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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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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온은 압도 당한다는 감각을 이해하게 됐어. 오라이온도 분명 작은 덩치가 아닌데 그와 비교도 안되는 강인하고 거대한 동체와 공기를 짓누르는 위압감. 그런 존재가 제게 살의를 보이는 광경은 어린 메크의 스파크를 멈추기에 충분했음.


"말해."


메가트론의 음성에 분노 섞인 엔진음이 섞여들어갔음. 오라이온은 대답해야 한단 걸 알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오라이온이 대답하지 않자 붉은 옵틱이 점점 더 붉게 빛났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라이온은 바닥을 굴렀어. 자신이 캐논에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회로가 한박자 늦게 처리할 거임. 모든 게 느리게 동작했어. 시스템을 자가복구 시키느라 얼이 빠져있는 동안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의 목을 붙잡고 들어올렸음.


"누가 보냈어. 쿠인테슨? 아니면 또 그자식들이냐?!"


오라이온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음. 메가트론이 하는 말이 연산 처리가 안됨. 그저 생존본능 만이 남아 메가트론의 팔을 손으로 긁어댈 뿐이야. 메가트론은 전기신호가 강제로 차단되어 껌뻑껌뻑 넘어가는 어린 메크를 바라보며 엔진 과열로 인한 더운 공기를 뱉다가 결국 오라이온을 내던졌음.

겨우 풀려난 오라이온은 도망가야 한다는 것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며 정신 없이 앞으로 기어가다가 그게 의미 없는 행동이란 걸 깨달을 만큼 진정이 되고 나서야 오라이온은 뒤를 볼 수 있었어. 메가트론은 자신의 헤드를 양 손으로 쥐어싸매고 괴로워하고 있었음. 체내의 엔진 냉각을 돕기 위해 과호흡을 하며 분노를 다스리려 애썼어.

도망가려면 지금이 기회였지만 오라이온도 동체 전력이 거의 셧다운된 상태라 움직일 수가 없었을 거임. 멍하니 메가트론을 바라보던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의 복부 플레이트에서 에너존이 흘러내리는 걸 발견했음.


"다쳤어요?"
"닥쳐!"


불안정할 정도로 빨갛게 물든 옵틱이 오라이온을 노려봤음. 오라이온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지. 메가트론은 한참을 노려보더니 비틀대며 바위에 기대 주저앉았어. 오라이온은 거의 미친 것처럼 보이더니 이젠 또 급격하게 기운이 없어진 메가트론을 보며 슬슬 걱정이 공포를 이기기 시작할 거임. 오라이온은 동체의 전력이 복구되는 걸 기다렸다가 천천히 메가트론에게 다가갔음.


"괜찮아요?"


메가트론은 오라이온을 노려봤음. 당장 도망가고 싶을만큼 살벌했지만 적어도 아까처럼 물리적으로 공격적이진 않음. 진지하게 경계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건가. 오라이온은 눈치를 이리저리 보다가 메가트론의 옆에 앉아 부상을 살폈어. 자신은 의사가 아니지만 최근 의사의 어깨 너머로 구경을 좀 했더니 어느 정도 임시 처치는 할 수 있을 거란 근거없는 자신감이 올라옴.


"많이 다친 건 아니네요."


부상이 심각했다면 굉장히 곤란할 뻔 했는데 다행이지. 메가트론의 현재 상태는 부상보단 정신력 소모 쪽이 더 큰 모양임. 오라이온은 내부 슬롯에서 의료품을 꺼냈음. 이것도 광산에 드나들면서 상비하게 된 물품임. 메가트론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오라이온이 의료품을 늘어놓는 걸 가만히 바라봤음.


"의료봇이냐."
"아뇨. 이건 그냥.. 취미예요."


오라이온은 대충 얼버무렸음. 광산 이야기를 해봤자 좋을 게 없겠지. 메가트론은 오라이온의 치료가 몹시 어설프다는 걸 알아봤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음.



