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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9:35
https://hygall.com/602674105 <이 때 진작 물었어야 했나
https://hygall.com/609510419 <방심이나 하지 말자





솔직히 그 일 이후 역 앞에서 다시 옆집남자를 볼 일은 없을 줄 알았음. 당분간이라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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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바로 다음 날 퇴근길에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지.


양 쪽 마음이 어떻고 의도야 어쨌든 옆집남자 쪽에서 한 발 움직였고 난 거절한 셈이 됐잖음?

아무리 애매하게 달아오른 몸을 감당 못해서 밤새 뒤척인 쪽은 나였다고 해도 말임.

표면적으로 거절 당한 쪽은 대개 자존심이 상하는 법이잖아. 며칠이라도 피해 다닐 법은 하잖아?

옆집남자는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타났음. 날 보고도 가만히 담배나 태우고 서있는 게 다였음.

얼마나 오래가 될 지 몰라도 최소 오늘은 옆집남자랑 마주칠 일 없겠지, 생각했을 때 약간 아쉬웠거든. 전 날 그냥 집으로 들어가버린 걸 후회한 건 아님. 그래도 아쉽긴 했어.

근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서있는 거 보니까 또.. 이거 은근히 서운하네.

그렇게까지 별 일이 아닌 거야? 어제 그 일이 이 정도로 신경도 안 쓰이는 정도냐고.

나였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내가 앞서 나갔다가 거절 당했으면 못해도 몇 주는 피해다녔을 거임.

펍에 갔다가 돌아오던 날 옆집남자가 날 밀어냈다고 상상해보면 말이지. 나였으면 이사 갈 때까지 눈도 안 마주쳤어.

그 때는 옆집남자가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한 짓이지. 나한테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알잖아. 그런 인간이라는 거.



“안 가?“

나도 모르게 멀뚱멀뚱 서있으니까 옆집남자가 물고 있던 담배 손으로 옮겨 들고 물어봄.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데 신경써봤자 나만 손해지.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뜻대로 안 되는 거잖아.

끌리면 안 되는 사람한테 끌리는 것처럼, 관심 없는 사람한테 없던 관심이 생길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그나저나 오늘 당연히 역에 안 나올 줄 알고 들어가는 길에 빵 사가려고 했는데.

나보다 옆집남자랑 빵집 아저씨가 더 친한 건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왠지 같이 가는 건 어색할 것 같지 않음?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겠지만 내 기분이 좀 이상할 것 같단 말이지. 펍에서 만났던 것도 생각나고.

게다가 편의점 직원한테도 느꼈던 거지만 빵집 아저씨도 말이야. 왠지 옆집남자랑 대화할 때마다 묘하게, 뭔가.. 뭐라고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미묘하게 다른 뭔가가 느껴지거든?

대체 뭔가가 뭐인지는 나도 모름. 그냥 그 공기, 흐름.. 온도.. 습도.. 당사자들은 그게 평범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있는 나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짐.

그들 사이에 무슨 사건이나 문제가 있다기에는, 옆집남자는 항상 똑같아. 나를 대할 때나 빵집 아저씨를 대할 때나 편의점 직원을 대할 때나 다를 게 없음.

그리고 이 사람들 거리감도 좀 이상한 것 같음. 옆집남자랑 빵집 아저씨는 꽤 친한 것 같은데 서로에 대해 딱히 깊이 아는 건 아닌 것 같음. 옆집남자는 빵을 사러 다니지도 않고, 심지어 아저씨네 펍을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근데 그 상가에서 옆집남자가 날 데리고 바로 들어간 펍은 베이커리였단 말이지. 거기 펍이 한두 개가 있던 것도 아닌데.

게다가 내가 역 앞 빵집 얘기를 했을 때 옆집남자는 바로 카를로스 아저씨가 좋아할 거라고 했잖아.

