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89826703
view 14894
2024.04.03 23:04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로 시작했던 거 2.5부 1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이게 맞나?
이게...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이연화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사로잡힌 채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은 꽤나 단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마치 삶의 폭풍에 휘말린 듯해 좀처럼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천기산장에서 하효혜에게 며칠 동안 시달리고 나니, 어느새 식을 올릴 장소와 날짜, 참여할 사람들의 명단까지 거진 정해지고 말았다. 평소의 이연화였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휩쓸리지 않았겠으나, 지금은 매우 특수한 때였다. 이 각인과 관련된 가장 큰 문턱을 넘은 직후라, 그 문턱이 요구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각인에 대해 논의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혼인이라고? 이연화가 혼란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연화 본인 역시, 이 혼란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각인은 곧 혼인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여건 탓으로, 이연화의 마음속에서 그 두 가지가 무의식중에 분리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하효혜가 개미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는 해일처럼 그 두 가지를 섞어버린 순간, 이연화는 속절없이 떠내려가며 잡을 지푸라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상식과 진심을 무기 삼은 천기당주를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었다.
혼인이라면, 정말로 평생에 대해 얘기하는 거잖아. 이연화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미간을 좁혔다. 아니, 각인을 유지하자고 할 때부터 물론 진지한 마음이기는 했지. 당시의 나도 평생에 대해 생각하기는 했다고. 미간을 꾹꾹 누르는 손길에 복잡한 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사실 이연화의 일부는 도망칠 구석 하나쯤을 만들어두려 필사적이었다. 이토록 개성 강한 삼자의 이중 각인이라니, 장차 무슨 사건이 생길지 모르는 일 아닌가? 각인만 해도 큰일인데, 혼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형식상의 일이라 해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약조를 무르기란 지난할 터였다. 이연화는 바늘구멍처럼 열어두었던 심적 퇴로가 막히는 기분에 어깨를 움츠렸다.
심지어 왜 다들 아무렇지 않게 협조하고 있는 거지? 이연화가 가늘게 뜬 눈으로 눈앞의 방다병을 바라보았다. 마차에 앉은 방 공자는, 굉장한 집중력으로 손에 든 종이를 탐독하고 있었다. 하효혜가 건네준 '확인 목록'이었다.
혼인을 위해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들 중, 가장 마지막에 정해진 것이 바로 장소였다. 과히 이목을 끌어서는 안 되니 수도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했으며, 설령 소박하더라도 잘 관리되어 단아하면서도 깔끔한 정취와 멋이 있어야 했다(적어도 하효혜가 주장한 바로는 그랬다). 하효혜는 곧 천기당에서 새로이 단장한 객잔 한 군데를 제안했다. 헌성 외곽에 있는 청면객잔은, 비록 시골에 위치했으나 주변 산세가 아름답고 온천 물이 맑아 나름대로 사업성이 있었다. 개장을 앞둔 참이라 모든 시설은 완벽히 갖추어져 있었지만, 아직 외부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했다.
"나도 한번 가보아야 하는데, 네게 맞춰 도중에 급히 돌아오느라 거기까진 들르질 못했다. 나는 천기산장에서 받아가야 할 물건이 있으니, 소보 네가 일단 가서 장소를 눈여겨보도록 해라. 각별히 확인해야 할 것들을 적어줄 테니 빠뜨리지 말고!"
하효혜의 말에, 방다병은 매우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사실 며칠 동안, 방다병의 눈은 계속 빛나고 있었다.
청년은 자꾸 싱글벙글하는 얼굴을 감추느라 습관처럼 양 뺨을 당기거나 때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용인들이 이상한 눈으로 도련님을 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득바득 함께 자겠다 떼를 쓰던 녀석이, 혼인 날짜가 잡히게 되자 그 전까지는 예를 지켜야 한다며 발길을 딱 끊었다. 심악의 약에 의한 후유증조차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는지, 방다병은 두통이라곤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어머니와 붙어다니며 혼인 준비에 열을 올렸다. 평소 워낙 대화를 많이 하는 모자였던지라, 그 그림을 수상하게 여기는 자라곤 없었다.
"방소보. 넌 정말 괜찮은 거야?"
이연화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을 앞둔 사람치고, 방다병은 이 상황을 껄끄럽게 여기는 눈치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은 하효혜와 나름의 논쟁까지 거치며, 혼인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장 좋은 것으로 갖추고자 애썼다. 어린 시절 길거리의 고아로 지낸 데다, 연화루에서 곤궁하게 살았던 시절 또한 긴 탓에, 이연화는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액수를 얼핏 들을 때마다 간이 쿵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방다병은 오랜만에 부잣집 도련님의 태도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깐깐하게 굴어댔다.
