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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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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옆집남자랑 키스한 것까지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키스는 진짜 말도 안 되게 잘 함. 술기운에 정신 나간 짓 했다고 후회하지도 못할 만큼.






연애하다가 콩깍지 씌어서 기분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기술로 그렇게까지 좋았던 건 살면서 처음이었던 것 같음.

아무튼. 그 날 일은 피차 없던 셈 치기로 했음. 당연히 옆집남자 의사를 물어본 건 아님. 근데 그 날 일에 대해서는 나도, 옆집남자도 한 마디도 안 했으니까. 그러니까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만약 옆집남자가 나와 생각이 달랐으면 진작 말했을 거임. 그 날에 대해 말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잖아. 이미 언급했다시피 꽤 자주 마주치게 됐으니까.

그 일 있고 바로 역 앞에서 마주쳤을 땐 엄청 신경쓰였는데 금방 적응 되더라. 저 쪽이 아무 반응 없는데 내가 티나게 어색해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하긴. 아무 말 없이 집까지 같이 걸어가는 것도 이상하긴 함.

내가 의도적으로 옆집남자랑 아무 말 섞지 말아야지 생각한 건 아니거든? 처음엔, 그러니까 그 날 이후 처음 말이야.

그 때는 그 뒤로도 계속 역 앞에서 마주치게 될 줄 몰랐음. 어쩌다 우연히 가끔 일어날 일인 줄 알았지.

키스한 것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함? 역 근처에 웬 일이냐고?

옆집남자가 대답해줄 것 같음? 그냥, 어쩌다, 글쎄. 그런 대답이나 하겠지. 설마 내 마중이라도 나온 건... 그렇게 말할 리도 없고 그런 것도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단 말임.

그래서 그냥 눈 마주치고도 말 없이 몸 돌려서 집까지 걸었음. 옆집남자가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었으면 옆에 오기라도 했겠지.

그냥 내 뒤에서 걸어오다가 건물 도착하면 같은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서 집에 들어감. 딱히 멈추지도 않고 날 돌아보지도 않음.

그게 몇 번이나 계속 반복 될 줄 알았겠냐고.

결국 그냥 옆에서 걸으라고 할 때도, 그 뒤에 나란히 걷게 된 뒤에도 말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음. 옆집남자는 원래 인사치레같은 거 챙기는 인간이 아니고. 난 타이밍을 놓쳤음.

이미 여러 번 그렇게 걸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치자마자 인사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치만 인사를 안 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보다 그 정도면 옆집남자가 내 마중을 나오는 게 맞긴 하지 않나? 밤길에 걱정돼서? 내가 신경쓰여서?

근데 또 그렇다기엔 매일 오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정말 어쩌다 시간이 맞거나 우연히 근처에 온 김에 같이 가주는 것 같은 주기랄까.

하여튼 이런저런 고민만 하다 보면 이미 집에 도착해버리는 거임. 어느새 인사 한 마디 안 나누고 각자 집 문을 열게 되는 거야.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뭐가 잘못 됐는지도 모르겠고 뭘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지.

몇 주나 그 짓을 반복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 기회가 생기긴 했음.


“편의점.. 들러야 하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만들어낸 핑계기도 했고, 겸사겸사.

원래는 이제는 역 앞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해볼까 생각했음. 실패함. 쉽지 않음.

어쩔 수 없이 또 타이밍 놓치고 걸어가다가 편의점으로 이어지는 골목 근처에서 멈춰 섰음. 머뭇거리니까 옆집남자도 멈춰서 보길래 골목 쪽 가리키니까 돌아보더라.

그리고 골목 쪽으로 몸 돌림.

뭔 대답도 없으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같이 갈 것 같은 태세를 바로 취할 줄은 예상 못해서 오히려 내가 잠깐 고장남.

옆집남자가 왜 안 오냐는 듯이 돌아보고 나서야 급하게 걸었어.




“어서오세-에요.”

“...안녕하세요.”

근데 옆집남자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말이야. 생각해보니까 편의점에 오는 것도 그 날 이후 처음임.

그 때 직원한테.. 미묘한 광경을 들켰잖음? 여기는 직원이 이 사람 하나 밖에 없나? 역시나 그 사람이더라. 그걸 편의점에 들어가고 나서야 떠올린 나도 문제가 있다면 있지만.

편의점 직원은 역시나 미묘한 문장으로 인사하더니 티나게 어색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렸음.