두 사람도 여러모로 왠지 이상한데 편의점 직원은 또 편의점 직원대로 이상함. 옆집남자랑 편의점 직원은 되게 안 친해보였거든.

내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두 사람은 마주보고 서있어도 대화를 하지도 않았음. 편의점 직원은 옆집남자를 묘하게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해 하는 것 같기도 했어.

근데 콘돔 안 사가냐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묻고, 또 옆집남자는.. 편의점 직원 나이를 알고 있었지. 보기보다 어리다고 했잖아.

아- 복잡해. 이쯤 되면 그냥 이 동네가 총체적으로 이상한가 싶기도 하고. 아니지. 그냥 옆집남자가 이상하고 그와 관련한 사람들이 이상한 건가?

내가 대화해본 동네 사람이라고 해봐야 셋 밖에 없으니까 일반화 할 수는 없잖아.


“베이커리 들를 건데.“

또 그런 것들이 신경쓰이긴 하는데 먹고 싶은 빵을 포기할 만큼 거슬리지는 않음.

대놓고 이상하고 기분나쁜 일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뭐랄까, 대체로 평범한데 간간이 기묘하달까.

베이커리 쪽 가리키면서 물어보니까 옆집남자 시선도 가리키는 쪽으로 돌아갔음.

손에 들고 있던 담배는 다시 입으로 돌아감.


“응.“



새삼스럽지만 대답도 참 한결같음.

그래서 나도 그냥 아무 말 없이 베이커리 쪽으로 몸 돌림. 걷기 시작하니까 옆집남자도 따라오더라. 같이 걸으니까 진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음.

표면적으로는.

난 혹시나 팔이라도 스치거나 손이라도 부딪힐까 봐 평소보다 반 걸음 정도 떨어져 걸었음. 이 정도는 신경쓰는 티 안 나겠지.

걷는 동안에도 역시나 대화는 없었음. 언제는 대화를 했던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숨이 막히는 것 같음. 집에 가는 중인데 집에 가고 싶어짐.

다행히 베이커리는 역이랑 진짜 가까워서 금방 도착했어. 베이커리 조명 보자마자 왠지 마음이 놓이기 시작함.


“안녕하-“

평소보다 반가워서 얼른 베이커리 문 열고 들어감.

이 아니라 다시 나옴.


“미쳤어요!?”

옆집남자가 뒤따라 들어오는 거 느끼고 바로 식겁해서 다시 문 닫고 나감. 나가다 못해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옆집남자 몸까지 밀고 나갔어. 순순히 밀려나서 다행이지.

가게랑 두어 걸음 정도 멀어지게 밀어두고 돌아보니까 카를로스 아저씨도 놀랐는지 안에서 우리 보고 있더라.


“담배를 끄고, 아니. 어차피 빵 살 것도 아니니까 그냥 여기 있어요.“


편의점도 문제지만 그렇다 쳐. 어떤 미친 사람이 빵집에 담배를 물고 들어가.

여기 있으라니까 또 그냥 담배 물고 서있음. 이걸 상식이 있다고 해야 하냐 없다고 해야 하냐.

하여튼 말해놓고 다시 인사하면서 빵집으로 들어감.



”죄ㅅ,”

그리고 바로 사과하려다 나도 모르게 멈춤. 누구 대신 사과하지 말랬는데.

아니지. 글쎄 누구 대신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라니까.


”-해요. 담배 연기 안 들어왔죠?“

근데 아저씨는 내 말에 대답 안 하고 묘한 얼굴로 문 밖에 있는 옆집남자 쳐다보고 있더라.

나도 아저씨 시선 따라서 고개 돌렸는데 옆집남자는 가만히 서서 담배 피우고 있었음.



“연애하는 거 아니라더니..?“

바로 돌아보니까 이번엔 더 묘한 표정임.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닌 게 더 이상한데요.“

”아니 그, 바로 옆 집 사니까 겸사겸사. 길 겹치면 같이 집에 가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오늘 역까지 올 일 없었을 텐데.“



이것 봐. 좀 이상하지?

