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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20:10
안녕하세요.
제목처럼 급한 상황이니까 자세한 건 생략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대학에서 만난 선배가 새파란 새내기인 저 상대로 사기를 쳤어요. 심각한 일이니까 다들 제 고민 좀 들어주세요.

 

그 선배를 처음 만난 건 새터였어요. 처음 하는 대학 생활이라 기대하기도 했고... 강당에 모여서 조 짜고 통성명한 다음에 버스타고 출발했거든요. 근데 누가 제 옆에 털썩 앉더라고요. 처음이니까 다 모르는 사람이긴 하죠? 근데 우리 조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두꺼운 눈썹이랑. 의중을 읽을 수 없는 새까만 눈이랑, 말랑하고 폭신해 보이는 입술은 한 번만 봐도 절대 잊히지 않거든요. 제가 계속 쳐다봤더니 그 사람이 자리 있어, 뿅?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뿅? 엄청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일단 고개를 저었어요. 그러더니 그 사람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고서 좌석에 몸을 깊게 묻더라고요. 버스에 막 올라탄 우리 조 선배가 아는 척하는 걸 보니까 선배인 것 같았어요. 거기다가도 대고 또 짧게 뿅. 하고 대답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내내 말 한마디도 없이 계속 자는 거예요. 저도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같이 앉아있었죠. 원래 버스 타고 가면서 얘기도 많이 하고 좀 친해지지 않나요? 뭐 신입생 중에 딱히 친해지고 싶은 애들이 있던 건 아닌데 그래도요. 가끔씩 버스가 코너를 돌 때마다 그 선배 고개가 제 쪽으로 쏠리는 게 나쁘지는 않았, 아니 좀 신경 쓰이기는 했어요.

도착하니까 또 부스스 일어나서 가더라고요. 옆자리 앉았는데 통성명도 안해주고 말이에요...

 

아무튼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어요. 뭐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요. 선배들이 다른 프로그램들은 설렁설렁 넘기고 저녁 술자리가 목적인 듯 폭주 기관차처럼 달렸거든요. 신체 건강하고 술 잘먹게 생긴 사람들이 모인 건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술 처음 먹고는 알딸딸해서 기분이 좀 좋아지긴 했는데 곧 지루해졌어요. 술게임도 같은 걸 반복해서 재미없었고요. 몰래 빠져나가기엔 또 너무 눈에 띄고... 어쩔 수 없이 시간 죽이고 있는데 누가 제 옆에 털썩 앉는 거예요. 맞아요. 또 그 선배였어요.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아까보다 좀 풀린 인상의 선배가 제 귓가에 대고 재미없지, 뿅. 하는데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어요.

어떻게 알았냐고 대답하니까 제 얼굴에 다 써있다면서 자기가 들고온 잔이랑 제 잔을 바꾸더라고요.

엄청 도수 높은 술 아냐? 의심하면서 봤더니 선배가 마시라고 고갯짓했어요. 그래서 마셨더니 엄청 시원한 사이다더라고요. 저 원래 탄산은 잘 안 마시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이다에 담근 것처럼 막 보글거리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막 가슴에서 기포가 팡팡 터지는 것 같고요. 갑자기 얼굴도 막 뜨거워지는 거예요. 혹시 사이다에 술 섞으면 이런 맛 나나요? 아시는 분은 댓글 좀 부탁드릴게요. 제가 그때부터 술에 확 취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술 먹기 싫다고 선배한테 입 삐죽거리면서 투정도 좀 부렸고요. 선배가 제 앞으로 오는 술 다 먹어줬어요. 또 선배는 같이 앉았으면서 이름도 안 알려주냐고 물어봤더니 목걸이 명찰 보여주는데 거기에도 뿅. 이라고 적혀있는 거예요. 놀리지 말라고 했더니 선배가 웃으면서 제 머리 쓰다듬어줬어요.

선배 손도 엄청 따뜻하고, 막 따라서 웃음이 나와서 한참 웃고. 그러다가 졸리다고 했더니 선배가 먼저 자라고 저를 자리에 눕히고 옷을 벗어서 덮어줬어요. 비몽사몽인 와중에도 이거 선배 꺼 아니에요? 하고 물어봤더니 나중에 돌려줘뿅.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선배 학번이 찍힌 과잠을 덮고 잤어요. 약간 시원하고 묵직한 남자 향수가 묻어있는데 그것도 얼마나 좋던지. 몰래 얼굴 묻고 숨 들이쉬었는데 안 들켰겠죠? 그렇게 기분 좋게 잠들었어요.

 

일어나니까 내 앞에 선배가 자고 있더라고요. 어제보다 부어서 더 둥글둥글해진 얼굴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데 선배가 부스스 깨어나는 거예요. 저보고 일어났어? 하고 물어보는데 목소리도 잔뜩 가라앉아있고,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그러는게 좀 귀여웠어요. ㅎㅎ 선배한테 이런 마음 먹으면 건방진가요?

 

선배가 계속 그 자리에 앉아서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길래 생수병 드리면서 혹시 어제 저 때문에 술 많이 드셨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더니 너야말로 얼마나 마셨길래 그랬냐고 되묻는 거예요.