방다병이 종이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그 눈밑이 유독 거무스름해 보였다.
"뭐가? 요새 며칠 밤을 새운 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난 괜찮아, 무인의 몸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며칠 동안 밤을 새웠어?"
이연화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를 하고 나면 부리나케 어디론가 사라지는 탓에,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겠거니 짐작하기는 했다. 한밤중에 몇 가지 옷감이나 그릇 따위를 가져와, 무엇이 더 마음에 드느냐고 채근하는 데에 답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밤을 샜다고? 사람이 많이 올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거야? 의문에 빠진 이연화를 향해, 방다병이 대수롭잖게 말했다.
"응, 생각보다 날짜가 빠르게 잡혔잖아. 몇 가지 물건들은 바로 구하기가 어려워서, 아비 쪽에 부탁해 뒀어."
그래, 아비. 이연화가 눈가를 가볍게 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이 갑작스러운 혼인에 열성을 다한 사람이 방다병과 하효혜뿐이었다면, 다소 심란할 뿐 그리 놀랍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적비성은 정말 예상 외였다. 그 자리에서 대답만 그렇게 했을 뿐 실제로 협력하거나 관여하는 바가 거의 없으리라 짐작했던 것과 달리, 금원맹주는 시시콜콜한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에 생각보다 성실히 참여했다. 때로는 무안을 시켜 무언가를 지시하기도 했다. 방다병이 너무 길게 떠들 때에는 조금 짜증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이딴 소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며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이 일에 심경이 복잡한 것은 정녕 자신뿐이란 말인가? 이연화가 한숨을 삼키며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일몰이 아름다웠으나 마음이 영 뒤숭숭했다. 방다병이 문득 고개를 들고 동그란 눈을 했다.
"왜 그래? 무슨 걱정 있어?"
"그게...사모님이 시간을 맞추실 수 있을까 싶어서."
이연화가 가장 큰 문제를 슬쩍 회피하듯 건넸다. 하객을 대체 어디까지 한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연화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일은 알리는 것부터가 위험의 시작이요 부담의 전가였으므로, 가족이 아니라면 아무도 알게 할 마음이 없었다. 셋 중 직계 가족이 있는 사람은 방다병뿐이었고, 이연화의 가족이랄 사람은 금파 정도였다. 백천원 사람들이 잠시 뇌리를 스쳤으나, 이연화는 그들을 부를 마음을 곧 접었다. 불피백석을 비롯한 요직 인사들이 동시에 자리를 비운다면 세간의 이목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하긴 운은산은 청면객잔과 좀 거리가 있지. 안 그래도 금파 선배께 넉넉한 시일을 알려달라 서신을 보냈으니, 만일 날을 맞추기 어렵다고 하시면 조금 미뤄도 돼."
방다병이 세심하게 말했다. 하지만 물론 이연화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의 염려는 정말 금파의 도착 여부에 쏠려 있지 않은 탓이었다. 방다병이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이연화의 오른손을 잡았다. "이연화, 물론 네가 난처한 건 알아." 정말로? 이연화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방 공자는 여느 때처럼 사려 깊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나도 우리 어머니께 처음 이 사실을 고할 때에는 정말 손발이 얼어붙도록 긴장했어. 금파 선배는 우리 셋이 어떤 관계였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셨을 테니 아마 더 놀라시겠지. 하지만 선배는 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려고 하셨던 분이잖아. 널 정말 친자식처럼 아껴주시고. 그간 이런 일을 함구했다며 성은 내시겠지만, 결국 네 행복을 빌어주실 거야."
이연화는 그만 끙 소리를 삼키며 이마를 짚었다. 방다병의 말을 듣자 어쩐지 새로운 심화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사모님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시지. 적어도 하 당주는, 방다병이 어떤 형태로든 이연화와 평생 함께하겠다 마음먹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파는 방다병을 '이연화를 잘 챙기는, 자질이 뛰어나고 맑은 청년' 정도로 여기고 있을 터였다. 금원맹주에 대한 인상은 아마도 동해대전 즈음에 멈춰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연화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혼례를 치르기 전에 사모님께 죽으면 차라리 다행이겠어. 두 사람을 홀아비로 만들진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흉한 소리야? 엄살 떨지 말고 너도 잘 봐둬."
볼멘소리로 타박한 방다병이, 조금 전까지 보던 두루마리를 이연화의 품에 안겼다. 이연화는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을 보고 재차 한숨을 삼켰다.