빵집 아저씨가 옆집남자 스케줄을 어떻게 알아?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인지 먼 사이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음.

그렇다고 둘이 무슨 사이냐고 묻는 것도 이상하잖아. 내가 참견할 일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가끔 집에 같이 가게 됐어요. 무슨 사이인 건 아니고.“

빵집 아저씨는 아무래도 뭐가 재밌나봄. 무슨 사이는 아니라는 부분에서 바로 허허, 하고 소리내서 웃더라.

..난 어디 설명하기도 복잡해 죽겠는데 이게 웃겨?



“데리러 가나 봐요?“

재밌나봄이 아니라 재밌어하는 게 확실함. 본격적으로 눈이 빛나더라. 하긴 나같아도 남의 일이면 재밌었을 거임.

하다 못해 친구 일이었으면 벌써 붙잡고 무슨 일 없었는지 다 불라고 눈을 빛냈겠지.



”··· ···가끔이요. 이웃주민이라서..?“

옆집남자가 이웃주민이라고 말할 때마다 묘하게 신경 거슬렸는데. 정작 내가 급하니까 할 말이 그것 밖에 없음.

그거 말고 이걸 뭐라고 설명해.


“흐음. 이웃주민끼리 가끔.“

”두 분이 친하신가 봐요?”

“친하다기 보다는.. 오래 본 사이기는 하죠?“

”아저씨도 여기 오래 사셨구나..“

“우리 단골손님은 어쩌다 이 동네까지 오셨습니까.“

“그 전에 살던 곳이 직장이랑 너무 멀어서요. 찾다 보니까...”

“그보다 전에는요?”

“네?”

묘하게 신상 조사 당하는 것 같네. 별로 깊은 의미가 없어 보이긴 하는데 왠지 신경쓰임.

하여간 이 동네 이상해.


“아. 캐묻는 게 아니라.. 그 전에는 더 먼 곳 사셨던 분인가 해서요. 인근 지역 사람들은 이 동네로 이사오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아.. 네. 그보다 전에는 아예 다른 데에 있었어요. 작년에 직장 옮기면서 이사갔다가 이번에 다시... 근데 왜 이 동네로 이사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소문이 안 좋아서요.“

”...소문이요?“

”귀신 나온다고.“

”네?“


뭐야. 옆집남자는 대충 얼버무리는 느낌이더니. 이젠 이 동네에 귀신이 나온다고?



“사실 이 동네가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유명해요.”

“.......농담이죠?”

“예.”

“...”

나도 모르게 눈 찌푸렸는데 빵집 아저씨는 웃음. 많이 웃음.

빵집아저씨도 어딘지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역시 이상하기도 한 것 같음. 그냥 동네가 이상함.

아저씨는 웃는 중인데 문 열리는 소리 나서 돌아보니까 옆집남자가 들어오더라. 담배는 다 피웠나봄.

빵집 아저씨도 그거 보고 웃던 거 멈추긴 했는데 표정은 아직 웃음기가 잔뜩이었음.


”쓸데없는 말이라도 할까 봐 감시하러 들어오십니까.“

“빵 안 사?”

빵집 아저씨는 옆집남자한테 말 걸었는데 옆집남자는 대답 안 하고 나한테 말함.

거기서 내가 옆집남자한테 대답하면 나도 아저씨 말을 무시하는 것 같잖아.

그래서 대답 못 하고 두 사람 번갈아보기만 했는데 정작 빵집 아저씨는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았음. 둘이 오래 본 사이랬나? 그래서 저 묘한 태도도 익숙한가.


“그, 빵.. 오늘은 식사빵 몇 개 사가려고요. 골라주시는 걸로 가져갈게요.“

하는 수 없이 난 빵집아저씨한테 말했음. 그럼 적어도 아저씨는 옆집남자한테, 옆집남자는 나한테, 난 아저씨한테 말한 거니까 무시 당한 사람은 없는 거지. 응.


