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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7 17:50
디오라 메가옵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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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에서의 노동은 고되고 지루한 일이었다. 옵틱이며, 케이블이며, 볼트며, 나사며, 귀마저 고된 지루한 일. 오라이온은 드릴을 작동시키며 암석에 가져다 대었으나, 디 식스틴이 드릴의 시동을 꺼버렸다. 오라이온은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아니, 전조 증상은 없어."

오라이온은 다시 드릴을 작동시켰고 그것을 암석에 가져다 대었다. 쓸모없는 짓이었다. 얼마가지않아 드릴의 시동은 다시 꺼졌다. 디 식스틴에 의해서.

"누군가와 같이 간 적 있어?"

"아니."

오라이온은 드릴을 손에서 놓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할까?

"시도해본 적은?"

"없어. 대체로 내가 위급할 때 벌어지는 일이니까 누군가와 시도해보긴 위험하지."

오라이온은 드릴의 시동을 켜며 생각했다. 세 번째 시도에 운이 따르는 법이지.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드릴의 시동은 꺼졌고 오라이온은 드릴을 손에서 놓았다. 오늘 널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작은 친구. 너라도 푹 쉬라고. 오라이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디 식스틴에게 맞춰 올렸다.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며 웃었다. 

"오, 제발 오라이온, 언제부터 네가 성실한 광부였다고 그래?"

"이제부터라도 되어보려고."

오라이온이 한쪽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하자 디 식스틴은 우렁우렁한 웃음을 터뜨렸다.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을 한 대 때리고 싶었으나 포기했다. 그러기엔 디 식스틴이 너무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널 부르는거야?"

"그건 부름이라기보단 좀 더 육체적인 것에 가까워. 날 낚아채간단 말이지."

"흥미롭네."

"흥미롭지."

"그는 어떻게 생겼어?"

"몰라. 거긴 버려진 광산이라 어둡고 춥거든... 빛이라곤 한 점도 없어. 그래서 알아볼 수가 없었어."

"하지만 우리에겐 야간 시야 모드가 장착되어 있잖아. 그를 볼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무서워서 유령에게서 도망치느라 생김새를 못 봤다고 말해야 하나? 내가 본 건 그의 붉은 옵틱 뿐이라고? 겁쟁이라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야간 시야 모드를 키는 걸 깜빡했어."

오라이온은 중얼거렸다.

"뭐? 바보 같긴!"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을 타박했는데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오라이온을 덜렁대는 귀여운 봇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오라이온은 미소 지었다. 그는 디 식스틴의 애정이 언뜻 드러나는 순간들이 좋았다. 오라이온도 디 식스틴에게 그러한 순간들을 주었을까? 그랬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에게 물었다.

"다른 질문은 없어?"

"왜 없겠어?"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의 질문에 답해주며 시간이 너무 빠르지 않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오라이온의 불안감은 주욱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여행이 계속될수록 이야기는 커지고 있었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도 늘어갔다. 디 식스틴의 변화도 오라이온이 감당해야할 것들 중 하나였다. 그의 친구이기에 오라이온은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그것을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힘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그러나 디 식스틴의 고통에는 박탈에 대한 분노만이 빼곡하여 다른 것이 들어갈 틈 따위 없었다. 디 식스틴이 오라이온을 탓하며 그 분노를 내비칠 때, 오라이온의 말을 자신의 길을 막는 것쯤으로 듣기 시작했을 때 오라이온은 상실의 예감을 느꼈다. 오라이온은 그것을 애써 부정하였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디 식스틴은 스타스크림을 제압하며 해방감을 느꼈고 변형을 통해 압도적 무력을 손에 넣었다. 그가 폭력을 사용하자 환호하는 하이가드속에서 디 식스틴은 그가 휘두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는 절대로 멈추지 않아.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할 거야. 그는 더이상 네가 알던 디 식스틴이 아니야. 오라이온의 이성이 답을 내놓았으나 오라이온은 부정했다. 거친 숨이 이어졌다. 아니야, 늦지 않았어, 늦지 않았- 그러나, 그가 하이가드들에게 밀려나 먼 곳에서 디 식스틴을 바라보았을 때 디 식스틴의 옵틱 색은 변화를 끝마치고 있었다.

비행음이 들렸다. 미사일의 폭발음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오라이온은 대처했다. 공중으로 도약하여 총을 쏘고 그에게 달려든 센티넬의 군인을 품에 안고 트랜스폼하여 그를 조각내었고 지상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와 엘리타를 공격하는 포를 막고자 뛰어들었다.