"이렇게 다친 상태로 이런 곳에서 뭘 한 거예요?"
"내가 할 말이다. 너같은 녀석이 여기서 뭘하는 거야."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의 눈치를 보다가 프라임의 구조신호가 들어있던 장치를 꺼냈음.


"놀다가 이런 걸 발견해서... 찾으러 왔어요."


메가트론은 장치를 건네받았음. 이런 게 있었나.. 메가트론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림.


"뭘 찾으러 왔는데."
"매트릭스요."


메가트론의 옵틱이 한순간 커졌음. 그러더니 지친 음성으로 웃기 시작했어.


"매트릭스를 찾고 있다고?"
"예예. 웃으세요. 한두번 듣는 것도 아니니까."


오라이온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음. 그후에도 메가트론이 큭큭대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지.


"그딴 거 찾으려고 목숨을 낭비하지마. 무기 하나 없이 도시 밖으로 나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딴 거라뇨? 그게 있으면 사이버트론을.."
"사이버트론은 내가 알아서 해."


메가트론이 이를 악 물고 말했음. 조금씩 풀려가던 분위기가 다시금 살벌해지자 오라이온은 동체가 굳었지.


"매트릭스 따윈 필요 없어. 사이버트론은 내가 구한다."
"그것도 괜찮지만.. 있어서 나쁠 건 없잖아요? 프라이머스가.."
"프라이머스는 우릴 버렸어!!"


증오에 찬 음성이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지. 오라이온은 놀라서 옵틱을 꿈뻑거렸음.


"프라이머스가 우릴 버릴 거라면 그냥 알트모드를 해제하고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
"......."


메가트론의 옵틱이 좁아졌음. 메가트론이 째려보는 동안 오라이온은 드디어 기념비적인 첫 치료를 끝냈지. 뿌듯하게 자랑하니 메가트론이 인상을 찌푸림.


"엉성해."
"당신 의료진이랑 비교하면 안되죠."
"뭐라는 거냐. 래비지한테 시켜도 이것보단 낫겠군."


오라이온은 래비지의 이름에 메모리 저편에서 악몽 같았던 그날의 기억이 스물스물 떠올랐음. 자신을 물고왔던 카세트 재규어. 재규어는 사족보행을 함. 사족보행을 하면 손을 못 씀. 사족보행을 하니까. 오라이온은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다소 빈정 상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 메가트론은 툴툴대는 오라이온을 가만히 바라봤음.

의료품을 정리하던 오라이온의 얼굴에 손이 닿았음. 오라이온은 손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지. 메가트론은 오라이온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왼쪽 뺨을 쓰다듬었음. 아까 메가트론이 캐논으로 때린 곳임. 아마 목의 부상도 제법 심하겠지. 메가트론은 아까 그렇게 미친듯이 날뛰던 메크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처를 어루만졌음.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을 살피는 동안 오라이온도 메가트론을 볼 수 있었지. 메가트론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 첫감상은, 젊다는 거였음. 덩치가 크고 항상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이렇게 보니 기껏해야 재즈랑 비슷한 나이로 보임.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만... 상상했던 거나 멀리서 봤던 이미지랑 달랐어.

냉혹하고 잔인하다는 사이버트론의 전쟁 군주. 그가 이런 연민어린 얼굴을 할 수 있단 걸 다른 메크들은 알기나 할까.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에게서 동정심을 발견하고 희망이 떠올랐음. 듣던 것보다 말이 통할 거 같아.


"사실 당신을 만나면 부탁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부드럽게 풀려있던 메가트론이 단박에 경계했지만 그래도 오라이온이 무슨 말 하는지 기다려는 줄 듯. 오라이온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지.


"광산의 코그,"
"메가트론!"


요란한 제트기 엔진소리와 함께 누군가 소리를 질렀어. 오라이온은 반사적으로 겁에 질려 동굴의 입구를 쳐다볼 거임. 오라이온은 이 목소리에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음.