하효혜가 적어준 내용은 마치 조밀한 그물처럼 꼼꼼했다. 정원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지, 식기는 어떤 것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손님들이 은밀히 들고 날 만한 경로가 어디일지, 온천의 상태는 어떤지 등등이 쭉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붙은 세목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들고 다니면서 확인하면 될 텐데, 왜 벌써부터 외우려 든담. 잠깐 집중하는 척하다가, 이연화는 곧 두루마리를 둘둘 말아 놓아두고 방다병을 힐끗 보았다. 잠이 부족한 탓인지, 청년은 손등으로 눈을 슥슥 비비고 있었다. 피곤한 모양새가 퍽 안돼 보여, 이연화가 한풀 누그러진 소리로 건넸다.
"도착하기 전까지 좀 자둬. 그래야 가서 또 돌아다니지."
"피곤하기는 한데, 그렇게 잠이 오진 않아."
방다병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핀잔을 주려다, 이연화는 그만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다병의 옆에 나란히 앉자, 청년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연화가 자신의 허벅지를 툭 치며 짐짓 타박하듯 건넸다.
"뭐해, 안 눕고. 하늘 같은 스승이 다리까지 내주겠다는데 모른 척 할 거야?"
방다병이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갈등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그런 건 아니니까." 스스로를 설득하듯이 우물거린 청년이 몸을 기울였다. 허벅지를 조심조심 베고 누운 방다병을 향해 '그런 게' 대체 뭐냐고 놀리려다, 이연화는 피식 웃으며 방다병의 어깨를 두어 번 어루만지듯이 토닥였다. 반사적으로 으음, 소리를 냈던 방다병의 귀가 살짝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연화를 힐끗 올려다보며, 방다병이 괜히 툴툴거리듯 말했다.
"이, 이상한 마음으로 낸 거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야."
"알았어, 알았어."
"어깨 두드리지 마, 아이 재우는 것도 아니고."
"참 까다롭네, 방 공자. 그럼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까?"
결국 참지 못하고 농을 던지자, 방다병은 흥 소리를 내고는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던 말이 거짓이었는지, 아니면 자세와 체취 덕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청년은 생각보다 이르게 색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상대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연화는 줄곧 참던 한숨을 조용히 내쉬고는 팔짱을 끼었다. 마차에 난 작은 창으로, 도착지인 헌성이 멀고 흐릿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헌성의 청면객잔은, 하효혜가 소원성에서처럼 큰 땅과 가옥을 매입해 조성한 숙박시설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다른 객잔이 들어서 있었는데, 반복되는 흉사로 인해 손님이 뜸해지자 결국 관리에 소홀하다가 폐업하게 되었다. 하효혜는 이곳의 입지가 아주 괜찮다고 보아, 헐값에 이 장소를 사들인 다음 아낌없는 지원을 퍼부어 비루하던 장소를 싹 바꾸어 놓았다. 이제 모든 청소와 단장이 끝나, 마지막 점검을 마치면 다음 달 정도에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라 했다. 그 전까지는 몇몇 일꾼들이 상주하며 객잔을 유지하고 있었다.
청면객잔에 다다라, 방다병과 이연화는 일꾼들에게 자신들을 천기당 사람이라고만 소개했다. 가능하면 이곳에 이연화와 방다병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편이 좋았다. 청면객잔의 새단장을 도맡아 관리하던 중년인이 연신 허리를 굽혔다. 생정이라는 이름의 서글서글한 남자는, 폐업하기 전의 객잔에서 일하던 지배인 출신이었다. 성품이 나쁘지 않고 현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서, 하효혜가 대부분의 일을 맡겨둔 듯했다.
"잘 오셨습니다. 마님께서 바로 오시기 어려워, 천기당 사람을 먼저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괜찮다면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방다병이 묻자, 생정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럼요, 물론입니다. 일단은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 이후에는 자유롭게 보시지요." 그렇게 말한 남자는, 방다병과 이연화를 데리고 청면객잔을 쭉 돌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에는 원래 버려진 창고가 있었는데 마님께서 정자를 만들도록 하셨다, 식사하는 공간은 전에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훨씬 세련된 느낌을 풍긴다, 이끼와 물때가 가득했던 온천은 이제 깨끗해진 데다 탕의 종류도 많아졌다...하효혜와 일꾼들의 혜안 또는 노고에 대한 자랑이 노골적으로 계속되었으나, 일행은 딱히 그 말을 막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생정의 말대로, 이곳은 비록 거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단아하면서도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흰 돌이 깔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잘 꾸며진 정원이며 샘들이 번갈아 등장해, 아기자기하게 달라지는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공간이 참 좋은데요. 이전에 무슨 흉사가 있었기에 폐업까지 하게 된 겁니까?"
방다병이 순수하게 물은 말에, 생정의 얼굴이 흐려졌다. 탄식과 함께, 지배인은 듣는 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것이...이곳에서 사람이 죽은 적이 있답니다. 벌써 5년 전의 일입니다만."