“두 분이 같이 드세요?”

”아뇨. 제 빵이에요.“

”겸사겸사 같이 사가시죠.“


빵집 아저씨는 빵 둘러보면서 나한테 물어봤다가 다시 웃는 얼굴로 옆집남자한테 말 걺. 옆집남자는 역시나 대답 안 함. 나만 뻘쭘해짐.



“좋아하는 빵 없어요?“

”딱히.”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뭐라도 골라요.”

“안 사도 돼.”

난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나 실패함. 더욱 머쓱해짐.

그냥 내 빵이나 고르려고 몸 돌렸는데 빵집 아저씨는 옆집남자 보고 있더라. 둘이 키가 비슷해서 눈높이가 맞겠더라고.

근데 표정이 어째 이상함. 근처 커다란 매대 벽 쪽에 슬쩍 비스듬히 기대 서기까지 하는 거임?

웃음기가 있긴 한데 어딘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궁금..? 걱정...? 무슨 표정인지 잘 모르겠음. 하여튼 복잡해보였어.



“우리 단골손님한테 퍽 상냥하십니다?“

순간 빵집 아저씨가 왜 비꼬는 투로 옆집남자한테 그런 말을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음.

대체 어느 부분에서 옆집남자가 나한테, 그것도 퍽 상냥하다는 건지 물어볼 뻔 했음.

이 동네 사람들 상냥함의 기준도 이상해.

하여튼 아저씨가 그 말 하니까 그제서야 옆집남자도 아저씨랑 눈 마주치게 고개 돌리더라. 대답은 안 함.



“우리 단골손님이 연애하는 사이 아니라던데.“

”아니니까.”

드디어 옆집남자 입에서 대답이 나왔는데 빵집 아저씨 눈이 가늘어졌음.


“연애하는 사이도 아닌데 밤마실도 다니고, 데리러 오고 가느라 바쁘십니까?“

”안 바쁜데.“

“시기가 안 좋아요.”

“...”

“게다가 우리 단골손님이 많이 아깝고.”



얼떨결에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이 쪽 저 쪽 말하는 걸 듣긴 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음. 둘이 무슨 사이야? 사귀나? 대체 무슨 시기가 어떻다는 건데?

나만 혼란에 빠뜨려 놓고 빵집 아저씨는 식사빵 진열된 쪽으로 걸어감.



“어차피 너네 단골손님이 나 싫다던데.“

“예?”

“엥?”


빵집 아저씨는 되물으면서 돌아보고, 난 되물으려던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효과음 내면서 올려다 봄.

어째 매번 해명하랄 때는 안 하면서 엉뚱한 타이밍에 미묘한 말만 뱉는 것 같지 않아? 저렇게 말하니까 꼭...



“그새 까이셨어요?“

”응.“

”까인 주제에 모시러는 다니신다?“

”그런 셈이지.“

옆집남자가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고 차인 것 같잖아. 따지자면 어제 있던 일도 싫다거나 까였다거나 하는 말로 표현 못할 일도 아니긴 하지만.

근데 그렇게 표현하면 사실 관계가 많이 달라지잖아.


“....진심이십니까?”

“글쎄.“

빵집 아저씨 눈이 가늘어지는 게, 아저씨도 옆집남자가 가벼운 말만 뱉는다는 건 잘 아나봄.

어차피 누가 봐도 진심 아닌 표정이긴 했음. 나도 그냥 저 인간 또 저러네, 정도 심정이었다고.

어이없지만 아주 잠깐은 심장 근처 어디쯤이 간질거렸던 것 같기도 함.


“손님 정신 단단히 차리십쇼.“

”네?“



난 애써 못 들은 척 외면하는 중이었는데 별안간 아저씨가 내 어깨 붙잡음.