당사자인 옆집남자는 여태 태연하기만 한데. 왜 편의점 직원이 어색해 하고 난리임? 지가 나랑 키스함? 뭔데 어색하고 뻣뻣하게 사람 눈을 피하냐고.

덩달아 나도 머쓱해져서 얼른 안 쪽으로 들어감.

비상식량 냉동피자랑, 물 두 병 챙기고.. 탐폰도 사둬야 하는데. 옆집남자랑 같이 안 오는 날이라고 해도 이 편의점에서 사는 건 좀 그럼. 퇴근하고 회사 근처에서 사야겠음.

또 뭐 떨어졌더라. 우선 이 정도만 사두면 되나.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니까 옆집남자는 담배 살 건지 카운터에 두고 서있더라.


“물 떨어졌어?”

“한 병 남았어요.”

“그럼 더 사.”

“다음에 또 오다가다 사면 돼요.”



담배랑 멀찍이 떨어진 데에 물이랑 냉동피자 올려두고 보니까 옆집남자가 다쳤던 손 들어서 보여줌.


“많이 사 둬. 이제 양손 쓸 수 있는데.”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붕대도 풀었길래 궁금하긴 했는데. 아직 상처로 보이긴 하지만 다 아물었나 보더라.

담배를 그렇게 피우는데 그 정도면, 안 피웠으면 얼마나 빨리 낫는다는 거임?

아니지. 그보다 왜 당연히 내 짐을 본인이 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거랑 내가 물 사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술취하고 다친 짐꾼보다 안 취하고 멀쩡한 짐꾼이 낫잖아.”

“안 들어줘도 돼요.”

“들어줄게.”



왜 이렇게 옆집남자랑 대화가 좀만 길어지면 바로 대답을 못 하게 되지. 내가 문제임, 옆집남자가 문제임?

난 옆집남자한테도 꽤 문제가 있다고 봄. 자꾸 할 말이 없게 만들잖아. 얼굴은 표정 변화도 없으면서.



“.. ...왜요?”

“쉬운 일이니까.”

“나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내가 더 쉽잖아.”



그래. 큰 일도 아니고 까짓 물 좀 들어주는 건데 뭐. 이런 걸로 길게 실랑이 하는 것도 이상하지.


“..그럼 한 병만 더 살게요.”

“더 사도 되는데.”

“어차피 평일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충분해요.”

“내가 빌리러 갈 지도 모르잖아.”

“빌리러 오지 마요.”

“그럼 나한테 빌리러 와.”

“물 많아요?”



물 한 병 새로 가져다 카운터 위에 두고 올려다 봤는데, 어째 옆집남자 눈이 가늘어짐. 입꼬리도 슬금슬금 올라가는 모양이 영...



“집에 물 많이 놓냐는 ㄱ, 또 성희롱 할 생각 하지 마요.”

“아무 말 안 했는데.”

“표정이 그럴 것 같았어.”

“아무 생각 없었는데?“

”걸핏하면.. 어? 담배랑 따로 계산이에요.“


여기 직원 진짜 이상함. 자연스럽게 옆집남자 담배랑 내 물건이랑 같이 찍는 거임? 따로 계산이라니까 멈칫하더니 옆집남자 올려다 봄.

아니 날 보라고. 내가 말했잖아. 내 물건이라니까?

옆집남자가 짧게 턱짓하니까 그냥 마저 찍음. 내 말은 안 들리는 거임? 심지어 다 찍고 고개 들더니.



”콘돔은 더 안 사가세요?“

”그것 좀 그ㅁ, 콘돔 얘기 좀 그만해요.“

표정은 맹해갖고 또 그러고 앉았음.

이번엔 내 말이 들리긴 했나보더라.


”어.. 저는 그냥 떨어졌을 것 같아서..“

”안 써요. 안 쓴다고요.“

”..안 쓰세요?“

잠깐만. 이게 왜 또 이렇게 됨? 바로 말 못 잇고 버벅거리니까 옆에서 코웃음 치는 소리 들림.

왜 해명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냐고.


“그게 아니라, 쓸 일이 없다고요.”

“쓸 일이....”

“아니. 애초에 그런 사이가 아니라니까? 쓸 필요가 없, 아니. 써야 하는 그런 일이 안 벌어진다고요.“

”...하여튼 안 사신다는 거죠.“

”아니, 그게. 아니...!“

”사신다구요..?“

”안 사요!!“




아씨. 아무래도 이번에도 해명 실패한 것 같지? 하긴 이미 그러고 있던 것도 들켰는데 뭐라고 해명을 함.