"엘리타, 엎드려!"

오라이온은 포를 맞고 나가떨어지며 암석이 제 위를 덮는 것을 느꼈다. 이거 전에 경험해본 것 같은데, 그 생각과 함께 또다시 오라이온은 누군가가- 유령이 자신을 낚아채는 것을 느꼈다. 


-


광산 특유의 정체된 공기가 오라이온을 반겼다. M-5000, 달라진 것 하나없는 공간 속에서 오라이온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았다. 도망쳐야할까? 아마도. 하지만 불가능했다. 오라이온의 동체는 갑작스런 전투 후 일종의 쇼크 상태에 빠진 듯 했다.


진동이 느껴졌다.


오라이온은 숨을 멈췄다. 일정한 진동, 걸음- 그가 오라이온에게 다가오고 있었고 이내 붉은 옵틱을 드러내며 그는 오라이온 앞에 섰다. 오라이온은 그를 올려다 보았다. 오라이온은 자신이 유령에게서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토록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피할 수 없는 결과, 그가 맞이할 미래가, 파국이 오라이온 앞에 있었다.

"M-5000."

유령은 광산 벽에 새겨진 일련 번호를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내 우주는 네 우주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어. 쿠인테슨과의 전쟁, 우리의 분쟁으로 시작된 기나긴 내전 끝에 매트릭스가 제공하던 에너존 마저 메말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광산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지. 에너존을 얻기 위해... 하지만 사이버트론은 소모된지 오래라 그 밑바닥을 빠르게 드러냈어. 이게 그 마지막 광산이야. 막장이지. 지옥의 입구... 우린 그렇게 불렀어. 지금 네 시간대라면 M-4500이 마지막이지? M-4500에서 5000... 우리가 끝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유령은 고통 속에 말을 흐렸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널 겁줬다면 미안해. 널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만 참지 못하고... 조급하게 굴었어. 좀 더 차분히 대화할 수 있을만한... 그럴싸한 장소를 생각해뒀는데 이 세계는 이방자에게, 특히 내게 너그럽지 않았어. 더 나은 곳에서 널 맞이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 지옥 이상은 프라이머스가 허용치 않더군. 그래도 안심해. 여긴 프라이머스조차 쉽게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거든. 그가 널 구할 수 없을 때 내가 널 구해주는 대가로 보장받은 곳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둘이서 오붓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유령은 말을 멈추고 옵틱을 한 번 꾹 감았다. 결심이 섰는지 그는 마침내 시선을 돌려 오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디 식스틴."

"오라이온."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라이온은 망연히 중얼거렸다.

"정말 너구나. 혹시나 했는데 정말 너였어."

오라이온은 유령의 붉은 옵틱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실패했구나."

오라이온은 유령의 붉은 옵틱에서 많은 것을 읽어냈다. 파괴, 폭력, 그를 뒤튼 고통... 오라이온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널 구하는 데 실패했어."

오라이온은 조용히 무너졌다. 그는 영원한 상실 속에 헐떡이며 웅크리고 침잠했다. 유령은 오라이온을 위로하고자 그에게 손을 뻗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실체 없는 유령이었으므로 그의 손은 오라이온의 왼 어깨를 통과해 지나갔다. 유령은 그 감각에 황급히 제 손을 물렸다. 유령은 잠시 숨을 고르곤 말했다.

"네가 실패한 게 아니야. 그가 실패한 거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라이온, 제발 그를 포기해."

부드러운, 고통에 찬 유령의 음성에 오라이온은 고개를 저었다.

"듣고 싶지 않아."

"그를 구할 필요 없어."

"항상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어! 그러니까 나는 그를 구할 거야!"

오라이온이 고개를 들곤 유령을 맹렬히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은 세척액으로 엉망이었다.

"센티넬에 대한 진실을 폭로하고 광부들에게 자유를 줄 거야. 그에게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미래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겠어! 그러면 디도 분명 함께..."

유령은 절규하는 오라이온을 바라보았다. 오라이온은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래, 유령이 오라이온 앞에 있었다. 오라이온의 옵틱이 흐려졌다.

"하지만... 소용없었구나, 그렇지?"

유령은 입술을 짓씹었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는 오라이온의 죽음을 막기 위해 왔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었다.