"살인이었나요?"
방다병이 별달리 놀라지 않은 얼굴로 묻자-청년은 나이에 비해 과할 정도로 많은 사건을 보아 온 형탐이었다-생정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쉬었다.
"목이 졸려 죽은 시신이었다니 아마 그랬겠지요. 심지어 그 시신이 발견된 날, 객잔에 큰 불이 났어요. 급히 피했지만 죽거나 다친 사람도 있었지요. 그 후로 아주 소문이 안 좋게 퍼져서, 이쪽으로 걸음하는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사건으로부터 시일이 많이 지난 데다, 천기당의 명성 덕분에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보이는 참이랍니다. 당주께서 염려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다 전해주십시오."
생정이 다짐하듯 말하며 굽신거렸다. 방다병의 미간이 좁아졌다.
"당시의 범인은 잡혔습니까?"
"아이고, 그때는 화재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던지라...또 변을 당한 이가 가난한 악공이었거든요. 평소에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렸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 몸에서 훔친 물건들도 여럿 발견되었고 해서...예. 적당히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생정이 괜히 민망한 투로 맺었다. 방다병이 유감스럽게 읊조렸다. "설령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해도 살인은 부당한 일인데, 안 되었군요." 이연화 역시 심정적으로 동의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몇 명의 낭자들이 걸어가던 참이었다. 손에 든 나무통이며 수건들을 보니, 아마 온천을 청소하려는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발을 옮기다가, 낭자들은 곧 잠시 멈추어 섰다. 앞에 잘 깔린 길을 놔두고, 그들은 잠깐 수군거리더니 이내 재빠른 걸음으로 우회로를 찾았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이연화의 눈이 잠깐 이채를 띠었다. 그런 상황을 보지 못한 생정이 재차 한숨을 토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떠올리니 새삼 마음이 무겁네요. 시간이 늦었으니 대협들은 이만 들어가 쉬시지요. 내일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 안내드리고, 장부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명, 자네가 방까지 안내해 드리게."
생정이 말하기 무섭도록, 그들과 조용히 동행하던 남자가 공손하게 따라붙었다. 생정보다 조금 젊은 얼굴의, 차분하고 과묵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호명도 저처럼 이전 객잔에서 일하던 사람입니다. 성실한 친구라 제가 데려왔지요." 생정이 칭찬을 덧붙였다. 고개를 꾸벅한 호명이 앞장섰다.
손님 방으로 내준 장소 역시 아늑하고 깔끔하며, 과히 화려하지 않아 신경을 거스르는 부분이 없었다. 방다병은 자신의 방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이연화를 찾아왔다. 여전히 피로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낯빛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괜찮은 장소 같아. 너무 사방을 향해 트여 있지도 않고, 마을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일부러 이편을 확인하러 오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눈에 괜히 띌 일도 없을 거야. 흉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늘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내일 더 자세히 보기야 하겠는데, 일단 나는 마음에 드네. 너는 어때?"
"왜 그 낭자들이 길을 돌아갔을까?"
이연화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방다병이 눈을 깜박였다.
"뭐?"
"아까 생정이 우릴 안내할 때 말이야. 멀리서 일하던 낭자들이 지나갔잖아. 눈앞에 짧은 길이 있었는데도, 대화를 나누더니 길을 돌아서 갔어. 뭔가를 피하는 듯이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그랬어? 난 이야기를 듣느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방다병이 말끝을 흐렸다.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되돌리다가, 청년은 문득 의혹과 우려가 떠오른 얼굴로 눈을 가늘게 떴다. 내적으로 흠칫한 이연화가 짐짓 결백한 불여우 같은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속내가 귓전에 그대로 들려오는 듯했다("마차에서부터 계속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하더니, 대체 혼인에 관심이 있기는 한 거야?"). 네 어머니의 사업장에서 괴이쩍은 정황이 보이니 당연히 신경이 쓰이지 않겠느냐는 변명을 준비하던 이연화의 앞에서, 방다병이 팔짱을 끼었다.
"이연화. 너 정말로-."
"괜찮은 곳이군."
"악!"
방다병의 뒤에서 문이 벌컥 열리며 들려온 말에, 방다병이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마차 따위는 귀찮은 데다 갑갑하니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 적비성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금원맹주의 난입하는 습관이 반갑다고 생각하며, 이연화는 영 미덥잖은 미소와 함께 오른손을 흔들었다. 적비성의 얼굴로 대번에 경계의 빛이 번졌다. "왜 사기꾼 같은 표정을 짓는 거냐?" "사기꾼이라니, 반가워서 그러지." 능청스럽게 말하며, 이연화가 그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이게 맞나?