그건 그냥 그 날 하루 벌어진 일이라고? 그걸 왜 편의점 직원한테 해명해.

옆집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카드나 받아 챙기고 있더라.



”그 쪽도 뭐라고 해명을 좀 해요.“

”뭐라고.“

”콘돔 쓸 일 없다고요.“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편의점 직원한테는 안 들릴 것도 아니고. 이게 의미가 있나? 그래도 옆집남자가 같이 해명하는 거랑 나만 해명하는 건 다를 거 아니야.


”안 쓴대.“

”옙..“


이따위로 해명하는 건 말고. 편의점 직원은 쓸데없이 꼬박 대답은 잘 함.


”아니,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걸 해명해야 할 거 아니에요.”

“아무 사이 아니야?“

뭐야. 잠깐만. 옆집남자 대답은 또 왜 저렇게 나와? 표정만 보면 정작 옆집남자는 진짜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벙쪘다가 급하게 정신차림.



”그럼 ㅁ, 무슨 사인데?”

”이웃 주민?”

이것 봐. 결국 맥없이 별 의미도 없는 말이나 할 거면서. 하여튼 해명이 되긴 했네.


“..들었죠? 그냥 이웃 주민이에요.”

편의점 직원은 내 물건들이랑 옆집남자 담배랑 그새 한 봉투에 다 담았더라. 기껏 해명다운 해명이었는데 카운터 위에 있는 봉투나 슥 밀어줌.


“저기, 죄송한데 사랑싸움은 밖에 나가서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아니라니까!?”



답답해 미치겠는데 내가 봐도 돌이킬 수가 없음. 골목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를 다 봤는데 이런 말을 믿겠냐고.

그냥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봉투에 손 뻗는데 옆집남자가 먼저 채감.

그리고 맨날 태연한 그 얼굴로 그러는 거야.


“그만 나가자. 화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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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콘돔 쓸게.“


그러더니 선심 쓰듯이 살짝 웃는 척 하고는 혼자 편의점 나가버림. 편의점 직원은 뭘 납득했는지 고개 끄덕이고 있음.

거기서 무슨 말을 더 함? 그냥 얼굴 가리고 나감.

옆집남자는 그새 담배랑 라이터 꺼내고 있더라. 그래도 오늘은 편의점 안에서는 참았나 봐. 가 아니지. 왜 굳이 오해 살 말을 뱉고 나오는 거야.



“···악화 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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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랑 콘돔 쓸 계획 있어? 쟤 보기보다 어린데.“

”뭔 소리야.“


아. 뭔 소리야는 생각만 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뱉었다. 어차피 옆집남자는 손으로 담배 가리고 불 붙이느라 내 말은 신경도 안 씀.

담배 불 붙이는 동안에라도 짐 들어줄까 하고 다가갔더니 그새 불 붙이고 고개 들더라.



”그럴 계획 없으면 쟤가 뭐라고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 그래도.. 여자는 그런 소문 나서 별로 좋을 게 없다고요. 더러운 소문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고. 바로 이사 갈 것도 아닌데 동네에 이상한 소문나서 쫓겨나듯이 나가게 되면 어쩔 건데요.“

”그럴 일 없어.“

”어떻게 알아.“

“소문 나는 게 안전할 수도 있는 거고.”




이건 진짜 뭔 소리냐. 물어보려고 했는데 옆집남자는 걸어가기 시작함.

바로 따라갔는데 한 쪽은 담배 들고 한 쪽은 짐 들어서 어느 쪽에 서야 할지 애매했음. 따라 걸어가면서 말하려면 조금이라도 가까운 게 나을 것 같아서 담배 쪽에 서는 걸 택함.


“그런 게 어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글쎄.“

“잠깐만. 그게 대체 앗,”

“응?”

“뜨..”

걷는 속도가 빨라서 정신없이 따라가다가 손에 담배 닿음. 잠깐이었는데 뜨겁더라.

담뱃불이 그렇게 뜨거운 줄 몰랐음.


“데었어?“

멈추고 손 부여잡으니까 옆집남자도 걸음 멈춤. 담배는 입에 물더니 그 손으로 내 손 들고 보더라. 이럴 때 보면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괜찮아요. 잠깐 닿은 거라.”

“떨어져서 걸어.”



..듣다 보면 나쁜 사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손에 별 상처 없는 것 같으니까 바로 놓고 고개 듦. 입에 있던 담배도 다시 손으로 옮겨감. 그래서 나도 한 두어 걸음 정도 떨어졌음.