 

분명히 저를 과잠 덮어서 재웠는데 얼마 못 가서 일어나더니 내내 선배 끌어안고 있었대요. 어디 가려고 할 때마다 투정 부리면서 엉겨 붙어서 마지막엔 선배가 아예 제 무릎에 앉아야 했다는 거예요…

저도 술을 마셔본 게 처음이라 제 술버릇이 그럴 줄 몰랐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선배가 소문나서 장가는 다 갔다뿅. 하고 장난처럼 툭 던졌어요. 선배한테 건방지게 굴고 폐를 끼친 건 죄송한데 그 말은 이상하게 좋았어요.

 

선배랑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다른 선배가 방에 오더니 데려갔어요. 같이 아침 먹자고 하려고 했는데…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선배가 제 폰 가리키면서 거기에 내 번호 있어, 뿅 하더라고요. 어제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 선배 번호는 또 땄나 봐요.

나중에 제가 꼭 밥이든 산다고 외쳤더니, 선배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면서 학교에서 봐, 뿅. 했고… 새터는 그대로 끝이 났어요.

 

학교에서 보자니. 그 말은 만나서 데이트하자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쉬는 동안 광철이랑 미사랑 쇼핑가서 새 옷도 사 왔고요. 개강날 최선을 다해 옷을 골랐어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더니 저를 반기는 건 웬 빡빡이인거에요.


 

빡빡이요. 빡빡이

그냥 빡빡이도 아니고 제복 입은 빡빡이였어요. 충격에 빠진 제 옆으로 과 선배가 지나가면서 오~ 학군단 ㅇㅇ이~ 하면서 아는 척을 했고
제 선배, 아니 빡빡이선배가 경례를 올려붙이더라고요. 그 동작이 너무 절도 있어서 더 어이없었어요.

말로만 듣던 학군단, ROTC, 학군사관이 제 눈앞에 있다니요…

 

이건 너무하죠. 우리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자기가 빡빡이라고, 아니 빡빡이가 될 거라고 한 번도 얘기해주지 않았잖아요.

 

제가 충격에 빠지건 말건 선배는 여전히 읽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저를 대했어요. 한마디 설명도 해주지 않고요.

뭔 네모난 철가방도 들고 있고요. 몸에 맞춘 듯 잘 어울리는 제복을 입었는데 가슴이 너무 딱 맞는 것 같아요... 학사장교가 이래도 되나요? 거짓말 안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선배 가슴 쳐다봤다구요.

 

그리고 무슨 못생긴 베레모도 쓰고 있던데 벗으면 안 된대요. 애들이 막 물어보니까 살짝 벗어서 보여줬는데 두상도 완전 동그랗고 예뻤어요.

 

선배는 왜 학군단이 됐을까요? 물론 한국 남자라면 병역의 의무를 져야하지만, 뭐 다른 방법도 많잖아요… 제가 후배인 게 너무 억울해요. 작년에 알았더라면 선배가 학군단이 못 되게 막았을 거예요.

 

그런데 학군단이면 체력장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면서요. 그러면 체력도 엄청 좋을 거 아니에요. 그게 저랑도 잘 맞을 것 같고, 그건 또 생각할수록 좋은 거예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싱숭생숭해서 며칠 동안 선배 얼굴도 못 봤어요. 맥없이 강의실에 앉아있는데 누가 앞자리에 앉으면서 뿅. 하는 거예요.

놀라서 쳐다보니까 후드티에 백팩을 끌어안은 선배가 앉아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제복은요? 하고 물어봤죠. 놀라서 동그래진 제 눈을 보더니 군사학 있는 날만 입고 오면 된다뿅. 하면서 피식 웃는데 열받고 엄청 설렜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모자 쓰고 후드 입은 뒷모습까지도 귀여워요. 어떻게 하면 좋죠?

 

그날은 선배가 점심도 사주고 같이 땡땡이도 쳤어요. 학군단인 거 말 안 해서 미안하다고 놀랐냐고 물어보는데 그동안 복잡했던 마음이 다 풀렸어요. 학교 근처에 유명한 공원도 갔고요. 좀 있으면 여기에 벚꽃이 아주 많이 핀대요. 그래서 같이 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사복 입는 날에는 밖에서 손잡아도 된대요.
 

 

아무튼 그래서 제 고민은요... 제가 이거저거 좀 알아봤는데

ROTC는 졸업하고 임관할 때 에메랄드 반지 맞추는데(디자인은 엄청 별로더라고요) 피앙세 링이라고 배우자 거까지 맞출 수 있대요. 근데 제가 손이 큰 편이라 호수 엄청 크게 해야할 것 같거든요. 그래도 맞출 수 있겠죠? 추가 요금 나오는 건 상관 없어요.

그리고 결혼식할때 칼로 길 만들어주는 예도 그런 것도 해준대요. 드라마에서나 봤는데 실제로도 많이 하나요? 좀 부담스럽기는 한데 신기하잖아요ㅎㅎ 근데 제가 키가 커서 저랑 형이 통과하려면 칼 되게 높게 들어주셔야 할 것 같아요. 괜찮겠죠?
그리고 장교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 괜찮나요? 방음 같은것도 문제 없는지 궁금해요.

 

선배한테 물어보면 제일 빠르긴 한데...아직 고백도 못 했는데 김칫국 마시는 것 같고 좀 부끄러워요!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우성명헌