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교실에선 수업 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걍 엎어져 자는 게 일상인데, 우중충하게 비 내리는 창문 너머로 우산도 아니고 펄럭펄럭 바람 불 때마다 나부끼는 비닐 우비 뒤집어쓰고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익숙한 실루엣 보여서 책상 위에 턱 괴고 30분째 창문만 보고 있는 상상....
운동장 흙탕물 질퍽한데 거기 뭐 재밌는 거 있다고 저러고 있는지...개구리일까, 지렁이일까, 명헌이 형이라면 어느 쪽이어도 별로 놀랍진 않긴 하겠다 멍하니 상념에 잠겨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면서 “하여튼 웃겨, 하여튼 희한해...”하고 한국인의 그린라이트 1위 대사 툭 중얼거려 놓고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웃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는 정우성.
그러다 운동장 저편에서 우산 큰 거 하나 쓰고 손에 하나 또 들고 그 우산만큼이나 큼직한 걸음으로 걸어온 최동오, 들고온 우산 하나 펼쳐 허술한 비닐우비 뒤집어 쓴 이명헌 위로 뒤집어 씌우니까 이명헌 등짝 삽시간에 가려지는데, 그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는 최동오 어깨는 쓰고 온 우산으로도 안 가려져서 정우성 왠지 모르게 표정 흐려짐.
자기도 모르게 턱에 괴고 있던 손 끝 탁, 탁 물어뜯으면서 둘이 뭐하는 거야....중얼거리는데 한참을 그러고 쪼그려 앉아있는 우산 두 개 노려보고 있으려니 저 반대편에서 또 개 큰 우산 쓰고 성큼성큼 걸어온 신현철, 먼 눈에서도 보이게 왁왁거리면서 둘 잔뜩 혼내는 게 보여.
정우성 그제야 미간에 저도 모르게 생겼던 주름 살짝 풀어지는데, 그새 실갱이가 끝났는지 신현철 자기 교복 마이가 다 젖거나 말거나 흠뻑 젖은 우비 차림인 이명헌 어깨에 번쩍 둘러메는 거 보고 자기도 모르게 발끈해서 순간적으로 의자 박차고 일어날 뻔 한 걸 의자 프레임 꽉 움켜 쥐는 걸로 대신하고서 손에 습기 가득한 의자 쇠냄새 쨍하게 밸 때까지 잔뜩 힘주고 있는 거임.
이대로 충동에 몸을 맡기고 비 오는 운동장으로 뛰쳐나간다면 옆에서 어설프게 팔만 뻗어 어색하게 우산 씌워주는 중인 최동오나 그거 본 척도 안 하고 어깨가 다 젖어선 잔뜩 여유만만한 척 걸어가는 신현철 중에 누구를 더 진흙탕 위로 밀쳐버리고 싶은지도 모르고서.



우성명헌 동오명헌 현철명헌 명헌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