딱히 가까이에서 걸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잖아? 떨어져서 걸으란 말에 내심 빈정 상해서 그런 건 아님. 아니라니까?

결국 집 앞에는 금방 도착했음.

문 앞에 서서 내가 산 물건들 받으려고 손 내밀었는데 옆집남자는 가만히 서있기만 함. 어쩌자는 건데. 이러다 이거 또 집에 들이게 되는 루트 아님?


“주고 들어가요.”

”배달은 끝까지 해야지.“

”그냥 여기서 줘요.“

”안 잡아 먹을 테니까 문 열어.“

”안 잡아 먹어도 내 집에 사람을 들이고 말고는 내 마음이에요.“

문 안 열고 버티고 서서 손만 내미니까 슬슬 웃는 것 같더니 결국 주긴 주더라.

들고 서서 지켜보니까 보란듯이 품에서 열쇠 꺼내서 내 앞에 보여주고 본인 집으로 들어감.

그제서야 나도 문 열고 집으로 들어갔음. 옆집남자가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혹시나 다시 나오지는 않는지 주변도 잘 살폈음. 재빠르게 문 닫은 다음 문단속도 잘 해둠.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겉옷만 벗어둔 다음 식탁으로 감. 사온 것들 올려두고 꺼내서 정리 할 생각이었는데... 담배 나옴.

...?

맞아. 옆집남자가 먼저 산 담배까지 편의점 직원이 한 군데 다 담았었지. 담배 튀어나올 때까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음.

아씨, 그렇게 경계하고 깔끔하게 각자 집으로 잘 돌아갔다 했더니. 이거 언제 주지? 지금 바로? 다음에 마주쳤을 때? 아니면 또 옆집 문고리에 올려놔? 그러게 왜 본인 물건이랑 내 것까지 같이 계산해서는.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데 또 뭘 고마워하냐고 할까 봐 고맙단 말도 안 했더니, 빈 손으로 담배만 가져다 줘도 되나?

하여간 담배는 역시 백해무익임. 이거 하나가 깔끔하게 정리됐던 내 머릿속을 다시 어지르고 있잖아.

근데 진짜 어쩌지. 그냥 지금 바로 나가서 줌? 아니면 차라리 아예 모른 척? 옆집남자도 본인 담배가 여기 있다는 거 알 텐데.

그보다 여기 계속 두면 내 눈에 자꾸 띌 거 아니야. 자꾸 눈에 띄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 보면 신경쓰이잖아.

그럼 버려? 남의 물건을?


“하...”



그 잠깐 사이에 진짜 머리 빠지게 고민하다가 결국 집어 들었음. 고마웠다고 말로만 하는 것도 이상한데, 답례품으로 줄 만한 것도 없고. 간식이나 음식이라도 주면 마음이 편해지겠는데 옆집남자는 또 안 먹는다고 하겠지.

됐어. 고맙다는 말도 하지 말라는데 뭘 고민해? 이거 놓고 갔다는 말만 하고 주면 되는 거 아님?

기껏 열심히 단속해둔 문 열고 나감.

이 건물은 무슨 그 흔한 초인종도 없어. 초인종이 있다고 뭐 달라질 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옆집 문 두어 번 두드리고 기다렸음. 슬슬 기척이 느껴질 법도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조용한 거임?

못 들었나 해서 몇번 더 두드렸는데도 안 나옴. 아까까지 건장하기만 하던 몸이 집 안에서 쓰러진 건 아닐 거 아니야.

방에 들어가서 통화라도 하나. 담배는 어쩌지. 그냥 문 앞에 놓고 들어가버릴까. 아니면 그냥... 복도 난간 밖으로 던져버릴까.

담배 든 채로 복도 난간에 기대 서서 담배갑이나 이리저리 관찰해봤는데 무슨 담배인지 그런 건 모르겠더라. 내가 담배를 안 피워서 이름도 익숙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버려도 되는데 왠지 기분이 복잡해져서 뒤로 돌았음.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난간에 팔 대고 서서 밤하늘 보는 것도.. 처음이네.

나도 여기 나와서 이 동네 밤하늘이나 보면서 담배나 피워볼까. 이 참에 옆집남자거 훔쳐서 배워봐? 담배 피우면 진짜 기분이 안정되고 그러나.