이게...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이연화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사로잡힌 채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은 꽤나 단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마치 삶의 폭풍에 휘말린 듯해 좀처럼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천기산장에서 하효혜에게 며칠 동안 시달리고 나니, 어느새 식을 올릴 장소와 날짜, 참여할 사람들의 명단까지 거진 정해지고 말았다. 평소의 이연화였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휩쓸리지 않았겠으나, 지금은 매우 특수한 때였다. 이 각인과 관련된 가장 큰 문턱을 넘은 직후라, 그 문턱이 요구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각인에 대해 논의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혼인이라고? 이연화가 혼란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연화 본인 역시, 이 혼란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각인은 곧 혼인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여건 탓으로, 이연화의 마음속에서 그 두 가지가 무의식중에 분리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하효혜가 개미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는 해일처럼 그 두 가지를 섞어버린 순간, 이연화는 속절없이 떠내려가며 잡을 지푸라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상식과 진심을 무기 삼은 천기당주를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었다.
혼인이라면, 정말로 평생에 대해 얘기하는 거잖아. 이연화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미간을 좁혔다. 아니, 각인을 유지하자고 할 때부터 물론 진지한 마음이기는 했지. 당시의 나도 평생에 대해 생각하기는 했다고. 미간을 꾹꾹 누르는 손길에 복잡한 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사실 이연화의 일부는 도망칠 구석 하나쯤을 만들어두려 필사적이었다. 이토록 개성 강한 삼자의 이중 각인이라니, 장차 무슨 사건이 생길지 모르는 일 아닌가? 각인만 해도 큰일인데, 혼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형식상의 일이라 해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약조를 무르기란 지난할 터였다. 이연화는 바늘구멍처럼 열어두었던 심적 퇴로가 막히는 기분에 어깨를 움츠렸다.
심지어 왜 다들 아무렇지 않게 협조하고 있는 거지? 이연화가 가늘게 뜬 눈으로 눈앞의 방다병을 바라보았다. 마차에 앉은 방 공자는, 굉장한 집중력으로 손에 든 종이를 탐독하고 있었다. 하효혜가 건네준 '확인 목록'이었다.
혼인을 위해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들 중, 가장 마지막에 정해진 것이 바로 장소였다. 과히 이목을 끌어서는 안 되니 수도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했으며, 설령 소박하더라도 잘 관리되어 단아하면서도 깔끔한 정취와 멋이 있어야 했다(적어도 하효혜가 주장한 바로는 그랬다). 하효혜는 곧 천기당에서 새로이 단장한 객잔 한 군데를 제안했다. 헌성 외곽에 있는 청면객잔은, 비록 시골에 위치했으나 주변 산세가 아름답고 온천 물이 맑아 나름대로 사업성이 있었다. 개장을 앞둔 참이라 모든 시설은 완벽히 갖추어져 있었지만, 아직 외부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했다.
"나도 한번 가보아야 하는데, 네게 맞춰 도중에 급히 돌아오느라 거기까진 들르질 못했다. 나는 천기산장에서 받아가야 할 물건이 있으니, 소보 네가 일단 가서 장소를 눈여겨보도록 해라. 각별히 확인해야 할 것들을 적어줄 테니 빠뜨리지 말고!"
하효혜의 말에, 방다병은 매우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사실 며칠 동안, 방다병의 눈은 계속 빛나고 있었다.
청년은 자꾸 싱글벙글하는 얼굴을 감추느라 습관처럼 양 뺨을 당기거나 때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용인들이 이상한 눈으로 도련님을 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득바득 함께 자겠다 떼를 쓰던 녀석이, 혼인 날짜가 잡히게 되자 그 전까지는 예를 지켜야 한다며 발길을 딱 끊었다. 심악의 약에 의한 후유증조차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는지, 방다병은 두통이라곤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어머니와 붙어다니며 혼인 준비에 열을 올렸다. 평소 워낙 대화를 많이 하는 모자였던지라, 그 그림을 수상하게 여기는 자라곤 없었다.
"방소보. 넌 정말 괜찮은 거야?"
이연화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을 앞둔 사람치고, 방다병은 이 상황을 껄끄럽게 여기는 눈치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은 하효혜와 나름의 논쟁까지 거치며, 혼인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장 좋은 것으로 갖추고자 애썼다. 어린 시절 길거리의 고아로 지낸 데다, 연화루에서 곤궁하게 살았던 시절 또한 긴 탓에, 이연화는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액수를 얼핏 들을 때마다 간이 쿵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방다병은 오랜만에 부잣집 도련님의 태도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깐깐하게 굴어댔다.
방다병이 종이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그 눈밑이 유독 거무스름해 보였다.
