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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는 지금 깊은 고민에 빠졌다. 10년이 넘은 소꿉친구이자 올해 여름부터는 남자친구로 레벨업이 된 제이크의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서프라이즈 이벤트같은건 준비할 생각도 못했다. 눈치빠른 제이크와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는 로버트 조합이라면 로버트가 머리속으로 뭔가를 구상하자마자 들키고 말것이다. 문제는 단순했다.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 어릴때부터 제이크의 생일은 그저 제이크집에 놀러가서 맛있는거나 실컷 먹는 날이었다. 선물을 줘야하는지도 몰랐다. 둘 사이에 선물이란건 특별한 날도 아닌 아무날 아무때에 제이크가 불쑥 로버트에게 내미는 것이었고, 로버트는 "생일이니까 오늘은 볼 꼬집어도 뭐라고 안할게."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연인으로 맞이하는 첫 생일에 지금껏 받기만 했던 로버트도 그럴싸한 선물을 챙겨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떠오르는대로 선물후보 리스트를 줄줄 적어내렸고 제이크에게 필요가 없거나 이미 갖고 있는 물품은 제외하기 위해 생일 당사자에게 직접 목록을 검사받는 중이었다. 참으로 무드도 낭만도 없지만 그게 로버트다웠고 자기를 위해서 동그란 머리를 굴려 A4용지 절반을 채울 정도로 선물을 고민했다는게 마냥 좋은 제이크였다. 하지만 로버트의 입에서 나오는 물건마다 이미 제이크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게 문제였다.



"으으.. 이건 내 예산 최대치인데.. 헤드셋!"

"두 개 있어. 아빠가 어떤 색을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두 개 다 사주셨거든. 너 하나 줄게."



생일선물 정하는 자리에서 또 선물을 받게 생긴 로버트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 로버트가 말하는 것마다 절반 이상은 부모님이 사주셨고 나머지 절반은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제이크가 사버려서 로버트가 야심차게 준비한 생일선물 리스트에는 모조리 빨간줄이 죽죽 그어져버렸다. 쓸데없는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린 선물후보 리스트를 붙잡고 울상이 된 로버트지만 가진게 너무 많은 남자친구에게 지금 너 잘났다고 자랑하냐고 따져물을 수도 없었다. 제이크는 실제로 잘났고 자랑하는게 아니라 로버트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사실만을 대답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로버트는 순수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그럼 너 지금까지 부모님한테 받아던거 중에 제일 좋았던게 뭐야?"



이 부잣집 도련님의 선물 클라스가 궁금해졌다. 18살이 몰기엔 과도하게 섹시한 스포츠카? 아니면 크기는 1000분의 1도 안되지만 가격은 얼추 비슷하게 나갈 손목시계? 아니면 저 모르게 벌써 요트나 별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로버트는 군침을 꼴깍하고 삼켰다. 맹세코 제이크의 돈을 보고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삼 제 애인이 부자인걸 실감할 때마다 신기했고, 제이크의 입이 자신만만하게 열리는 걸 보고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이 나올까 긴장되었다.



"역시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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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겠지."




로버트는 허탈함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게 잘난 얼굴이 아니었다면 이미 오만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저 입에다가 매서운 동구라미 주먹맛을 보여줬을텐데 잘생긴 얼굴 다치면 안되니까 참는 자신만 보더라도 제이크는 정말 잘생겼다. '그래 너 그렇게 낳아주신 부모님한테 진짜 감사하며 살아라' 로버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일선물 정하는게 그렇게 골머리를 앓을 일이야? 난 그냥 딱 하나면 되는데."

"뭔데?"



그런게 있었으면 이 난리를 피우기전에 진작 말했어야지 하는 얼굴로 로버트가 눈을 빛내며 제이크의 다음 말만 기다렸다. 그걸 본 제이크의 얼굴에 볼우물이 옴폭 패이도록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저 얼굴은 뭔가 아주 낯가지러운 소리를 하기 전에 나오는 표정인데 싶어서 로버트는 살짝 고개를 뒤로 물렸다. 



"네 마음."



난 그거면 되는데. 역시나 로버트의 예상이 빗겨나가지 않았다. 제이크의 대답을 들은 로버트는 몸서리를 치는가 싶더니 이내 입꼬리가 추욱 쳐지며 "그럼 더 곤란한데.."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번엔 제이크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무드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는 제이크의 귀여운 남자친구는 '야 그런 추상적인거 말고 상품! 재화를 말하라고!' 하면서 산통을 깨버릴 수도 있고 더 문제는 '설마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는거야? 그건 좀..'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제이크의 마음에 비수를 꽂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보기에는 동그랗지만 제법 강하고 단단하고 맵고 질긴 로버트는 제이크를 남자친구로 레벨업 시키기 전까지 꽤나 많이 울렸던 전적이 있었다. 자기가 던진 말에 스스로 상처받기 싫은 제이크는 뒤늦게 수습해보려 했지만 로버트가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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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이미 너한테 다 줘버렸는데 어떻게 또 주냐?"




로버트 너어...! 그 말을 뱉은 로버트의 얼굴도 빨개지고, 그 말을 들은 제이크의 얼굴은 더 빨개져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하면서도 수줍은 눈빛만 오고 갔다. 제이크는 감격한 듯 떨리는 손을 로버트에게 뻗으며 생각했다. '키스각이다!'

 

"로버트, 밥, 베이비.. 너 정말..."

"얘들아, 간식먹으렴."



노크도 없이 로버트의 방문이 벌컥 열렸고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의 고개가 문쪽으로 돌아갔다. 쟁반을 든 채 가만히 서있던 미세스 플로이드는 빨개진 두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상황을 다 눈치챘다는 듯이 제 아들에게 한 번, 그 맞은편 아들의 남친에게 또 한 번 윙크를 했다.



"미안, 미안. 이제 너희가 사귀는 사이란걸 계속 까먹네. 앞으로는 꼭 노크부터 할게. 아니 2층엔 올라오지도 않을테니 엄마 눈치보지말고 하던거 마저해."



미세스 플로이드가 말하는 하던거란게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진보적인 발언을 한 후 아이들이 변명할 틈도 주지 않은채 방을 나가버렸다. 졸지에 부모님도 있는 집안에서 엄한 짓을 하려던 사람이 되버린 제이크와 로버트는 뻘쭘한 분위기에 남겨졌다.



"아주머니 단단히 오해하셨네. 어떡하냐, 아저씨 귀에라도 들어가면.."

"제이크."

"응?"

"..어차피 오해를 하신거라면 오해가 아니게 만드는게 어때?"



그렇다. 로버트는 분명히 어머니의 성향을 닮았을 것이다. 오늘 몇번이나 제이크의 심장을 강타해버리는 로버트에 제이크는 머리가 아찔해질 지경이었지만 기회를 놓치는 법은 없다. 이번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채 로버트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고 곧 살짝 황홀할만큼 말랑한 촉감이 제이크의 입술을 덮었다. 완벽한 생일선물이었다.









생일기념ㅅㅈㅈㅇ
파월풀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