"오라이온 정신 차려. 나는 널 구하기 위해 온 거야. 가능한 빨리 그를 제거해. 그게 불가능하다면 도망쳐. 네가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이든 그걸 택하란 말이야."

오라이온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떨림이 멎었다. 오라이온은 천천히 일어나 그 푸른 옵틱으로 유령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그럴 수 없어."

"오라이온-"

"난 포기하지 않아. 나는 진실을 알리고 광부들에게 자유를 주겠어. 디를 구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겠어. 실패하더라도 시도하겠어."

"왜 포기하지 못해."

오라이온이 지은 표정은 처참했고 아름다웠다. 유령은 그 표정이 자신의 스파크를 찢어놓는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유령은 모두를 구하기 위해 죽음으로 뛰어들었던 그의 오라이온을- 옵티머스를 생각했다. 그의 영혼을 사용해 행성을 다시금 살리고자 했을 때의 그를... 마지막 순간 그가 자신에게 지은 표정이 저러했다. 오라이온의 시간이 다했다. 오라이온의 몸은 서서히 흐려지며 유령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알고 있어."

유령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오라이온의 이유를. 그 이유로 인해 오라이온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 이유로 인해 모두를 대신하여 희생했다. 그는 오라이온의 이유는 알았으나 언제나 그의 행위만큼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매번 손해를 보는 것을 택하고 어째서 매번 상처 입는 것을 택하는 걸까. 그는 오라이온을 이해하지 못했고 살아남았다. 계속해서 살아남아 오라이온과의 기억들을 곱씹었고 그의 죽음을 상기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널 구하겠어, 죽으려는 널 막을거야. 그런 망상 속에 살았다. 이 세계의 오라이온이 그를 유령이라 생각한 것도 놀랍지는 않은 일이었다. 과거와 망상 속에 갇혀지내는 망령, 그게 그였으니까. 하지만 이젠 달랐다. 그는 준비를 끝마쳤고 힘을 얻었다. 길고 지난한 시간들을 지나 기회를- 이 우주를 포착했고 지금 이 순간에 서 있었다.

유령은 양 손을 모았다. 그의 손에서 붉은 에너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형태를 갖췄고 곧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빛을 내뿜는 리더십의 매트릭스였다. 

"모든 권능을 손에 넣고 나서야 비로소 널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유령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천천히 옵틱을 감았다. 그는 소망해야 했다. 오라이온이 성공하기를. 그리하여 어떠한 위기도 마주하지 않고 승리하여 행복하게 살기를. 다시는 자신을 볼 일이 없기를. 이것을 사용할 일이 없기를. 그러나 낯뜨거운 진실은 숨길 수가 없는 것이라

"나에게 돌아와, 오라이온."

그렇게 유령은 간절히 바란 것이다.


-


"팩스... 방해하지 말고 내 앞에서 비켜. 내가 널 치워버리기 전에."

"디- 들어봐."

그리고 금속음이 울렸다. 오라이온은 나가떨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 디였다. 디 식스틴이 오라이온의 얼굴을 후려갈긴 것이었다. 입 안이 썼다. 에너존이었다. 입 안이 터진 모양이었다. 오라이온은 다시 일어나고자 했다. 대화를 시도해야 했다.

다시 금속음이 울렸다. 다시 한 번 디 식스틴이었다.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의 발길질에 나동그라졌다. 제대로 일어설 수 없었다. 가슴을 차였다. 그의 코그가 있는... 부분이었다. 오라이온은 거친 숨을 헐떡였다. 희미해진 시야에 디 식스틴이 잡혔다. 그는 캐논을 들어 센티넬을 조준하고 있었다. 안돼. 오라이온은 일어났다. 그리고 뛰었다. 그를 구해야 해. 구할 수 있어. 오라이온은 뛰어들었다.

"하지마!"

파열음이 울렸다. 오라이온의 시야에 그 자신의 파편, 에너존과 함께 디 식스틴의 얼굴이 들어왔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그를 덮쳐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지. 오라이온은 뒤로 넘어가며 멍하니 생각했다. 디가 날 쐈어. 내 동체가 어디까지 파괴된 거지? 오라이온의 동체는 허공으로 크게 떠올라 한 번 큰 소리를 내며 굴렀고 그대로 주욱 뒤로 미끄러졌다. 그가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기 전에 디 식스틴이 그를 붙잡았다.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오른손목을. 오라이온은 고개를 들어 절망하는 디 식스틴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라이온이 자신을 가로막은 이유를 물었으나 초가 지나갈수록 그의 얼굴에선 의문이 사라져갔다. 충격은 그를 통과했고 그는 이제 가늠하고 있었다. 그는 오라이온 팩스를 죽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고 거리낌 없이 그의 복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그의 것이어야 했던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디, 안돼."