"뭐가? 요새 며칠 밤을 새운 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난 괜찮아, 무인의 몸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며칠 동안 밤을 새웠어?"
이연화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를 하고 나면 부리나케 어디론가 사라지는 탓에,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겠거니 짐작하기는 했다. 한밤중에 몇 가지 옷감이나 그릇 따위를 가져와, 무엇이 더 마음에 드느냐고 채근하는 데에 답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밤을 샜다고? 사람이 많이 올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거야? 의문에 빠진 이연화를 향해, 방다병이 대수롭잖게 말했다.
"응, 생각보다 날짜가 빠르게 잡혔잖아. 몇 가지 물건들은 바로 구하기가 어려워서, 아비 쪽에 부탁해 뒀어."
그래, 아비. 이연화가 눈가를 가볍게 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이 갑작스러운 혼인에 열성을 다한 사람이 방다병과 하효혜뿐이었다면, 다소 심란할 뿐 그리 놀랍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적비성은 정말 예상 외였다. 그 자리에서 대답만 그렇게 했을 뿐 실제로 협력하거나 관여하는 바가 거의 없으리라 짐작했던 것과 달리, 금원맹주는 시시콜콜한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에 생각보다 성실히 참여했다. 때로는 무안을 시켜 무언가를 지시하기도 했다. 방다병이 너무 길게 떠들 때에는 조금 짜증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이딴 소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며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이 일에 심경이 복잡한 것은 정녕 자신뿐이란 말인가? 이연화가 한숨을 삼키며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일몰이 아름다웠으나 마음이 영 뒤숭숭했다. 방다병이 문득 고개를 들고 동그란 눈을 했다.
"왜 그래? 무슨 걱정 있어?"
"그게...사모님이 시간을 맞추실 수 있을까 싶어서."
이연화가 가장 큰 문제를 슬쩍 회피하듯 건넸다. 하객을 대체 어디까지 한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연화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일은 알리는 것부터가 위험의 시작이요 부담의 전가였으므로, 가족이 아니라면 아무도 알게 할 마음이 없었다. 셋 중 직계 가족이 있는 사람은 방다병뿐이었고, 이연화의 가족이랄 사람은 금파 정도였다. 백천원 사람들이 잠시 뇌리를 스쳤으나, 이연화는 그들을 부를 마음을 곧 접었다. 불피백석을 비롯한 요직 인사들이 동시에 자리를 비운다면 세간의 이목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하긴 운은산은 청면객잔과 좀 거리가 있지. 안 그래도 금파 선배께 넉넉한 시일을 알려달라 서신을 보냈으니, 만일 날을 맞추기 어렵다고 하시면 조금 미뤄도 돼."
방다병이 세심하게 말했다. 하지만 물론 이연화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의 염려는 정말 금파의 도착 여부에 쏠려 있지 않은 탓이었다. 방다병이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이연화의 오른손을 잡았다. "이연화, 물론 네가 난처한 건 알아." 정말로? 이연화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방 공자는 여느 때처럼 사려 깊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나도 우리 어머니께 처음 이 사실을 고할 때에는 정말 손발이 얼어붙도록 긴장했어. 금파 선배는 우리 셋이 어떤 관계였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셨을 테니 아마 더 놀라시겠지. 하지만 선배는 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려고 하셨던 분이잖아. 널 정말 친자식처럼 아껴주시고. 그간 이런 일을 함구했다며 성은 내시겠지만, 결국 네 행복을 빌어주실 거야."
이연화는 그만 끙 소리를 삼키며 이마를 짚었다. 방다병의 말을 듣자 어쩐지 새로운 심화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사모님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시지. 적어도 하 당주는, 방다병이 어떤 형태로든 이연화와 평생 함께하겠다 마음먹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파는 방다병을 '이연화를 잘 챙기는, 자질이 뛰어나고 맑은 청년' 정도로 여기고 있을 터였다. 금원맹주에 대한 인상은 아마도 동해대전 즈음에 멈춰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연화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혼례를 치르기 전에 사모님께 죽으면 차라리 다행이겠어. 두 사람을 홀아비로 만들진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흉한 소리야? 엄살 떨지 말고 너도 잘 봐둬."
볼멘소리로 타박한 방다병이, 조금 전까지 보던 두루마리를 이연화의 품에 안겼다. 이연화는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을 보고 재차 한숨을 삼켰다.
