"
오라이온은 다시 한번 디의 입술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음.
"알겠어. 앞으로 너랑만 할게."
"키스도?"
"키스도."
디는 그제야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지.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오라이온을 당겨 입술을 맞댔음.
끗.
끝까지 봐줘서 ㅋㅁ!
- 사흘 전.
"...뭐야, 리차징 안 하고 뭐해."
"미안. 깼어? 재즈 어디 갔는지 알아?"
"걔 오늘 바빠. 왜?"
"뭘 좀 부탁하려고 했는데..."
"뭘 하려고."
"그게.. 이런 거거든?"
오라이온은 최선을 다해 설명했음. 방금 막 리차징에서 깨어나 회로가 살짝 맛이 갔지만 대충 뭔지는 알 거 같음.
"그런 거면 디한테 가면 되잖아."
"피곤한지 일어나질 못하더라고."
"이딴 거 하겠다고 한밤중에 깨우면 당연히 싫어하지."
"하지만 궁금하잖아. 밤이 아니면 할 시간도 없고."
오라이온이 가볍게 투덜댔음. ...시간은? 확인해보니 갔다와도 얼추 리차징은 할 수 있을 거 같음. 인터페이스란 게 얼마나 오래 걸리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간을 잡아먹진 않겠지. 너무 오래 걸린다 싶으면 그냥 돌아오면 되고.
"가자. 내가 해줄게."
"뭐? 진짜? 왜?"
"그럼 누구랑 하려고. 기관 내부로 침투하는 행위 같은데 어지간히 섬세하지 않으면 다칠걸."
"그럼 넌 아닌데."
"......."
"하하 농담이야. 이리와! 봐둔 곳이 있어."
오라이온이 팔을 잡아 당겼지. 내가 걸어갈 수 있어. 짜증스럽지만 왠지 밀어낼 기분이 아니라 내버려 뒀음.
"넌 은근히 나 잘 챙겨주더라."
"헛소리 하지마."
"진짠데. 지금도 나 다칠까봐 걱정해주는 거잖아."
쓸데없는 이야기에 대답해줄 필요성을 못느껴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멀리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음.
"저건 또 뭐야. 관리자?"
"그냥 다른 메크 아니야?"
"걸리면 귀찮아지니까 이제 조용히 해."
"설마. 하다하다 이젠 우리 리차징도 감시할까."
"조용히. 하라고."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줬음에도 오라이온은 굴하지 않았지. 디는 대체 얘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 건지. 딱히 관리자가 무서운 건 아니지만 리차징 시간 줄여가며 잔소리 듣는 건 사양이란 말임. 여차하면 너만 버리고 튈 거라고 투덜거리고 있으니 오라이온이 쾌활하게 웃었음.
"그래도 어울려줘서 고마워 프라울."
프라울은 코웃음이나 쳤지.
디오라 메옵 오라이온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