디 식스틴은 망설였다. 그는 차마 오라이온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는 냥 시선을 돌리고 고갤 아래로 향했다. 그래, 디 식스틴은 망설였다. 수 초간은. 디 식스틴이 고개를 들며 붉은 옵틱으로 오라이온을 노려보았다.

"널 구해주는 건 이제 끝이야."

디 식스틴이 오라이온의 손목을 놓았다. 오라이온은 끝없이 추락하며 그의 스파크가 꺼져감을 느꼈다. 두려움보다 고통이 앞섰다. 그는 실패했다. 

"오라이온!"

어디선가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날 내버려둬. 그냥 내가 죽게 내버려 둬. 오라이온은 자신의 사고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함을 느꼈다. 다행이었다. 고통은 곧 끝날 것이었다. 충돌 전에... 오라이온은 옵틱을 감았다.  

그러나 오라이온은 충돌하지 않았다. 그의 추락은 누군가가 오라이온을 낚아채면서 끝났다. 유령은 헐떡이며 오라이온을 안은 제 팔에 힘을 주었다. 오라이온이 제 품 안에 있었다. 

"괜찮아, 내가 널 잡았어. 이번엔 잡았어, 널 잡았다고! 오라이온! 오라이온?"

유령은 제 품 안에 안긴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에너존으로 젖어있었다. 옵틱은 감겨있었고 그의 동체는 싸늘했으며 색체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는 날아가 버렸으며 그의 코그가 위치해야 할 곳은 뻥 뚫려있었다. 

"스파크, 스파크가 살아있다면- 그렇다면-"

유령은 제 플레이트를 뜯어 스파크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오라이온의 꺼져가는 스파크에 가져다 대었다. 그 즉시 고통이 밀려왔다. 상관없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유령은 제 스파크의 열기를 오라이온의 것에 전달하고자 했다. 살아줘, 이대로 사라지지 마... 오라이온의 스파크는 힘겹게 유령의 스파크와 연결되었다. 유령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라이온의 스파크를 살폈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라이온의 옵틱이 떠지는 일은 없었다. 유령의 턱이 형편없이 떨렸다.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옵틱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언제나 느리게 그를 찾아왔다. 유령은 오라이온의 뺨을 한차례 쓸어내렸다. 그가 오라이온을 만질 수 있었다. 이 세계에 속하지도 않는, 유령에 가까운 그가 오라이온의 실체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은 오라이온이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이런 결말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유령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며 오라이온을 단단히 안았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대었다. 

"괜찮아, 오라이온. 조금만 기다려줘."

유령이 매트릭스를 꺼내려고 한 그때였다. 불쾌한 이물감이 느껴진 것은. 누군가 지옥의 입구를 열었고 이물질이 침범했다. 누구겠어. 유령은 이를 갈았다. 잘나신 프라이머스의 소행이시겠지 안그래? 유령은 오라이온의 감긴 옵틱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일만 처리하고 돌아올게. 약속해. 네게 돌아올게."

그는 오라이온의 동체를 바르게 놓았다. 유령은 오라이온을 내려다 보았다. 숨을 고르고 그는 뒤를 돌아 프라이머스의 안배 아래 감히 그의 지옥에 발을 들인 존재를 찾아나서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메가트론은 그 붉은 옵틱을 깜빡였다. 분명 자신은 센티넬을 두 손으로 비틀어 죽였다. 그리고 나서 연설을 진행했고 그의 이름- 메가트론의 이름을 연호하는 하이가드와 함께 센티넬의 상징물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이곳으로 와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이곳으로 던져넣었어. 메가트론은 야간 시야 모드를 작동시키며 생각했다. 오라이온이 종종 낚아채져 도착했다는 곳- 버려진 광산이 이곳인 모양이라고. 메가트론은 캐논을 준비했다. 오라이온의 유령이 그에게 다가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동이 느껴졌다. 메가트론은 옵틱을 가늘게 떴다. 굉장히 빠르고 일정한 템포로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메가트론은 어렵지 않게 그가 오라이온이 말했던 유령임을 짐작했다. 달려오고 있어. 메가트론은 소리가 들리는 어둠 저편으로 포를 쏘며 고함을 질렀다. 포를 통해 쏜 에너지가 어둠을 태우며 폭발했다. 메가트론은 침묵하며 상황을 살폈다.