“저 인간 저거 신기할 정도로 여자 잘 꼬셔요.“

”...네?“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말에는 백 번 공감했음. 거기서 공감해버리면 나도 꼬셔졌다는 걸 들킬 거 아님?

옆집남자가 바로 코웃음 친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음.


”저저, 고개 돌리지 마요!! 눈웃음 치는 건 애초에 쳐다보지도 마십쇼. 여자들이 나쁜 남자가 눈웃음 치는 거에 약하더라니까.“

“아무래도 여자들이..?“

그것 봐. 여자 많이 꼬셔본 거 맞지. 주변인이 그렇다잖아.


”딱 봐도 나쁜놈같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불장난 하려다가 나락 가는 거 한 순간이에요.“

”헤엑..!“

”보십쇼. 많이 보냈을 것 같이 생겨먹지 않았습니까?“

심각하게 입 틀어막으니까 빵집 아저씨가 내 어깨 잡고 옆으로 돌려주기까지 함.


“그렇게 생겼어요..!”

“그죠-?”

옆집남자는 한숨 쉬면서 둘이 잘 노네.. 하고 중얼거림. 담배 땡기는 것 같음.


“갑자기 막 조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죠?“

“갑자기가 아니라 그건 원래부터 그랬는데요.”

“역시 현명하셔. 제 빵 좋아하실 때부터 안목 있으신 건 제가 잘 알았는데 사람 보는 안목도 탁월하십니다.“

”그거 불 붙일 생각 하지 마요!!?“


한창 몰입하는데 옆집남자가 진짜 담배 꺼냄. 빵집아저씨 말에 대답도 못해주고 삿대질했는데 입에까지 물더라.

불은 안 붙였지만 불안함.

저러다 멋대로 불 붙여버린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



“저 봐. 얌전히 말 잘 듣고 유독 친절해도 넘어가지 마시라구요.“

감시하고 있는데 빵집아저씨가 또 그러는 거야. 다 공감하지만 그 말은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단 말이지.


“...말은 하나도 안 듣고 전혀 안 친절하던데요.”

“에엥?”

그러니까 빵집 아저씨가 이상한 소리 내더니 내 뒤가 아니라 옆으로 와서 섰음. 동네가 어두워서 그런가 이 동네 남자들은 왜 이렇게 옆에 서면 그림자가 져.

이 동네에 유독 나이 불문하고 덩치 큰 남자들이 많은가.


“아니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여태 말도 얌전히 안 듣고 친절하지도 않았습니까? 그 태도로 여자를 어떻게 꼬시겠다구...“

“뭐야. 꼬시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옆집남자가 담배 물고 물리는 소리로 중얼거리니까 빵집아저씨가 다시 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남.


“까이기까지 했는데 꼬시고 싶으시긴 한가 봅니다.“

“빵 사러 온 거 아니야?“

에이. 난 빵집 아저씨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는데. 옆집남자는 내 쪽으로 고개 돌려버림. 똑바로 대답할 리가 없지.

난 그 정도만 궁금했을 뿐인데.


“바깥 사람이라 환상이라도 갖는 건 아닙니까?“

빵집 아저씨 목소리가 진지해져서 약간 긴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집남자 시선도 약간 험악해짐.

이 사람들 나는 사이에 세워두고 진짜 왜 이러는데. 이럴 거면 내가 빵 팔고 있을 테니까 둘이 나가서 다 털고 오면 안 됨?



“누가 들으면 내가 인어공주라도 되는 줄 알겠어.“

“얼추 비슷할 수도 있죠.“

“그럼 얘가 왕자야?”

“그것도 얼추...?”

”그만해. 믿는 얼굴이잖아.“

내가 표정을 너무 못 숨겼나..?

방심하고 있는데 옆집남자가 내 쪽으로 턱짓함. 빵집 아저씨도 내 얼굴 쳐다보는 것 같았음.

그나저나 전에 옆집남자는 본인이 이사 나가면 이 동네 사람들이 죽는다는 둥 했던 것 같은데. 인어공주는 본인이 죽는 거잖아..?