충동적으로 시도해보고 싶어지긴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라이터가 없음. 포기하기로 함. 담배 배우면 냄새 빼기 어렵겠지. 옆집남자 옷에서는 맨날 담배 냄새 나니까. 하물며 키스도 담배맛이었, 아니. 그 생각은 그만 해야지.

그만 하는 김에 이 담배도 버리지 뭐. 없으면 또 사겠지.

난간 밖에 던져버릴까,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릴까. 구겨서 난간 밖에 버릴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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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내 것 같은데.“



돌아보니까 옆집남자가 평소처럼 상의 벗은 채로 나왔더라. 몸도 머리도 물기가 보이는 거 보니까 씻고 있었나봄.



“주려고 가져왔잖아요.”

“버리려던 게 아니고?”

그새 자세히도 봤네. 아직 어떻게 버릴까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안 나오길래 바쁜가 해서 갖고 들어갔다가 다음에 줄까 했어요.”

아닌 척 하고 머쓱하게 담배 내밀었는데 안 받음.

올려다 보니까 본인 집 문이나 더 열고 비켜섬.


”들어와.“

”...왜요?“

“좋은 말씀 전하러.“

”그것 좀 그만 놀려요. 그건 그냥, 내가 옆집 사는지 모를 줄 알고.. 그러고 보니까 어떻게 알았어요? 집에 들어가면서 마주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보통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알지 않아?“



저렇게 말하면 전혀 몰랐던 난 뭐가 됨? 하긴 내가 워낙 출퇴근만 하느라 피곤에 절어 있긴 했음. 주말엔 가끔 뭐 사러 갔다 오는 거 외에는 거의 집에만 처박혀 있었고.

옆집남자는 내 얼굴을 알았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지.



”아무튼 안 들어가요.“

”아쉽네.“

표정으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하나도 안 아쉬우면서 말은.

가만 보면 옆집남자는 그냥 내가 무서워하거나 당황하는 게 웃겨서 저러나 싶기도 함. 가끔 이상하게 잘해주는 건...


”혹시 요즘에 가끔 역에 오는 거, 나 데리러 와요?“

지금 이걸 내가 왜 물어봤지. 충동적이었던 것 같음. 근데 이미 뱉은 걸 어캄.

조용히 있으니까 옆집남자가 열어둔 문에 살짝 기대 서더라.


“응.“


그리고 그냥 맥없이 그렇게 대답함.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러는지도 아니고 그냥 그게 다였음. 내가 무슨 이 집에 사는 거냐고 묻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가벼운 대답이었어.

난 물어보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 질문이었는데.



”... ..왜?“

”아직 위험해서.“

”원래.. 그래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글쎄. 필요하면?“


뭐가 이렇게 싱겁냐. 언제는 도와달라고도 하지 말라더니. 위험하면 데리러 오는 정도는 아무나 해준다고?

내가 그렇게 옆집남자한테 특별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음. 근데 아무리 그래도 단지 그런 이유로 날 데리러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단 말이지.

밤길이 걱정 될 만큼은 관심이 있다든가. 관심은 없어도 신경은 쓰인다든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편의점도 같이 가주고, 사주고, 짐도 들어주고?”

“별 거 아니잖아.”

하다못해 내가, 날 데리러 오는 게, 나랑 걷는 시간이 별 것도 아닌 정도는 아니어야 할 거 아니야.


“나말고 누가 또 이 동네에 이사라도 오면 동네 투어도 시켜주겠네요.”

“이 동네 뭐 볼 게 있다고.“

”손 붙들고 펍 정도는 데려가줄 거 아니야.“


정확히 그 타이밍에 옆집남자 입꼬리가 올라갔음. 내가 왜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겠지.

약아빠져서 얄미운 그 얼굴 말이야.


”이 동네에 다른 외지인은 당분간 없을 것 같은데.“

”만약 생기면. 같이 골목도 들어가요?“



그 얼굴에서 눈가도 가늘어짐.

옆집남자는 몰라도 내가 그 날 일을 못 잊었다는 건 이걸로 확실해진 거지. 그것도 당사자 앞에서 확인해준 거나 마찬가지잖아.

근데 난 못 잊은 게 맞음. 애써 아닌 척 하긴 했는데 사실 어케 잊음? 불과 며칠 전에도 갑자기 떠올라서 밤새 뒤척이다가 얼마 자지도 못하고 출근해야 했다고.

옆집남자는 너무 태연하니까 나도 아닌 척 했을 뿐이지.

그랬는데...


“별 일 아니잖아.”