하효혜가 적어준 내용은 마치 조밀한 그물처럼 꼼꼼했다. 정원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지, 식기는 어떤 것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손님들이 은밀히 들고 날 만한 경로가 어디일지, 온천의 상태는 어떤지 등등이 쭉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붙은 세목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들고 다니면서 확인하면 될 텐데, 왜 벌써부터 외우려 든담. 잠깐 집중하는 척하다가, 이연화는 곧 두루마리를 둘둘 말아 놓아두고 방다병을 힐끗 보았다. 잠이 부족한 탓인지, 청년은 손등으로 눈을 슥슥 비비고 있었다. 피곤한 모양새가 퍽 안돼 보여, 이연화가 한풀 누그러진 소리로 건넸다.
"도착하기 전까지 좀 자둬. 그래야 가서 또 돌아다니지."
"피곤하기는 한데, 그렇게 잠이 오진 않아."
방다병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핀잔을 주려다, 이연화는 그만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다병의 옆에 나란히 앉자, 청년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연화가 자신의 허벅지를 툭 치며 짐짓 타박하듯 건넸다.
"뭐해, 안 눕고. 하늘 같은 스승이 다리까지 내주겠다는데 모른 척 할 거야?"
방다병이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갈등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그런 건 아니니까." 스스로를 설득하듯이 우물거린 청년이 몸을 기울였다. 허벅지를 조심조심 베고 누운 방다병을 향해 '그런 게' 대체 뭐냐고 놀리려다, 이연화는 피식 웃으며 방다병의 어깨를 두어 번 어루만지듯이 토닥였다. 반사적으로 으음, 소리를 냈던 방다병의 귀가 살짝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연화를 힐끗 올려다보며, 방다병이 괜히 툴툴거리듯 말했다.
"이, 이상한 마음으로 낸 거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야."
"알았어, 알았어."
"어깨 두드리지 마, 아이 재우는 것도 아니고."
"참 까다롭네, 방 공자. 그럼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까?"
결국 참지 못하고 농을 던지자, 방다병은 흥 소리를 내고는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던 말이 거짓이었는지, 아니면 자세와 체취 덕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청년은 생각보다 이르게 색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상대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연화는 줄곧 참던 한숨을 조용히 내쉬고는 팔짱을 끼었다. 마차에 난 작은 창으로, 도착지인 헌성이 멀고 흐릿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헌성의 청면객잔은, 하효혜가 소원성에서처럼 큰 땅과 가옥을 매입해 조성한 숙박시설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다른 객잔이 들어서 있었는데, 반복되는 흉사로 인해 손님이 뜸해지자 결국 관리에 소홀하다가 폐업하게 되었다. 하효혜는 이곳의 입지가 아주 괜찮다고 보아, 헐값에 이 장소를 사들인 다음 아낌없는 지원을 퍼부어 비루하던 장소를 싹 바꾸어 놓았다. 이제 모든 청소와 단장이 끝나, 마지막 점검을 마치면 다음 달 정도에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라 했다. 그 전까지는 몇몇 일꾼들이 상주하며 객잔을 유지하고 있었다.
청면객잔에 다다라, 방다병과 이연화는 일꾼들에게 자신들을 천기당 사람이라고만 소개했다. 가능하면 이곳에 이연화와 방다병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편이 좋았다. 청면객잔의 새단장을 도맡아 관리하던 중년인이 연신 허리를 굽혔다. 생정이라는 이름의 서글서글한 남자는, 폐업하기 전의 객잔에서 일하던 지배인 출신이었다. 성품이 나쁘지 않고 현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서, 하효혜가 대부분의 일을 맡겨둔 듯했다.
"잘 오셨습니다. 마님께서 바로 오시기 어려워, 천기당 사람을 먼저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괜찮다면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방다병이 묻자, 생정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럼요, 물론입니다. 일단은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 이후에는 자유롭게 보시지요." 그렇게 말한 남자는, 방다병과 이연화를 데리고 청면객잔을 쭉 돌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에는 원래 버려진 창고가 있었는데 마님께서 정자를 만들도록 하셨다, 식사하는 공간은 전에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훨씬 세련된 느낌을 풍긴다, 이끼와 물때가 가득했던 온천은 이제 깨끗해진 데다 탕의 종류도 많아졌다...하효혜와 일꾼들의 혜안 또는 노고에 대한 자랑이 노골적으로 계속되었으나, 일행은 딱히 그 말을 막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생정의 말대로, 이곳은 비록 거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단아하면서도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흰 돌이 깔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잘 꾸며진 정원이며 샘들이 번갈아 등장해, 아기자기하게 달라지는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공간이 참 좋은데요. 이전에 무슨 흉사가 있었기에 폐업까지 하게 된 겁니까?"
방다병이 순수하게 물은 말에, 생정의 얼굴이 흐려졌다. 탄식과 함께, 지배인은 듣는 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것이...이곳에서 사람이 죽은 적이 있답니다. 벌써 5년 전의 일입니다만."
