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기 전에 줄거리정보 정도만 있었을 때에는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를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 정도로 이해했었는데(물론 그것만으로도 너무 훌륭한 주제지만), 영화관에서 퓨리오사 본 후에 벌집 와서 매드맥스까지 보고 나니까 인물들의 일대기를 넘어선 좀 더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

우선 매드맥스는 남성시대의 사멸을 암시하며 시작됨.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지구와 망가진 인류는 남성들의 파괴적인 방식은 근본부터 틀려먹었음을 시사함
한 번 형성된 권력 구도를 뒤집기가 최초에 권력을 잡기보다 배로 어려운 이유는 폭력과 압제를 이용해 권력을 앞서 잡은 이들이 이후에는 평화와 환경 보존 등 선한 의지를 흉내내며 권력 전복을 저지하기 때문임. 그건 서양세계를 필두로 한 선진국들이 권력 유지와 신진세력 견제를 위해 채택하는 방식이기도 하면서 남성들이 여성운동을 억압하는 방식이기도 함. 약자들은 필연적으로 우아할 수 없지만 강자들이 약자를 멸시하는 근거가 바로 그 ‘우아하지 못함’이듯이ㅇㅇ
그러나 매드맥스 세계관은 여전히 폭압적인 남성들이 권력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핵전쟁으로 인류가 몰락한 아포칼립스 세계관이기에 이렇다할 시스템이 설립되지 못했음. 민중들과 자원을 통제하고 권력을 잡을 힘은 갖고 있지만 신진 세력의 대두를 씨앗부터 잘라버릴 힘+소프트웨어는 아직 갖고있지 않단 말임. 그 임모탄조차 제대로 디멘투스와 맞붙으려면 당장 쳐들어가는 게 아니라 무기 농장에서 파밍부터 해오는 위험부담을 져야 하는 것만 봐도ㅇㅇ

그렇기 때문에 퓨리로드에서 퓨리오사의 결말이 그토록 원했던 울창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임모탄 제거와 권력 전복인 것이 보다 적절했다고 생각함. 고향으로 돌아가 봐야 풍요의 땅을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을 것이고, 거기서 아무리 세력을 키워 봐야 임모탄과의 양당 체제일 뿐임.
사실 퓨리오사 어머니 메리의 유언이기도 한 “반드시 살아남아 씨앗을 심으라”는 말에는 ‘고향에’라는 키워드가 없음. 퓨리오사와 메리가 떠나올 당시 고향인 그린플레이스에는 이미 나무들이 울창했고 아무리 씨앗을 중요히 여기는 부발리니 종족이라고는 해도 딸과의 마지막을 기약하며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었음. 그런 점에서 메리는 이미 퓨리오사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가능성까지 상정해두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듦. 때문에 메리의 유언은 ‘만약 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네가 부발리니임을 잊지 말고, 초록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정신을 지키라’로도 해석될 수 있음. 그리고 퓨리오사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켰음.

그렇다면 ‘퓨리오사와 브리더, 부발리니들이 통치하는 시타델은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수립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난 능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봄. 그리고 그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는 남성들의 그것과는 아주 다른 방향성을 띠고 있을 것임.
핵전쟁으로 인한 환경의 급속오염을 계기로 촉발된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인간의 바람직한 방향성은 ‘식량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던 시대로의 회귀’가 되어야 함. 완벽한 회귀는 불가능하더라도 일부나마 그렇게 되어야 함. 환경오염으로 잃게 된 것은 자동차와 독재권력 따위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풍요로웠던 인프라이기 때문임.
그러나 영화에서 남성권력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생각해 보면 총포와 엔진이 떠오름.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인간은 가장 중요한 것을 숭배하게 되는데, 남성중심 권력체제의 이 인물들은 8기통과 크롬을 숭배함. 그들에게 초록이란 생존 수단, 이용 대상일 뿐이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님. (내일 생각 안 하고 핵전쟁 처하다 지구 다 날려먹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림;) 처음에 퓨리오사 납치한 2인도 초록을 찾으러 간 게 아니라 말고기나 파밍하다가 그룹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디멘투스에게 풍요의 땅의 존재를 보고하고자 했을 뿐임. (풍요의 땅 존재 밝히면서도 하는 얘기가 ‘거긴 없는 게 없어!’ 였고.) 그럼 디멘투스는 어땠냐, 처음에는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고 하는 것 같더니 시타델에게 식량을 보급 받는 가스타운의 존재를 알고서 그 곳을 점령하고는 말아버림. 결국 그들에게 초록이란 당장 먹을 양배추 정도의 존재감이면 됐던 것임.
반면 여성 권력의 상징인 부발리니는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씨앗들을 품에 안고 있는 인물이 있을 정도로 초록을 중시함. 퓨리오사도 고향을 떠나 평생 그리워한 것이 초록이 가득한 숲이었고. 시스템과 소프트파워 형성에 가장 중요한 서책 또한 영화에서 유일하게 브리더들의 공간에서만 등장함. 퓨리오사 납치 후 역사가가 ‘글을 읽을 줄 아니? 네 가치를 높이면 디멘투스가 챙겨줄 게다.’ 하고 말하잖아.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이 가치가 될 정도로 황폐한 세계관이기는 하나 사회학 개념에서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학습과 발전/전승일 정도로 기록하고 배운다는 것이 중요한데, 남성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모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여성들이 사는 공간에 넣어준 꼴이 됨. 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흡수한 여성들은 글로써 임모탄의 체제를 반박하고 반란에 성공함. 그리고는 이전의 독재자가 권력 유지 수단으로서 틀어막아 두었던 물부터 콸콸 틀어내리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과거와는 아주 많은 면에서 다를 것임을 알림. 물이 없어 땅이 말랐다면 물을 주고 새생명을 틔워야 함. 그것이 자연이 호흡하는 방식이자 대중을 정당성으로 통제하는 연성적인 권력임.