"이럴 줄 알았어! 또 이런 곳에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동굴로 들어오던 스타스크림이 오라이온을 발견하고 멈춰섰지. 오라이온은 스타스크림의 시선이 제게 닿자 저도 모르게 메가트론의 팔을 붙잡았어. 스타스크림은 분명히 오라이온을 알아봤음.


"아는 사이인가?"


메가트론이 둘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물었음. 스타스크림은 오라이온을 매섭게 노려보며 느리게 말했어.


"아니요. 처음 보는 메크를 데리고 계시길래."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지. 오라이온은 점점 더 메가트론에게 붙었음. 메가트론은 그런 오라이온을 내려보다가 스타스크림에게 말했어.


"이녀석을 데려가서 치료해줘."
"네?"
"뭐요?!"


메가트론의 말에 오라이온과 스타스크림 둘 다 소리를 질렀음.


"전 당신을 데리러 온 거라구요! 부상 입은 거 치료도 안했죠?!"
"치료는 했어."
"뭔.. 장난해요? 그건 치료가 아니라 소꿉장난이지!"


오라이온은 조금 짜증이 났음. 메가트론은 스타스크림을 향해 손을 저을 뿐임.


"됐으니까 데려가. 난 조금 더 있다가 간다."
"로드!"
"가."


메가트론의 날선 말투에 스타스크림은 더 항의하지 못하고 혀를 찼음. 그리고 오라이온에게 의미심장한 손짓을 했어. 당장. 이리와. 오라이온은 알 수 있었지. 지금 저걸 따라가면 안 좋은 결말이 기다린다는 걸.


"안 갈래요.."


오라이온이 팔을 꼭 붙들자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을 느리게 밀어냈음.


"그만 고집부리고 돌아가. 도시 밖은 위험해."
"저는.. 당신이랑 같이 돌아갈래요. 당신이 지켜주시는 게 좋아요."


오라이온은 스타스크림을 경계하느라 메가트론의 옵틱이 커진 걸 보지 못했음. 메가트론은 오라이온을 밀어내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지.


"로드?"
"....내가 데려갈게. 가봐."


스타스크림은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을 바라보는 방식을 묘하게 쳐다봤음. 그리고 천천히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어.


스타스크림이 떠나고 나서야 오라이온은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지. 메가트론은 제 옆에서 안심하는 오라이온을 보며 스파크가 울렁거림을 느꼈음.


"내가 무섭지 않나."
"예?"


메가트론은 자신이 만든 상처를 보고 있었음. 죄책감. 미안함. 오라이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지. 굳이 따지자면 스타스크림이 더 무서운 것 뿐이지만.


"아픈 건 어때."
"아프긴 한데.. 괜찮아요. 이 정돈 자주 있던 일이니까."


오라이온이 머쓱하게 웃었음.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한 말인데 메가트론의 표정이 굳었지. 덩달아 오라이온의 표정도 멍해졌음.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상황파악이 안되던 와중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의 양 팔을 잡았음.


"누구야."
"누구요?"
"누가 널 때렸어."


붉은 옵틱이 또다시 불안정하게 빛나기 시작했음.


"관리자야? 코그드가 널 때렸어?"
"무슨.."
"그자식들을 한 놈도 남겨놔선 안됐는데..!"


메가트론은 분명 이곳에 있었지만 이곳에 있지 않았음. 오라이온은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어.


"아무한테도 안 맞았어요! 제 말은, 넘어지거나 해서 많이 다쳐봤다고요!"


오라이온이 외친 뒤에도 메가트론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음. 오라이온의 팔을 부숴버릴 듯이 쥐고 오라이온을 응시하더니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주 천천히 손을 놨지.

메가트론은 자신이 방금 저지른 짓을 봤어. 제 손 아래 구겨진 플레이트와 겁먹은 어린 메크. 메가트론은 정처없이 흔들리는 옵틱을 한손으로 덮은 채 고개를 숙였어.

