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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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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잠결이라 확실하진 않았지만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보드라운 손길이 머리카락을 사르르 스쳐지나갈 때, 누군지 알고 싶어 그 감각에 집중하고 싶었으나 안정제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매버릭을 생각했다.



"…돌아올거지? 나 기다리는 거 잘 못해. 너도 알잖아."



익숙한 목소리가 스치자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이미 매버릭이 출근한 뒤였다. 그 대신 온 론이란 사내는 나를 보며 아주 크고 시끄럽게 웃더니, 어깨를 팡 치고 주위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론은 나와 가장 친했던 친우이자, 전쟁터를 누볐던 전우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네가 그러고 있으니 영 어울리진 않는다. 매버릭이라면 모를까."
"매버릭은 병원 신세를 자주 지는 편이야?"
"걔때문에 네가 병원을 들락날락한 것도 기억이 안 나겠구나."
"그 정도라고?"



걔가 괜히 꼴통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론이, 아니 슬라이더가 이번엔 병원복을 칼각에 맞춰 접으며 말했다. 그는 매버릭이 잘 하지 못하는 모든 일들을 해주고 갈 셈인양, 온 병실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내가 앉으라 권해도 그는,



"네 '매버릭' 손에 물 하나 묻힌 걸 알면 넌 네 자신도 용서하지 않을 놈인데 내가 앉겠냐?"



라 답하고 오른쪽 끝 간이침대를 정리하러 가버렸다. 그치만 그는 매버릭보다 말이 많았기 때문에 덕분에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매버릭이 클램차우더에 샐러드를 사왔다고? 걘 그런 거 안 좋아해, 알겠지만 걘 페페로니 피자에 환장하거든."



라던가,



"결혼? 나는 했고 너넨 안 했지. 아, 엄밀히 말하면 넌 못했지. 매버릭이 네 프로포즈를 몇 번이나 깠을 거 같아?"



라던가,



"네가 승진을 빨리한 이유는 매버릭 덕이야. 걔가 웬만한 미션은 다 성공했잖냐. 물론 네 판단력도 한몫했고."



라던가. 그는 나와 매버릭 사이에 있었던 일들 중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해준 대부분의 이야기는 매버릭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매버릭에 의한 것이었고, 매버릭을 위한 것이었다. 37살의 내가 매버릭에게 단단히 빠져있었다는 걸 설명하던 그는 17살의 나도 그를 못지않게 좋아할 거라 이미 예상한 것처럼 굴었다.



"너 진짜 기억을 잃은 거 맞아? 매버릭 이야기만 하면 눈이 반짝거리는 게 똑같은데… 구라치는 거 아니지?"
"기억을 잃지 않았으면 중령인 론이 이렇게 말하는 걸 그냥 두지 않았을 거 같은데."
"와, 기억을 잃어도 아이스맨이긴 하네. 고등학생 너, 살벌하다?"



그의 실없는 장난을 즐기다보면 매버릭이 퇴근할 시간에 다다랐다. 나는 슬라이더에게 대령으로서 명령을 내렸다.



"나 좀 씻겨줘. 매버릭한테 잘 보여야 해."



그는 나를 제법 재수없어 하면서도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와 날 씻겼다. 씻기고 난 후, 그는 매버릭과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며 바로 나갔다. 매버릭은 퇴근하고 쭈뼛거리긴 했지만 나의 품에 안겨 다녀왔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가 아주 익숙했다.




아이스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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