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브






그게 '타브랑 나 사이에 2세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기쁠까', 이게 아니라 승천한 뱀파이어 로드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릴 수 있다보니 뭔가 일상에 권태를 느껴서 그런 거면 좋겠다. 처음엔 그런 이유였음.
어쨌든 아이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관점은 아닌거지 그냥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다 해보니까 재미없네 나 또 뭐 할 수 있지 아 애를 만들 수 있구나 함 해볼까 이런 거ㅇㅇ 

DnD 뱀파이어는 인간피를 부어라 마셔라 한 상태에서 교미하면 담피르라는 혼혈?이 태어난다는데, 스폰도 아닌 승천 뱀파이어한테 '다량의 인간 피'라는 조건은 정말 별 것도 아니겠지.

"달링,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어떨 거 같아?"

타브는 깜짝 놀랐음. 아스타리온이 저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자길 한시도 곁에서 떨어뜨려놓지 않으면서 아이 얘기까지 하니 정말 부부라도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가 아스타리온에게 뭔가 속내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음. 아스타리온을 너무 잘 아는 타브니까 아스타리온이 정말 순수하게 아이가 좋아서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 거임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괴로운 일이 되겠지."

"글쎄, 난 그렇게 괴로울 것 같지가 않은데?"

너가 괴로운 건 알겠는데 나는 괜찮으니까 니 의견은 어쨌든 잘 알았고 난 내 맘대로 할 거임. 저런 막무가내를 보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곧 싫증이 나서 저러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타브였음. 그러면서 잔소리도 한 번 해주고.

"난 아이 얘기를 가볍게 꺼내고 싶지 않아. 생명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

"흐음"

인간타브는 지난 몇 년동안 아스타리온의 곁을 얌전히 잘 지키고 있었고 아스타리온은 그런 타브가 기특했음. 아직은 인간이지만 곧 스폰을 거쳐 뱀파이어 신부로 만들어줄거임. 이건 아스타리온이 승천한 날부터 쭉 계획해왔던 거겠지. 적당한 때를 보고 있었고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타브가 튀어버린거임. 타브도 눈치를 챈 거지. 얘가 곧 나를 스폰으로 만들겠구나. 뱀파이어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이니 뭐니 그런 건 타브에겐 다 의미없고 부질 없을 뿐이었어. 타브는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고 싶었음.

언젠가 타브가 '아이 얘기는 내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생명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했었고, 그 말은 아스타리온에게 '여차하면 타브를 곁에 묶어둘 구실로 아이가 필요하다'로 와닿았었는데 일이 이렇게 터져버렸음.

어쨌든 눈이 돌아간 아스타리온이 온 사방에 스폰이며 박쥐며 싸그리 풀어다가 이 잡듯이 뒤지게 해서 타브를 찾아내긴 했음. 어찌나 잘 숨어다녔는지 몇 달을 애태웠고 아스타리온까지 직접 나서서 타브를 찾았겠지. 타브는 모를 거야. 아스타리온이 타브를 잃어버린 몇 달 동안 무얼 준비하고 있었는지.

아스타리온은 과거에 7천 스폰이 갇혀있던 지하감옥으로 타브를 데려갔음. 기어코 나를 가두는구나 싶었는데, 사람들이 거기 갇혀있는 거야. 타브가 없는 동안 정말 이를 갈며 인간들을 잡아들여 차곡차곡 가둬놓은거지. 아이를 만들어야 하니까. 뱀파이어가 아이를 만드는 데에 인간 피가 얼마나 필요한지는 아스타리온도 잘 모르지만 많으면 많을 수록 좋겠지

"그런 말도 있잖아, 달링.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이게 무슨 짓이야! 이렇게 해서 얻는 아이를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랑하겠지."

이런 심각하고 참혹한 상황 중에 너무나 태연한 아스타리온의 말투에 타브는 할 말을 잃었음. 그리고 아스타리온 말대로 어떻게 태어난 아이든지 타브는 결국 둘 사이의 생명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내가 달링을 너무 잘 알아서."

감옥 안의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타브는 머리가 다 어지러웠지만 아스타리온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겠지.

"너무 심각하게만 보지마. 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날 아이라고 생각해."

꺼내달라는 사람들의 절규소리를 뒤로 하고 다시 끌려가 침실에 갇혀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구해왔던 영웅 타브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을 듯. 아무리 기다려도 아스타리온이 오지 않는 이유가 뻔하니까. 그리고 타브의 끔찍한 걱정대로 아스타리온은 온 몸에 인간의 피를 뒤집어쓰고 피에 취해서 침실 문을 부술 듯이 열며 들어왔음. 달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빛나곤 했던 아스타리온의 아름다운 맨 몸이, 살결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로 목욕이라도 한 듯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음. 코를 찌르는 지독한 피비린내에 타브는 역겨운 취기가 올라오는 듯 했음. 헛구역질을 하는 타브를 보고 아스타리온은 피가 튄 얼굴로 씩 웃으면서 타브에게 다가갔음. ..그리고 그 날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