오라이온은 팔이 아팠지만 제 앞에 고개 숙인 전쟁군주를 보며 고통을 티낼 수가 없을 거임. 어찌나 이토록 불안정한 메크인지. 살면서 단 한번도 평온함을 느껴본 적 없는 것처럼. 오라이온은 자신을 두번째로 공격한 메크를 향해 안타까움을 느꼈어. 주춤대며 손을 뻗은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을 감싸 안았음. 메가트론이 순간 몸을 떠는 게 느껴졌지만 오라이온을 거부하진 않았어.








그 후 오라이온은 메가트론,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타스크림과 함께 아이아콘으로 돌아왔음. 돌아오는 내내 메가트론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 오라이온이 몇번 시도를 하긴 했지만 메가트론은 대답하지 않았음.

일상으로 돌아온 오라이온은 스타스크림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내내 숙소에 숨어있었음.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불안감을 내려뒀지. 불안을 걷어내고 나자 떠오르는 건 메가트론임. 오라이온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음. 죽어가는 행성의 지도자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맙소사! 이게 무슨 꼴이냐!"


라쳇이 오라이온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악을 했음. 그렇게 심한가. 오라이온은 무의식 중에 왼쪽 뺨을 긁으려다 라쳇에게 손을 맞았음.


"손대지마! 여태 치료도 안 하고 뭐한 거야!"


오라이온은 어색하게 웃으며 라쳇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음. 스타스크림이 치료해줄테니 찾아오라고 했지만 안 갔음. 갈 리가 없지.


"너.. 이.. 누가 이랬어?"


상처를 봐주던 라쳇이 오라이온의 상처가 맞아서 생긴 거란 걸 알아차렸음. 오라이온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지.


"메가트론이요."


오라이온이 말한 이름에 라쳇의 화난 표정이 공포에 가까워졌음.


"별일 없었어요."


오라이온은 라쳇이 뭔가 묻기 전에 선수를 쳤음. 하지만 딱히 적절한 대처는 아니었음.


"이 꼴을 하고 별일이 없었다고?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놀랍게도 그건 사실임. 하려고 했던 대로 코그리스 얘기를 꺼냈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겠지만 운이 좋았지. 오라이온은 코그드에게 증오를 내비치던 메가트론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워졌음. 이제 코그드인 쪽은 우리인데. 센티넬을 죽이고 모든 코그드를 끌어내렸음에도 메가트론은 아직 그 시절에 갇혀있었음.


"그냥 우연히 만났는데 장소가 안 좋았을 뿐이에요. 걱정끼쳐서 미안해요 라쳇."


오라이온은 미소지었음. 라쳇은 그 차분함을 보며 이상한 위화감을 느낄 거임. 어린 애들은 빨리 큰다더니... 오라이온이 언제 저런 식으로 웃을 수 있는 메크가 되었지?







라쳇에게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오라이온은 제 숙소 앞에 그새 익숙해진 메크가 서있는 걸 보았음.


"드디어 오시는군."


스타스크림이 오라이온을 발견하곤 짜증스럽게 다가왔지. 그동안 숨어서 도망칠 준비를 잔뜩 해놨는데 왜 하필 오늘... 오라이온은 낭패스럽게 도주로를 찾았지만 스타스크림이 더 빨랐음. 순식간에 오라이온의 앞을 막아서곤 거만하게 보았지.


"분명 내가 찾아오라고 한 것 같은데."
"제가 그동안 너무 바빠서..."


오라이온이 궁색하게 변명하는 걸 같잖다는 듯 내려다 보던 스타스크림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음.


"됐다. 오늘만 날도 아니고. 지금은 네가 가야 할 데가 있어."


오라이온은 그게 어디냐고 묻고 싶었지만 스타스크림에게 오라이온의 의견 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았음. 스타스크림은 그저 오라이온을 붙잡고 어딘가로 끌고 갈 뿐임.




메가오라 메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