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9071711
view 118647
2024.10.23 16:18
제이크 세러신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한 가운데에, 로버트 세러신은 가능한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을 수 있는 한 구석에. 결혼 초기에는 제 옆에 로버트를 착 끼운채 이곳저곳 자랑하기 바쁜 제이크였지만 일주일치 영끌해온 에너지를 단 몇시간만에 써버리고 죽은 얼굴로 서있는 베이비를 본 후 둘은 전략을 바꿨다. 가능하면 제이크만 혼자서 참석을 하거나 함께 참석하더라도 입장 이후에는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즐기기로. 특히나 오늘은 선거를 앞두고 제이크의 등장만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고 중간에 단상에 올라 연설까지 할 예정이었으므로 로버트는 재빨리 혼자 구석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은 뒤 공짜술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안주는 잘생긴 남편이 여유롭고 능숙하게 내빈들을 상대하는 모습이었고,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로버트쪽을 확인하는 제이크가 윙크까지 날려주면 뿌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괜히 이쪽으로 시선이 쏠릴까봐 손을 휘이 젓고는 했다.
그러다 오늘은 하필 날파리가 하나 꼬였다. 로버트가 혼자 있더라도 그 누구도 건들지 않는게 세러신이 참석한 파티의 불문율인데 이 곳이 처음인 초짜이거나 간이 배밖으로 나온 용자인듯 했다. 로버트는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향해 적당한 예의를 갖춘 인사를 건낸 후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데 눈치없는 날파리는 로버트를 붙잡으려고 손까지 뻗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그 사이를 가르는 손이 있었다.
"베이비, 아무도 없으니까 심심하지? 대디가 놀아주러 왔어."
마치 로버트 옆에 서있는 남자는 보이지도 않는다는듯 제 배우자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의 손을 이끌어 제 품쪽으로 당기는 제이크였다. 살짝 자존심이 상한 남자는 이내 그가 세러신임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냈지만 돌아오는건 제이크의 건조한 미소와 전혀 웃고 있지 않는 형형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로버트의 어깨를 감싸고 발코니로 향했다. 문을 닫자 파티장의 소음은 사라졌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뜨겁게 몸을 붙였다. 로버트의 수트 자켓이 다 구겨지도록 힘껏 껴안은 제이크와 그의 어깨에 살포시 손만 얹은채로 격렬한 키스를 받아주는 로버트의 실루엣은 마치 한몸처럼 겹쳐졌다.
잠시동안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고 문 밖에서 제이크의 연설 차례가 다가왔다는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이크는 흐트러진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고 구겨진 자켓 탁탁 쳐낸 뒤 아무일 없던것처럼 발코니를 나섰지만 그의 손을 잡고 뒤따라 나오는 로버트는 흐트러진 넥타이와 반쯤 삐져나온 와이셔츠로 누가봐도 뭔일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모양새였다. 평소라면 로버트의 옷매무새 하나까지 직접 다 챙기는 다정한 남편 제이크였기에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모습이었다. 로버트도 그의 마음을 알아서, 그리고 그 이유마저 짐작이 가서 남편이 만들어놓은 모습 그대로 다시 구석으로 돌아가 단상 위의 남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렇게 가장 높고 빛나는 곳에 서있는 남자가 자신에게만 소유욕을 불태운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은근한 충족감마저 로버트를 감쌌다.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제이크의 연설이 끝났고 그와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뻗는 이들을 모두 물린 제이크는 비서에게 미리 부탁해둔 차가 도착하자마자 그 곳을 떠났다. 물론 로버트와 함께. 이 날 행사 내내 세러신부부가 함께 있는걸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행맨밥
파월풀먼
https://hygall.com/609071711
[Code: 0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