"끝났나?"

메가트론은 뒤에서 들린 음성에 포를 돌려 발포했다. 메가트론이 동체를 돌려 상대가 입은 피해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유령은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채 그를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끝났냐고 물었다."

메가트론은 고함을 지르며 유령에게 달려들었으나 실패했다. 메가트론은 그를 통과했던 것이다.

"상황 파악이 느리군."

메가트론은 유령에게 으르렁대었으나 유령은 그런 그를 경멸하듯 내려다볼 뿐이었다. 메가트론은 말했다.

"네 놈은 누구냐."

"옵틱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알 수 있는 문제인데 질문까지 하나?"

유령의 말에 메가트론은 한 번 더 그에게 포를 겨눴으나 유령의 말에 곧 포를 내렸다.

"그게 소용없다는 건 방금 전 무의미한 연사로 깨달았을 거라 보는데. 브레인 모듈 연산 속도에 문제라도 있나보군."

"날 여기로 데려온 건 네 놈이냐?"

유령은 메가트론의 말에 헛웃음 쳤다.

"내가?"

"그렇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날 여기로 데려왔단 말이냐."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 대답이다."

유령은 그를 당장 죽이고 싶은 듯 노려보는 메가트론을 바라보았다. 네가? 감히. 유령은 그를 죽이고 싶었다. 오라이온을 죽인 그를. 메가트론을. 그를 당장 고통 속에 처 넣고 싶었다. 넌 오라이온을 상처입혔어. 그를 걷어차고 그를 죽이고 그를 배신했어! 내가 여기서 당장 널 죽여버리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어떨까? 그를 당장 이곳에서 내쫓아버리는 거야. 좋은 선택 같았다. 유령은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유령은 생각했다. 프라이머스는 이 지옥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런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무리수를 두었다. 지금 이순간 유령이 프라이머스의 뜻에 따라 메가트론에게 기회를 준다면, 메가트론이 그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프라이머스는 더이상 그에게 개입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령은 메가트론에게 또다른 기회마저 박탈할 순 없었다. 그 자신의 손으로 그럴 수는 없었다. 유령또한 메가트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르지 않기만 했을까, 그는 그간 지나온 모든 세월을 반추했다. 그는 지금의 메가트론보다 더 잔혹한 짓을 옵티머스에게 되풀이했었다. 그럼에 유령은 마땅히... 마땅히 그에게 기회를 주어야 했다. 만약 메가트론이 오라이온 팩스를 구하는 선택을 한다면 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미래가 보장된다면 유령은 떠날 수 있었다. 유령은 입을 열었다.

"네 선택은-"

"네가 그 유령이군. 오라이온을 살려줬다던. 이번에는 어려울텐데. 오라이온은 죽었으니까."

유령은 잠시 입을 닫았다 말했다.

"말 조심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디 식스틴은- 아니 메가트론은 열기를 뿜으며 말했다. 유령은 그의 슬픔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분노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메가트론이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그것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령이 그런 그를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오라이온도 그렇고 네 놈도 그렇고 말이 너무 많아."

메가트론은 유령의 얼굴을 보았다. 고통과 분노가 있었다. 메가트론은 생각했다. 고통을 느낀다면 네 놈은 패배자야. 그런 자신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자니 메가트론의 심기가 뒤틀렸다.

"지금 내게 네 놈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것 이상으로 후회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유령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유령은 메가트론에게 마지막 시선을 던졌고 놓아주었다. 메가트론은 서서히 희미해지는 자신을 내려다보다 희미하게 들린 것 같은 신음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유령은 어느새 메가트론에게서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메가트론은 망설였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통에 차 그를 부르고 있는-

"센티넬. 센티넬에게 동조한 이들을 모두 처리해야 해."

메가트론의 입에서 별안간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전부 대가를 치뤄야 해. 그러고나서 새로운 시대를 열거야. 내 손으로 그렇게 하겠어."

메가트론의 옵틱에 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두 주먹을 쥐며 마지막으로 내뱉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여기서 멈출 순 없어."

그렇게 메가트론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