"살인이었나요?"
방다병이 별달리 놀라지 않은 얼굴로 묻자-청년은 나이에 비해 과할 정도로 많은 사건을 보아 온 형탐이었다-생정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쉬었다.
"목이 졸려 죽은 시신이었다니 아마 그랬겠지요. 심지어 그 시신이 발견된 날, 객잔에 큰 불이 났어요. 급히 피했지만 죽거나 다친 사람도 있었지요. 그 후로 아주 소문이 안 좋게 퍼져서, 이쪽으로 걸음하는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사건으로부터 시일이 많이 지난 데다, 천기당의 명성 덕분에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보이는 참이랍니다. 당주께서 염려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다 전해주십시오."
생정이 다짐하듯 말하며 굽신거렸다. 방다병의 미간이 좁아졌다.
"당시의 범인은 잡혔습니까?"
"아이고, 그때는 화재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던지라...또 변을 당한 이가 가난한 악공이었거든요. 평소에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렸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 몸에서 훔친 물건들도 여럿 발견되었고 해서...예. 적당히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생정이 괜히 민망한 투로 맺었다. 방다병이 유감스럽게 읊조렸다. "설령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해도 살인은 부당한 일인데, 안 되었군요." 이연화 역시 심정적으로 동의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몇 명의 낭자들이 걸어가던 참이었다. 손에 든 나무통이며 수건들을 보니, 아마 온천을 청소하려는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발을 옮기다가, 낭자들은 곧 잠시 멈추어 섰다. 앞에 잘 깔린 길을 놔두고, 그들은 잠깐 수군거리더니 이내 재빠른 걸음으로 우회로를 찾았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이연화의 눈이 잠깐 이채를 띠었다. 그런 상황을 보지 못한 생정이 재차 한숨을 토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떠올리니 새삼 마음이 무겁네요. 시간이 늦었으니 대협들은 이만 들어가 쉬시지요. 내일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 안내드리고, 장부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명, 자네가 방까지 안내해 드리게."
생정이 말하기 무섭도록, 그들과 조용히 동행하던 남자가 공손하게 따라붙었다. 생정보다 조금 젊은 얼굴의, 차분하고 과묵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호명도 저처럼 이전 객잔에서 일하던 사람입니다. 성실한 친구라 제가 데려왔지요." 생정이 칭찬을 덧붙였다. 고개를 꾸벅한 호명이 앞장섰다.
손님 방으로 내준 장소 역시 아늑하고 깔끔하며, 과히 화려하지 않아 신경을 거스르는 부분이 없었다. 방다병은 자신의 방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이연화를 찾아왔다. 여전히 피로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낯빛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괜찮은 장소 같아. 너무 사방을 향해 트여 있지도 않고, 마을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일부러 이편을 확인하러 오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눈에 괜히 띌 일도 없을 거야. 흉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늘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내일 더 자세히 보기야 하겠는데, 일단 나는 마음에 드네. 너는 어때?"
"왜 그 낭자들이 길을 돌아갔을까?"
이연화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방다병이 눈을 깜박였다.
"뭐?"
"아까 생정이 우릴 안내할 때 말이야. 멀리서 일하던 낭자들이 지나갔잖아. 눈앞에 짧은 길이 있었는데도, 대화를 나누더니 길을 돌아서 갔어. 뭔가를 피하는 듯이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그랬어? 난 이야기를 듣느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방다병이 말끝을 흐렸다.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되돌리다가, 청년은 문득 의혹과 우려가 떠오른 얼굴로 눈을 가늘게 떴다. 내적으로 흠칫한 이연화가 짐짓 결백한 불여우 같은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속내가 귓전에 그대로 들려오는 듯했다("마차에서부터 계속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하더니, 대체 혼인에 관심이 있기는 한 거야?"). 네 어머니의 사업장에서 괴이쩍은 정황이 보이니 당연히 신경이 쓰이지 않겠느냐는 변명을 준비하던 이연화의 앞에서, 방다병이 팔짱을 끼었다.
"이연화. 너 정말로-."
"괜찮은 곳이군."
"악!"
방다병의 뒤에서 문이 벌컥 열리며 들려온 말에, 방다병이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마차 따위는 귀찮은 데다 갑갑하니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 적비성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금원맹주의 난입하는 습관이 반갑다고 생각하며, 이연화는 영 미덥잖은 미소와 함께 오른손을 흔들었다. 적비성의 얼굴로 대번에 경계의 빛이 번졌다. "왜 사기꾼 같은 표정을 짓는 거냐?" "사기꾼이라니, 반가워서 그러지." 능청스럽게 말하며, 이연화가 그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https://hygall.com/589826703
[Code: bb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