“...”

“이웃 주민끼리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역시 괜히 말했음. 저 쪽은 대답만 가벼운 게 아니라 내 말 자체를 가볍게 여기잖아. 아니 옆집남자한테는 내 말이 아니라 내 존재부터 별 것도 아닌 거잖아.

난 그런 취급 당하는데도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쥐고 있던 담배만 내밀었음.

옆집남자도 그제서야 손 내밀더라. 아무리 봐도 내 표정이 집안까지 따라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나 봄.

그래서 그 손 위에 담배갑 든 채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세게 구겼음.

꾹꾹 구겨서 확인사살까지 한 다음에 뒤 쪽으로 던졌으니까 아마 복도 난간을 넘어갔겠지. 건물 밖 어딘가에 떨어졌을 거임.

담뱃불이 아무리 위험해도 불도 안 붙어있는 걸 구겨버리면 그냥 쓰레기지. 별 수 있음?

옆집남자도 뭐 그러려니 하겠지. 그렇게 어떤 것도 별 일 아니시라는데 새 담배 하나 버린 게 뭐 별 일이겠음?

그래도 굳이 지체해서 나한테 좋을 건 없으니까 바로 몸 돌려서 내 집 문부터 열었음. 채 열리기도 전에 닫힘.

문에 눌린 손 뻔히 보여도 안 돌아보고 문고리에 힘 줘봄. 안 열림. 될 리가 없음.

포기하고 돌아섰음. 그래. 욕을 하든 쥐어패든 마음대로 해라. 그럼 차라리 아예 멀어질 수 있잖아. 신경 끌 수 있게 되는 거잖음?

최소 빈정거릴 말 정도는 들을 거 감수하고 올려다 봤는데 정작 옆집남자는 웃는 얼굴이더라.

사람 신경 긁는 소리 할 때보다 약간 더 웃고 있는 표정이었음. 그 표정 그대로 내 집 문에서 손 떼고 물러남.

딱히 거리가 멀어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 눈 앞이 맨몸에 가려질 정도는 아니게 됨.


“다른 외지인한테 그런 짓 안 해.“

”....“

”좋은 말씀 들으러 집에 들이지도 않고, 위험하다고 데리러 가지도 않고, 물건을 들어주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게 두지도 않고, 또 뭐였더라. 아. 골목에 들어가지도 않고.“



저 표정, 저 말투. 가벼운 내용. 난 저게 뭔지 이미 알고 있음.

다음에 오늘 일을 물어보면 또 그래서, 그게 뭐? 하고 말 거라는 것도 앎.


“손 잡고 펍에 데려가지도 않아.“

아는데.. 이젠 붕대만큼의 가림막도 없는 손이 느리게 내 손가락으로 파고들어도 내버려뒀음. 뿌리치지도 않고 가만히 올려다 보기만 했어.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한 마디만 하면 금세 인정하고 웃어넘겨버릴 말들인 걸 알면서.

알아서 아무 말 안 했음.

그 말을 해버리면 이 손을 놔야 하잖아. 웃음기 묻은 입꼬리가 다가오는 걸 피해야 하잖아.

술기운 없이 닿는 입술의 온전한 감촉을. 부드럽게 얽히는 혀를 밀어내야 하잖아..?

이 멍청하고 위험하고 달콤한 짓을 거부할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대로 집 앞에서 한참이나 숨을 내어주고 옆집남자가 물러난 다음.


“내일도 데리러 갈게.”


옆집남자가 조그맣게 귓가에 속삭이고, 나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손까지 놓을 때까지. 그 뒤에 옆집남자가 본인 집으로 사라진 다음에도 난 계속 그 앞에 서있었음.

내 집 문에 기대서 담배가 날아갔을 난간 밖만 보고 있었어.

코 끝이 얼고 손이 시렵다 못해 굳을 때까지도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음.

아마 난 내일 하루종일 일에 집중도 못 하겠지. 또 역에서 나오자마자 주변부터 두리번거릴 거고. 그러다 어둠 속에서 담뱃불을 발견하면 심장이 뛰기 시작할 거임.

담뱃불에 데어 놓고도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쓸 거라고.

내가 손에 힘을 실었을 때, 속절없이 구겨진 건 담배가 아니라 나였던 거지.

끝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도 내 몫일 거야.


그리고 그렇게... 옆집남자는 내 생에 최악의 짝사랑이 되겠지.
















🚬맥카이너붕붕💔


https://hygall.com/609510419 <이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