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당하는 게 보고싶네

G1베이스 캐해로…
텔레파시라니 참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배척당할만도 함. 사웨가 기회주의자로서 승진을 위해선 블랙메일링 거리낌없이 한 이유도 본래 자기 편은 아무데도 없다는 걸 알아서였음 좋겠다. 디셉티콘이 된 이유도 메가카에게 충성한 것도 오로지 그가 가진 사상 자체의 순수함과 강함을 알아서였을 뿐 다른 기대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어떤 인정도 쉽게 바라지 않았을 거 같음.

종전되고 전범재판이 열렸을 때에도 사웨에게는 실각이랄 것도 기회랄것도 딱히 없었겠지.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된 이상 그에겐 더 이상 중요한 게 없어졌을 거야.
카세트 이젝트 버튼이 박살나고, 뒤집을 수 없는 수세에 몰렸던 어느 전투에서 셧다운된 채로 기억이 끊어졌는데, 완전히 고장나기 직전에 문득문득 깨워지다 다시 셧다운당하기를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웬 외딴 행성에서 눈을 떴을 뿐. 그런 사웨에게 행정집행관 역할의 메크들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겠지


- 사운드웨이브, 원활한 재판의 진행을 위해 당신을 여기 구금토록 한다. 이건 임시 처분이다. 항변의 시간이 왔을 때 상부의 명령을 통해 다시 이 곳에 오겠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메크의 머리속에서 들려오는 생각을 통해 사운드웨이브는 사실을 가감없이 알아낼 수 있었겠지. 이 구금에 기한은 없고, 저 메크의 상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권력 싸움을 거쳐 수십 번 바뀔 것이며, 재판은 어쩌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미뤄질 수 있겠다는 사실을.

오토봇인지 디셉티콘인지 아니면 제3의 세력인지 의미가 없어져버린 우주선들이 속속이 행성을 떠나고 사웨는 자기가 이곳에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이해해 나가겠지. 대기가 없어 아무 소리도 옮겨지지 않고 텔레파시를 들을 대상도 없는 곳. 사이버트로니안은 물론 다른 어떤 살아있는 문명의 손길조차 닿은 적 없고 이 위를 지나가는 항로조차도 없는 아주 먼 우주의 행성 위에 그만이 홀로 남게 된 거야.

삭풍처럼 몰아치는 항성풍에 무심한 오로라만 번쩍이는 하늘 아래 좀 오래 서 있다가, 그냥 어느 순간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운드웨이브가 보고 싶음……….

뇌리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디셉티콘의 강령도, 총성도 전전긍긍해야 할 이유도 심지어 그의 카세티콘들조차도 사라지고… 그게 평화롭다고 생각할까? 적적하다고 생각할까? 그냥 그런 거 따질 이유도 쓸모도 없이 생전 처음 겪는 고요함에 그냥 몇천 년이고 가만히 있어 보는 사웨가 보고싶다구… 마침내 에너존이 말라버려 더 이상 아무 회로도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ㅠㅠㅠㅠㅠㅠㅠㅠ



몇천 년, 몇만 년 어쩌면 몇십만 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는 어느 나날, 행성을 부술 기세로 착륙한 누군가에 의해 이 죽음같은 평화가 산산조각나겠지.


-일어나.

-….

-널 위한 재판이 열릴 거다. 마침내.


창백한 푸른 바이저 너머로 타오르는 분노 외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보이는 재즈의 얼굴을 보면서 사운드웨이브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에게 더 이상 생각이란 게 남아 있었을까?

전쟁의 망령이 공평한 거라면… 디셉티콘의 악몽은 마지막 남은 제대로 된 디셉티콘을 단죄하기 위해 우주를 갈라가며 여기까지 온 걸지도 모르지. 근데 그게 단죄인지 구원인지 뭘 하고 싶은 건지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누구도 모르게 되어버린 게 보고싶음.


종전이 된 이후 누구를 위하는지 모를 재판이 끊임없이 열리고, 결국 권력을 잡은 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순식간에 영웅이 전범이 되고 전범이 영웅이 되었겠지. 그리고 또다시 이름만 바뀐 내전이 터지게 되고… 오토봇의 명예는 너무나 손쉽게 세치 혀로 더럽혀지고 말았을 거야. 와중엔 신념을 굽힌 자도 있었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디셉티콘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짓을 한 자들도 생길테고. 그 와중에 재즈는 끝의 끝까지 살아남았고, 결국 도달한 결론이란 게 잊혀진 채 유보된 사웨의 재판이었음 좋겠다.

옵티머스 프라임을 위해 동료들을 위해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바로세우기 위해 그를 데리러 온 건데. 그런데 그렇게 생지옥이 되어버린 사이버트론에서 출발해 돌아가는 동안, 재즈가 사운드웨이브의 회로에 접속해서 발견한 게 사웨의 옛날 기억들이면… 어떡하지…?
그리고 그 기억과 경험이 재즈가 알았던 그 때의… 그리고 지금의 텅 빈 메크를 만들었다는 걸 이해해 버리먼 어떡하지…………..?


아무도 예전같지 않은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예전같은 게 이런 망가져버린 메크인데, 근데 거슬러 올라다가 보면 걔를 변호해야 할지 구축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면 재즈는 도대체 어떻게 할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오토봇이 뭔지 디셉티콘이 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다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그 순간까지만이라도 얘를 살려놓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하는 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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