그렇기 때문에 아포칼립스라는 일종의 기회를 매개로 권력 전복에 성공한 여성들의 시대는 남성시대에 비해 근본적으로 평화롭고 탄탄할 것임. 나는 매드맥스와 퓨리오사에서 말하고 싶었던 주제의식에 이게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봄.



필력이 짧은 관계로 서술보다는 키워드들만 나열한 것 같긴 한데 암턴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24.05.26 22: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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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이짧다니 ㄷㄷ 니말이다맞다
나도 그생각 함
[Code: e1f6]
2024.05.26 23:02
ㅇㅇ
퓨리오사가 통치하는 시타델을 보고싶다...
[Code: 73d0]
2024.05.26 23: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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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짜 좋다 잘 읽었어
[Code: 6f15]
2024.05.26 23: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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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다받고
사과를 심은것도 좋았어 남자들은 의미없는 살육과 분노, 소비를 계속하는데 거기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무언가를 생산하는건 여성들 뿐이었어
죽어가는 남자에게서 난 사과를 여성들이 공평하게 나눠먹고 새로운 삶과 시대를 위해 남자들의 체계에서 탈출하는 것도 지금까지의 학대와 폭력으로만 돌아가던 남성들의 시대가 끝나고 여성중심의 시대가, 풍요의 시대가 도래하리라는걸 알리는것 같았어
[Code: b2e4]
2024.05.26 23: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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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복숭아 아녔어..??
[Code: 3a0e]
2024.05.27 02: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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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네 씨 크기 생각하면 복숭아네
[Code: 79c1]
2024.05.27 02: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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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볼땐 사관줄 알았는데 씨앗크기 대빵만했었지ㅋㅋㅋ고맙다
[Code: 79c1]
2024.05.27 00: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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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 해석도 진짜 좋다
[Code: cb18]
2024.05.27 00: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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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과일나무를 심어서 같이 나눠먹고 탈출하는게 그런 의미인거같다..
[Code: 1e3a]
2024.05.27 00: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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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좋다
[Code: 62a1]
2024.05.27 00:14
ㅇㅇ
모바일
와 해석 너무 좋다
[Code: 1e3a]
2024.05.27 01:02
ㅇㅇ
모바일
해석 좋다
[Code: 2aef]
2024.05.27 01: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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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글 좋다
[Code: e648]
2024.05.27 01:31
ㅇㅇ
글 좋다
[Code: 7191]
2024.05.27 07: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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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좋은 리뷰다
[Code: 76fc]
2024.05.27 07: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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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지식인을 여성공간에 넣어준 것으로 (인문학등)학습으로 이어져 체제전복함 <-이 부분은 생각도 못했어 찐 흥미로움
[Code: 76fc]
2024.05.27 09:22
ㅇㅇ
와 필력 미쳤다.... 마지막 해석 특히 좋아 분서갱유나 지식인 학살같은 희대의 개등신짓들이 생각나네
[Code: 575a]
2024.05.27 10: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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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필력 죽인다 나 영화보면서 느낀거랑 진심 똑같은데 일목요연하게 정리잘해서 보면서 속시원해짐 제목부터 막줄까지 ㄹㅇ 다받음
[Code: a3ee]
2024.05.27 10: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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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맥만 봤을때는 그렇게까지 못느꼈는데 퓨리오사 보고난뒤 그 서사를 알고 매맥 다시보니까 두 영화는 걍 두 편이 하나로 완성되는 영화도 말하고자하는 메세지도 하나였음 각각으로 놓고봐도 지리는 여성서사지만 두편 연결해서보면 결국 정신못차린 남자들의 시대는 끝났고 초록을 계승하는 부발리니, 여성들이 그 세대를 전복한게 너무 오져 조지밀리옹이 대단한 감독이라고밖에...
[Code: a3ee]
2024.05.27 13: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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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글 진짜 잘쓴다
[Code: 6881]
2024.05.27 18: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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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 해석추 북맠할게 지우지마
[Code: 9597]
2024.05.28 10: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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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리뷰 좋다 또 읽을게 지우지마222
[Code: cc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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