“...이 동네 공기 아니면 숨을 못 쉬는 병이라도 있어요?“

”이사를 못 간다는 거지. 동네 밖은 오늘도 나갔다 왔어.“

”잠깐. 단골손님한테 이사 못 간다는 말까지 하셨다고요?”

“오버하지 마.”


이쯤 되니까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건지 혼란스럽기 시작함.

두 사람이 대화 할 때마다 무슨 내용인지 설명해주는 자막이라도 달렸으면 좋겠음.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오버요? 반응 보니까 조만간 청첩장이라도 돌리시겠습니다.”

“..돌았어?”

“돌았냐는 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돌았냐는 건 좀 심했다.”


보다 보니까 과몰입했나봄. 그냥 튀어나간 말인데 하자마자 양쪽에서 돌아보는 거임? 갑자기 주목 받아서 부담스러워짐.


“거 봐요. 여자친구분도 그렇다지 않습니까?“

”카를로스. 술 마셨어?“

”이따 펍 열어야 하는데 제가 술을 왜 마십니까.“

”그럼 헛소리 그만 하고 빵이나 팔아.”

“하여간.. 그나마 먹는 것 몇 개 넣어드릴 테니까 단골손님이라도 저 입 짧은 인간한테 좀 먹이십쇼.“

“...제가요?”



이제 혼란스럽다 못해 혼미해짐. 그래서 빵집 아저씨 마음은 대체 뭘까?

그냥 이 동네도 주민들도 이해하기를 포기하기로 함. 뭔 일 생기기 전에 이사 갈 곳이라도 알아봐둬야 할 것 같음.

당장은 못 가더라도 말이야. 갈 곳을 봐둬야 급할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거 아님?



“저 분이 누가 뭘 준다고 먹는 인간이 아니거든요.“

”그럼 진짜 담배만 먹고 살아요?“

”얼추 맞을 거라니까요.“


”둘이 그만 떠들어.“

“하여튼···”



빵집 아저씨는 뭐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빠르고 익숙하게 빵을 포장해주시긴 했음.

펍 베이커리에서 봤을 때도 말 많고 재밌는 분이었는데 옆집남자랑 둘이 대화 하니까 또 달라보이더라. 무슨 잔소리 하는 삼촌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이 오래 봤다고 했고, 옆집남자는 이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니까.. 어릴 때도 알던 사이였나?

아무튼 빵집 아저씨가 투덜거리는 게 멈출 때쯤 포장한 빵이 내밀어졌음. 동시에 이 혼란스러운 대화의 결론도 내린 것 같음.


“어차피 제가 뭐라 한들 붙을 불이 안 붙겠습니까? 불씨 하나 없는 데서도 산불이 나는데, 하나라도 불 들고 달려들면 불이 안 나고 배겨요?“




뭐ㄹ,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카드부터 찾아 내밀었는데 아저씨가 그냥 가져가라고 떠맡기심. 오늘만이래.

그러더니 또 그냥 저 인간 하나도 주지 말고 나 혼자 다 먹으라 함.

그래서 빵집 아저씨 마음은 진짜 뭘까?

나올 땐 종이봉투 가득 담긴 빵 안고 있어서 옆집남자가 문도 열어줘야 했음.

간다고 인사한 건 나만이었고 빵집 아저씨도 나한테만 인사해주심. 나갈땐 옆집남자랑 빵집아저씨는 눈도 안 마주치더라.

정말 알 수 없는 사람들임.

빵 안고 걷기 시작하는데 옆집남자는 빵집이랑 약간 멀어지자마자 담배에 불부터 붙임.

몇 걸음 걷다 나 돌아보더니 들어줄까? 하고 물어보더라. 바로 한 걸음 물러났음.


“빵에 담배 냄새 묻어요.”

