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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3 00:18
오래 계획했다거나 치밀한 작전을 짜서 수행한 건 아니었어.
어찌나 게으른지 집안일은 손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던 마녀는
어질러진 집안꼴을 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별안간 생각한 거야.
그래서 충동적으로 유괴(?)를 결심한 거지.
마녀는 게으르기도 하지만 또 단순하거든.
귀찮으니까 가장 먼저 보이는 애를 납치할 거야.
누구든 잡히기만 해봐라 지문이랑 연골이 다 닳도록 부려먹어주겠어 껄껄.
마녀는 잘 익은 사과를 따면서 사악하게 웃었지.
물론 마녀 소유의 사과는 아니었어. 그냥 지나가다가 발견한 사과밭에서 따는 거지.
납치한 애 주려는 것도 아니야. 그냥 걸으니까 배가 고프더라고.
이쯤되니까 납치에 서리에, 산적아니냐고?
...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아마 아닐 거야.
이 마녀는 요리하기도 귀찮은 평범한 마녀일 뿐이라고.
...? 뭐야.
근데 마녀가 사과를 한 입 베어물자마자 누가 망토를 잡아당기는 거야.
처음엔 칠칠맞게 어디 나뭇가지에라도 걸린줄 알았어.
그래서 다른 손으로 망토를 잡아당기는데, 작고 보드라운 손이 딸려오는 거야.
"저기여, 왜 도둑질해여."
애다.
... 음 근데 너무 어린데.
"꼬맹아, 저리 가."
마녀는 남자애의 이마를 꾹 눌러 밀어냈어.
아직 우유 냄새가 나는 꼬맹이잖아.
이렇게 연한 살이면 태어난지는 대체 몇 년이나 된 걸까.
길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집안일은 커녕 애를 키워야할 판이 뻔해.
저 말랑한 손은 끽해야 장난감이나 색연필이나 잡았겠지 뭘 더 해봤겠어.
귀찮은게 질색인 마녀는 그냥 좀 더 귀찮더라도 다른 애를 찾아 보기로 했지.
"훠이, 저리 가서 놀아."
대충 망토를 뺏어 들고 사과 한입을 더 베어물며 사과밭을 뜨는 마녀겠지.
적어도 한 뼘은 더 자란 애를 데려가야 쓸모가 있겠다고 계산이 섰거든.
좀 커야 부려먹든 마법 재료로 써먹든 하지.
마녀 입안에 달큰하게 차는 사과 과육이 아삭거려.
마녀는 앞으로 사과가 먹고 싶을 땐 이곳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지.
아니 근데 이 쪼끄만 놈이 졸졸 쫓아오는 거야.
"왜 도둑질 하냐니까여?"
"도둑질은 나쁜 거예여. 어른이면서 그것도 몰라여?"
"왜 도망가여?"
"어디가여? 집에 가여?"
"..."
어우 시끄러.
마녀는 시끄러운 것도 딱 질색이야.
그래서 제 몸의 반 정도 올까 싶은 애를 내려다보고 섰지.
"... 꺼져줄래."
"싫은데여."
"너 내가 누군줄 알고... 이거 마지막 기회다."
"아줌만 누구예요?"
하 애들은 보는 눈이 없... 아니, 말이 안 통해.
아줌마라고해서 빡친 건 아냐. 절대 아냐.
아니 근데 아줌마라니, 마녀는 조금 억울해. 지금 이 외모를 유지하려고 공부를 얼마나 했는데.
마녀도 공부해야하는 거 이 꼬맹이는 알까?
결국 마녀는 사과를 한입 더 베어물고는 남은 걸 저편으로 던져냈어.
글쎄 입맛도 뚝 떨어지는 거 있지. 먹는 것도 씹는 것도 귀찮아졌어.
오랜만에 맛있는 사과를 씹은 건데.
웃음기를 지운 마녀는 자주색 벨벳 장갑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어.
영문을 모른 채 남자애는 차가운 표정의 마녀를 올려다봤지.
투명한 눈망울 위로 호기심이 어려.
장갑을 벗는 손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가 마녀의 얼굴을 똘망똘망하게 살피는 애야.
겁도 없지.
마녀가 장갑을 벗은 손으로 그 작고 말랑한 턱을 굳게 움켜쥐었어.
그 순진한 얼굴은 도통 반항할 생각을 않더라.
맹한 건지, 순진한 건지.
"... 아 이제야 좀 조용하네."
"..."
잠시 뒤 놀란 남자애가 창백해진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벙긋거렸어.
유연하게 부딪히던 어린 성대가 미끄러지기만했거든.
어찌나 놀랐는지 겁먹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낯설어하더라.
"..."
아무리 입을 벙긋거려도 나오는 소리가 없어.
그러니까, 마녀가 목소리를 뺏은 거야.
애의 얼굴에서 손을 떼자 마녀의 손 위에 반투명한 구슬 하나가 들려 있어.
푸른기가 감도는, 깊은 색의 오묘한 구슬이야.
마치 그 애의 눈동자 색을 닮았지.
"운 좋은 줄 알아. 꼬맹이."
다른 마녀였으면 영원히 목소리를 없애버렸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 마녀는 좀 다르거든.
영원이 얼마나 무한하고 무서운지 잘 알거든.
다른 마녀와 달리 기나긴 삶을 벌로 생각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영원히 뺏는 거 대신 구슬로 만든 거야.
"한 번 더 네가 운이 좋아, 죽기 전에 나를 다시 만난다면 목소리를 돌려줄게."
마녀에게 겁먹지 않은 벌이야.
다시금 겁먹은 커다란 눈망울 위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어.
마녀는 한치의 동요도 없는 표정으로 기울였던 몸을 일으켜 걸음을 돌렸고
애의 얼굴 아래로는 굵은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라.
마침 하늘에서도 맑았던 하늘 위로 먹구름이 밀려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
죽은 나무 위로 까마귀 떼가 줄지어 앉아 목청이 터져라 울기 시작했어.
맥카이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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