옆집남자는 진짜 잠깐 눈 가늘게 눌렀다 뜨더니 다시 앞 보고 걸어감.

근데 말이야. 들을 땐 곱씹을 틈이 없어서 몰랐는데. 빵집 아저씨가 말한, 하나라도 불을 들고 달려들면. 에서 그 불을 들고 달려드는 하나는 누구였을까?

상관없는 사람이라면서 자꾸 부딪히는 옆집남자? 아니면, 이제 걸어가면서도 길이나 밤하늘이 아닌 담배 문 옆 얼굴이나 힐끔거리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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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약간 앞 쪽 옆에서 걷던 옆집남자가 돌아보는 거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 쉬었다는 걸 깨달았음.


“좀 그래요.”

“카를로스랑 너무 떠들었어.”

“그건 그냥.. 재밌었어요.”

“이 동네 사람들이랑 친해지지 말라니까.”

“이미 이 동네 사람이랑 혀도 섞었어요.“

웃어? 남은 속 복잡해서 웃지도 못하는데. 웃을 때가 아니라는 의미로 인상도 썼는데 더 웃겼나봄.


“잠깐.. 종이봉투 밑에, 이것 좀 잠깐만 받쳐줘요. 떨어질 것 같아.”

별 수 없이 그 얼굴 보고 걷다가 안고 있던 빵 봉투 떨어트릴 뻔 함.

무거운 것도 아니고 반쯤 차있는 건데 안고 걷다 보니까 점점 아래로 흐르는 거야.

고쳐 안으려다 떨어질까 봐 받쳐달라니까 옆집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왔음. 담배는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종이봉투 밑 부분을 가볍게 받쳤거든.


“오늘도 별 봤어?”

다시 고쳐 안는데 머리 바로 위 쪽에서 그러는 거임.

웬 별? 오늘 뜬 별이라고 다를 거 있나?

그런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게 되잖아. 딱히 다를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들게 된다고.

방금 전까지 베이커리에서 했던 대화도 그렇고, 심지어 직전에 이 동네 사람이랑 친해지지 말라는 둥 했던 것도 그렇고.

사람 손이 묶여있을 때 올려다 보게 해서 잡아먹으려는 수작이라고 예상할 수 있겠어?

이 동네 사람들이랑 친해지지 말라는 말에 본인은 예외일 리 없잖아. 예외는 커녕 누구보다도 본인 얘기겠지.

혀나 섞고 불장난이나 하다가 가라는 거잖아. 불은 내지 말고. 친해지지도 말고.

그럼에도 옆집남자랑 키스하는 건 여전히 몽롱해지게 기분 좋았음. 그래서 물었어.

질문을 했다는 게 아니라 혀를 물었어.

그렇게 세게 문 건 아니지만 옆집남자는 고개를 물렸고, 웃는 얼굴로 담배를 가져다 물었음.

늘 그렇듯 담배 연기 한 번 뱉어내고 손으로 옮겨 든 다음. 혀 끝을 내밀었어.

그대로 발음도 부정확하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음.


“피 나?”

고개만 가로저었더니 혀는 다시 입 안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담배가 돌아왔음.



“다음엔 더 세게 물어.”

그리곤 다시 돌아서 걸어갔어. 난 빵을 안고 그 뒤를 따라 걸어갔지.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또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한 편으로는 이런 기묘한 일상이 꽤 오래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

그러나 이 이상한 동네는 내 생각보다 더 어두웠고, 가느다란 줄 위를 걷는 건 끝내 낙하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일이지.

떨어져 발 밑에 닿는 곳이 단지 담뱃불 뿐인 어둠인지.
















“왜 또 뒤에서 따라와요. 놀랐,잖.. 아...?”

















“···누구세요?”

















혹은 담뱃불 한 점 없이 완전한 어둠인지는 모를 일이고 말이야.
















🧜‍♂️맥카이너붕붕😬


https://hygall.com/610223095 <그래서 내가 누구를 마주쳤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